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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의 수와 우박


 

눈꽃의 수와 우박

 

사람들도 자연현상의 원리가 어떤 것인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어떤 꽃들은 꽃잎의 수가 일정하다든가 또 눈꽃이나 얼음의 결정이 육각형을 띠고 있는지 그 원리를 알고 싶었던 것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러한 호기심이랄까 궁금증은 「천도책」의 질문에도 반영되어 있다.

 

“초목의 꽃잎은 다섯 잎으로 된 것이 많은데, 눈꽃은 유독 여섯인 것은 무엇 때문인가?”

 

꽃잎이 5장이 되는 식물에는 살구·복숭아·채송화·패랭이꽃·찔레·딸기·사과 등이 있고, 붓꽃은 3장이고, 달맞이꽃·냉이·무·배추 등은 4장이며 코스모스나 모란은 8장이다. 또 금잔화는 13장이고, 과꽃은 21장, 질경이는 34장이라고 한다. 꽃잎의 수가 반드시 홀수나 짝수에 한정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 눈꽃이 육각형인 것은 물분자의 구조와 관계있다고 한다. 곧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가 두 개로 이루어진 물분자가 동결될 때는 다른 물분자와 달라붙어서 안정된 형태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6각형을 띤다고 한다.

그렇다면 율곡은 어떻게 답했을까?

 

“초목의 꽃은 양기(陽氣)를 받았기 때문에 꽃잎이 다섯 장이 많은데, 다섯은 양수(陽數)입니다. 눈꽃은 음기(陰氣)를 받았기 때문에 유독 여섯이 되었으니, 여섯은 음수(陰數)입니다. 이 역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전통의 양수와 음수는 제각기 홀수와 짝수를 말한다. 오늘날 양수(+)와 음수(-)의 그것과 다르다. 율곡의 답은 전통의 양수와 음수 곧 홀수와 짝수를 가지고 초목과 눈의 꽃잎의 수를 설명했다. 만약 식물의 꽃잎이 모두 홀수로만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그나마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는 근거가 없다.

이어서 눈꽃이 여섯인 것은 음수로 음기와 관련시키고 그렇게 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눈꽃이 육각형 형태를 띤 것은 필연적인 자연의 원리이므로 근거가 있다. 그러나 이 논리로 보자면 모든 액체가 온도가 내려가 응고할 때 모두 짝수의 결정체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결정체의 분자구조를 밝히지 못한 이상, 음수와 양수를 유비적으로 사물에 적용한 것은 근대과학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그런데 자연현상 가운데 보기 드문 사례에는 우박·지진·해일·화산폭발 등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우박 외의 다른 것들은 흔한 일이 아니어서 이런 자연현상에 대한 질문은 없다. 그래서 우박의 문제를 내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우박은 서리도 아니고 눈도 아닌데 무슨 기(氣)가 모인 것인가? 어떤 것은 말의 머리만큼 크고 어떤 것은 달걀만큼 커서, 사람과 새와 짐승들을 죽인 것은 어느 때에 있었는가?”

 

이 문제에서 우리는 ‘우박은 어떤 기가 모여서 된 것인가?’라는 질문에 관심을 가져 보아야 한다. 두 가지 방향으로 문제를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순수한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우박이 생기는 원리를 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적 관점 또는 인간사회의 일과 관련시켜서 묻는 관점이다. 앞에서도 줄곧 이런 두 가지 패턴으로 질문했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기가 모인 것인가?’라는 질문은 형체가 있는 모든 사물은 기가 모여서 형성된다는 기철학적인 전제를 갖고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율곡의 답안은 이렇다.

 

“우박은 어그러진 기가 만든 것입니다. 음기가 양기를 위협하기 때문에 그 우박이 생길 때는 물건을 해칩니다. 옛일을 상고하면 우박이 큰 것은 말 머리만 하고 작은 것은 달걀만 하여, 사람을 상하게 하고 짐승을 죽였던 일은 전란이 심한 세상에 일어나거나 재앙의 기초가 되는 임금을 경고하기 위하여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역대의 경계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은 반드시 여러 번 진술하지 않더라도 이것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박은 적란운(積亂雲: 수직으로 크게 발달한 구름)이 발달되어 얼음알갱이가 형성되어 떨어지면서 과냉각된 구름 알갱이와 충돌하면서 얼어붙고, 또 상승기류를 만나 상승과 하강을 반복해 큰 얼음알갱이로 변해 떨어지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5㎜∼10㎝ 크기의 얼음 또는 얼음 덩어리이다.

여기서 율곡은 우박을 어그러진 기가 만든 것으로 보는데, ‘어그러진 기’의 원문은 여기(戾氣)이다. 이것의 반대는 ‘바른 기’ 곧 정기(正氣)이다. 그 여기를 한의학에서 괴려지기(乖戾之氣) 또는 독기(毒氣)라고도 말하며 감염증과 전염병을 일으키는 사기(邪氣)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다. 어째든 그 어그러진 기란 인간과 만물에 해가 되는 기로서 음기에 속한다고 보았다. 우박이 찬 얼음알갱이로 이루어져 있고, 찬 공기에 의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음기로 본 것은 당연하다.

고대의 인류는 기후나 날씨가 차가운 것보다 따뜻한 것을 선호했다. 그것은 당시에 기술적으로 난방시설을 잘 갖추지 못했고 또 몸을 따뜻하게 하는 옷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날씨가 추우면 농장물이나 가축이 잘 자랄 수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인류의 생산과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농업이 주요산업이었던 동아시아에서는 차가운 음기(陰氣)보다 따뜻한 양기(陽氣)에 더 가치를 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연의 영역에서도 양기를 선호하고 음기를 멀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박이란 그런 음기의 소산이다.

이런 음기가 왕성한 것은 비록 자연적인 현상이라 할지라도 인간사와 무관하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거나 포악한 군주가 있으면 경고하기 위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이점은 앞에서 여러 차례 밝혔기 때문에 율곡 자신도 더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 재차 강조하지는 않았다.

비가 내리는 원리


 

비가 내리는 원리

 

란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겨 작은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는 현상이다. 한 개의 빗방울이 되기 위해서는 10만개의 구름방울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구름이 모여 있다고 해서 곧장 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려면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 첫째 찬 기운과 더운 공기가 교차하는 전선(前線)이 형성되어야 하거나, 여름철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아래와 위로 뒤바뀌고 섞이면서, 또 지형적으로 높은 산이 있거나 태풍이 불 때 비가 온다.

천도책」의 비에 대한 질문 역시 두 가지 관점에서 묻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아래와 같다.

 

“비는 구름을 따라 내리는 것인데, 간혹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오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비가 내리기 위해서는 구름이 있어야 하는 것이 필요조건이다. 그런데 빽빽한 구름이 있어도 비가 내리지 않을 때가 있다.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까닭은 무엇인가? 앞에서 비가 오는 네 가지 현대 기상이론을 소개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율곡의 경우는 어땠을까? 그의 답은 이렇다.

 

“비와 이슬은 다 구름에서 나오는 것인데 젖은 기운이 왕성한 것은 비가 되고, 젖은 기운이 적은 것은 이슬이 됩니다. 음양이 서로 합하면 이에 비가 내리는데, 간혹 구름만이 자욱하고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아래위가 서로 합하지 못해서입니다. 『홍범전(洪範傳)』에 이르기를, ‘황제가 지극하지 못하면 그 벌(罰)은 항상 음(陰)하다.’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입니다.”

 

‘젖은 기운’이란 말을 썼는데 현대말로 물방울로 보아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니까 물방울이 왕성하면 비가 된다는 것은 일리가 있으나 젖은 기운이 적은 구름이 이슬이 된다는 말은 맞지 않다. 여기서 음기와 양기가 합하면 비가 된다는 말에서 음기와 양기는 찬 공기와 더운 공기로 바꾸어 말할 수 있어, 앞에서 소개한 대로 비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음기와 양기는 순수한 자연의 기로만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황제가 지극하지 못하면 그 벌은 항상 음하다.’라는 설이 나왔다. 『홍범전』의 이 말은 『한서(漢書)‧하후승전(夏侯勝傳)』에 보이는데, 황제가 바르지 않으면 하늘은 벌을 내려 음기가 왕성하고, 양기가 부족해 합쳐 비를 만들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여기서도 자연과 인간의 일이 서로 감응한다는 천인상감(天人相感)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도 이 같은 맥락에서 묻고 있다.

 

“신농씨(神農氏) 때에는 비를 원하면 비가 오는 태평한 세상이라 연간 36번의 비가 있었으니, 자연 또한 사사롭게 운행하는 것이 두터운가? 혹은 군사를 일으킬 적에 비가 오고, 혹은 옥사(獄事)를 판결할 적에 비가 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신농씨는 중국 전설에 농사를 가르쳐 준 제왕이다. 자연의 운행도 태평한 세상에는 알맞게 비가 오니, 그것이 인간의 일과 관계 되느냐의 질문이다. 다른 인간의 중대사 또한 그러한 까닭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율곡의 답안은 다음과 같다.

 

“양기가 가득 차오르면 가물고, 음기가 왕성하면 장마가 지는데, 반드시 음양이 조화하여야 비 오거나 맑은 날씨가 때를 맞춥니다. 대개 신농씨 같은 성인이 다스리는 순박하고 밝은 시대에는 맑은 날씨를 바라면 맑고, 비를 바라면 비가 온 것은 진실로 당연한 이치입니다. 성왕이 백성을 다스릴 때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5일에 한 번씩 바람이 불고, 10일에 한 번씩 비가 내린 것도 역시 그 떳떳한 이치입니다. 이 같은 덕이 있으면 반드시 이 같은 보응이 있는 것이니, 어찌 자연의 운행이 사사로이 두텁게 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대개 원통한 기운은 가뭄을 부르기 때문에 한 여자가 한을 품어도 흉년이 됩니다.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이긴 것이 족히 천하의 억울한 기운을 해소하기에 충분하였고, 안진경(顔眞卿)이 옥사를 판결한 것이 한 지방의 원통한 기운을 해소하기에 충분하였으니, 알맞게 비가 내린 것이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하물며 태평한 세상에는 본래 필부필부(匹夫匹婦)조차도 그 은택을 입지 않은 이가 없으니, 어찌 비와 바람이 순조롭지 않겠습니까? 지극히 추울 때에도 하늘과 땅이 비록 닫히고 막혔으나, 음양이 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비가 엉겨서 눈이 되는데, 이는 대개 음기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옛날 자연에서 양기는 보통 덥고 건조한 공기이며, 음기는 그것에 상대적으로 차갑고 습한 공기를 일컫는다. 이런 공기가 만나야 비를 이룬다. 이런 자연의 기는 인간이 내뿜는 기와 관계할 수밖에 없는데, 인간사회에 억울하거나 원통한 일이 있으면 인간의 기가 자연의 기와 섞여 날씨나 기후가 고르지 않게 된다고 믿었다. 결국 그 원인은 통치자인 왕이나 그 통치를 대신 맡은 관리들에게 있다. 율곡의 답안에서 주나라 무왕(武王)이나 당나라 정치가이자 서예의 대가로 알려진 안진경의 예를 든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다.

앞의 글에서도 잠시 언급하였지만 비의 문제에 있어서도 어김없이 자연의 원리에 인간사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여기서 순수한 자연과학적 견해를 추출해 볼 수도 있지만, 문제나 답안 자체는 자연과학적 문제에 그다지 비중을 두기보다, 오히려 인간사와 그것을 관련시키는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물론 답이란 문제 때문에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숙제는 율곡이 과연 자연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예전의 견해처럼 그대로 수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아니면 자연 이해에 미신적 견해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전제 왕권을 제한하기 때문에, 아니면 시험관들이 정치적 자연관을 묻는 그 의도를 간파해서 이런 답을 하였을까? 이 문제를 답하기는 아직 이르고, 좀 더 숙고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슬과 서리


 

이슬과 서리

 

구 대기권에서 일어나는 기상현상에는 비·바람·눈·안개·서리·이슬·우레·구름·우박·무지개·황사 등이 있다. 이런 것들은 오늘날 과학에서 볼 때 파악하기 쉬운 것들이지만, 옛날에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이러한 기상현상이 평상시와 다르게 이변이 되었을 때, 그것을 가지고 인간사의 일을 점치기도 하였다.

따라서 자연현상에 대해 옛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졌던 견해는 첫째 그것이 일어나는 원리가 어떤 것인지 하는 것과 둘째 이변과 인간사가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파악하는 문제였다. 지금까지 소개한 「천도책」의 문제와 답은 모두 이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서리와 이슬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 첫 번째 문제는 이렇다.

 

“서리는 풀을 죽이고 이슬은 만물을 적시는데, 서리가 되고 이슬이 되는 까닭이 무엇인가?”

 

서리가 풀을 죽인다는 말은 풀이 서리를 맞으면 죽는 것을 의미한다. 늦은 가을 찬 서리가 풀 위에 앉으면 풀은 말라 죽고, 나뭇잎은 낙엽이 지기도 하고 말라서 떨어지기도 한다. 사실은 서리 때문에 풀이 죽은 것이 아니라 서리가 내릴 정도로 온도가 영하로 내려갔기 때문에 얼어서 죽은 것이다. 왜냐하면 서리란 영하의 기온에서 공기 중의 수증기가 땅에 접촉하여 얼어붙은 매우 작은 얼음이다.

이슬은 주로 봄철이나 여름철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갔을 때 공기 중의 수증기가 응결하여 풀이나 물체 위에 작은 물방울로 맺혀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만물을 적신다고 표현하였다. 여름철 차가운 음료수 병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서리와 이슬이 생기는 원리를 율곡은 뭐라고 답했을까?

 

“양기(陽氣)가 펴질 때에 이슬이 만물을 적시는 것은 구름이 축축하게 한 것입니다. 음기(陰氣)가 혹독할 때에 서리가 풀을 죽이는 것은 이슬이 동결(凍結)한 것입니다. 『시경(詩經)』에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갈대는 푸르고 푸른데, 흰 이슬은 서리가 된다.’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양기가 펴질 때’란 주로 봄철과 여름철을 말한다. 대개 양기가 펼칠 때 만물이 소생하여 무성하게 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슬은 봄과 여름철에 구름이 축축하게 했다고 하는데, 물론 틀린 생각이다. 잘 알다시피 이슬은 공기 중에 습도가 높고 구름이 없는 맑은 날 기온의 일교차가 클 때 잘 맺힌다.

음기가 혹독할 때는 늦가을부터 겨울철이다. 대개 찬 기운을 음기로 표현한다. 이때의 서리를 이슬이 동결한 것이라 표현한 것은 비교적 정확하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밤 동안 얼지 않고 맺히면 이슬이요, 얼어서 물건에 달라붙으면 서리가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은 이렇다.

 

“남월(南越)은 따뜻한 지방으로 6월에 서리가 내리는 것은 혹독한 괴변인데, 당시의 일을 상세하게 말할 수 있는가?”

 

남월은 지금의 중국 광동·광서 지방에 있었던 한나라 때의 나라 이름으로, 중국에서도 남쪽 지방에 속한다. 이 문제는 이슬이나 서리가 생기는 원리에 이어, 이변이 생겼을 때 인간사와 연결시키는 질문이다. 사실 첫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은 절기상으로 보면 입동(立冬) 바로 앞에 있다. 그런데 더운 여름철에 내린다면 이변이다. 여기서 6월이란 아마도 음력일 것이므로 양력으로 환산하면 대개 7월에 해당된다.

율곡의 답은 이렇다.

 

“음기가 극성하면 서리가 내립니다만, 간혹 서리가 제 때에 내리지 않기도 합니다. 당나라 때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조정에 임하자, 음·양의 위치가 바뀌어 남월(南越)은 지극히 따뜻한 지방인데도 6월에 서리가 내렸으니, 생각건대 이는 반드시 온 세상이 온통 몹쓸 음기(陰氣) 속에 갇혀서 그런 것 같습니다. 측천무후의 일은 말할 수 있지만 말하려면 길어집니다.”

 

여기서 측천무후는 중국에서 여성으로 유일하게 황제가 되었던 인물이다. 당나라 고종의 황후였지만 690년 국호를 주(周)로 고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15년 동안 중국을 통치한 인물이다. ‘음양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말은 여성이 황제가 된 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옛날에는 음양으로 사물을 두 가지 방식으로 분류하기도 했는데, 가령 양은 따뜻함, 남성, 군자, 임금, 강함, 적극성, 태양, 봄과 여름 등을 상징하고, 음은 차가움, 여성, 소인, 신하, 부드러움, 소극성, 달, 가을과 겨울 등을 상징했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가능했다. 전통적으로 음을 누르고 양을 붙들어 세우고자 하였다.

그러니 여성이 황제가 되었으므로 음의 기운이 왕성하여 6월인데도 서리가 내렸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것은 과학적인 판단보다는 상당히 정치적인 견해에 가깝다. 율곡이 정말로 여왕이나 여자황제가 있기 때문에 여름에 서리가 내린다고 믿었는지 알 수 없지만, 과거시험을 통해 수험자들에게 전통의 음양사상의 내용을 물었기 때문에 이렇게 답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참고로 조선후기 최한기(崔漢綺)는 이슬과 서리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땅의 습기가 높이 치솟지 않아 구름을 맺을 수 없어 지면에 흘러 다니다가, 해가 진 후 차가운 밤기운을 받아 상승했던 강한 힘이 소멸하고 아래로 떨어지는데, 이것이 이슬과 서리이다. 외부의 냉기가 많은 가을과 겨울에는 서리를 맺고, 외부의 냉기가 적은 봄과 여름에는 이슬을 이룬다. 하늘이 맑고 바람이 없으면 이슬이나 서리가 맺힐 수 있으나, 만약 바람이 불거나 흐린 날에는 기가 흩어져 서리나 이슬이 맺힐 수 없다. 물에 비유하면 흐름이 멈추어 있는 것은 쉽게 얼고 흘러 움직이는 것은 얼기 어려운 것과 같다
(최한기저|이종란 옮김, 『운화측험』, 한길사, 2014, 299쪽).”

이런 견해는 당시 서양과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19세기에 말한 것이므로 당연히 현대 과학의 견해에 가깝다.

우레와 벼락은 누가 만드나?


 

우레와 벼락은 누가 만드나?

 

레와 번개가 치면 사람들은 습관처럼 두려워한다. 빛과 소리가 사람의 눈과 귀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 옛날 공자도 천둥이 울리면 얼굴빛이 변하며 자다가도 일어나 의관을 갖춰 입고 바로 앉았다고 전한다. 우레 소리에 삼가고 두려워하는 모습이 아닐까? 이것은 오늘날처럼 전기방전에 따른 단순한 기상현상이라는 사실을 그 옛날에는 몰랐기 때문에 생긴 일로 보이며,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우레와 번개에 대해 여러 가지 신화적 또는 미신적 견해가 생기게 되었다.

옛날에는 통속적으로 우레와 번개를 다스리는 신이 있었다고 여겼는데, 그것을 뇌공(雷公) 또는 뇌사(雷師)나 뇌신(雷神)으로 불렀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제우스나 유피테르가 우레를 일으키며 손에는 뇌정(雷霆)과 왕홀(王笏)을 가진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이런 번개나 우레의 원인이나 원리를 얼마나 실제와 가깝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태도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율곡의 「천도책」에서 묻는 이번 문제는 바로 우레와 벼락에 관한 것이다. 그 첫 번째 질문은 이렇다.

 

“우레와 벼락은 누가 이를 주재(主宰)하여 그 빛이 번쩍번쩍하고 그 소리가 두려운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문제에서 ‘누가 이를 주재하며’라는 말은 분명 어떤 인격적인 존재가 우레나 번개를 주재한다는 옛 신화 또는 종교적 흔적이 남아 있는 표현이다. 아니면 시험관이 이 자연현상을 수험생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파악하고 있는지 묻는 함정일 수도 있다.

율곡의 답안은 이렇다.

 

“양기가 발산한 뒤에 음기가 양기를 싸서 양기가 나오지 못하면, 떨치고 쳐서 우레와 번개가 됩니다. 우레는 반드시 봄과 여름에 일어나니, 이는 천지의 노한 기운입니다. 빛이 번쩍이는 것은 양기가 발하여 번개가 된 것이요, 소리가 두려운 것은 두 기가 부닥쳐서 우레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반드시 어떤 누군가가 그 벼락 치는 권한을 잡고 주관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이치에 맞지 않게 따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 답안을 여기까지만 읽어보면 신화적·종교적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음기와 양기로서 나름의 합리적 견해로 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자연현상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을 설명할 때 기(氣)를 사용한다. 그래서 양기와 음기로써 설명해내었는데, 뻗어나가는 양기와 움츠려드는 음기의 성질을 가지고 설명했다. 실제로 양전하(+)와 음전하(+)의 방전현상으로 생기는데 번개는 빛이고 소리는 우레이다. 여기서 단지 방전현상이라는 것만 몰랐지 두 기가 관계해서 생긴다는 견해는 실제에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

17세기까지도 서양 사람들 가운데는 번개를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따랐는데, 이렇게 말하였다.

“건조하고 더운 공기가 이미 차가운 구름 안에서 막혀서 이리저리 날라 다니면서 충돌하기 때문에, 불에 타면서 빛이 생기므로 번개가 된다
(알폰소 바뇨니 저|이종란 옮김, 『공제격치』, 한길사, 2012. 참조).”

이 또한 천둥과 번개가 전기방전이라는 점을 몰랐기 때문에 이렇게 설명했던 것이다.

우레에 관한 두 번째 질문은 벼락에 대한 것으로 옮겨간다.

 

“간혹 사람이나 물건이 벼락을 맞는 것은 또 무슨 이치인가?”

 

오늘날에도 우리는 가끔 야외에서 등산을 하거나 골프를 치다가 벼락을 맞았다는 뉴스를 접할 때가 있다. 그 사람들은 왜 벼락을 맞았을까? 그들에게 도덕적으로 나쁜 죄가 있어서일까?

율곡의 답안은 이렇다.

 

“예전 선비들이 말하기를, ‘우레와 번개는 음양의 정기(正氣)라, 겨울잠 자는 동물이 놀라서 깨어나게도 하거나 간사한 사람을 치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본디 사기(邪氣)가 모인 것이 있고 물건에도 역시 사기가 붙어 있으니, 정기가 사기를 치는 것은 또한 당연한 이치입니다. 공자께서 심한 천둥이 칠 때면 반드시 얼굴빛이 변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물며 마땅히 벼락이 쳐야 할 곳에 친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상(商)나라의 무을(武乙)에게, 또 노(魯)나라의 이백(夷伯)의 사당에 벼락이 친 것에 대해 이런 이치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을 가치중립적으로 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유학자들은 비록 인격적인 신이 자연의 운행을 주관한다고 믿지는 않았지만, 자연의 이법이나 원리에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그래서 정기(正氣)란 지극히 공평하고 크고 바른 천지의 원기(元氣)로 여겼으며, 반면에 사람과 물건에 바르지 못한 나쁜 기운인 사기(邪氣)도 있다고 여겼다. 이런 사기가 있는 까닭은 기의 운동과 변화과정에서 치우치거나 막히거나 거칠거나 어둡거나 잡된 것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벼락은 정기가 사기를 치는 것이라 여겼다.

여기서 무을은 상나라의 무도한 왕인데, 가죽 주머니에 피를 넣어 나무에 매달아놓고 활을 쏘아 맞히고는 ‘내가 하늘과 싸워 이겼다.’라고 했다가 들에 나갔을 때 벼락에 맞아 죽었다고 전한다. 또 노나라 대부 전씨(展氏)의 조상인 이백(夷伯)의 사당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기록을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것을 두고 하늘이 벌을 주었는데, 전씨에게는 다른 사람이 모르는 죄악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튼 조선시대까지 천둥과 번개를 비롯한 자연현상을 보는 것에는 인간의 도덕적 관점이 녹이 있다. 오늘날도 누구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흔히

“야, 이 벼락을 맞아 죽을 놈아!”

이렇게 말하는데, 바로 이런 자연관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조선후기 홍대용의 글에서도 이런 점이 발견된다.

“무릇 우레는 그 성질이 굳세며 세차고 그 기세는 떨치며 맹렬하여, 바르고 곧은 것은 피하고 부정하고 악한 것에 반드시 달려간다. 대개 바르고 곧은 것은 우레가 두려워하고, 부정하고 악한 것은 우레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의산문답』).”

여러분은 아직도 죄 있는 사람이 벼락을 맞는다고 믿는가?

안개와 그 색깔


 

안개와 그 색깔

 

개는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찬 공기를 만나 응결하여 지표면 가까이 떠다니는 현상을 말한다. 대개 밤낮의 기온 차이가 심한 봄이나 가을철에 많이 생긴다. 안개는 본질적으로 구름과 같지만 지표면 가까이 있다는 점에서 그것과 다르다. 이 밖의 조건은 공기 중에 수증기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데, 수증기의 공급원이 되는 강이나 호수 또는 바닷가에 안개가 자주 발생한다.

또 안개가 발생하는 실험을 간단히 할 수 있다. 집기병 속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운 다음 잠시 후 물을 조금만 남기고 쏟아 버린다. 그런 다음 비닐로 얼음조각을 싼 다음 실로 묶어 병속에 매달아 두고 관찰한다. 수증기가 많이 포함된 따뜻한 공기가 식으면서 안개가 발생한다.

현대 과학적으로 보면 안개는 이렇게 간단하지만 옛날에는 어떻게 설명했을까? 먼저 「천도책」에 나오는 문제부터 살펴보자.

 

“안개는 무슨 기운이 발동한 것이며, 그것이 붉고 푸르게 되는 것은 무슨 징조인가? 누런 안개가 사방을 막기도 하고, 낮에 많은 안개가 끼어 어둡기도 한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이 문제는 먼저 안개가 어떻게 생기는지, 안개가 붉고 푸른색은 무슨 징조인지, 또 누런 안개가 사방을 막고 낮에 어두울 정도로 안개가 끼는 까닭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다. 보통 안개를 하얀색으로 알고 있는데, 실은 무색의 작은 물방울에 빛이 산란하면서 희게 보이는데, 붉은색이나 푸른색 그리고 누런색은 왜 생길까?

일단 율곡의 답을 살펴보자.

 

“안개는 음기(陰氣)가 새어나가지 못하여 찌고 막힌 것입니다. 물건의 음기가 모인 것도 안개를 만들 수 있으니, 대개 산천의 나쁜 기운입니다.”

 

전통에서 말하는 음기는 보통 물기가 많이 포함된 기 또는 차가운 기를 말한다. 일단 안개를 물기가 많은 공기 곧 수증기와 차가운 공기와 연관시켰다는 점에서는 일리가 있다. 더구나 새어나가지 못하고 찌고 막힌 것이란, 정확하지는 않지만 더운 수증기가 식어 물방울로 변한 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또 물건의 음기가 모인 것도 안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앞에서 소개한 안개 실험에서 차가운 기가 수증기가 포함된 더운 공기를 식혀 안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안개와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물건의 음기가 산천의 나쁜 기운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보통 음기를 차가운 기로 본다. 늦가을이나 겨울철에 해당하는 기여서 식물을 말라죽게 하고 동물과 인간에게도 피해를 주므로 해로운 기로 여겼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따뜻한 양기는 생물을 살리므로 좋은 기로보고, 그 차가운 음기는 그 반대의 성질을 가졌으므로 나쁜 기운으로 여겼다.

그 다음 율곡의 답안은 이렇다.

 

“그 붉은 것은 전쟁의 상징이 되고, 푸른 것은 재앙이 되는 것은 모두 음이 왕성한 징조입니다. 역적 왕망(王莽: 전한 말 정치가)이 한나라의 황제자리를 찬탈했을 때에는 누런 안개가 사방에 쌓였고, 당나라 안록산의 난 때에는 큰 안개로 낮에도 어두웠으며, 한나라 고조 유방이 백등(白登)에서 포위되었을 때나, 문천상(文天祥: 송나라의 충신)이 시시(柴市)에서 죽을 때에는 다 축축한 흙비가 왔습니다. 간혹 신하가 임금을 반역한다거나 오랑캐가 중국을 침략하면, 이런 것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앞에서 소개한 다른 자연현상처럼 안개의 색깔을 가지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점치고 있다. 앞에서 붉은 구름이 전쟁을 상징하듯 붉은 안개도 전쟁을 상징한다고 한다. 푸른 안개는 자연재해가 되는 것은 음이 왕성한 징조라고 한다. 아마도 푸른 안개가 낄 때는 날씨가 매우 추웠던 것 같다. 또 왕망이 한나라의 황제자리를 찬탈했을 때는 황사가 많이 일어났던 것 같다. 아마도 중국 땅이니까 누런 황사를 안개로 오인했을 것이다. 때로는 안개가 낮이 어두울 정도로 짙게 끼는 때가 있다. 필자도 그런 것을 본적이 있으므로 안록산이 난을 일으켰을 때 그 점을 악용했는지도 모르고 또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또 한나라 고조 유방이 백등(白登)에서 흉노(匈奴)의 모돈선우(冒頓單于)에게 패할 때나, 송나라 충신 문천상이 원나라에 협력하지 않고 시시(柴市)에서 사형당할 때 축축한 흙비가 내렸다는 것은 아마도 황사가 일어났을 때 비가 오면 흙비가 온다. 필자도 대개 봄날 비온 뒤 밖에 세워둔 승용차 유리창을 닦으면서 자주 경험해 본 바이기도 하다.

사실 순수한 안개는 색깔이 없고 흰색은 본래의 색깔이 아니라 눈처럼 빛이 산란하기 때문이다. 안개에 색깔이 있는 것은 대기 중의 먼지나 오염물질이 섞여서 생긴다. 때로는 아침이나 저녁의 노을의 영향을 받거나 햇빛이 반사 또는 굴절되면서 색깔이 달라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안개가 아닌 황사나 오존이 섞인 스모그의 경우도 안개로 오인할 수 있다. 어쨌든 그런 일과 특정한 일을 연관시켜 안개의 색깔을 보고 점치는 일은 오늘날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근거가 없다.

아마도 이런 견해는 중국의 자료를 근거로 해서 나온 것 같다. 옛날에도 우리나라보다 중국의 대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이런 기록들이 자주 보이고, 그것을 인용한 조선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믿은 것으로 보인다. 자연현상을 보고 점치는 일은 동서를 막론하고 흔히 있었던 일이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다.

참고로 17세기 초기 서양 사람의 안개에 대한 견해도 다음과 같이 정확하지 않다.

“만약 구름 속의 습기에 맑고 탁함이 균등하지 않으면, 맑은 것은 거듭 물로 변하여 비가 되고, 그 탁한 것은 물로 변할 수 없어, 이에 떨어지면서 안개가 된다. 음식에 비유하면, 맑은 음식은 변하여 인체를 기르지만, 탁한 것은 피로 변하여 [인체를] 기르기에 부족하므로, 반드시 버리니 찌꺼기가 된다
(알폰소 바뇨니 저|이종란 옮김, 『공제격치』, 한길사, 2012, 261쪽. 참조).”

구름과 그 색깔


 

구름과 그 색깔

 

람에 이어 「천도책」에서 묻는 문제는 구름에 관한 것이다. 질문의 내용은 이제 천문(天文)에서 기상(氣象)으로 자연스럽게 옮아가고 있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천문과 기상은 매우 중요했다. 조선은 농업을 산업의 근본으로 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날씨나 기후에 따라 농작물의 생산량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름에 대한 질문은 어떤 것일까?

 

“구름은 어디에서 일어나고, 흩어져서 오색(五色)이 되는 것은 무엇에 감응한 것이며, 간혹 연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것이 무성하고 뒤섞여 흩날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구름이 어디서 일어나는 것을 묻는 게 이상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당연히 하늘에서 생긴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그렇다. 그러나 사실 이 질문은 ‘구름은 어디로부터 생기는가?’라는 묻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여기서 답해야 할 내용은 세 가지이다. 구름이 발생하는 곳, 구름의 다섯 가지 색깔의 징조, 그리고 연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은 구름의 원인이 그것이다.

율곡의 답안은 이렇다.

 

“만약 산천의 기운이 올라가서 구름이 된다면, 좋고 나쁜 징조를 그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선왕(先王)은 영대(靈臺)를 설치하고 구름을 관찰하여 길흉의 징조를 살폈습니다. 대개 좋고 나쁜 징조는 구름이 생기는 그 날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미리 징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구름이 희면 반드시 흩어지는 백성이 있고, 구름이 푸르면 반드시 곡식을 해하는 벌레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검은 구름이 어찌 수재(水災)의 징조가 되지 않으며, 붉은 구름이 어찌 전쟁의 징조가 되지 않겠습니까. 누런 구름만이 풍년이 들 상서로운 징조이니, 이는 곧 기운이 먼저 나타난 것입니다. 연기도 아니고 안개도 아닌 것이 분분하게 빛나고 맑게 흩어져 유독 지극히 화한 기운을 얻어서, 성왕(聖王)의 상서로운 것이 되는 것은 오직 경사로운 구름입니다. 진실로 백성의 재물을 살찌게 하고 노여움을 풀어 주는 덕이 없으면 이것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어찌 물과 흙의 맑고 가벼운 기운이 한갓 백의창구(白衣蒼狗)가 되는 데 비겠습니까?”

 

일반적으로 구름은 산천의 기(氣)가 올라가서 구름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만약 산천의 기운이 올라가서 구름이 된다면’과 ‘어찌 물과 흙의 맑고 가벼운 기운이’라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점은 조선후기까지 일반적으로 구름이 형성하는 원리를 그렇게 설명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수증기가 증발하여 상승해 단열팽창을 통하여 구름이 된다. 물과 흙의 맑고 가벼운 기를 수증기와 거기에 섞인 물질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문제는 이 질문의 의도가 그런 일반적인 것을 묻는 것에 포인트가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구름을 관찰하여 일종의 미래를 점치는 일에 더 비중을 둔 것 같다. 여기서 영대(靈臺)란 옛날 왕의 정원에 세워 사방을 관찰하던 누대(樓臺)로 오래된 것으로 문헌에 보이는 것은 주나라 문왕(文王)의 영대이다.

자, 문제는 구름의 색깔을 보고 길흉을 점쳤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색깔은 전통의 오방색과 같이 청·백·홍·흑·황색으로 분류된다. 그 색깔이 의미하는 징조는 각각 다르다. 인간에게 해가 되는 징조를 나타내는 것도 있고 경사스런 징조를 나타내는 구름도 있다. 그래서 구름을 단지 산천의 기운이 물리적으로 상승하여 백의창구(白衣蒼狗) 곧 흰옷이나 푸른 개 모양으로 이리저리 변하는 것으로만 보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율곡만의 독창적인 해석이 아니라 이전부터 있어 왔던 일이다. 가령 성종 때 편찬한 『동국여지승람』 속에 소개하는 고려 말 정몽주의 시에서는 “남쪽에 황색구름이 끼어 있으니 풍년이 들 것을 미리 안다.”라는 말이 보이는데, 율곡의 견해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예는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도 보인다. 이것은 일종의 구름으로 점치는 운점(雲占)이라 할 수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명나라에서 들여 온 『천원옥력(天元玉曆)』이 있어 지식인들이 이것을 많이 참고했다고 전한다.

사실 이 운점은 점성술과 유사한 점이 있다. 별을 보고 다른 하나는 구름을 보고 점을 친다는 것만 다를 뿐이지 결국 인간사회의 길흉을 점쳤다는 것은 동일하다. 자연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 어떤 일을 미리 알 수 있는 것에는 이전에 관찰한 자연현상과 일어났던 일을 기록하여, 후대에 똑같은 자연현상이 일어났을 때, 당시 일어났던 일이 다시 반복해 일어난다는 것을 믿음으로서 가능했다. 예컨대 가장 단순한 것으로 ‘개미가 이사 가면 비가 온다.’든지, ‘겨울이 몹시 추우면 이듬해 해충이 적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런 것들은 대개 같은 경험이 반복되어 생긴 믿음이다.

아무튼 이런 것에는 비교적 사실과 일치하는 것도 있고, 미신인 것도 있다. 미신인 것은 아무래도 어떤 현상과 일어나는 사건사이의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검은 구름에 수재가 난다는 것은 구름이 짙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올 확률이 있어 어느 정도 인과관계가 인정되지만, 나머지 색깔은 정말 그런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인간사회의 일과 구름의 색깔이나 모양을 연결시켰다는 점은 앞서 소개한 동중서(董仲舒)의 이론과 관계된다.

재미있는 점은 서양에서도 이러한 자연현상으로 날씨나 기후 등을 점쳤다는 점이다. 앞서 소개한 『공제격치』에는 이런 말이 보이는데, 자연현상으로 점치는 일은 동양과 서양이 다르지 않았다.

 

“구름이 서쪽에서 동으로 움직이면, 곧 하늘이 개이게 된다. 구름이 쌓이나 움직이지 않으면 바람이 분다. 바람 뒤에 비가 왔다가 해가 나올 때는 날씨가 흐리게 된다. 둘러싸인 구름이 빽빽할수록 장차 불어 올 바람도 크고, 둘러싸인 구름이 비로소 열리면, 그 방향에 반드시 바람이 생기며, 둘러싸인 구름이 일시에 얼음처럼 변하면, 반드시 맑을 것이다. 구름이 산 정상에 내려앉으면 비가 올 것이고, 구름이 젖어서 흰색이면 우박이 내릴 것이며, 구름이 골짜기 아래에 내려앉으면 맑을 것이다. 제비가 물 가까이 날고, 오리가 연달아 울면서 날아올라 구름에 이르고, 소가 하늘의 냄새를 맡듯이 머리를 쳐들고 그 털의 결을 거꾸로 핥으며, 개미가 황급히 그 집안으로 숨고, 자벌레가 흙에서 나오며, 파리가 사람에게 성가시게 달라붙어 쫓아도 도망가지 않는 것은 모두 바람이 불고 비가 올 조짐이다
(알폰소 바뇨니 저|이종란 옮김, 『공제격치』, 한길사, 2012, 255-260쪽. 참조).”

바람이 부는 원리


 

바람이 부는 원리

 

람은 어떻게 해서 생길까?

이 질문의 답은 초등학생들도 간단한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데, 다음은 예전 교과서에 나온 실험 내용이다. 사방이 막힌 사각 모양의 상자에 윗면과 앞면을 유리로 만들고, 그 속에 물이 든 접시와 모래가 든 접시를 양쪽 끝에 나누어 두고 그 속에 향 연기를 넣은 다음, 위쪽에서 갓을 씌운 약간 뜨거운 백열전등을 오랫동안 비추면서 관찰해 보면 알 수 있다. 향의 연기가 모래 접시에서 상승하여 건너편 물이 든 접시 위로 갔다가 내려오고, 물이 든 접시 쪽의 연기는 모래가 담긴 접시 쪽으로 이동하면서 빙빙 도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통 속의 모든 연기가 이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런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바람은 보통 저기압에 속한 공기가 따뜻해져 상승할 때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고기압에서 상대적으로 찬바람이 불어오는데, 이 통 속의 물 위의 공기가 모래 위로 이동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통의 아랫면만 지표처럼 생각한다면 물 쪽에서 모래 쪽으로 공기가 이동하니 바람은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부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람이란 공기의 이동인 셈이다.

바람과 관련된 「천도책」의 첫 번째 문제는 다음과 같다.

 

“바람은 어디에서 일어나 어디로 들어가는가?”

 

여기서 질문이 참 묘하다. 바람이 일어나는 곳과 들어가는 곳을 물었다. 그러나 앞에서 바람의 원리를 설명한 것을 참고하면 그리 어려운 질문도 아니다. 저기압의 공기가 열을 받아 가벼워져 상승하니까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고기압에서 불어와 저기압인 곳으로 들어간다. 물론 그 장소는 정해진 곳이 없다.

그에 대한 율곡의 답은 이렇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것은 기(氣)입니다. 음기(陰氣)가 엉기고 모여서 밖에 있는 양기(陽氣)가 들어가지 못하면 돌고 돌아서 바람이 됩니다. 만물의 기운은 비록 ‘북동쪽에서 나와서 남서쪽으로 들어간다.’고 말하나, 그 음기가 모이는 것에 정해진 곳이 없으므로 양기의 흩어지는 것도 방향이 없습니다. 큰 땅덩이가 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어찌 한 방위에서만 얽매이겠습니까? 동쪽에서 일어나는 것이 만물을 기르는 바람이지만, 그렇다고 동쪽에서 처음 시작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서쪽에서 일어나는 것이 쌀쌀하게 식물을 말라 죽이는 바람이지만, 그렇다고 서쪽에서 처음 시작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구부러진 탱자나무에 와서 깃들고 빈 구멍에 바람이 불지만, 그렇다고 빈 구멍에서 처음 시작한다고 하겠습니까? 정자(程子)의 말에, ‘올해의 우레는 일어나는 곳에서 일어난다.’ 하였으니, 저 또한 바람이 흔들흔들 살랑살랑 부는 것은 기가 부딪치면 일어나고 기가 쉬면 그치는 것으로, 애초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공기의 이동인데, 율곡의 답에서 ‘기(여기서는 공기를 말함)가 부딪치면 일어나고 기가 쉬면 그친다.’라고 표현한 것은 바람이 기의 이동이라는 관점을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더구나 바람이 부는 데도 일정한 방향이 없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다만 바람이 부는 원리에 대해서는 ‘음기가 엉기고 모여 밖에 있는 양기가 들어가지 못하면 빙글빙글 돌아서 바람이 된다는 것’은 오히려 반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음기는 찬 공기 양기는 따뜻한 공기라 말할 수 있는데, 따뜻한 공기가 상승하니 찬 음기가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부는 것이 바람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문제는 기상학이 발달한 후대에 알려진 사실이므로 당시에 바람의 원리를 제대로 아는 것은 무리였다.

바람에 관한 두 번째 질문은 이렇다.

 

“어떤 때에는 바람이 불어도 나무가 소리 나게 울리지 아니하는데, 어떤 때에는 나무를 꺾고 집을 허물어뜨리며, 순풍도 되고 폭풍도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질문은 바람의 세기가 다른 이유를 묻는 질문이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듯이 저기압과 고기압의 기압차가 클수록 바람도 세다. 태풍의 경우를 보라. 중심부와 주변부의 기압차가 보통의 그것보다 훨씬 크지 않는가? 그렇다면 율곡은 어떻게 대답했을까?

 

“잘 다스려지는 세상에는 음양의 기가 펴져서 맺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기가 흩어지더라도 반드시 부드러워 불어도 나뭇가지조차도 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도리가 이미 쇠약하면 음양의 기운이 막혀서 펼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 흩어지는 것이 반드시 격렬하여 나무를 꺾고 집을 허물어뜨립니다. 순풍은 부드럽게 흩어지는 것이요, 폭풍은 격렬하게 흩어지는 것입니다. 성왕(成王)이 한 생각을 잘못하자 큰 바람이 벼를 쓰러뜨렸고, 주공(周公)이 수년 동안 좋은 정치를 펼치자 바다에는 풍파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기(氣)가 그렇게 된 것은 역시 인간의 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 바람의 세기는 인간의 일에 달려있다는 생각이다. 인간사회가 잘 다스려지면 순풍이 불고 인간사회가 혼란스러우면 폭풍이 분다고 한다. 여기서 성왕은 고대 주나라 무왕의 아들로서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사람이고, 주공은 그의 숙부로서 어린 성왕을 도와 섭정(攝政)으로 천하를 잘 다스린 사람이다. 두 사람의 다스리는 방법을 비교하여 그 결과를 바람으로 표현하였다.

이런 생각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한(前漢)의 동중서(董仲舒)의 이론에 따른 것이지만, 요즘 초등학생들도 믿지 않는 이런 이론을 조선시대 율곡 같은 명민한 선비들이 정말로 믿었을까? 왜냐하면 중국의 고대 사상가 가령 순자(荀子) 같은 사람은 자연의 일과 인간의 일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해 왔기 때문이다.

율곡이 이 답안을 쓸 때가 23살이었는데, 경험이 없어서 순자의 이런 사상을 몰랐을까? 아니면 당시 시험관을 비롯한 다수의 선비들이 이런 동중서의 사상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의 관점을 따라서 답안을 작성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각자 판단해 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 문제의 답은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보자.

별은 어떻게 생겨났나?


 

별은 어떻게 생겨났나?

 

날에 어린이들이 처음 글을 배울 때 읽었던 『계몽편』 같은 책을 보면,

“해와 달과 별은 하늘에 걸려 있다
(日月星辰者, 天之所係也).”

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걸려 있다는 것은 마치 벽에 액자나 거울이 걸려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왜 이렇게 표현하였을까?

이것은 아마도 인간들이 살고 있는 네모진 땅보다 해와 달과 별의 크기가 작아서 둥근 하늘에 달려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당시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몰랐고 네모진 땅을 둥근 하늘이 덮고 있었다고 생각했으므로 해와 달과 별은 둥근 하늘에 붙어서 하늘이 돌 때 따라 도는 것으로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율곡의 「천도책」에 보이는 다음의 질문은 그런 생각이 반영 되어 있다.

 

“혹자가 말하기를 ‘만물의 정기(精氣)가 올라가서 여러 별이 된다.’ 하는데, 이 말은 또한 무엇을 근거한 것인가?”

 

정기(精氣)란 만물을 생성하는 원기(元氣)로서 해당 사물의 진수(眞髓)이다. 가령 사람의 정기란 생명의 에너지가 되는 물질로 인체의 생명이나 수명 및 건강과도 관계가 되며, 후손을 생성할 수 있는 물질로 알았다. 따라서 이런 만물의 정기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는 설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묻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다분히 민간에서 생각하는 신화 또는 민간신앙과 관계가 있다. 가령 사람이 죽어서 별이 되었다거나 또는 어떤 사물이 별이 되었다는 것인데, 그냥 막연히 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을 이루었던 정기가 올라가 별이 되었다는 설이 그것이다. 정기가 올라가 별이 되었다는 것은 나름의 근거를 표현한 말이다. 그냥 별이 되었다는 것과 정기가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되었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히 있는데, 옛사람들이 생각한 하늘의 별이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무한한 우주 속의 그것이 아니라, 땅을 덮고 있는 거리에 있는 하늘에 걸려 있는 것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이런 견해를 두고 율곡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민간의 신화나 설화를 믿었을까?

 

“만물의 정기(精氣)가 위로 올라가 많은 별이 된다는 설에 대해서는 저는 마음속으로 의심스럽게 생각합니다. 별들은 오행의 정(精)이요, 스스로 그러한 기(氣)입니다. 저는 어떤 물건의 정기가 어떤 별이 되었다고 알지 못합니다. 팔준(八駿)이 방성(房星)의 정기가 되었고, 부열(傅說)이 죽어서 별이 되었다는 것 따위는 이른바 산과 물과 큰 땅이 그림자를 푸른 하늘에 보낸다고 말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는 선비가 믿을 바가 아닙니다. 별의 기운은 기가 허(虛)하여 엉긴 것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음기가 맺히지 못한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떨어져서 돌이 되기도 하고, 언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은 제가 소자(邵子)에게 들었으나, 만물의 정기(精氣)가 별이 된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율곡은 일단 그런 견해를 찬성하지 않는다. 먼저 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근거를 밝힌다. 별들이 오행의 정(精)이라고 한 것은 각각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의 정기(精氣)를 갖는 별이 있음을 말한다. 앞에서 말한 오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오행의 정(精)도 기이므로 그 기가 스스로 모여서 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또 ‘별의 기운은 기가 허하여 엉긴 것’이라는 말은 기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태양은 양기가 모여서, 달은 음의 기가 모여서 된 것으로 이것은 기가 크게 모인 모습이지만, 기가 흩어져 허한 경우는 모여 보았자 작은 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특히 음기이지만 제대로 크게 엉기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자, 이런 관점에서 먼저 ‘팔준(八駿)이 방성(房星)의 정기가 되었다는 것’을 근거 없다고 본다. 팔준은 천하에 뛰어난 여덟 종류의 명마로 도려(盜驪), 백의(白義), 적기(赤驥), 적도마(赤盜馬, 또는 적토마) 거황(渠黃), 녹이(綠耳), 화류(華騮), 유륜(踰輪), 산자(山子)가 그것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도 8마리의 준마를 가졌는데 횡운골(橫雲鶻), 유린청(遊麟靑), 추풍오(追風烏), 발전자(發電赭), 용등자(龍騰紫), 응상백(凝霜白), 사자황(獅子黃), 현표(玄豹)가 그것이다. 방성이란 이십팔수(二十八宿)의 넷째 별자리의 별들로 말의 수호신(守護神)으로 상징(象徵)되고 있다.

또 ‘부열이 죽어서 별이 되었다.’는 말도 믿을 수 없다고 했는데, 부열은 중국(中國) 은(殷)나라 고종(高宗) 때의 재상으로 죽은 뒤 기성(箕星)을 타고 하늘에 올라 부열성(傅說星)이 되었는데, 후궁(後宮)들이 아들 낳기를 원할 때 이 별에 제사 지낸다고 전해지고 있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런 신화적인 이야기는 당시 기철학적 전통에서 볼 때 근거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비록 만물의 정기(精氣)가 별이 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하지만, 별이 떨어져 돌이나 언덕이 되기도 한다는 말은 들어서 근거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

이 말은 북송의 철학자 소자(邵子) 곧 소옹(邵雍)에게서 들은 것으로 보이는데, 오늘날 과학적 입장에서 볼 때 충분한 근거가 있다. 하늘에서 운석이 타면서 떨어지다가 남은 경우가 그것이다. 일례로 얼마 전 2014년 3월 9일 한반도 상공에서 경남 진주 지방에 떨어진 적이 있다. 상대적으로 큰 운석이나 소행성이 땅에 떨어지면 중앙은 땅이 움푹 파이면서 땅속으로 들어가지만 바깥부분은 마치 언덕처럼 둥그렇게 부풀어 오른다.

사실 별은 우주 공간에 퍼져 있는 물질 곧 대부분이 수소가스가 중력에 의하여 뭉치면서 생겨난다. 그것이 뭉쳐서 거대한 공처럼 되면 중심부는 압력을 받아 수축하며 내부의 온도가 올라가는데, 내부 온도가 크게 올라가면 수소 핵들이 결합하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면서 빛과 열을 내어 별이 된다. 그러니까 태양도 별인 것이다. 다만 가까이 있기 때문에 커 보이는 것이지, 멀리 있다면 하나의 점처럼 보여 지금 우리가 하늘의 작은 별을 보듯이 작게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핵융합 반응이 계속되다가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폭발하여 초신성(동양에서는 客星라 부름)이 되고, 그 폭발의 충격파에 의하여 다시 수소가스가 뭉치게 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물론 최근에 알게 된 별의 탄생과 소멸과정을 알았을 리 없었던 당시는 별을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었지만, 유학 특유의 합리성 때문에 신화적이거나 미신적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경성(景星)과 혜성(彗星)


 

경성(景星)과 혜성(彗星)

 

성술(占星術)을 아는가?

점성술이란 천체현상을 관찰하여 인간의 운명이나 장래를 점치는 방법을 말한다. 점성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역사가 오래되었는데, 인도와 중국에서도 성행했다. 중국에서는 점성술이 전쟁, 왕조의 흥망, 지배자의 명운, 또는 가뭄·홍수·기근 등에 관한 예조를 일식과 월식, 햇무리나 달무리, 여러 혹성의 이합과 집산, 특정 별자리의 위치, 신성·혜성·유성의 출현 등에 의해서 점치는 일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앞에서 말했던 일식과 월식도 일종의 점성술과 관련되어 있지만, 분야설(分野說)도 전형적인 점성술과 관계된다. 분야설이란 태양이 도는 하늘의 적도를 12등분하거나 28수의 별자리를 중국의 땅에 연결시켜 그 별자리에서 일어나는 별의 이동과 이변을 해당되는 지역의 일과 연관시킨 이론이다.

오늘날은 자연과학이 발달하여 하늘의 별자리의 이동과 인간사회의 일은 전혀 무관하다고 알고 있지만, 별의 이동에 따라 인간사회의 일이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미신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러나 자연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하늘에서 생긴 일이 땅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물론 종교가 신학적으로 발전하기 이전에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도 하늘의 뜻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자연의 변화에 주의하고 항상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늘을 관찰하는 관직을 두기도 하여 역대 왕들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점성술이 생겼을까? 처음부터 특정한 별의 이동이 어떤 사건을 일으킨다고 여겼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전쟁이나 기근 또는 홍수 등의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별자리를 계속해서 관찰하고 기억해 두었다가 정리하여, 거꾸로 그런 별자리의 이동이 있을 때 이런 사건들이 생긴다고 믿었을 것이다. 특히 태양계의 떠돌이별 가운데 목성은 태양이 지나는 황도를 12년마다 한 바퀴 씩 돌므로, 목성이나 화성 등이 특정한 별자리와 겹치는 때 일어났던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해서 이런 점성술이 형성되었다.

여기에는 과학적인 것도 있다. 왜냐하면 지구가 공전하면서 별이 보이는 밤의 특정한 시각에 특정한 하늘에 보이는 별자리가 계절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곧 특정한 계절에 따라 홍수나 가뭄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점성술이 어떻게 과거시험문제에 녹아들어 갔을까? 율곡의 「천도책」에는 아래와 같은 질문이 보인다.

 

“경성(景星)은 언제 나타나며 혜성(彗星)은 또 언제 출현했는가?”

 

경성은 경사스런 별이다. 『사기』의 「천관서(天官書)」에는 그 모양이 일정치 않고 도(道)가 있는 나라에 나타난다고 알려진 상서로운 별을 가리키고 있다. 다시 말해 경성이 출현하면 나라 안에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혜성은 요사스런 별이란 뜻의 요성(妖星)으로, 요성에는 또 패성(孛星)이 있는데 그것은 혜성의 일종으로 꼬리가 분명치 않거나 꼬리가 없는 혜성인데 전통적으로 전쟁의 징조로 보았다. 그리고 유성(流星)도 요성에 포함되는데, 모두 재앙이나 재해의 징조를 나타낸다고 여겼다. 예부터 중국을 비롯한 모든 왕조에서는 이 혜성이 나타나면 왕조가 바뀌는 재앙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불길하게 여기고 있었다.

잘 알다시피 유성은 우주의 소행성이나 잔해물들이 지구에 진입하면서 지구대기와 마찰로 타면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현상이고, 혜성은 태양을 공전하는 행성이며 다양한 주기를 가진다. 혜성은 마치 불에 타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불이 아니라 태양에 접근하면서 혜성의 핵 표면에서 드라이아이스, 암모니아, 얼음의 순으로 일어나는 증발 현상이다. 이것과 먼지가 섞여 혜성의 대기를 형성하는 데 이것을 코마(coma)로 부른다. 혜성의 꼬리에는 먼지꼬리와 이온꼬리가 있다고 한다. 먼지꼬리는 태양의 복사압으로 혜성의 대기 곧 코마 속의 먼지들이 궤도상에 뿌려지면서 생겨나는데 혜성의 진행방향과 반대에 생긴다. 이온꼬리는 태양 반대 방향으로 코마 내의 증발된 이온분자들이 밀려나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태양에 가까울수록 길어진다.

어쨌든 이 질문에 대한 율곡의 답은 이렇다.

 

“상서로운 별이 항상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변괴를 알리는 별도 항상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경성(景星)은 반드시 밝은 세상에 나타나고, 혜패(彗孛)는 반드시 쇠퇴한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순(舜)임금의 다스림이 밝은 세상에는 경성이 나타났고, 혼란한 춘추시대에는 혜패가 나타났습니다. 순임금 때와 같이 잘 다스린 시대가 한 번 뿐이 아니며, 춘추와 같이 어지러운 시대도 한 번만이 아닌데, 어찌 일일이 들어 진술하겠습니까?”

 

경성은 순임금 시대처럼 잘 다스려진 때에 출현하고 혜성과 패성은 춘추전국 시대처럼 어지러운 시대에 등장한다고 답했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주기적으로 출현하는 혜성을 율곡은 몰랐을까? 내가 보기에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겨우 1707년에 와서야 핼리(Edmund Halley)는 1531년, 1607년, 1682년에 나타난 큰 혜성이 한결같이 같은 것으로, 76년을 주기로 출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서양에서도 혜성이 주기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몰랐다. 1633년에 중국에서 예수회선교사가 저술한 『공제격치(空際格致)』에서 혜성은 단지 공기가 공중에서 타는 것으로 기술했다. 이 책은 당시 서양과학을 정리한 책이었다.

조선후기 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유성과 혜성에는 한 가지 원인만이 아니다. 공중에서 엉겨 붙어 이루어진 것도 있고, 각 별들의 기운이 서로 밀고 마찰하여 이루어진 것도 있고, 물처럼 흐르는 별들의 남은 기가 흘러 다니면서 이루어진 것도 있으니, 이러한 것들이 모두 원인이 되어 이룬 소치이다.”라고 하여 과학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또 “다만 인간과 땅의 기운이 그 조화를 극진히 하여 이루어진 것은 경사스런 별의 무리이고, 인간과 땅의 기운이 그 일정함을 잃어 이루어진 것이 혜성의 무리이다.”라고 하여 율곡의 관점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조선후기 최한기에 와서야 비로소 혜성에는 주기가 있으며 여러 종류가 있고, 단지 천문현상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율곡이나 홍대용처럼 인간의 일과 자연현상을 결부시키는 것은 전한의 동중서(董仲舒) 이후의 전통이지만, 자연의 일과 인간의 일이 상관없다는 것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이렇게 말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좀 더 기다리며 다음 글을 읽어 보자.

떠돌이별과 붙박이별


 

떠돌이별과 붙박이별

 

늘날 일식과 월식 그리고 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일은 천문학자나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 또 우주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이나 어린이들의 몫이다. 그 밖의 사람들 특히 정치가들은 별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별의 이동이나 변화가 인간사회의 문제와 전혀 관계없기 때문이다. 혹시 지구로 향해 달려오는 괴행성이 있다면 모를까 당장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별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의 관심거리가 못된다.

그런데 조선시대 하늘의 별이 과거시험 문제에 등장했다니, 어찌 보면 생뚱맞은 일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관리로서 꼭 알아야 할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이렇다.

 

“오성(五星)은 행성(行星)이 되고 여러 별은 경성(經星)이 되는 것을 또한 상세하게 말할 수 있는가?”

 

율곡의 「천도책(天道策)」에 등장하는 세 번째 질문은 이렇게 별을 묻는 질문이다.

여기서 오성(五星)이란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이며, 행성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동하는 별 곧 떠돌이별이다. 그 옛날 태양계 토성 바깥의 천왕성이나 해왕성은 망원경도 없어서 육안으로 발견하지 못했으니 오성까지만 떠돌이별이었던 것이다. 또 경성(經星)이란 한 곳에 머물러 있는 별로서 붙박이별이다. 참고로 옛날에는 해와 달도 하늘에서 이동한다고 보아 오성과 합쳐 칠요(七曜)라 불렀다.

그러니까 질문의 요지는 떠돌이별과 붙박이별이 있게 되는 이치를 물은 질문이다. 이에 대한 율곡의 답은 어땠을까?

 

“저 반짝거리고 깜빡거리는 별에 제각기 궤도와 차례가 있는 것은 어찌 원기(元氣)의 운행이 아님이 없겠습니까? 뭇별들은 하늘을 따라 운행하지 스스로 운행하지 못하므로 경(經: 날)이라 말하고, 오성(五星)은 때를 따라 제각기 나타나고 하늘을 따라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위(緯: 씨)라고 말합니다. 하나는 정해진 차례가 있고 하나는 일정한 도수(度數)가 없습니다. 대체로 말하면 하늘은 경(經: 날)이 되고 오성은 위(緯: 씨)가 됩니다. 그 상세한 것을 말한다면 한 장의 종이에다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율곡의 답안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가? 동아시아 전통과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알 수 있지만, 그것에 문외한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당시 우주관을 하나씩 살펴보아야 한다.

앞에서 당시 천문학이 하늘은 둥글고 땅이 네모지다는 천원지방을 배경으로 하는 천동설이라고 말했다. 물론 서양에서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오기 전까지는 하늘이 움직인다는 천동설이었다.

바로 율곡도 하늘이 움직인다는 당시 설을 따랐는데, 그 하늘이 움직이는 원인이 원기(元氣)에 있다고 보았다. 원기는 기철학에서 우주에서 만물을 구성하는 가장 원초적인 물질의 근원이자 생명의 원천으로서 기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하늘이 도는 것은 기가 돌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사실 그것은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보이는 하늘의 겉보기운동이다.

여기서 ‘뭇별들이 하늘을 따라 운행하지 스스로 운행하지 못한다.’는 말은 천체 상에서 위치를 바꾸지 않는 별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보통 항성(恒星)이라 일컫는 별이다. 이 별들은 지구의 자전에 따라 하루에 한 바퀴 도는 것처럼 보이며, 또 지구의 공전 때문에 계절에 따라 자리가 바뀌어 보일 뿐, 서로 간의 위치의 이동은 없다. 그래서 경성(經星)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그 경(經)이란 ‘날실’이라는 뜻으로 베틀에서 옷감을 짤 때 세로 방향으로 매인 실을 뜻하는 말이다. 이 날실은 이동하지 않는다.

반면에 베틀에서 가로 방향으로 들락날락하는 실을 ‘씨실’이라 부르는데 이것처럼 하늘에서 이동하는 떠돌이별을 위성(緯星)이라 부르며 다섯 떠돌이별이니 오위(五緯)라 했던 것이다. 오위는 경성과 달리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자체로 움직이는데, 사실 이 별들도 지구처럼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는 정해진 차례가 있고 하나는 일정한 도수(度數)가 없습니다.’라고 말을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경성을 말하고 후자는 오위를 말했으며, ‘대체로 말하면 하늘은 경(經: 날)이 되고 오성은 위(緯: 씨)가 됩니다.’라는 말은 하늘의 운동과 경성의 운동이 일치한다고 보았고, 오성은 베틀의 씨실처럼 자체로 이동하는 것을 말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우주는 보는 관점은 중세 서양과 비슷한 점이 많다. 중세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학을 이었는데, 이 또한 지구 중심의 천동설이었다. 달-수성-금성-태양-화성-목성-토성, 그리고 항성(恒星)이 차례로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여겼다. 바로 오성에 해당하는 것이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이고, 경성(經星)에 해당하는 것이 항성(恒星)이었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 때부터 이미 지구가 둥근 것을 알았고, 하늘이 움직이는 것은 항성 바깥에 종동천(宗動天, 또는 原動天)이 있어서 그것이 최초의 원인자로서 모든 하늘의 움직임을 이끌어 낸다고 생각했다. 중세 때에는 종동천이 하느님과 천사들이 살면서 여러 하늘을 움직임을 주관한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당시 서양인들이 생각한 우주는 여러 개의 둥근 원과 같은 하늘이 지구를 중심으로 겹쳐져 있는 닫힌 우주였다.

그런데 율곡은 ‘그 상세한 것을 말한다면 한 장의 종이에다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여 우주의 모습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지 않았는데, 북송 때 장재(張載)의 말에 보면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말하고 있고, 조선전기 서경덕(徐敬德)도 그 이론을 받아들였다.

곧 우주는 기로 채워져 있고 만물은 기가 만들었다고 한다. 땅이 우주의 중심이고 태양과 달과 별은 하늘에 매달려 있다고 여겼다. 양기(陽氣)는 능동적으로 움직여 펼치는 기로서 그 운동이 극에 도달하면 양기의 정수(精髓)가 쌓여 태양이 되었고, 음기(陰氣)는 수동적으로 움츠려 모이는 응취(凝聚)하는 성질을 지녔으므로 그것이 극에 도달하면 그 정수가 쌓여 달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도 남은 찌꺼기는 별이 되었으며, 땅에서는 불이나 물 등이 각각 양기와 음기로서 존재한다고 한다고 보았다.

율곡이 말하지 않은 ‘그 상세한 것’이 혹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