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와 그 색깔


 

안개와 그 색깔

 

개는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찬 공기를 만나 응결하여 지표면 가까이 떠다니는 현상을 말한다. 대개 밤낮의 기온 차이가 심한 봄이나 가을철에 많이 생긴다. 안개는 본질적으로 구름과 같지만 지표면 가까이 있다는 점에서 그것과 다르다. 이 밖의 조건은 공기 중에 수증기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데, 수증기의 공급원이 되는 강이나 호수 또는 바닷가에 안개가 자주 발생한다.

또 안개가 발생하는 실험을 간단히 할 수 있다. 집기병 속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운 다음 잠시 후 물을 조금만 남기고 쏟아 버린다. 그런 다음 비닐로 얼음조각을 싼 다음 실로 묶어 병속에 매달아 두고 관찰한다. 수증기가 많이 포함된 따뜻한 공기가 식으면서 안개가 발생한다.

현대 과학적으로 보면 안개는 이렇게 간단하지만 옛날에는 어떻게 설명했을까? 먼저 「천도책」에 나오는 문제부터 살펴보자.

 

“안개는 무슨 기운이 발동한 것이며, 그것이 붉고 푸르게 되는 것은 무슨 징조인가? 누런 안개가 사방을 막기도 하고, 낮에 많은 안개가 끼어 어둡기도 한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이 문제는 먼저 안개가 어떻게 생기는지, 안개가 붉고 푸른색은 무슨 징조인지, 또 누런 안개가 사방을 막고 낮에 어두울 정도로 안개가 끼는 까닭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다. 보통 안개를 하얀색으로 알고 있는데, 실은 무색의 작은 물방울에 빛이 산란하면서 희게 보이는데, 붉은색이나 푸른색 그리고 누런색은 왜 생길까?

일단 율곡의 답을 살펴보자.

 

“안개는 음기(陰氣)가 새어나가지 못하여 찌고 막힌 것입니다. 물건의 음기가 모인 것도 안개를 만들 수 있으니, 대개 산천의 나쁜 기운입니다.”

 

전통에서 말하는 음기는 보통 물기가 많이 포함된 기 또는 차가운 기를 말한다. 일단 안개를 물기가 많은 공기 곧 수증기와 차가운 공기와 연관시켰다는 점에서는 일리가 있다. 더구나 새어나가지 못하고 찌고 막힌 것이란, 정확하지는 않지만 더운 수증기가 식어 물방울로 변한 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또 물건의 음기가 모인 것도 안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앞에서 소개한 안개 실험에서 차가운 기가 수증기가 포함된 더운 공기를 식혀 안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안개와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물건의 음기가 산천의 나쁜 기운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보통 음기를 차가운 기로 본다. 늦가을이나 겨울철에 해당하는 기여서 식물을 말라죽게 하고 동물과 인간에게도 피해를 주므로 해로운 기로 여겼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따뜻한 양기는 생물을 살리므로 좋은 기로보고, 그 차가운 음기는 그 반대의 성질을 가졌으므로 나쁜 기운으로 여겼다.

그 다음 율곡의 답안은 이렇다.

 

“그 붉은 것은 전쟁의 상징이 되고, 푸른 것은 재앙이 되는 것은 모두 음이 왕성한 징조입니다. 역적 왕망(王莽: 전한 말 정치가)이 한나라의 황제자리를 찬탈했을 때에는 누런 안개가 사방에 쌓였고, 당나라 안록산의 난 때에는 큰 안개로 낮에도 어두웠으며, 한나라 고조 유방이 백등(白登)에서 포위되었을 때나, 문천상(文天祥: 송나라의 충신)이 시시(柴市)에서 죽을 때에는 다 축축한 흙비가 왔습니다. 간혹 신하가 임금을 반역한다거나 오랑캐가 중국을 침략하면, 이런 것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앞에서 소개한 다른 자연현상처럼 안개의 색깔을 가지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점치고 있다. 앞에서 붉은 구름이 전쟁을 상징하듯 붉은 안개도 전쟁을 상징한다고 한다. 푸른 안개는 자연재해가 되는 것은 음이 왕성한 징조라고 한다. 아마도 푸른 안개가 낄 때는 날씨가 매우 추웠던 것 같다. 또 왕망이 한나라의 황제자리를 찬탈했을 때는 황사가 많이 일어났던 것 같다. 아마도 중국 땅이니까 누런 황사를 안개로 오인했을 것이다. 때로는 안개가 낮이 어두울 정도로 짙게 끼는 때가 있다. 필자도 그런 것을 본적이 있으므로 안록산이 난을 일으켰을 때 그 점을 악용했는지도 모르고 또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또 한나라 고조 유방이 백등(白登)에서 흉노(匈奴)의 모돈선우(冒頓單于)에게 패할 때나, 송나라 충신 문천상이 원나라에 협력하지 않고 시시(柴市)에서 사형당할 때 축축한 흙비가 내렸다는 것은 아마도 황사가 일어났을 때 비가 오면 흙비가 온다. 필자도 대개 봄날 비온 뒤 밖에 세워둔 승용차 유리창을 닦으면서 자주 경험해 본 바이기도 하다.

사실 순수한 안개는 색깔이 없고 흰색은 본래의 색깔이 아니라 눈처럼 빛이 산란하기 때문이다. 안개에 색깔이 있는 것은 대기 중의 먼지나 오염물질이 섞여서 생긴다. 때로는 아침이나 저녁의 노을의 영향을 받거나 햇빛이 반사 또는 굴절되면서 색깔이 달라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안개가 아닌 황사나 오존이 섞인 스모그의 경우도 안개로 오인할 수 있다. 어쨌든 그런 일과 특정한 일을 연관시켜 안개의 색깔을 보고 점치는 일은 오늘날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근거가 없다.

아마도 이런 견해는 중국의 자료를 근거로 해서 나온 것 같다. 옛날에도 우리나라보다 중국의 대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이런 기록들이 자주 보이고, 그것을 인용한 조선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믿은 것으로 보인다. 자연현상을 보고 점치는 일은 동서를 막론하고 흔히 있었던 일이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다.

참고로 17세기 초기 서양 사람의 안개에 대한 견해도 다음과 같이 정확하지 않다.

“만약 구름 속의 습기에 맑고 탁함이 균등하지 않으면, 맑은 것은 거듭 물로 변하여 비가 되고, 그 탁한 것은 물로 변할 수 없어, 이에 떨어지면서 안개가 된다. 음식에 비유하면, 맑은 음식은 변하여 인체를 기르지만, 탁한 것은 피로 변하여 [인체를] 기르기에 부족하므로, 반드시 버리니 찌꺼기가 된다
(알폰소 바뇨니 저|이종란 옮김, 『공제격치』, 한길사, 2012, 261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