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극효(安克孝, 1741년 식년문과 장원)


안극효(安克孝, 1741년 식년문과 장원)       PDF Download

 

 

극효는 자는 사칙(士則)이고 호는 백강(栢岡)이며,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아버지는 첨추(僉樞) 안숙(安橚)이다. 사촌동생 안극권(安克權), 안극관(安克觀)과 더불어 이재의 문하에서 사사했다. 동문수학한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 목산(木山) 이기경(李基敬) 등과 막역지우로 서로 학문을 교류하였다.

안극효는 1741년(영조 17)의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관에 들어가 사헌부의 지평, 장령, 헌납 등 주로 언관직에서 근무하였다. 성품이 강직하여 권력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활발한 언론을 펼쳤다.

일찍이 영조와 8촌간인 여천군(驪川君)이 동생 이학(李學), 외손인 이권책(李權冊) 등과 함께 투서를 조작하여 역모 혐의를 덮어 씌었을 때 안극효는 영조와 맞서 이들 종친을 법으로 다스리는 데 앞장섰다.

이후 결국 영조로부터 축출된 것도 이때의 언관 활동으로 미움을 샀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극효는 또한 중종 때의 명신 김정(金淨)을 문묘(文廟)에 배향하고자 여러 차례 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안극권은 유집사실(遺什事實)·세계비지(世系碑誌)·제현기술(諸賢記述) 등에서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안향(安珦)에 대한 사적(事蹟)을 모아 ⌈문성공실기(文成公實記)⌋를 1766년에 간행하였다.

안극권은 안향의 17대손이다. 책머리에는 대제학 이정보(李鼎輔)를 비롯하여 박성원(朴聖源)·송명흠(宋明欽) 등의 서문이 있으며, 16대손 안석근(安錫謹)의 발기(跋記)가 있다.
<참고문헌>
유제식, 「전북 지역문화의 성립기반과 그 맥락에 대한 연구: 전북유학의 전개」,「전라문화연구」 3호, 1989.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