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순(田秉淳,1816-1890)


전병순(田秉淳,1816-1890)                                  PDF Download

 

전병순은 본관은 담양(潭陽)이고 자는 이숙(彛叔), 호는 부계(扶溪) 또는 겸와(謙窩)이다. 전석채(田錫采)의 아들이다. 홍직필(洪直弼)의 문인으로 조병덕(趙秉德)‧전우(田愚) 등과 교유하였다.

 

스승 홍직필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출중하여 7세 때 이미 문장을 지었다. 그리고 17세에는 이학(理學)에 밝아 성리학자 박윤원(朴胤源)으로부터 오도유탁(吾道有托: 올바른 도를 맡길 만함.)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오랜 교유를 나눈 오희상(吳熙常)은 유종(儒宗: 유학자의 으뜸)이라 고 평했다. 학문은 궁리(窮理)를 근본으로 하고 육경(六經)은 물론 제자백가에 통달하였다. 한원진(韓元震)의 심선악설(心善惡說)을 반대하고 임성주(任聖周)의

“성선(性善)은 곧 기질(氣質)이다.”

고 한 주장에도 반대하였는데, 주리(主理)적 입장을 견지했다고 할 수 있다.

홍직필의 권유로 벼슬할 기회를 가졌으나 사양하고 성리설(性理說)‧심설(心說)에 몰두하였다. 문인으로는 임철규(林哲奎)‧김낙종(金洛鍾) 등이 있다.

 

전병순은 이기(理氣)의 선후 문제는 주리(主理)‧주기(主氣)의 어떠한 시각에 입각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였다. 또한 심(心)에 갖추어진 이치를 성(性), 성이 모아진 기(器)를 심, 심성이 발한 곳을 정(情)이라 규정하였다.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은 정(情)이 발한 것으로 볼 때 주리의 입장은 사단이고, 주기의 입장은 칠정이라고 구별하여 설명하였다. 또 인심(人心)‧도심(道心)은 그 발하는 곳에 근거하여 말한 것으로서 성명(性命)에 근원하면 도심이 되고 형기(形氣)에서 생기는 것은 인심이 된다고 하였다.

대학(大學)의 명덕(明德)이 심통성정(心統性情)을 말한 것이기는 하나 심과 성은 자체로서 구별되기 때문에 심‧성을 나누어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의 사상적 배경에는 정자(程子)의 학설이 주를 이루었다. 저서에 『부계집(扶溪集)』이 있다.

 

부계집은 8권 5책으로 목활자본이다. 1913년 손자 범진(凡鎭)·익진(翼鎭)과 임철규(林哲圭)·김낙종(金洛種) 등이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권두에 전우(田愚)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김복경(金復經)의 발문이 있다.

젊은 나이에 벼슬을 단념하고 홍직필(洪直弼)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하였고, 뒤에 백운산(白雲山)에 들어가 40여 년 간 강학에 힘써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따라서 시나 문장에서도 성리학자로서 도(道)를 추구하는 의식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자연을 노래한 시에서도 단순한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원리의 탐구와 유교적 이념에 대한 지향이 깔려 있다.

 

<참고문헌>

조선인명사서(朝鮮人名辭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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