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진(洪翼鎭)1766∼1801


홍익진(洪翼鎭)                                                             PDF Download

 

1766(영조 42)∼1801(순조 1).  조선 후기의 학자.

관은 풍산(豊山). 자는 경진(景進), 호는 남애(南崖)이다. 홍현주(洪顯周)의 아들인데 큰아버지 홍봉주(洪鳳周)에게 입양되었다. 홍익진의 처는 기씨(奇氏)이다.  김이안(金履安)과 김원행(金元行)의 문인이다. 미호 김원행은 도암 이재(李縡)의 제자이며 담헌 홍대용(洪大容)의 스승이다.

1790년(정조 14) 별시에서 부(賦)를 지어 정조로부터 시권(試券)을 하사받았으며, 1799년 왕명으로 「농정소(農政疏)」를 올리자 정조가 이를 가상히 여겨 영릉참봉을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을 연구하면서 후진들의 교육에 정열을 쏟았다.
특히 문장에 뛰어나 여러 사람의 존경을 받았으며 실천하는데 주력하였다.   뒤에 학행이 인정되어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남애집」 2권이 있다.

남애집(南崖集)⌋은 조선 후기의 학자 홍익진의 시문집이다.   2권 1책으로 석인본이다.   현손인 홍복희(洪復憙)와 홍석희(洪錫憙) 등이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권두에 기노장(奇老章)의 서문과 권말에 홍복희의 발문이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권1에는 부(賦) 11편, 시 3수, 소 1편, 발 제2편, 일기 1편이 있고, 권2에는 부록으로 가장․묘갈명․묘표․서(序) 각 1편, 서(書) 4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농정소(陳農政疏)」는 1799년(정조 23)에 농정에 대한 시무(時務)를 진언한 상소로, 먼저 옛 성현들의 정치제도와 그 시행에 대한 뜻을 밝히고, 당시 농정의 폐단을 12조목으로 구분하여 상세히 지적한 다음, 그에 대한 대비책을 제시하였다.
토지가 건조하고 습함에 따라 파종의 시기가 서로 다르다는 점과 곡물도 기후의 특성에 따라 적기에 파종하고 수확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한발․홍수․역민(役民)․징세(徵稅)․저수(貯水)․동경(冬耕) 등에 대하여 자세히 논하였는데, 이것은 당시의 농업관계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일장여소년부(日長如少年賦)」는 봄날의 길고 화사함을 소년시절의 학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비유하여 설명하면서, 봄날이 길고 좋기는 하지만 영구히 계속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소년시절도 오래 가는 것이 아니므로 시기를 놓치지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성취해야 된다는 글이다.   이밖에도 자기의 일상생활에서 보고 들은 것을 모아 비망에 대비한 「일기(日記)」가 있다.

[참고문헌]

「남애집(南崖集)」,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