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응수(楊應秀, 1700-1767) – 제2편


양응수(楊應秀, 1700-1767) – 제2편               PDF Download

 

응수는 자는 계달(季達)이고 호는 백수(白水)이며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아버지는 승의랑(承議郞) 양처기(楊處基)이다. 어려서는 아버지의 외우(畏友)인 화산(華山) 권(權) 선생에게 배우고, 후에 이재(李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공이 9세에 부친상을 당했는데 극진한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어른과 같았다. 부친상을 마치고 13세에 선친의 외우인 화산 권 선생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는다. 생전에 화산은 외우이니 가르침을 받도록 하라는 유명을 따른 것이다. 권 선생이 공의 총명함을 보고서, “내 친구의 아들이 여기 있으니 비록 몸은 죽었지만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해 12월에 모친상을 당해 지극 정성을 다했다. 17세에는 스승 권 선생이 졸하였다.

공은 본래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는데, 부형들의 기대가 있어 부득이 과업을 준비했었다.

24세에 과장에 들어갔다 마침 내린 비로 의관을 더럽힌 후로는 부끄럽게 생각하고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성리의 학문에 전념하였다.

38세에 한천에서 강학하고 있는 이재 선생을 찾아뵙고 사제의 연을 맺었다. 먼저 제자를 보내 이재 문하의 가르치는 법도를 살핀 후에 공이 직접 찾아뵈었다. 첫 만남부터 사제 간에 감복하고 기뻐함이 그지없었다. 공을 제자로 받아들인 후에 이재는 큰 기대를 했고, 사제 간의 정분이 부자처럼 다정했다.

56세에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에 제수되고, 이어 익위사부수(翊衛司副수)로 옮겨졌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일찍이 벼슬길에 뜻을 버리고 오로지 경학(經學)과 성리학(性理學)에만 전념해 「사서강설(四書講說)」을 남겼다. 만년에는 박성원(朴聖源), 김원행(金元行), 송명흠(宋明欽) 등 당시 석학들과 교유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천문학(天文學)에도 밝아 천체의 운행과 해·달·별 등의 천상(天象)을 도표로 만들어 우주관을 해설한 「혼천도설(渾天圖說)」을 지었다. 이기설(理氣說)에서는 스승 이재의 학설인 이일기이설(理一氣二說)을 바탕으로, 기(氣)의 본원은 하나이지만 동정(動靜)에 따라서 음양(陰陽)·이기(二氣)가 교합되어 오행(五行)·만물이 화생한다는 일기이기설(一氣二氣說)을 주장하였다.

또한 사람의 일신(一身)에는 혼백(魂魄) 또는 혈기가 있으며, 심(心)에는 이(理)와 지각(知覺)이 겸해 있다고 전제하고, 본연지기(本然之氣)와 혈기지기(血氣之氣)가 교합됨으로써 지각의 묘를 생한다는 「이기설(二氣說)」과 「지각설변(知覺說辨)」을 지었다.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에서는 낙론(洛論)을 지지하고, 호론(湖論)을 배척하였다. 만년에는 박성원(朴聖源)·김원행(金元行)·송명흠(宋明欽) 등 당시 석학들과 교유하면서 후진양성에 심혈을 경주하였다.

중용강설」에서 인물성동이론의 중요한 논쟁처인 ⌈중용⌋ 수장을 해석한 내용을 통해 공의 학문 규모와 엄밀함을 살필 수 있다.

(질문) ‘사람과 동물이 태어날 적에 각자에게 부여된 이치를 받아서 건순오상의 덕을 갖게 된다고 하는데, 여기서 ‘각각 얻는다(各得)’이라는 말은 호랑이와 이리는 단지 부자간의 인(仁)만을 부여받았고, 벌과 개미는 군신간의 의리(義)만을 부여받았다는 의미인가?’

(답) ‘그렇지 않다. 이는 호서학파(호론)의 입장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과 동물의 본연지성이 각각 다르다고 한다. 개끼리는 본연지성이 같지만 소와는 다르고, 소끼리는 본연지성이 같지만 사람과는 다르다. 사람끼리는 본연지성이 같지만 개나 소와는 다르다 하는 말은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질문) ‘그렇다면 동물도 오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답) ‘그렇다. 본성은 다섯 가지이지만 실상은 단지 생리(生理) 하나다. 인이 생리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 인을 가지고 있다. 의예지신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개를 가지고 설명하면, 어미개가 새끼를 사랑하는 것이나 주인을 사랑하는 데에서 인을 볼 수 있다. 도둑을 막는 데에서 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이 하지 말하는 것은 순종하는 데에서 예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세 가지(인, 의, 예)를 아는 것이 지이다. 이 세 가지를 지키고 결코 허물지 않으며 주인을 죽을 때까지 따르며 결코 다른 이에게 가지 않는 것이 신이다. ……그래서 정자가 동물과 인간은 매우 비슷하지만 미루어 갈 수 있는지 여부에서 차이가 난다고 했다. 또 혈기가 있는 것들을 모두 오상을 가지고 있지만 확충할 줄 모른다고 했다.’

(질문) ‘그렇다면 주자가 순수한 인의예지를 동물이 어떻게 완전하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는가?’

(답) ‘이는 정자가 미루어가고 확충하지 못한다고 한 말과 같은 맥락이다. 동물의 본연지성은 사람과 같지만 기품의 구속되어 오성의 전체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다. 인을 가지고 말하자면, 사람은 부모를 아끼고 타인을 사랑하고 만물을 아낄 수 있지만 동물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애초에 남당의 말처럼 금수는 오성 중에서 인만을 품부 받거나 혹은 의만을 품부 받고 나머지 네 개가 없는 것이 아니다.’

호락논쟁은 외암 이간과 남당 한원진에게서 그 논쟁의 본말이 모두 시작되었는데, 이간은 양자 간의 논쟁점을 미발(未發)과 오상(五常)에 관한 논쟁으로 정리하였다.
미발에 관한 논쟁은, 이간은 미발시에 선악이 있느냐는 문제로 논의를 전개했다면, 한원진은 미발시에 기질지성이 있느냐를 문제로 논의를 전개했다. 이간은 미발시에 악이 있지 않다는 입장이고 한원진은 미발시에 기질지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오상에 관한 논쟁은, 이간은 오상을 인물이 모두 품부 받았다는 입장에서 인물성동론을 주장하고, 한원진은 오상은 사람만이 온전하게 품부 받았다는 입장에서 인물성이론을 주장한다. 한원진은 사람이 동물과 다른 근거로 오상을 근거로 삼았기 때문에 인의예지신 전체를 동물이 갖지 못하다는 설명을 했는데, 양응수는 이재의 논리를 따라 一理의 전일성을 기반으로 인의예지신을 동물도 갖고 있다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였다.
<참고문헌>
양응수, 『백수집(白水集)』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전라문화연구소, 전북대학교, 1990
권오봉, 「白水 楊應秀의 讀書論에 관한 硏究」, 전남대학교 석사논문,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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