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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주의 ‘리’ 이해

 

박필주의 이해

 

강민우: 안녕하세요. 박필주 선생님. 먼저 선생님에 대한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박필주: 저의 이름은 박필주(朴弼周, 1680~1748)입니다. 본관은 반남이니, 반남 박씨의 후손입니다. 자는 상보(尙甫)이고 호는 여호(黎湖)이며 사람들이 여호 선생이라 부릅니다. 군수를 지낸 박태두(朴泰斗)의 아들입니다. 영조 때 국가에서 서원을 철폐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에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기자(箕子)·공자(孔子)·주자(朱子) 등 세 성인의 서원은 철폐하지 말 것을 간청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시호는 문경(文敬)입니다.

강민우: 거두절미하고 박필주선생의 학문세계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은 다양한 학설들이 대두되던 18세기의 인물로서, 이단상 계열의 끝자락을 장식한 대표적인 낙론계열의 학자로 평가됩니다만. 특히 낙론계열은 충청도 지역의 노론인 호론과 구분되는 서울·경기 지역의 노론을 말합니다. 또한 호론이 후에 위정척사사상에 영향을 준 것과 달리, 노론은 북학사상과 개화사상에 영향을 주었다지요. 게다가 낙론이라고 하면, 호론과 상대하여 전개한 18세기 학술논쟁인 인물성동이론이 떠오릅니다.

박필주: 인물성동이론은 율곡학파 내에서 호론과 낙론으로 나누어져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같은가 다른가를 두고 논변을 벌인 학술논쟁입니다.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같다고 보는 쪽을 동론(同論)이라 하고, 다르다고 보는 쪽을 이론(異論)이라고 합니다. 동론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간(李柬)을 들 수 있고, 이론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한원진(韓元震)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의 견해가 심화되면서 주변의 학자들까지 동조함으로써 학파적 대립양상을 띠게 됩니다. 호서(湖西: 충청도)지방의 학자들이 한원진의 이론에 동조하고 낙하(洛下: 서울 부근)지방의 학자들이 이간의 동론에 동조함으로써 ‘인물성 동이논쟁’이라는 명칭 외에 ‘호락논쟁’이라는 별칭을 갖게 됩니다. 전자에 속한 대표적인 학자들로는 한원진 외에 윤봉구(尹鳳九)․채지홍(蔡之洪)․위백규(魏伯珪)․송능상(宋能相) 등이 있고, 후자에 속한 대표적인 학자들로는 이간 외에 김창흡(金昌翕)․이재(李縡)․박필주(朴弼周)․어유봉(魚有鳳)․김원행(金元行)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강민우: 이 문제에 대한 정미한 논쟁이 조선유학자들에 의해 전개되고, 이에 조선유학사의 3대 논쟁 중의 하나인 인물성동이 논쟁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들의 논쟁은 근 2백 여 년에 걸쳐 조선 후기 성리학의 주요 논점으로 다루어졌던 것이죠.

박필주: 그렇습니다. 저는 낙론계열에 속합니다. 낙론계열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같다는 동론을 주장합니다. 중용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하늘의 명령으로 부여해준 것을 성이라 한다)’에 나오는 주자의 주석에 근거하면, 사람과 사물은 모두 기로써 형체를 이루고 리 또한 부여받습니다. 성리학의 주요 명제인 성즉리(性卽理: 성은 곧 리이다)에 근거하면, 이때 부여된 리가 곧 성이므로 사람이든 사물이든 똑같이 하늘로부터 리를 부여받으므로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모두 같습니다.

강민우: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같다’는 동론을 주장하는 낙론과 대비하여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다르다’는 이론을 주장하는 호론의 특징에 대해서도 아울러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박필주: 호론은 맹자집주(孟子集註)와 대학혹문(大學或問)에 나오는 주희의 주석에 근거하여 인성과 물성이 다르다는 이론을 주장합니다. 맹자집주는 맹자라는 책에 주자가 해석을 더한 책이며, 대학혹문은 대학이라는 책에 주자가 해석을 더한 책입니다. 맹자집주와 대학혹문에 따르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리는 동일하더라도 기질의 차이에 따라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성은 리가 형체에 부여된 이후를 말하며, 리가 형체에 부여된 이후는 형체에 해당하는 기질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성’의 개념을 낙론처럼 ‘성즉리’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질에 내재된 이후의 단계로 파악함으로써 사람과 사물의 기질적 차이가 곧 성의 차이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그래서 치우치거나 막힌 기질을 얻은 것은 사물이 되고, 바르고 통한 기질을 얻은 것은 사람이 됩니다. 치우치거나 막힌 기질을 얻은 사물은 바르고 통한 기질을 얻은 사람처럼, 인․의․예․지의 성을 온전히 가질 수 없습니다. 반대로 바르고 통한 기질을 얻은 사람은 치우치고 막힌 기질을 얻은 사물과 달리, 인․의․예․지의 성을 온전히 가지게 됩니다.

강민우: 성리학에서 말하는 성이란 사람 또는 사물 안에 들어있는 리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성은 보는 관점에 따라 기질 속에 내재하는 본원적인 리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개체적인 특성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겠네요. 동론에서는 본원적인 리에 초점을 맞추어 본연지성을 성으로 이해한다면, 이론에서는 개체적인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기질지성을 성으로 이해한 것이죠. 여기에서 ‘본원적’이란 기질을 제외한 리만을 가리킨 것을 말하고, ‘개체적’이란 기질 속의 리를 아울러 가리킨 것을 말합니다.

박필주: 성이란 천지의 리가 사람 또는 사물 속에 내재한 이후를 말하니, 이때 사람 또는 사물 속에 내재하는 리만을 가리킬 수도 있고, 형체를 이루는 기질 전체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기질 속에서 리만을 가리켜서 성을 말하면 본연지성이 되고, 기질을 포함해서 말하면 기질지성이 됩니다. 낙론은 주로 본연지성의 의미에서 성을 말하고, 호론은 주로 기질지성의 의미에서 성을 말합니다. 그래서 낙론은 성에 비록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구분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본연지성이라고 하여 본연지성의 관점에서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같다는 동론을 전개합니다. 반면 호론은 성의 개념을 기질에 내재된 이후의 단계로 파악하고, 기질지성의 관점에서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다르다는 이론을 전개합니다.

강민우: 결국 이들 논쟁의 쟁점은 성의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낙론은 본연지성을 성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호론은 기질지성을 성의 개념으로 이해하듯이 말이죠. 그래서 이들은 모두 관점에 따라 동론으로도 볼 수 있고 이론으로도 볼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죠.

박필주: 낙론계열이라는 말에 알 수 있듯이, 저는 ‘성’이 동일하다는 입장에서 리의 보편성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성을 ‘이치의 총회’로 규정하고, 사람과 사물에는 모두 하나의 리가 갖추어져 있으므로 ‘리’는 동일하다는 인물성 동론을 지지합니다. ‘리의 총회’라는 표현에서처럼 사람과 사물의 성은 그 근원에서 보면 모두 동일하다는 논리입니다. 이것은 ‘성은 곧 리이다’는 성즉리(性卽理)의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써, 사람과 사물이 모두 천지의 리(또는 동일한 하나의 리)를 부여받아 존재하며, 다만 기질의 맑고 탁함 여부에 따라 차이가 날 뿐이라는 것입니다. 성은 모두 동일하나 기질의 차이에 따라 사람과 사물로 구분되고, 또한 사람 속에서도 성인과 어리석은 사람,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등으로 구분됩니다. 예컨대 기질이 맑으면 사람이 되고, 기질이 탁하면 사물이 됩니다. 또한 기질이 맑은 가운데서도 바르고 통하면 성인이나 착한 사람이 되고, 기질이 맑은 가운데서도 치우치고 막히면 어리석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 됩니다.

강민우: 기질의 차이에 따라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달라진다는 것은 낙론이든 호론이든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박필주: 그렇습니다. 낙론은 성이 곧 리라는 일원(一源)의 관점에서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같다고 주장하고, 호론은 기 속에 들어있는 리가 성이라는 관점에서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고 낙론이 기와 분리된 리를 성이라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기질에 내재된 리로서의 성에도 본래 리에 해당하는 본연지성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든 사물이든 모두 리를 온전히 가지고 있지만, 다만 겉으로 드러날 때 차이가 날 뿐입니다. 사람의 기질은 맑기 때문에 부여받은 리를 그대로 드러낼 수 있으나, 사물의 기질은 탁하기 때문에 부여받은 리를 그대로 드러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호론은 리가 기(형체) 안에 내재되어 성이 되므로 기질적 차이에 따라 리를 부여받은 성에도 차이가 없을 수 없습니다. 기질이 맑은 사람은 온전한 성을 얻으며 기질이 탁한 사물은 치우친 성을 얻으니, 결국 기질의 차이가 성의 차이를 결정합니다.

강민우: 결국 박필주 선생님은 성의 측면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라 할 수 있겠군요. 이때 성은 지극히 순수하고 지극히 깨끗하여 절대 공활한 세계인 형이상자입니다. 이것은 이 리를 담고 있는 그릇인 형이하자의 기질과는 분명히 구분됩니다.

박필주: 저는 이황의 ‘사단은 이발이고 칠정은 기발이다’는 호발설에 대하여 일정부분 수용합니다. 특히 이이가 반대했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소종래(所從來)에 따른 구분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황의 ‘사단은 리에 근원하므로 이발이 되고 칠정은 기에 근원하므로 기발이 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고 전제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단과 칠정을 모두 ‘기발이승일도’로 이해하는 이이의 대해 비판적인 입장입니다. 다만 ‘이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와 ‘기발이이승지(氣發而理乘之)’라는 말에서 리와 기를 분개(또는 불상잡)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말뜻에 미진한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민우: 이황의 ‘사단은 근원은 리이고 칠정은 근원은 기이다’는 소종래에 따른 근원적 구분에 대해, 이이는 이황이 이원(二源)의 오류를 범한다고 비판했다고 들었습니다.

박필주: 이이는 이황의 말처럼 ‘사단의 근원은 리이고 칠정의 근원은 기’라면, 사단과 칠정으로 발하기 이전에 이미 본원에 두 개의 근원이 있게 되므로 옳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예컨대 정으로 발하기 이전인 성의 상태에 이미 사단의 근원인 리와 칠정의 근원인 기가 각각 따로 있다가, 성이 발하여 정으로 드러날 때에 사단은 리에서 나오고 칠정은 기에서 나오는 셈인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성에 두 개의 근원(二源)이 있게 되고, 결국 사람의 성은 둘이 됩니다. 사람의 성은 결코 둘이 될 수 없으며 하나일 뿐입니다. 성은 하나이며, 하나의 성이 발하여 하나의 정이 됩니다. 이때의 정은 칠정에 해당하며, 칠정 가운데 선한 부분만을 가리켜서 사단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이는 이러한 이원(二源)의 문제를 사람이 말을 타는 것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사단의 근원은 리가 되고 칠정의 근원은 기가 된다’면, 이것은 마치 사람과 말이 집을 나서기 이전에는 각각 따로 있다가, 집을 나서면서 사람이 말을 타는 것에 해당한다고 비판합니다.

강민우: 이러한 사고는 박필주선생도 이이처럼 리와 기가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불상리’의 관점을 전제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이이가 이황을 비판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이는 ‘이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 기발이이승지(氣發而理乘之)’라고 하면, ‘리가 발하고 나서 기가 따르고, 기가 발하고 나서 리가 타는’ 것이 되어 리와 기 사이에 시간적 선후 간격이 생긴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리가 발하고 기가 따르거나 기가 발하고 리가 타는 것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이발이기수지 기발이이승지’의 표현은 옳지 않다는 것이죠.

박필주: 그래서 저는 이황의 ‘사단은 이발이고 칠정은 기발이다’는 호발설은 인정하면서도, ‘이발이기수지 기발이이승지’의 표현에 대해서는 미진하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 차이가 생긴 이유는 사단과 칠정이라는 개념설정의 범위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칠정은 감정의 처음과 끝, 머리와 말단을 말한 것이고, 사단은 처음 발할 때의 단서일 뿐입니다. 저는 사단은 처음 발할 때의 단서이고 칠정은 감정의 전체로 구분합니다.

강민우: 사단칠정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이황과는 분명히 구분되고, 오히려 이이의 해석과 유사해 보입니다. 이황이 사단과 칠정을 대립하는 서로 다른 별개의 정으로 본다면, 이이는 정은 칠정 하나이고 그 가운데 선한 정만을 가리켜서 사단이라고 보았죠. 이이가 사단칠정에서 ‘칠정은 정의 전체이고 사단은 그 가운데 선한 부분만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은 박필주선생의 ‘칠정은 감정의 전체이고 사단은 처음 발할 때의 단서’로 보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박필주: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단과 칠정에 대한 개념 정의는 이이의 견해와 비슷합니다. 그렇다고 이이의 견해를 모두 묵수․계승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 저는 이이의 견해도 일정 부분 받아들이고 이황의 견해도 일정 부분 받아들이는 절충적 자세를 취합니다. 그래서 후대에는 저를 절충파로 분류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율곡학파 내의 이단상 계열의 특징이고 합니다. 이상으로 ‘리’의 이해 전반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강민우: 지금까지 박필주선생의 ‘리’의 설명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박필주: 별말씀을요. 도움이 되셨는지 그저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강민우: 지금까지 이단상 선생님, 김창협 선생님, 김창흡 선생님, 임영 선생님, 박필주 선생님을 모시고 율곡학파의 이단상 계열이 지향하고 있는 리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이 취하고 있는 ‘리’의 의미는 대체로 ‘도리’의 드러남으로 해석하고, 퇴계학파와 율곡학파의 핵심 요지들을 수용하여 자신들의 안목에서 재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단상 계열은 김창협․김창흡․임영․박필주 등으로 낙론 계열의 학자들로서 ‘이발’의 이해에서도 보다 열린 자세를 취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김창협은 사단과 칠정의 차이가 ‘기의 기틀(氣機)’의 발동 여부에 있다고 봅니다. 칠정은 ‘기의 기틀’이 발동한 것이고, 사단은 ‘기의 기틀’을 배제하고 도리가 드러난 것만을 지칭한 것으로 파악합니다. 이것은 사단마저도 ‘기발’로 해석하는 이이의 이론과 분명히 구분됩니다. 여기에서 ‘기의 기틀’은 기의 작위에 해당하므로 그대로 기발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편, 김창흡선생님은 존재론적 시각에서 보면, 이 우주의 만물이 생생하여 그치지 않고 변화가 무궁한 것은 ‘수설’이고, 또한 남녀가 서로 마주 서고, 사람과 물건이 마주 서고, 강한 선악과 부드러운 선악이 마주 서 있는 것이 ‘횡설’이라는 프레임을 제시하는 동시에, 선은 ‘도리가 드러난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것도 이황이 ‘사단은 기라 발한 것이므로 선하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므로 악으로 흐르기 쉬운 것’으로 대립시켜 해석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임영은 이이의 ‘이기불상리’에는 찬성하고, ‘기발이승일도’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는데, 이는 이황의 ‘호발설’을 긍정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박필주는 이황의 ‘이발’을 근원(소종래)에서 본다면 가능하다고 전제합니다. 그러나 ‘이발이기수지’와 ‘기발이이승지’라는 말은 분개의 의미가 있으므로 미진하다고 진단합니다. 이것은 이이의 리와 기가 함께 있다는 ‘불상리’를 전제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단상 계열이 추구하는 ‘리’에 대한 이해는 ‘이발’이라고 하는 이황의 입장을 완전히 도외시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가 드러난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능동적․실천적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도리가 드러난 것’은 이황이 말하는 ‘이발’의 의미와 유사하니, 결국 이들은 리와 기가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불상리’를 전제하면서, 동시에 이황의 이발을 인정하는데 그 특징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황의동, 기호유학연구, 서광사, 2006

황의동, 한국유학사상연구, 서광사, 2011

유연석, 「우계 후학의 율곡 성리학 이해와 비판」, 율곡사상연구제23집, 율곡연구원, 2011

김승영, 「율곡학파의 이단상 계열이 이해한 ‘리’의 의미」, 동양철학39, 한국동양철학회, 2013

 

임영의 ‘리’ 이해2

 

임영의 이해

 

임영: 특히 이황은 리의 능동성을 강조합니다. 장수가 부하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리가 실제로 기를 능동적으로 주재한다는 것입니다. 이황은 리의 실재적․능동적 주재를 확립하여 현실의 혼란을 야기하는 기의 활동을 철저히 차단해나가려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것은 리가 그렇게 시킨 것이며 리가 그렇게 주재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운동하는 주체가 기라고 할지라도, 기를 주재하여 기로 하여금 운동하게 하는 것은 리입니다. 기의 운동도 리의 주재에 의한 것이므로 결국 리가 주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리의 주재는 리가 실제로 기를 주재하는 것이 됩니다. 이이 역시 리의 주재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황처럼 장수가 부하에게 명령하듯이 능동적․실재적 주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기로 하여금 운동하게 하는 원리로서의 리를 그대로 리의 주재로 이해합니다. 이것은 원리․법칙의 의미에 해당합니다.

강민우: 이것은 리의 동정(動靜)문제에서 리에 동정이라는 작위성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리의 주재를 사람이 말을 타고 가는 것에 비유하는군요.

임영: 그렇습니다. 예컨대 사람이 말을 타고 갈 경우, 사람은 말을 부리고 말은 사람을 태웁니다. 그런데 사람이 말을 부리지 못하고 말이 가는 데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면, 이것은 죽은 자가 말을 타고 있는 셈입니다. 리가 기를 주재하지 못하고 기에게 끌려간다면, 이것은 리가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마치 죽은 사람이 말을 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서 이황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말을 부려야 하듯이, 리가 적극적으로 기를 주재해나갈 것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리의 적극적 주재 하에서만이 현실의 혼란한 세상이 질서를 유지해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강민우: 이이는 리의 능동적․실재적 주재에 반대하였군요. 왜냐하면 리와 기는 항상 함께 있으며, 리는 기에 대한 소이연의 원리로서의 의미만을 가지기 때문인 거죠.

임영: 이황과 달리, 이이는 리의 주재를 리가 무위(無爲)하다는 원칙 위에서 출발합니다. 리는 무위하기 때문에 절대로 상제가 세상일을 주재하는 것과 같은 능동적․실재적 주재를 할 수 없습니다. 리가 기를 주재하는 것도 기의 운동이 리를 잘 따르거나 본받아 제대로 실현되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이황처럼 그렇게 시키는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위하다고 전제된 리의 주재는 시키거나 부리는 것과 같은 능동의 뜻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게 하는 기 운동의 내재적 법칙으로서의 의미로만 존재합니다.

강민우: 이처럼 리의 주재를 중심으로 리의 능동적 측면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기 운동의 내재적 법칙으로 이해할 것인지를 두고 다양한 논쟁이 전개되었군요. 리의 능동적 측면을 강조한 이황과 달리, 이이는 기 운동의 내재적 법칙으로서 리를 이해한 것이고요.

임영: 이이처럼 리의 주재가 어떤 원리나 법칙으로서만 존재한다면, 인간의 도덕적 당위나 선악의 가치문제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황은 리의 초월성과 절대성을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리의 초월성과 절대성은 리와 기의 ‘불상리’ 관계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리와 기의 ‘불상리’를 전제하면서도, 동시에 논리적․이론적으로는 리와 기를 분리시켜 보려는 ‘불상잡’을 강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리와 기를 분리시켜 놓아야 리를 기보다 우위에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민우: 그래야 기에 대한 리의 실질적인 주재가 가능하다는 것이군요.

임영: 저도 이황처럼 리의 실질적 주재에 찬성합니다. 그리고 이이처럼 기 운동의 내재적 법칙으로만 리의 의미를 제한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이이처럼 해석하면, 리의 주재적 의미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강민우: 이이처럼 리와 기가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불상리’를 강조하면, 리의 실질적 주재는 기의 작위성에 가려지게 되겠군요. 그래서 리의 주재 기능은 상실된다는 말이죠. 마치 죽은 사람이 말을 타고 있는 것처럼, 리는 쓸모없는 물건이 되겠군요.

임영: 그렇습니다. 결국 리의 주재문제를 두고 이황과 이이의 견해가 갈라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저는 능동적․실질적인 리의 주재를 주장하는 이황의 견해를 지지합니다. 또한 사단처럼 선한 감정에도 ‘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선은 ‘리’에 연유하여 발한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이발’이라고 합니다. 칠정에서의 악 또한 ‘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이 악이 되는 것은 실제로 기의 과․불급(過不及: 지나치거나 모자라는데)에서 연유한 것이지 ‘리’에 연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발’이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이황의 ‘사단은 이발이고 칠정은 기발이다’는 호발설을 어느 정도 인정합니다.

강민우: 임영 선생님은 이이가 말하는 리와 기의 ‘불상리’를 인정하지만, 사단과 칠정이 모두 기발 하나라는 ‘기발이승일도’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뜻이군요. 결국 ‘이기불상리’는 찬성하고 ‘기발이승일도’는 반대하는 것이니 이이의 학설을 부분적 수용과 부분적 비판이라는 입장을 견지한 듯합니다. 이것은 또한 ‘이기불상리’의 관점에서 이황의 호발설을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겠네요.

임영: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이와 마찬가지로 제 학설의 기본 전제는 ‘이기불상리’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속의 선한 정감은 ‘리’로부터 발하기 때문에 그대로 이발이 되는 것이고, 악에도 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의 과․불급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므로 기발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황의 호발설을 긍정합니다.

강민우: 임영 선생님의 리에 대한 이해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이어서 박필주 선생님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임영의 ‘리’ 이해

 

임영의 이해

 

강민우: 안녕하세요 임영선생님. 만나뵙게 되어 매우 반갑습니다. 앞의 두 선생님과 말씀 나누는 동안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자신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임영: 저의 이름은 임영(林泳, 1649~1696)입니다. 본관이 나주로, 나주 임씨의 후손입니다. 자는 덕함(德涵)이며 호는 창계(滄溪)이니 사람들이 창계선생이라 부릅니다.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임일유(林一儒)이며, 어머니는 임천 조씨로 조석형(趙錫馨)의 딸입니다. 이단상과 박세채(朴世采)의 문인입니다.

강민우: 후세 사람들이 “뜻이 크고 박식했으며 조그만 일에 만족하지 않았다. 특히 천인성명(天人性命)설에 대해 깊이 연구하였으며, 경전과 역사서에 두루 정통했으며 문장에도 뛰어났다”라고 평가합니다.

임영: 과찬이십니다. 어려서부터 이단상․박세채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후에는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문하에서도 수학했습니다. 학맥으로 보면 율곡학파에 속하지만, 이이뿐만 아니라 이황의 학설을 받아들이는 절충적인 입장입니다. 특히 이이의 리와 기가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기불상리’에는 찬성하지만, ‘기발이승일도’에는 반대합니다. ‘이기불상리’는 리와 기를 분리시키지 않고 합쳐서 본다는 뜻입니다. ‘기발이승일도’는 이황이 ‘사단은 이발이고 칠정은 기발이다’라고 이해하는 것과 달리, 사단과 칠정을 모두 기발 하나로 이해한다는 의미입니다.

강민우: 선생님께서는 율곡학파이면서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에는 반대하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궁금합니다. 선생님의 학설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임영: 저는 이이의 ‘기발이승일도’를 비판하는 관점에서 이황의 ‘호발설’을 받아들이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이황의 호발설은 사단은 이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발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이는 이황의 ‘호발설’이 리와 기의 ‘불상리’적 관점에 맞지 않으며, 무엇보다 발하는 주체를 기에 국한시켜 호발설이 옳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불상리’는 리와 기가 서로 떨어지지 않고 함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사단에도 리와 기가 함께 있고 칠정에도 리와 기가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발(또는 발동)하는 주체는 기이지 결코 리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리는 작위성이 없는 형이상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이는 ‘리는 무위하고(理無爲) 기는 유위하다(氣有爲)’라는 말합니다. 리와 기는 항상 함께 있고 발동하는 주체가 기라면, 이황의 ‘이발’은 옳지 않습니다. 칠정뿐만 아니라 사단도 리와 기가 함께 있으며 발동하는 주체는 기이니, 기발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이는 사단과 칠정을 모두 기발 하나로 해석하는데, 그것이 바로 ‘기발이승일도’입니다.

강민우: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 것이군요.

임영: 이이처럼 리와 기가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불상리’에 한정한다면, 리는 한갓 기의 존재 원인으로서의 의미에 불과할 뿐이고 리의 핵심 개념인 ‘주재’의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리와 기가 서로 떨어질 수 없고 함께 있으면, 작위성이 없는 리는 작위성을 가진 기의 영향에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성리학에서는 이것을 ‘리약기강(理弱氣强)’으로 표현합니다. 말 그대로 리는 약하고 기는 강하다는 뜻입니다. 리는 약하고 기는 강하기 때문에 리는 기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성리학에서는 리가 기를 주재한다는 ‘리의 주재’를 기본 개념으로 설정합니다. 리와 기가 함께 있으면, 리가 기를 주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리가 기를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의 지배를 받는 상태를 초래합니다.

강민우: 이이 학설의 기본 전제는 리와 기가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불상리’에 있는데, 이이처럼 ‘불상리’를 강조하면 ‘리의 주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이군요.

임영: 그렇습니다. 이이는 리와 기의 불상리의 관점에서 ‘기발이승일도’를 주장하는데, 그렇게 되면 리의 주재능력이 상실되어 리가 가지는 본체와 실용의 의미가 사라집니다. 다시 말하면, 이이의 견해는 리의 소이연(그리된 까닭)으로서의 기능은 작동하지만, 리의 주재기능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강민우: 소이연(所以然)은 그렇게 되는 이유 또는 까닭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임영: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렇게 되는 존재 이유 또는 까닭이 있습니다. 이것을 ‘소이연’이라고 말합니다. 소이연은 이 세상 모든 사물의 존재 근거에 해당합니다. 예컨대 하늘은 왜 높고, 땅은 왜 두터우며, 물고기는 왜 물에서만 헤엄치고, 솔개는 왜 하늘에서만 나는지 등 사물의 존재의 이유 또는 까닭이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이러한 소이연은 소당연과 짝을 이룹니다. 소당연(所當然)은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으로, 인간사 속에서 일어나는 당위법칙에 해당합니다. 예컨대 부모는 왜 자식을 사랑해야 하고 자식은 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며, 임금은 왜 어질어야 하고 신하는 왜 충성해야 하는지 등 당위의 법칙(또는 도덕의 법칙)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소당연에 근거하여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소당연에 근거하기 때문에 자연적이고 필연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민우: 이 세상은 어떻게 존재하고, 그 세상 속의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존재와 당위에 대한 두 물음을 소이연과 소당연으로 설명한 것이군요.

임영: 이러한 소이연과 소당연은 모두 ‘리’라는 한 글자에 집약됩니다. 존재의 리는 모든 존재가 그렇게 되는 존재의 이유에 해당하고, 당위의 리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인간의 당위법칙에 해당합니다. 때문에 리는 우주의 자연법칙인 동시에 인간의 도덕법칙이 됩니다. 이것을 성리학적 용어로 ‘소이연’과 ‘소당연’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성리학은 인간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규범을 우주자연의 질서 속에서 그 근거를 찾습니다. 우주만물의 원리이고 법칙인 리가 인간에 내재되어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도덕성의 근거가 됩니다. 그래서 우주자연의 구조와 인간심성의 구조가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주자연의 질서가 곧 인간사회의 당위가 된다고 말합니다. 이로써 리는 존재와 당위라는 이중적 구조를 갖습니다.

강민우: 이이처럼 ‘불상리’를 강조하면 존재의 이유 또는 까닭인 소이연의 의미만 확보된다는 말씀이군요.

임영: 그렇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리에는 소이연과 소당연의 내용뿐만 아니라, 주재라는 커다란 기능이 있습니다. 주재(主宰)란 어떤 일을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하거나 처리하는 사람이라고 사전에서 정의합니다. 이러한 사전적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주재에는 주재하는 자가 주재되는 대상에 대해 적극적인 행동을 가하는 의미가 내포됩니다. 성리학에서 주재하는 것은 리이고 주재되는 대상은 기이니, 리가 기를 주재하는 것이 됩니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왜냐하면 주자는 리의 작위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리의 작위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리가 기에 대해 적극적인 주재를 할 수 없습니다.

강민우: 작위성이 없는 리가 어떻게 기를 주재할 수 있느냐는 것이군요. 리의 주재에 대한 배경적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임영: 성리학에 있어서 ‘리의 주재’라는 말은 고대의 상제(上帝)라는 표현으로까지 소급됩니다. 본래 주재라는 말은 ‘상제가 이 세상을 주재한다’는 표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상제란 우주만물을 주재하는 최고의 인격신을 의미합니다. 상제는 자연현상에서 비․바람․번개 등을 주관할 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도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는 방법으로 이 세상을 주재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발달하고 이성적 사고가 차츰 뿌리를 내리면서 상제가 이 세상을 주재한다는 사상은 의심을 받게 되고, 상제가 주재하던 인격적 의미도 상실하게 됩니다. 상제의 개념이 퇴색되고, 이어서 천(天)․천명(天命)․천도(天道)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러다가 송대(宋代)에 이르면서 주자는 상제를 리로 대체하여 이 ‘리’가 세상만사를 주재하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강민우: 그래서 주자는 “지금 하늘 안에 죄악을 심판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옳지 않다. 그렇다고 전혀 주재하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다”라고 하여, 이 세상에 인격적 주재자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세상에 전혀 주재자가 없는 것도 아니라고 하였군요.

임영: 주자는 이 세상을 주재하던 인격적 주재자인 상제 대신에 리가 이 세상을 주재하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세상사가 다양하게 전개되는 것은 상제가 주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리가 그렇게 되도록 주재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리가 이 세상의 주재자로 등장하면서 주재의 의미도 바뀌게 됩니다. 상제가 세상일의 화복(禍福)을 주관하는 인격적 주재자라면, 주자의 리는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형이상의 개념으로서 만물의 법칙이나 원리의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 속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원리․법칙․표준 등을 리의 주재로 이해합니다.

강민우: 리와 기의 관계를 다르게 설정함에 따라 리의 주재에 대한 의미도 달라지겠는데요.

임영: 그렇습니다. 리와 기의 ‘불상리’ 속에서는 리의 주재가 법칙․원리의 의미가 되고, 리와 기의 ‘불상잡’ 속에서는 리의 주재가 실재적․능동적 의미가 됩니다. 실재적․능동적 의미로서의 주재란 장수가 부하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리가 작위성을 갖고서 기를 제재․통제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리의 실재적․능동적 주재를 인정할 경우, 직위성이 없는 무위(無爲)한 리가 기를 주재하는 것이 되므로 성리학의 기본 전제에는 어긋납니다. 왜냐하면 리는 ‘정의도 없고 조작도 없는’ 형이상의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리의 주재를 기의 법칙이나 원리의 의미로 인정할 경우에는 현실의 지배권이 기에 귀속되어 리는 쓸모없는 물건이 될 수 있습니다.

강민우: 이로부터 조선의 유학자들도 리의 주재를 둘러싸고 서로 상반된 논쟁을 벌였던 것이군요. 이황과 이이는 모두 리가 기를 주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은 서로 주재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한 듯합니다. 이황이 리의 주재를 리가 기를 부리거나 명령하는 것과 같은 실재적․능동적 작용으로 규정한다면, 이이는 리의 주재를 기 운동의 법칙이나 원리의 의미로 이해합니다.

김창흡의 ‘리’ 이해2

 

김창흡의 이해

 

강민우: 안녕하세요 김창흡 선생님. 먼저 선생님의 개인적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창흡: 저의 이름은 김창흡(金昌翕, 1653~1722)입니다. 서울 출신으로, 본관은 안동이니 안동 김씨의 후손입니다. 자는 자익(子益)이고, 호는 삼연(三淵)이니 사람들이 삼연선생이라 부릅니다. 좌의정을 지낸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자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金壽恒)이며, 어머니는 해주목사 나성두(羅星斗)의 딸입니다. 형으로는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金昌集)과 예조판서를 지낸 김창협(金昌協)이 있으며, 이단상의 문인입니다.

강민우: 앞에서 소개한 김창협선생님의 동생이시군요.

김창흡: 그렇습니다. 두 분의 형님을 비롯하여, 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등 모두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저는 보시다시피 좋은 집안의 배경에서 태어났습니다.

강민우: 그렇게 보입니다. 너무 부럽습니다. 선생님의 학문세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김창흡: 저는 리와 기의 관계에 주목합니다. 리와 기의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불상리’와 서로 섞일 수 없는 ‘불상잡’의 관계를 동시에 인정하면서, 또한 리와 기를 횡설(橫說)과 수설(竪說)의 구조로 설명합니다. 제가 리와 기를 해석하는 핵심 요지는 여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횡설과 수설은 모두 쌍 개념으로 어떤 효과를 주기 위해 배열하는 방식입니다. ‘횡설’은 쌍 개념을 서로 수평관계에 놓고 대비하는 방식인데, 서로 대립하는 쌍 개념을 대비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수설’은 쌍 개념을 서로 수직관계에 놓고 대비하는 방식으로, 쌍 개념 가운데 무엇이 근원적인지 보여주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예컨대 횡설은 리와 기를 좌우로 배치하여 서로 승부를 다투는 가치론적 관계로 파악하는 배치 방식이고, 수설은 리와 기를 상하로 배치하여 리가 기에 타고 있는 존재론적 관계로 파악하는 배치 방식입니다. 좌우로 된 프레임(횡설)은 서로 갈등관계에 놓인 가치론적 속성들을 이분법적으로 표시하기에 효과적이고, 상하로 된 프레임(수설)은 형이상의 원리와 형이하의 재료라는 존재론적 속성들을 표시하기에 적합합니다.

강민우: 김창흡 선생님께서 리와 기를 분석하는 도구로 횡설과 수설의 방법을 동원한 것은 이황과 이이의 철학적 특성을 프레임의 차원에 기인하여 분류하기 위한 것이네요. 일찍이 기대승은 이황과의 논변에서 자신의 학설이 수설에 서 있음을 말하고, 리와 기를 인잉(因仍 : 답습하다. 그대로 쫓다.)의 관계로 파악하여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는 ‘칠정포사단’의 논리를 피력합니다. 반면 이황은 리와 기를 대대(待對)의 관계로 파악하여 사단과 칠정이 대립한다는 ‘사단대칠정’의 논리를 피력합니다. 결국 횡설이 분개(또는 불상잡)의 방법에 해당한다면, 수설은 혼륜(또는 불상리)의 방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창흡: 그렇습니다. 횡설과 수설은 기존의 많은 연구자들이 시도한 분석 기법 중에 하나입니다. 저는 이황과 이이의 사단칠정설이 프레임의 차이에서 드러난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지적합니다. “리에는 횡설․수설이 있는데, 사방이 횡이고 상하가 수입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지금까지가 수이고, 동서남북이 횡입니다. ‘수’는 유행해서 다함이 없어서 형이상으로부터 형이하까지를 말하는 것이고, ‘횡’은 일정하여 변함이 없어서 각기 그 위치가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태극에 동정이 있다는 것은 수설 쪽이며, 태극에 음양이 있다는 것은 횡설 쪽입니다.”

강민우: 김창흡 선생님이 태극(또는 리)을 분석하는 방법에 횡설과 수설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한다는 자체가 분석의 치밀함이 돋보이는 대목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율곡학파의 이단상 계열이 이해한 ‘리’의 의미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김창흡: ‘사방이 횡이고 상하가 수이다’는 것은 시간적․공간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리와 기를 해명한 것으로써, 좌우대칭 구도가 ‘횡’이고 수직상하 구도가 ‘수’임을 전제하여 리에 이 두 가지가 내재해있음을 설명합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가 수이고 동서남북이 횡이다’는 것은 앞에서 보여준 시간적․공간적인 도구와 다른 시간적 도구를 이용하여 쉽게 접근하고자 한 것입니다. ‘수’라는 것은 유행하는 시간과 같은 것에 대비적으로 나타내고, ‘횡’이란 것은 대대 혹은 대칭의 구도에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수설’은 상하를 이분적으로 나뉘어 놓은 방식인 형이상과 형이하가 바로 이것을 의미하고, ‘횡설’은 대대와 대칭 구도에서 자신의 역할이 바뀔 수 없음을 대비적으로 나타냅니다. 이것이 바로 서로 상대를 기다려서 있는 형국이므로 ‘가치론적 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민우: 그렇다면 ‘수설’을 존재론적 구도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김창흡: ‘태극에 동정이 있는 것은 수설의 한 단면이다’는 것은 태극이 움직인다는 것을 인잉(因仍)의 구도에서 보면, 생성의 원인자인 태극이 움직인다는 것이니, 이것은 존재론적 시각에 있으므로 ‘수설’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또한 ‘태극에 음양이 있다는 것은 횡설의 한 단면이다’는 것은 태극을 리로, 음양을 기로 대치한다면 리와 기가 서로 대대 혹은 대칭의 구도에 있으므로 ‘횡설’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강민우: ‘인잉’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김창흡: ‘인잉’은 인설(仁說)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따르는 것(因循)’이라는 의미입니다. 앞의 것을 따라서 인과적으로 말하는 방식을 인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인설은 상하를 말하는 것과 같은데 ‘성이 발하여 정이 된다(性發爲情)’라는 구절에서 성과 정이 각각 ‘상’과 ‘하’가 됩니다. 그러므로 정은 성을 그대로 따라서(因仍) 발한 것이 됩니다. 여기에서 사단과 칠정은 존재론적으로 하나의 정이라는 점이 논증됩니다.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이 모두 성에서 발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이황의 사단과 칠정이 발하는 소종래(所從來)가 각각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사단과 칠정을 ‘이발’과 ‘기발’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기대승은 성리학의 이론체계를 이황처럼 대설(對說)이 아닌 단일 구조로 파악합니다. 예컨대 ‘대설’이란 ‘사단은 리에 해당하고 칠정은 기에 해당한다’거나 ‘사단은 선에 해당하고 칠정은 불선에 해당한다’는 것처럼 상대적 또는 대립적인 관계로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달리 단일구조는 칠정이 사단을 포함하거나 사단이 칠정에 포함되는 것처럼 하나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황의 ‘대설’이 잘못이라고 비판합니다.

강민우: 결국 인잉 또는 인설은 대설에 상대되는 개념이군요. 선생님께서 횡설과 수설과 같은 도구로 기존 학설들의 차이를 포착해내는 것에서 학문적 깊이가 느껴집니다. 선생님은 존재론적 시각에서처럼 이 우주의 만물이 생생하여 그치지 않고 변화가 무궁한 것은 ‘수설’이라 말하고, 또한 남녀가 서로 마주 서고, 사람과 물건이 마주 서며, 강한 선악과 부드러운 선악이 마주 서 있는 것은 ‘횡설’이라 말합니다. 더 나아가 선생님은 사단칠정설을 횡설과 수설로 구별하여 그것을 절충하는 입장을 견지하는군요.

김창흡: 이이가 말한 ‘선은 맑은 기를 타고 발한 것이고 악은 탁한 기를 타고 발한 것이다’는 것은 그 주장하는 것이 기에 있는 것만 알고 성의 선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니, 또한 맹자의 뜻과 다릅니다. 저도 이이의 ‘선은 맑은 기를 타고 발한 것이고 악은 탁한 기를 타고 발한 것이다’는 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모든 선이 맑은 기를 타고 발한 것이고 모든 악이 탁한 기를 타고 발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지극히 무도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이 자기의 부모를 해치는 것을 보면 원수를 갚을 것을 생각합니다. 지극히 무도한 사람은 탁한 기로 가득한 사람일 것인데, 그렇다면 원수를 갚으려는 선한 마음은 어떻게 나올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선한 정은 리(또는 천리)가 발한 것이지 맑은 기가 발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에 근원하는 천리는 외부사물에 감응하면 바로 발하는데, 비록 타는 기가 탁하고 맑지 않더라도 그것에 의해 가려지지 않습니다. 만약 정의 선악을 오로지 기의 맑고 탁한 것으로 돌린다면, 리의 실체인 성이 선하다는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맹자가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강민우: 이이에 따르면, 성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은 맑은 기든 탁한 기든 전적으로 기의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군요. 왜냐하면 비록 천리인 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맑은 마음이 아니면 제대로 발하여 나오지 못한다고 보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이것이 이이가 마음을 기로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창흡: 그렇습니다. 이이는 성(또는 천리)의 실현도 결국 마음의 작용이며, 이때 발하는 주체인 기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 때문에 이이는 이황과 달리, 기를 중시하는 학자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이는 마음을 기로 해석하여 심시기(心是氣)를 주장합니다. 여기에서 이이가 심을 기로 규정하는 심시기(心是氣)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강민우: 그렇다면 이이는 심을 리와 기의 결합으로 규정하는 성리학의 일반적인 해석을 부정하는 것입니까?

김창흡: 그렇지 않습니다. 이이도 “심속에 있는 리가 바로 성이다”라고 하여, 심을 리와 기의 결합으로 이해합니다. 이이는 심속에 성이 갖추어져 있다거나 심이 리와 기의 결함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또한 심을 기로써 규정합니다. 이것은 그의 ‘기발이승일도’와 관련됩니다. ‘기발이승일도’에 따르면, 사단칠정에서 모두 발하는 것은 기이고 발하게 하는 이유는 리입니다. 사단도 기가 발한 것이고 칠정도 기가 발한 것이니,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가 발한 것이므로 심은 기가 됩니다. 또한 이이는 “성은 심속의 리이고 심은 성을 담는 그릇이다”라고 설명합니다. 리가 기에 실려있는 것처럼 성도 심에 담겨있으니, 실제로 작용하여 성을 드러내는 주체는 심이 됩니다. 이러한 주체로서의 심의 작용성을 그대로 기로 해석한 것입니다.

강민우: 그래서 김창흡 선생님은 이이가 성의 실현(또는 도덕적 실천)을 ‘기’의 발동 여부에 있다고 간주하여 ‘기’만 알고 인간 본성의 발현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였다고 비판한 것이군요. 맑은 기와 탁한 기에서 성의 실현 여부가 결정되는 것도 물론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 본성에서 발출되는 선함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겠군요.

김창흡: 예컨대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보통사람이든 성인이든 포악한 사람이든 막론하고 누구나 선한 본성이 발출하여 어린아이를 구제하는데, 이때는 맑거나 탁한 기가 그것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선한 감정이 유지되고 있을 때는, 즉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과 같은 어떠한 사태에 직면해서는 ‘기’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선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도리가 드러난 것’이라는 뜻입니다.

강민우: 선생님도 ‘도리가 드러난 것’이라는 이단상 계열의 ‘리’에 대한 이해를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고 있군요. 또한 ‘도리가 드러난 것’은 그대로 이황이 말한 ‘이발’의 의미와 유사하다는 것이죠.

김창흡: 그래서 저는 이이가 이황을 비판한 것과는 달리, 이황의 이발에 대해 받아들일 부분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理之發)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氣之發)’는 주자의 말을 살피지 못하면 병통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합니다. 주자는 사단과 칠정의 이기론적 해석에서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황은 자신의 ‘사단은 리가 발한 것(理發)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氣發)이다’는 호발설의 이론적 근거를 주자의 이 말에 둔 것처럼, 저 역시 주자의 말에 동의합니다. 저는 주자와 이황의 사단과 칠정의 이기론적 해석을 모두 인정합니다. ‘이기론적 해석’이란 리와 기로써 사단과 칠정의 관계를 설명한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강민우: ‘사단을 이발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기대승의 비판에 직면했을 때, 이황은 주자 역시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라 보았다고 말한 것이죠. 결국 김창흡 선생님은 이이와 달리, 이황의 이발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김창흡: 그렇습니다. 물론 이때 이황을 비판한 기대승의 학설은 이이의 학설과 매우 유사합니다. 제가 지금 이황과 이이를 대조해서 이들의 이론적 차이를 말하지만, 실제로 이황과 이이가 직접 논변을 전개한 것은 아닙니다. 먼저 이황과 기대승이 사단칠정의 문제를 두고 논변을 전개하며, 이후에 이황의 입장에 서있던 성혼(成渾)과 기대승의 입장에 서있던 이이가 이어서 논변을 전개합니다. 그렇지만 논변의 내용에서 보면, 이이가 이황의 이론을 비판하고 성혼이 이황의 이론을 변호함으로써 이황과 이이가 직접 논변을 전개한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또한 제가 이황의 ‘이발’을 일정 부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이발’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단은 ‘도리(또는 리)가 드러난 것’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강민우: 선생님의 리에 대한 말씀은 부족하나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임영 선생님의 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창흡의 ‘리’이해2

 

김창흡의 이해

 

강민우: 안녕하세요 김창흡 선생님. 먼저 선생님의 개인적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창흡: 저의 이름은 김창흡(金昌翕, 1653~1722)입니다. 서울 출신으로, 본관은 안동이니 안동 김씨의 후손입니다. 자는 자익(子益)이고, 호는 삼연(三淵)이니 사람들이 삼연선생이라 부릅니다. 좌의정을 지낸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자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金壽恒)이며, 어머니는 해주목사 나성두(羅星斗)의 딸입니다. 형으로는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金昌集)과 예조판서를 지낸 김창협(金昌協)이 있으며, 이단상의 문인입니다.

강민우: 앞에서 소개한 김창협선생님의 동생이시군요.

김창흡: 그렇습니다. 두 분의 형님을 비롯하여, 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등 모두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저는 보시다시피 좋은 집안의 배경에서 태어났습니다.

강민우: 그렇게 보입니다. 너무 부럽습니다. 선생님의 학문세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김창흡: 저는 리와 기의 관계에 주목합니다. 리와 기의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불상리’와 서로 섞일 수 없는 ‘불상잡’의 관계를 동시에 인정하면서, 또한 리와 기를 횡설(橫說)과 수설(竪說)의 구조로 설명합니다. 제가 리와 기를 해석하는 핵심 요지는 여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횡설과 수설은 모두 쌍 개념으로 어떤 효과를 주기 위해 배열하는 방식입니다. ‘횡설’은 쌍 개념을 서로 수평관계에 놓고 대비하는 방식인데, 서로 대립하는 쌍 개념을 대비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수설’은 쌍 개념을 서로 수직관계에 놓고 대비하는 방식으로, 쌍 개념 가운데 무엇이 근원적인지 보여주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예컨대 횡설은 리와 기를 좌우로 배치하여 서로 승부를 다투는 가치론적 관계로 파악하는 배치 방식이고, 수설은 리와 기를 상하로 배치하여 리가 기에 타고 있는 존재론적 관계로 파악하는 배치 방식입니다. 좌우로 된 프레임(횡설)은 서로 갈등관계에 놓인 가치론적 속성들을 이분법적으로 표시하기에 효과적이고, 상하로 된 프레임(수설)은 형이상의 원리와 형이하의 재료라는 존재론적 속성들을 표시하기에 적합합니다.

강민우: 김창흡 선생님께서 리와 기를 분석하는 도구로 횡설과 수설의 방법을 동원한 것은 이황과 이이의 철학적 특성을 프레임의 차원에 기인하여 분류하기 위한 것이네요. 일찍이 기대승은 이황과의 논변에서 자신의 학설이 수설에 서 있음을 말하고, 리와 기를 인잉(因仍 : 답습하다. 그대로 쫓다.)의 관계로 파악하여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는 ‘칠정포사단’의 논리를 피력합니다. 반면 이황은 리와 기를 대대(待對)의 관계로 파악하여 사단과 칠정이 대립한다는 ‘사단대칠정’의 논리를 피력합니다. 결국 횡설이 분개(또는 불상잡)의 방법에 해당한다면, 수설은 혼륜(또는 불상리)의 방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창흡: 그렇습니다. 횡설과 수설은 기존의 많은 연구자들이 시도한 분석 기법 중에 하나입니다. 저는 이황과 이이의 사단칠정설이 프레임의 차이에서 드러난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지적합니다. “리에는 횡설․수설이 있는데, 사방이 횡이고 상하가 수입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지금까지가 수이고, 동서남북이 횡입니다. ‘수’는 유행해서 다함이 없어서 형이상으로부터 형이하까지를 말하는 것이고, ‘횡’은 일정하여 변함이 없어서 각기 그 위치가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태극에 동정이 있다는 것은 수설 쪽이며, 태극에 음양이 있다는 것은 횡설 쪽입니다.”

강민우: 김창흡 선생님이 태극(또는 리)을 분석하는 방법에 횡설과 수설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한다는 자체가 분석의 치밀함이 돋보이는 대목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율곡학파의 이단상 계열이 이해한 ‘리’의 의미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김창흡: ‘사방이 횡이고 상하가 수이다’는 것은 시간적․공간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리와 기를 해명한 것으로써, 좌우대칭 구도가 ‘횡’이고 수직상하 구도가 ‘수’임을 전제하여 리에 이 두 가지가 내재해있음을 설명합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가 수이고 동서남북이 횡이다’는 것은 앞에서 보여준 시간적․공간적인 도구와 다른 시간적 도구를 이용하여 쉽게 접근하고자 한 것입니다. ‘수’라는 것은 유행하는 시간과 같은 것에 대비적으로 나타내고, ‘횡’이란 것은 대대 혹은 대칭의 구도에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수설’은 상하를 이분적으로 나뉘어 놓은 방식인 형이상과 형이하가 바로 이것을 의미하고, ‘횡설’은 대대와 대칭 구도에서 자신의 역할이 바뀔 수 없음을 대비적으로 나타냅니다. 이것이 바로 서로 상대를 기다려서 있는 형국이므로 ‘가치론적 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민우: 그렇다면 ‘수설’을 존재론적 구도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김창흡: ‘태극에 동정이 있는 것은 수설의 한 단면이다’는 것은 태극이 움직인다는 것을 인잉(因仍)의 구도에서 보면, 생성의 원인자인 태극이 움직인다는 것이니, 이것은 존재론적 시각에 있으므로 ‘수설’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또한 ‘태극에 음양이 있다는 것은 횡설의 한 단면이다’는 것은 태극을 리로, 음양을 기로 대치한다면 리와 기가 서로 대대 혹은 대칭의 구도에 있으므로 ‘횡설’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강민우: ‘인잉’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김창흡: ‘인잉’은 인설(仁說)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따르는 것(因循)’이라는 의미입니다. 앞의 것을 따라서 인과적으로 말하는 방식을 인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인설은 상하를 말하는 것과 같은데 ‘성이 발하여 정이 된다(性發爲情)’라는 구절에서 성과 정이 각각 ‘상’과 ‘하’가 됩니다. 그러므로 정은 성을 그대로 따라서(因仍) 발한 것이 됩니다. 여기에서 사단과 칠정은 존재론적으로 하나의 정이라는 점이 논증됩니다.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이 모두 성에서 발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이황의 사단과 칠정이 발하는 소종래(所從來)가 각각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사단과 칠정을 ‘이발’과 ‘기발’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기대승은 성리학의 이론체계를 이황처럼 대설(對說)이 아닌 단일 구조로 파악합니다. 예컨대 ‘대설’이란 ‘사단은 리에 해당하고 칠정은 기에 해당한다’거나 ‘사단은 선에 해당하고 칠정은 불선에 해당한다’는 것처럼 상대적 또는 대립적인 관계로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달리 단일구조는 칠정이 사단을 포함하거나 사단이 칠정에 포함되는 것처럼 하나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황의 ‘대설’이 잘못이라고 비판합니다.

강민우: 결국 인잉 또는 인설은 대설에 상대되는 개념이군요. 선생님께서 횡설과 수설과 같은 도구로 기존 학설들의 차이를 포착해내는 것에서 학문적 깊이가 느껴집니다. 선생님은 존재론적 시각에서처럼 이 우주의 만물이 생생하여 그치지 않고 변화가 무궁한 것은 ‘수설’이라 말하고, 또한 남녀가 서로 마주 서고, 사람과 물건이 마주 서며, 강한 선악과 부드러운 선악이 마주 서 있는 것은 ‘횡설’이라 말합니다. 더 나아가 선생님은 사단칠정설을 횡설과 수설로 구별하여 그것을 절충하는 입장을 견지하는군요.

김창흡: 이이가 말한 ‘선은 맑은 기를 타고 발한 것이고 악은 탁한 기를 타고 발한 것이다’는 것은 그 주장하는 것이 기에 있는 것만 알고 성의 선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니, 또한 맹자의 뜻과 다릅니다. 저도 이이의 ‘선은 맑은 기를 타고 발한 것이고 악은 탁한 기를 타고 발한 것이다’는 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모든 선이 맑은 기를 타고 발한 것이고 모든 악이 탁한 기를 타고 발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지극히 무도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이 자기의 부모를 해치는 것을 보면 원수를 갚을 것을 생각합니다. 지극히 무도한 사람은 탁한 기로 가득한 사람일 것인데, 그렇다면 원수를 갚으려는 선한 마음은 어떻게 나올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선한 정은 리(또는 천리)가 발한 것이지 맑은 기가 발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에 근원하는 천리는 외부사물에 감응하면 바로 발하는데, 비록 타는 기가 탁하고 맑지 않더라도 그것에 의해 가려지지 않습니다. 만약 정의 선악을 오로지 기의 맑고 탁한 것으로 돌린다면, 리의 실체인 성이 선하다는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맹자가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강민우: 이이에 따르면, 성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은 맑은 기든 탁한 기든 전적으로 기의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군요. 왜냐하면 비록 천리인 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맑은 마음이 아니면 제대로 발하여 나오지 못한다고 보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이것이 이이가 마음을 기로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창흡: 그렇습니다. 이이는 성(또는 천리)의 실현도 결국 마음의 작용이며, 이때 발하는 주체인 기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 때문에 이이는 이황과 달리, 기를 중시하는 학자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이는 마음을 기로 해석하여 심시기(心是氣)를 주장합니다. 여기에서 이이가 심을 기로 규정하는 심시기(心是氣)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강민우: 그렇다면 이이는 심을 리와 기의 결합으로 규정하는 성리학의 일반적인 해석을 부정하는 것입니까?

김창흡: 그렇지 않습니다. 이이도 “심속에 있는 리가 바로 성이다”라고 하여, 심을 리와 기의 결합으로 이해합니다. 이이는 심속에 성이 갖추어져 있다거나 심이 리와 기의 결함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또한 심을 기로써 규정합니다. 이것은 그의 ‘기발이승일도’와 관련됩니다. ‘기발이승일도’에 따르면, 사단칠정에서 모두 발하는 것은 기이고 발하게 하는 이유는 리입니다. 사단도 기가 발한 것이고 칠정도 기가 발한 것이니,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가 발한 것이므로 심은 기가 됩니다. 또한 이이는 “성은 심속의 리이고 심은 성을 담는 그릇이다”라고 설명합니다. 리가 기에 실려있는 것처럼 성도 심에 담겨있으니, 실제로 작용하여 성을 드러내는 주체는 심이 됩니다. 이러한 주체로서의 심의 작용성을 그대로 기로 해석한 것입니다.

강민우: 그래서 김창흡 선생님은 이이가 성의 실현(또는 도덕적 실천)을 ‘기’의 발동 여부에 있다고 간주하여 ‘기’만 알고 인간 본성의 발현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였다고 비판한 것이군요. 맑은 기와 탁한 기에서 성의 실현 여부가 결정되는 것도 물론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 본성에서 발출되는 선함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겠군요.

김창흡: 예컨대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보통사람이든 성인이든 포악한 사람이든 막론하고 누구나 선한 본성이 발출하여 어린아이를 구제하는데, 이때는 맑거나 탁한 기가 그것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선한 감정이 유지되고 있을 때는, 즉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과 같은 어떠한 사태에 직면해서는 ‘기’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선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도리가 드러난 것’이라는 뜻입니다.

강민우: 선생님도 ‘도리가 드러난 것’이라는 이단상 계열의 ‘리’에 대한 이해를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고 있군요. 또한 ‘도리가 드러난 것’은 그대로 이황이 말한 ‘이발’의 의미와 유사하다는 것이죠.

김창흡: 그래서 저는 이이가 이황을 비판한 것과는 달리, 이황의 이발에 대해 받아들일 부분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理之發)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氣之發)’는 주자의 말을 살피지 못하면 병통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합니다. 주자는 사단과 칠정의 이기론적 해석에서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황은 자신의 ‘사단은 리가 발한 것(理發)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氣發)이다’는 호발설의 이론적 근거를 주자의 이 말에 둔 것처럼, 저 역시 주자의 말에 동의합니다. 저는 주자와 이황의 사단과 칠정의 이기론적 해석을 모두 인정합니다. ‘이기론적 해석’이란 리와 기로써 사단과 칠정의 관계를 설명한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강민우: ‘사단을 이발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기대승의 비판에 직면했을 때, 이황은 주자 역시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라 보았다고 말한 것이죠. 결국 김창흡 선생님은 이이와 달리, 이황의 이발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김창흡: 그렇습니다. 물론 이때 이황을 비판한 기대승의 학설은 이이의 학설과 매우 유사합니다. 제가 지금 이황과 이이를 대조해서 이들의 이론적 차이를 말하지만, 실제로 이황과 이이가 직접 논변을 전개한 것은 아닙니다. 먼저 이황과 기대승이 사단칠정의 문제를 두고 논변을 전개하며, 이후에 이황의 입장에 서있던 성혼(成渾)과 기대승의 입장에 서있던 이이가 이어서 논변을 전개합니다. 그렇지만 논변의 내용에서 보면, 이이가 이황의 이론을 비판하고 성혼이 이황의 이론을 변호함으로써 이황과 이이가 직접 논변을 전개한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또한 제가 이황의 ‘이발’을 일정 부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이발’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단은 ‘도리(또는 리)가 드러난 것’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강민우: 선생님의 리에 대한 말씀은 부족하나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임영 선생님의 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창협의 ‘리’이해

 

김창협의 이해

 

강민우: 안녕하세요. 김창협선생님. 먼저 선생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창협: 저는 경기도 과천에서 태어난 조선 중기 유학자 김창협(金昌協, 1651~1708)입니다. 본관은 안동으로, 안동 김씨의 후손입니다. 자는 중화(仲和)이고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 등이 있는데, 사람들은 저를 농암선생이라 부릅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척화를 주장했던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자이며,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金壽恒)이고 어머니는 해주목사를 지낸 나성두(羅星斗)의 딸입니다.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金昌集)의 동생이며, 조선 말기 형제 영의정으로 유명한 김병학(金炳學)과 김병국(金炳國)의 6대 조부이기도 합니다.

강민우: 집안의 배경이 너무 대단해보입니다. 먼저 선생님의 학문세계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오늘날 김창협선생님의 학문은 이황과 이익의 학설을 절충한 것으로 평가됩니다만. 그 내용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김창협: 이러한 평가는 저의 사단칠정론에 대한 것인 듯합니다.

강민우: 율곡학파의 홍직필(洪直弼)은 “김창협의 사단칠정론은 정밀해서 조금도 흠결이 없으며, 사단칠정론이야 말로 그의 문자 중에 제일이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퇴계학파의 이진상(李震相) 역시 그를 뛰어난 학자로 칭송하고 사단칠정론에 대해 매우 정밀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이것은 김창협선생의 사단칠정론이 당시 학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김창협: 저는 이황과 이이의 사단칠정론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예컨대 ‘사단은 선한 부분이며 칠정은 선악을 겸한다거나, 사단은 리만을 말하고 칠정은 기를 겸해서 말한다’는 이이의 학설이 명백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저의 생각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 내용 가운데 차이는 다만 ‘칠정은 기를 겸해서 말한다’는 한 구절에 있습니다. 이이에게 있어서 사단은 칠정 가운데 선한 부분만을 가리키니 ‘리’에 해당합니다. 그렇다고 사단을 곧바로 ‘이발’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발’이라는 표현은 기와 같은 작위적 개념에 해당하기 때문에 결코 작위가 없는 무위한 리에는 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이는 사단도 기가 발한 것이라는 ‘기발’로 설명합니다. 사단이든 칠정이든 발하는 것은 모두 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칠정은 사단을 포함한 정의 전체를 말합니다. 이때는 선한 정뿐만 아니라 불선(악)한 정도 있으므로 칠정은 리와 기를 겸하게 됩니다. 이것은 이황이 칠정을 주로 악으로 흐르기 쉬운 불선한 정으로 설명하는 것과 구분됩니다. 왜냐하면 이이가 보기에 칠정에는 사단과 같은 선한 정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강민우: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칠정이 리와 기를 겸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시군요.

김창협: 그렇지 않습니다. 칠정에도 리와 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칠정이 리와 기를 겸한다기보다는 기를 주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칠정에도 ‘리와 기가 함께 있다’거나 ‘리와 기를 겸하지만’ 칠정은 기를 주로 하여 말한 것입니다. ‘기를 주로 한다’는 것은 칠정에도 리가 있고 기가 있지만 기가 중심이 된다는 뜻입니다. 칠정은 성이 발한 이후의 일이므로 리와 기가 함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이나 존재 등은 리와 기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칠정은 성(또는 리)과 달리, 리와 기가 함께 있습니다. 성리학에서는 성이 발하여 드러난 정을 성발위정(性發爲情)이라 말합니다. 성리학의 중심 개념인 성즉리(性卽理)에 따르면, 성이 곧 리이므로 이때 성은 리가 되지만, 칠정은 성이 발한 이후의 일이므로 리와 기를 겸합니다. 이이는 칠정이 기뿐만 아니라 리를 겸한다는 사실을 매우 중시합니다. ‘리와 기를 겸한다’는 것은 칠정에는 리가 있고 기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칠정은 사단을 포함한 정의 전체를 말하므로 칠정을 곧장 기로만 보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칠정을 곧장 기로만 보면 칠정 속에 포함되어 있는 사단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집니다.

강민우: 그래서 이이는 사단은 리이지만 칠정은 리와 기를 겸한다고 주장한 것이군요. 칠정 속에는 리에 해당하는 사단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그대로 기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네요.

김창협: 그렇습니다. 저는 칠정이 리와 기를 겸한다고 보는 이이의 주장과 달리, 칠정은 기를 주로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기를 주로 한다’는 것은 비록 칠정에 리와 기가 함께 있지만, 칠정은 어디까지나 기를 위주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강민우: 이것은 이황이 칠정을 ‘기발’로 해석하는 것과 유사해 보입니다. 이황 역시 칠정에는 리와 기가 함께 있지만, 기를 주로 해서 보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김창협선생의 주장은 이이보다 이황의 견해에 동조하는 의미가 되겠군요. 선생님은 퇴계학파가 아니라, 이이의 학맥을 계승한 율곡학파인데 말이죠.

김창협: 이황이 ‘사단은 이발이고 칠정은 기발이다’한 것에 대해서도, 이이는 사단의 이발과 마찬가지로 칠정을 기발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비판합니다. 왜냐하면 칠정에는 기와 동시에 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이(또는 기대승)의 비판에 직면해서, 이황 역시 리를 주로 하고 기를 주로 하는 주리․주기의 방법을 제시합니다. 사단에도 리와 기가 함께 있고 칠정에도 리와 기가 함께 있지만, 사단은 리와 기 가운데 리를 주로 하여 말한 것이고 칠정은 리와 기 가운데 기를 주로 하여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칠정에도 비록 리와 기가 함께 있지만, 기를 주로 하여 말할 수 있으므로 그대로 ‘기발’이라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강민우: 결국 김창협 선생님의 칠정이 기를 주로 한다는 것은 이황의 ‘기발’의 뜻과 유사해지는군요.

김창협: 그렇게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후대에서는 저를 이황과 이이의 학설을 수용하여 절충한 인물로 분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칠정이 ‘기가 주가 된다’는 것은 결국 악으로 흐르기 쉬운 정이라는 의미입니다. 리와 기가 함께 있으나 기가 위주가 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리의 의미가 약하다는 뜻입니다. 결국 칠정에는 리가 약해지고 기가 왕성해집니다. 그래서 칠정이란 이황처럼 어디까지나 조심하고 절제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이것은 이이가 칠정 속의 선한 부분을 사단으로 이해하고, 칠정 속의 그 선한 부분(리)을 고려하는 것과는 분명히 구분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이는 인간의 기쁨․분노․슬픔․즐거움․사랑․미움․욕심 등의 일반적 감정을 그대로 악으로 흐르기 쉬운 불선한 것으로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을 모두 불선한 것으로 본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부정한다는 것은 현실적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부정하는 셈이 됩니다. 그래서 이이는 이황이 칠정을 ‘기발’로 보는 것에 반대했던 것입니다.

강민우: 결국 이황과 이이 사이에 존재하는 학설상 차이의 출발은 사단과 칠정의 개념적 정의를 달리하는데 있어 보입니다. 이황이 리에 근원하는 사단과 기에 근원하는 칠정으로 사단과 칠정을 근원적으로 서로 다른 별개의 정으로 이해한다면, 이이는 사단이란 칠정 속의 선한 부분을 가리키므로 사단과 칠정을 하나의 정으로 이해합니다. 사단과 칠정이 하나의 정인지 서로 다른 별개의 정인지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검증이 필요해 보입니다. 사단의 감정이 나오는 곳과 칠정의 감정이 나오는 곳이 따로 있으면 이황의 학설에 부합할 것이고, 반대로 사단의 감정과 칠정의 감정이 나오는 곳이 한 곳이면 이이의 이론에 부합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누구의 이론이 옳은지 그른지를 쉽게 분별할 수 있을 같습니다.

김창협: 재미있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황의 학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단과 칠정의 개념정의에 대해서는 입장이 다릅니다. 이황처럼 사단은 리에 근원하고 칠정은 기에 근원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합니다. 정은 칠정 하나이며, 그 칠정 가운데 선한 부분만을 사단으로 보는 이이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결국 이황처럼 사단의 정이 따로 있고 칠정의 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은 칠정 하나만이 있을 뿐입니다.

강민우: 선생님과 이황의 사단칠정설에 대한 출발이 다른데도, 서로 유사한 학설로 귀결되는군요.

김창협: 그렇습니다. 칠정이 리와 기를 겸하지만 기를 주로 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때 기를 주로 하는 것을 주기(主氣)라고 말합니다. 이이는 칠정을 ‘주기’로 말하는데 반대하지만, 저는 칠정을 ‘주기’로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황 역시 주리와 주기라는 표현을 씁니다. ‘주리’는 리를 주로 해서 말한다는 뜻이고, ‘주기’는 기를 주로 해서 말한다는 뜻입니다.

강민우: 주리와 주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김창협: 원래 주리․주기라는 말은 이황이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는 사단/이발, 칠정/기발의 타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입니다. 이이는 사단과 칠정이 모두 발동한 이후의 정이므로 사단에도 리와 기가 함께 있고 칠정에도 리와 기가 함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황은 이이처럼 사단에도 리와 기가 함께 있고 칠정에도 리와 기가 함께 있지만, (즉 사단에도 기가 없는 것이 아니고 칠정에도 리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사단은 리를 주로 하여 말한 것이므로 ‘이발’이 되고 칠정은 기를 주로 하여 말한 것이므로 기발이 된다고 반박합니다. 여기에서 리를 주로 한다는 주리(主理)와 기를 주로 한다는 주기(主氣)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강민우: 결국 주리․주기라는 표현은 이황이 자기 이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개념이군요.

김창협: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주리․주기에 대한 간단한 보충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원래 주리·주기란 리와 기의 서로 떨어질 수 없는(不相離) 관계를 전제로 한 용어입니다. 왜냐하면 리와 기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주로 한다’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리와 기는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분리될 수 없는 가운데 리를 주로 해서 말하거나 기를 주로 해서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주리·주기의 논리입니다. 물론 이러한 방법은 어디까지나 논리적 또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합니다.

강민우: 현실적으로 리와 기는 결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는데도 이들을 분리시켜 설명하므로 논리적 또는 이론적 관점이라고 말하는 것이군요.

김창협: 이처럼 리와 기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데,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을 떨어뜨려 보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을 불상잡 또는 분개라고 부릅니다. 불상잡 또는 분개(分開)는 불상리 또는 혼륜(渾淪)과 짝을 이룹니다. 서로 섞일 수 없는 불상잡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불상리’와 짝을 이루며, 분리시켜 보는 분개는 합쳐서 보는 혼륜(渾淪)과 짝을 이룹니다. 이황이 지향하는 관점이 불상잡 또는 분개라면, 이이가 지향하는 관점은 불상리 또는 혼륜입니다. 결국 리를 주로 해서 말하거나 기를 주로 해서 말하는 주리․주기의 관점은 리와 기를 분리시킨 불상잡 또는 분개의 논리에서만 가능합니다.

강민우: 결국 김창협선생께서 ‘주기’로 칠정을 이해하는 것은 이황처럼 불상잡 또는 분개의 관점을 중시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칠정이 ‘주기’라면, 사단은 ‘주리’가 되는 것이겠군요.

김창협: 그렇습니다. 칠정과 마찬가지로 사단에도 리와 기가 함께 있지만, 사단은 리를 주로 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황이 사단을 ‘이발’로, 칠정을 ‘기발’이라 주장할 때도 주리․주기의 관점으로 설명합니다. 사단에도 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리가 주가 되므로 그대로 리가 발한 것(理發)이고, 칠정에도 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가 주가 되므로 그대로 기가 발한 것(氣發)입니다. 이처럼 주리․주기의 관점으로 사단과 칠정을 해석하는 것은 이황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이이에 있어서 사단은 ‘주리’로 볼 수 있으나 칠정은 ‘주기’로 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사단은 칠정 가운에 선한 부분만을 가리키므로 ‘주리’라고 할 수 있지만, 칠정은 사단을 포함한 정의 전체를 가리키므로 ‘주기’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악의 개념으로 말하면, ‘주리’는 리가 주가 되므로 선이 되지만 ‘주기’는 기가 주가 되므로 불선(악으로 흐르기 쉬운)이 됩니다. 칠정 속에는 사단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그대로 주기(또는 불선)하다고 할 수 없으며, 또한 칠정을 주기(불선)라 하면 자칫 인간의 감정 전체가 불선한 것이 됩니다. 이 때문에 이이는 칠정을 주기로 해석하는데 반대합니다.

강민우: 그래서 후대 학자들은 김창협 선생님이 이황의 이론을 절충하였다고 평가하는 것이겠군요. 반대로 이이의 직계 계열에서는 선생님의 해석에 많은 비판을 제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창협: 이황은 이러한 주리․주기의 관점에서 사단을 이발로, 칠정을 기발이라 규정하고, 더 나아가 사단에도 기가 없는 것이 아니고 칠정에도 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사단은 이발에다 기수지(氣隨之)를 더하여 ‘이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로, 칠정은 기발에다 이승지(理乘之)를 더하여 ‘기발이이승지(氣發而理乘之)’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이황에 대한 이러한 이해에 근거하여, 저는 이황선생을 “그 생각의 정밀함은 후대 사람들이 살피지 않을 수 없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강민우: 이러한 이유로 선생님의 사단칠정설이 생전에 출판하지 못했던 것이죠. 그 배경에는 이이 직계 계열인 권상하 등의 질책과 방해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하다가 1854년 속집을 편집할 때 전문이 비로소 세상에 나오게 되었던 것이군요. 이것은 그만큼 김창협선생님의 글이 당시에 율곡학파 내부에 던진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보더라도 선생님의 사단칠정설에 대해서는 적어도 이황의 입장에 매우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김창협: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이 학설의 요지는 발(또는 발용)하는 주체가 기이고 발하게 하는 원리가 리라고 보는데 있습니다. 리는 원리이므로 ‘발’과 같은 작위적 개념에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이는 이황이 말한 이발과 기발에서의 ‘발’을 모두 동일선상에 놓고 보아서는 안 된다고 비판합니다. 작위적 개념인 기가 발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작위성이 없는 무위한 리가 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리는 원리이므로 작위성이 없는데, 이것을 리무위(理無爲)라고 부릅니다. 리는 무위하다, 즉 작위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이는 리는 무위하므로 ‘발’과 같은 작위적 개념에 쓸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황의 ‘이발’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와 달리 기는 작위성이 있으므로 ‘발’과 같은 작위적 개념에 쓸 수 있습니다. ‘기발’이라는 표현은 타당하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이는 사단과 칠정을 모두 기발 하나로 해석하는데, 이것이 바로 ‘기발이승일도(氣發理乘一途)’입니다. 또한 이러한 기의 작위성을 기유위(氣有爲)라고 부릅니다.

강민우: 이러한 이유에서 이이 학설의 핵심 요지 중의 하나가 바로 ‘리는 무위하고 기는 유위하다(理無爲 氣有爲)’는 것이군요.

김창협: 그렇습니다. 리는 무위하므로 작위성이 없고, 기는 유위하므로 작위성이 있습니다. 작위성이 없으므로 이발이라고 말할 수 없고, 작위성이 있으므로 기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황이 사단을 이발이라 말한 것은 잘못된 것이며, ‘발’이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기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이이는 칠정뿐만 아니라 사단까지도 모두 기발 하나로 해석하여 ‘기발이승일도’를 주장한 것입니다. 사단이든 칠정이든 모두 발하는 것은 ‘기’이고, 리는 다만 기 위에 타고 있을 뿐입니다.

강민우: 이이가 보기에 ‘이발’은 옳지 않으므로 이황의 ‘사단은 이발(理發而氣隨之)이고 칠정은 기발(氣發而理乘之)’이라는 호발설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이군요.

김창협: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이와 달리, 이황의 ‘이발’을 매우 높게 평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황처럼 소종래(所從來)에 따른 근원적인 차이까지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이황은 사단의 근원을 미루어 가면 리가 되고 칠정의 근원을 미루어 가면 기가 된다고 말하는데, 이와 같이 사단과 칠정을 근원적으로 구분해보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강민우: 결국 전체적인 흐름에서 보면, 선생님은 이황과 이이의 두 학설을 모두 비판하고 있지만, 똑같은 무게로 비판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이이의 학설에 대해서는 좀 더 강하게 비판하는 입장이라면, 이황의 학설에 대해서는 좀 더 약하게 비판함으로써 수용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김창협: 하하하. 그렇게 보이시나요. 개인적으로 누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저의 학문적 경향입니다. 결국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칠정이 리와 기를 겸하지만, 그 요지는 ‘주기’를 주장하는데 있습니다. 또한 이황의 호발설이 사단과 칠정을 근원적으로 이원화시켰다는 혐의를 가지고 있지만, 주리․주기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황의 호발설이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근원적으로 이원화시켰다’는 말은 사단의 근원을 따라가면 리가 되고 칠정의 근원을 따라가면 기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사단과 같은 선한 감정을 확충해나가야 하고 칠정과 같은 악으로 흐르기 쉬운 감정은 절제하고 단속해나가야 한다는 그의 수양방법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강민우: 이어서 선생님의 ‘이발’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창협: 사단은 그 ‘도리가 드러난 것’을 곧바로 가리킨 것이므로 기와는 관계하지 않습니다. ‘기와 관계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단이 기 없이 스스로 발동한다는 말이 아니라, 사단이 드러날 때는 기가 간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컨대 측은․수오․사양․시비와 같은 것은 기의 간여 없이 곧바로 도리가 드러난 것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사단은 칠정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단은 도리가 드러난 것이니, 그대로 이황이 말한 ‘이발’의 의미입니다. 이황 역시 사단을 인․의․예․지와 같은 리(또는 성)의 발현으로 설명합니다. 성리학의 핵심 개념인 성즉리(性卽理)에서 알 수 있듯이, 리와 성은 거의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물론 리와 성의 개념적 정의는 분명히 구분됩니다. 리는 천지 사이에 유행하는 이치이며, 성은 리가 형체 속에 내재된 상태를 말합니다. 형체 속에 내재되기 이전은 리가 되고, 형체 속에 내재된 이후는 성이 됩니다. 또한 측은․수오․사양․시비의 사단은 중용이나 예기「악기」에서 말한 칠정과는 그 의미가 저절로 다릅니다. 특히 예기「악기」에 나오는 칠정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것이지만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 설명합니다.

강민우: 칠정이라는 말은 중용에도 나오고 예기「악기」에도 나옵니다. 이들의 내용상 차이가 있습니까?

김창협: 중용에는 희․로․애․락이라는 말이 나오고, 예기「악기」에는 희․로․애․구․애․오․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중용에서 말한 희․로․애․락이 아직 선악이 결정되지 않은 가치중립적인 의미라면, 예기에서 말한 희․로․애․구․애․오․욕은 위태로운 시선이 추가되어 칠정이 마음껏 활개하지 못하도록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 간주됩니다. 이이가 주로 중용의 관점에서 칠정을 해석한다면, 이황은 예기「악기」의 관점에서 칠정을 해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이가 칠정에도 기와 함께 리가 있으므로 칠정의 선한 부분, 즉 중절한 칠정을 강조한다면, 이황은 칠정을 기발(氣發)로 보아 절제하고 단속해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합니다. 이 때문에 이이는 김창협이 칠정을 ‘주기’로 해석하거나 이황이 칠정을 ‘기발’로 해석하는데 반대한 것입니다.

강민우: 중용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희․로․애․락의 네 가지로 말하고 예기「악기」에는 희․로․애․구․애․오․욕 일곱 가지로 말하는데 그 차이가 있습니까.?

김창협: 인간의 감정을 중용에서처럼 희․로․애․락의 네 가지로 말하든 예기「악기」에서처럼 희․로․애․구․애․오․욕 일곱 가지로 말하든 숫자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일반적인 정을 네 가지 혹은 일곱 가지로 예를 든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강민우: 이황이 ‘사단은 이발이고 칠정은 기발이다’는 호발설을 주장한다면, 이이는 사단과 칠정이 모두 ‘기발’ 하나라는 기발일도(氣發一途)를 주장합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학파의 분열을 계속하다가, 이이의 직계 계열을 필두로 ‘이발’은 성립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퇴계학파를 비판합니다. 그러자 퇴계학파의 학자들이 이이의 학설을 ‘주기설’이라고 몰아가자, 급기야 서로를 이단(異端)이라 비판하면서 학파의 차원으로 대응하기에 이른 것이군요.

김창협: 그렇습니다. 저는 이이와 달리, 칠정은 기의 기틀이 발동한 것이고 사단은 도리가 드러난 것으로 파악합니다. 여기에서 이단상 계열이 이해하고 있는 리의 의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이단상이 리를 ‘리가 드러난 것’으로 정립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따라서 저를 비롯하여 이단상 계열이 지향하는 것은 ‘도리가 드러난 것’을 기조로 이해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김창흡으로도 전승됩니다.

강민우: 김창협선생의 학설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김창협선생을 비롯한 이이와 이황의 학설상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김창흡 선생님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이단상의 ‘리’ 이해

 

이단상의 이해

 

강민우: 갑자기 주자언론동이고라는 책이름이 언급되는데,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단상: 주자언론동이고는 한원진이 주자(주희: 중국 송대 유학자)의 철학적 진술들 사이에 보이는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밝히고, 그 철학적 의미를 드러낸 해석학입니다. 단순히 용어 사용의 차이나 기록의 착오를 밝히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주자의 세계관과 고전 해석방법 등을 깊이 있게 해명한 책입니다. 이 책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 책이 나옴으로 인해서 주자의 초년과 만년의 견해가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해졌다.”라고 하였고, 현상윤 등 근․현대의 학자들도 조선후기 성리학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합니다.

강민우: 주자말의 같고 다름을 살피고 그 정론(定論)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은 사실상 주자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인 듯합니다. 그래서 주자철학의 최종 정론을 나름대로 규정하려고 하였고, 이것이 학계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주자학을 자기 철학의 이론적 근거로 삼으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루어졌던 것이군요.

이단상: 그렇습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모두 자기 이론의 논거를 주자학에 근거지어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이황의 사단칠정설이든 이이의 사단칠정설이든 막론하고 각각 주자학에 근거하여 자기 이론을 전개해 나간다는 말입니다. 이황의 호발설도 주자의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는 구절에 근거합니다. 이이의 ‘기발이승일도’ 역시 주자의 ‘리는 무위하고 기는 유위하다’거나 ‘리와 기는 결코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이기불상리의 관점에 근거합니다. 18세기의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같은지 다른지를 다툰 논변)의 경우도 동론을 주장한 학자든 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든 막론하고 모두 주자학에 근거하여 자기 이론을 전개합니다.

강민우: 율곡학파가 분파된 배경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단상: 율곡학파의 분류방식은 학자마다 다양한 관점을 보입니다. 하나는 이이→김장생→송시열→권상하→한원진→임성주로 이어지는 직계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이이→김장생→송시열→김창협→김원행→홍직필→전우로 이어지는 별파 계열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이→김장생→송시열→권상하로 이어지던 학맥은 권상하에서 전개된 ‘인물성동이논쟁(또는 호락논쟁)’을 지나면서 호론과 낙론으로 나누어지고, 한원진을 중심으로 한 호론은 사실상 한원진 이후 사라진 반면, 이간을 중심으로 한 낙론은 김창협 학맥과 임성주 학맥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방식은 율곡학파 안에서 지나치게 직계를 중심으로 한다는 비판과 동시에 이재 계열과 이단상 계열의 학문적 경향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강민우: 조선의 유학사가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로만 구분되는 줄 알았는데, 율곡학파 내부에도 다양한 계열이 존재하는군요. 이것은 퇴계학파 내에서도 정재학파․한주학파․사미헌학파 등으로 분류되는 것과 유사해 보입니다.

이단상: 그렇습니다. 퇴계학파라고 해서 이황의 학설을 그대로 묵수․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이론이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율곡학파라고 해서 이이의 학설을 그대로 묵수․계승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율곡학파 내에서도 저처럼 이황의 이론을 수용․절충하는 계열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퇴계학파 내에서도 이이의 이론을 수용․절충하는 계열이 있으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시한․이익․이상정 등이 있습니다. 이것은 철학이 시대적․사회적․역사적 상황을 반영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론이든 어떤 학설이든 고정되어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적․사회적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관점의 재해석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바로 학문이 살아있다는 방증입니다.

강민우: 그래서 퇴계학파 내에서도 다양한 계열의 분파가 일어나고 율곡학파 내에서도 다양한 계열의 분파가 일어났던 것이군요. 특히 이이의 직계 계열은 퇴계학파의 이이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는 최전선에 있었으므로 이러한 학문적 경향이 두드려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이현일․권상일 등이 퇴계학파의 최전선에서 이이의 이론을 방어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재 계열의 학문적 특징은 주로 무엇인가요?

이단상: 이재 계열의 학문은 이이의 학설 속에서도 ‘리가 기의 주재자가 된다(理爲氣主)’는 것을 강조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리가 기의 주재가 된다’는 것은 성리학의 기본 명제입니다. 이황이든 이이든 또는 퇴계학파든 율곡학파든 모두 리가 기를 주재한다는 리의 주재를 주장합니다. 그럼에도 이황과 이이가 말하는 리의 주재에는 약간의 세부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강민우: 이황이 말하는 리의 주재 의미와 이이가 말하는 리의 주재 의미가 다르다는 말이군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단상: 이황과 이이의 학설 가운데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리와 기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는 것입니다. 이황이 리와 기를 분리시켜 보려고 한다면, 이이는 리와 기를 합쳐서 보려고 합니다. 리와 기를 분리시켜 보려는 것을 불상잡(不相雜)이라고 부르고, 리와 기를 합쳐서 보려는 것을 불상리(不相離)라고 부릅니다. ‘불상잡’은 서로 섞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분리시켜 보는 것이 되고, ‘불상리’는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합쳐서 보는 것이 됩니다.

강민우: 리와 기를 분리해서 보든 합쳐서 보든 무슨 특별한 문제가 되나요?

이단상: 그렇습니다. 이 문제는 성리학의 개념정의를 설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이론적 근거가 됩니다. 예컨대 리의 개념정의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성리학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황은 리가 발동한다고 말하지만, 이이는 리가 발동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로써 리는 형이상의 원리이므로 ‘발동(發)’과 같은 작위적 개념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이가 이황의 ‘이발’을 비판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황의 말처럼 리가 발하거나 발동할 수 있기 위해서는 리와 기를 분리시켜야 합니다. 그렇다고 리가 기처럼 실제로 발동한 것은 아니지만, 리의 능동성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이처럼 리와 기가 합쳐져 있으면 리는 기의 영향권 속에 있으므로 결코 발동할 수 없습니다. 발동하는 것은 기이고, 리는 다만 기에 타고 있으면서 기가 발동할 수 있게 하는 원리로 존재할 뿐입니다. 이것은 ‘리의 동정’ 문제와도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강민우: 리의 동정(動靜)은 무엇입니까? 동정이 움직이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기처럼 작용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이단상: 그렇습니다. 동정이란 리가 동정할 수 있는지 동정할 수 없는지를 묻는 문제입니다. 동정은 기가 음양으로 분화되는 과정에서의 움직임과 고요함이라는 기의 운동 상태를 말합니다. 예컨대 하나의 기가 움직여서 양이 되고 고요하여 음이 된다고 할 때의 움직임과 고요함입니다. 이렇게 볼 때, 동정이란 분명히 기의 동정이지 리의 동정이 아닙니다. 동정이란 기이지 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황은 리가 실제로 동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반면, 이이는 리가 실제로 동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강민우: 동정의 개념정의에서 보면, 이이의 주장이 옳은 것 같습니다만. 그래서 이이가 말하길 동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이며, 기가 동정하는데 리가 타고 있으므로 리가 동정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일 뿐이다 라고 말한거군요.

이단상: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황은 리의 동정을 그대로 ‘리가 기를 주재한다’는 리의 주재와 연결시킵니다. 리가 기를 주재하기 위해서는 리가 기보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리가 기보다 더 큰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리와 기를 분리시켜 보아야 합니다. 이이의 주장처럼 리와 기가 서로 합쳐져 함께 있으면, 리는 실제로 작용하는 기의 영향을 받아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황은 리와 기가 서로 섞일 수 없으므로 분리시켜 보아야 한다는 ‘불상잡’을 강조합니다. 리와 기를 서로 섞지 않고 분리시켜 보아야 리의 동정이나 리의 주재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강민우: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리가 기를 주재한다는 리의 주재를 주장하기 위해 이황은 리와 기를 분리시켜 보았다는 뜻이군요. 리와 기를 분리시켜 보아야 리의 주재가 가능하다는 것이죠.

이단상: 결국 이재 계열의 ‘리가 기의 주재가 된다(理爲氣主)’는 것은 이이 학설의 내용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는 결국 이황이 말한 ‘리의 동정’ 문제와도 맞닿게 됩니다. 이것은 리의 개념정의가 이이와 달라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리의 주재를 강조할수록 상대적으로 기의 역할이 약화되며, 이것은 그대로 이이 직계 계열에서 기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과 상반됩니다. 이재 계열에서 리의 주재를 강조한 것은 이황이 말하는 실제로 리의 동정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이 직계 계열과 이재 계열의 가장 큰 이론적 차이입니다.

강민우: 율곡학파 내에서 이재 계열은 이황의 학설을 수용하는 입장을 보였다는 의미기도 하겠군요. 결국 이재 계열은 ‘리가 기를 주재한다’는 리의 주재를 두고 이황의 이론을 절충하는 입장을 보이는군요. 그리고 이이처럼 리와 기가 서로 떨어질 수 없고 하나로 합쳐져 있다는 ‘불상리’ 속에서는 리의 주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인 거죠?

이단상: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이 직계 계열과 이재 계열, 이단상 계열 등 다양한 학단의 분파가 이루어집니다. 이단상 계열의 학자로는 김창협․김창흡․임영․박필주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서도 ‘이발’의 해석에 대한 차이는 약간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이이의 입장에서 이황의 ‘이발’을 이해와 수용이라는 차원에서 ‘도리가 발현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에서 이단상 계열이 지향하는 학문의 자세는 매우 개방적․수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단상이 율곡학파라는 울타리 속에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율곡의 직계 계열과는 ‘리’에 대한 해석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러한 학문적 경향은 그의 문인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강민우: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이단상 계열 문인들의 특징은 어떤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김창협 선생님을 만나보겠습니다.

 

이단상의 ‘리’ 이해

 

이단상의 이해

 

강민우: 이단상선생님은 조선시대의 문관으로 부수찬, 교리, 병조정랑, 인천부사 등을 역임합니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상수학을 중심으로 독창적이며 개방적인 학풍을 구축하고 낙론의 대표격인 김창협이 심학의 기초를 형성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쳐 낙론의 선구자로 평가를 받습니다. 선생님의 문하에는 아들 이희조를 비롯하여 김창협·김창흡·임영 등의 학자가 배출됩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선생님의 학문세계입니다. 특히 이단상선생의 ‘리’ 이해가 어떠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단상: 먼저 성리학의 개념적 정의를 해야 할 듯합니다. 앞에서 말한 도학과 다르지 않습니다. 성리학은 공자와 맹자로부터 전해오던 유학사상을 북송시대의 주돈이(周敦頤)․장재(張載)․소옹(邵雍)․정호(程顥)․정이(程頤)가 종합하고, 남송시대의 주희(朱熹)가 집대성한 학문체계를 말합니다. 성리학은 북송 때에 시작되어 명대까지 이어진 새로운 유학이라는 의미에서 신유학이라고 불립니다. 신유학 외에도 이학(理學)․주자학(朱子學)․정주학(程朱學)․도학(道學)․송학(宋學)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물론 이들 명칭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같은 학문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강민우: 새로운 유학이라는 의미의 신유학, 즉 성리학은 주돈이에 의해 개척되고 장재와 소옹을 거쳐 정호와 정이 형제로 발전된 송학(宋學), 즉 북송의 이론적 흐름을 남송의 주희가 집대성한 학문체계라는 말이군요. 그 내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이단상: 주희에 의해 집대성된 성리학은 리와 기의 개념으로 우주자연과 인간세계의 생성과 존재를 설명하고, 또한 인간세계의 심리적 현상까지도 리와 기의 개념으로 설명함으로써 이기론․심성론․인식론․수양공부론 등의 방대한 이론체계를 형성합니다. 이기론에서는 리와 기의 개념으로 이 세상만물의 존재와 법칙 등을 설명하고, 심성론에서는 인간의 마음구조를 설명하며, 인식론에서는 지식의 형성과정을 설명하며, 공부수양론에서는 수양을 통해 성인이 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강민우: 이기론․심성론․인식론․수양론을 거쳐 올바른 인간상을 확립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겠군요.

이단상: 그렇습니다. 그 위에다 이기의 선후(先後)문제, 동정(動靜)문제, 체용(體用)문제, 이일분수(理一分殊), 심통성정(心統性情), 미발이발(未發已發), 본연지성과 기질지성, 인심과 도심 등의 다양한 문제가 파생됩니다. 그 결과 성리학은 우주자연과 인간세계를 하나로 아우르는 거대한 형이상학적 이론체계를 형성합니다.

강민우: 내용이 너무 복잡합니다.

이단상: 전체적으로 성리학의 내용을 총괄하여 말한 것이니 이러한 내용이 있다는 식으로 윤곽만 그리고 있으면 될 듯합니다. 성리학은 인간세계를 뛰어넘은 광대한 우주자연의 지평 안에서 인간의 도덕적 당위에 대해 깊이 탐구하였는데, 변화하는 광대한 자연세계의 질서야말로 인간세계의 도덕과 당위의 이론적 근거가 됩니다. 성리학은 인간의 도덕적 근거를 우주자연의 질서에서 찾았으니, 여기에 바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동양적 사고가 내재하게 됩니다.

강민우: 결국 성리학은 인간의 도덕적 당위성을 자연의 질서에 근거하여 설명한다는 것이군요.

이단상: 그렇습니다. 이러한 성리학의 영향은 단순히 중국에만 머물지 않고 동아시아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후 중국과 한국의 유학은 주희가 집대성한 성리학을 기반으로 전개되며, 17세기 일본에 전래됨으로써 동아시아의 보편적 학문으로 자리 잡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조선 500년의 통치이념이 성리학이었음을 감안할 때, 한국에서 성리학의 위치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강민우: 실제로 국내에는 성리학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성리학에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그래서 저 같은 자동차학과를 전공하는 대학생도 이렇게 이단상선생님을 찾아뵙는 것이고요.

이단상: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이이(李珥, 1536~1584)선생의 제자입니다. 이이선생의 학문이 제자들을 통해 이어지는데, 이들을 율곡학파라고 부릅니다. 이이의 호가 율곡(栗谷)이기 때문에 이이라는 이름보다 율곡이라는 호를 주로 사용합니다. 이것은 이이와 짝을 이루는 조선의 유학자 이황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황선생의 학문이 제자들을 통해 이어지는데, 이들을 퇴계학파라고 부릅니다. 이황의 호가 퇴계이기 때문에 이황이라는 이름보다 퇴계라는 호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유학사는 이들 이이와 이황을 중심으로 하는 율곡학파와 퇴계학파의 양대 학파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강민우: 그렇군요. 그렇다면 율곡학파의 중심 학설은 무엇입니까?

이단상: 율곡학파의 중심 학설은 ‘기발이승일도(氣發理乘一途)’입니다. ‘기발이승일도’는 기가 발하고 리가 타는 한 길뿐이라는 뜻입니다. ‘기발이승일도’는 율곡학파의 종주인 이이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입니다. 이이의 ‘기발이승일도’는 이황의 호발설(互發說)에 상대하여 제기된 용어입니다. 이황은 그의 사단칠정설에서 ‘사단은 리가 발하고 기가 따른 것이며 칠정은 기가 발하고 리가 타는 것이다’는 호발설을 주장합니다. 이것을 ‘이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 기발이이승지(氣發而理乘之)’라고 부릅니다. ‘이발이기수지 기발이이승지’에서 이발과 기발, 즉 리가 발하고 기가 발하므로 호발설이라고 말합니다. 이황의 호발설이라 하면 이발과 기발을 의미합니다.

강민우: 이이의 ‘기발이승일도’는 이황의 호발설에 상대되는 개념이군요.

이단상: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황의 호발설에서 이이가 특히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발’입니다. 이이는 리는 작위성이 없는 무위한 원리적 개념이므로 절대로 발(發)과 같은 작위적 개념에다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황의 ‘이발’이라는 표현에 반대합니다. 이황의 호발설과 달리, 이이는 사단과 칠정을 모두 ‘기발이승일도’로 이해합니다. 사단과 칠정은 모두 성이 발한 이후의 단계이므로 리와 기를 겸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에도 리와 기가 함께 있고 칠정에도 리와 기가 함께 있으므로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가 발하고 리는 타는, 하나의 길 뿐이다’는 말입니다. 이들 리와 기 가운데 발하는 것은 기가 되고, 리는 작위성이 없는 무위한 개념이므로 기에 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발이승일도’라고 말합니다.

강민우: 이황이 사단과 칠정을 각각 ‘이발이기수지, 기발이이승지’로 이해한다면, 이이는 사단과 칠정을 모두 ‘기발이승일도’로 이해한다는 말이군요.

이단상: 그렇습니다. 그러나 율곡학파에서는 크게 두 갈래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이이가 주장한 ‘기발이승일도’를 그대로 묵수․전승하는 계열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이이의 학설을 옹호하면서도 개방적인 입장에서 이황의 해석을 수용하여 재해석하려는 계열이 있습니다. 전자는 주로 송시열과 한원진 등의 계열이며, 후자는 이재와 이단상 등의 계열입니다. 여기서는 주로 율곡학파의 성리학에 대한 견해를 이단상 계열의 대표적인 학자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강민우: 율곡학파 내에서 선생님의 제자들, 즉 이단상 계열에는 주로 어떤 학자들이 있나요?

이단상: 이단상 계열에는 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임영(林泳)․박필주(朴弼周) 등이 대표적 인물입니다. 이들은 대체로 낙론계열의 학자들로서, 다소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입장을 보입니다. 개방적이라는 말은 이이의 학설만을 묵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황의 학설도 일부 수용한다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사단을 그대로 ‘도리가 드러난 것(道理之著見)’으로 해석합니다.

강민우: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나요?

이단상: 이것은 율곡학파의 정체성과 관련된 굉장히 큰 문제입니다. ‘도리가 드러난다’는 것은 ‘리가 드러난다’ 또는 ‘리가 발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니, 결국 이황의 ‘리가 발한다(이발)’는 사단에 대한 해석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것은 이황의 사단에 대한 해석을 인정한다는 뜻이며, 동시에 사단을 이발이 아닌 ‘기발’로 해석하는 이이의 해석이 틀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율곡학파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강민우: 갑자기 내용이 너무 복잡해집니다. 하나하나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먼저 사단에 대한 간단한 설명부탁드립니다.

이단상: 사단은 인간의 감정입니다. 인간의 감정에는 도덕적 감정이 있고 일반적 감정이 있는데, 사단은 도덕적 감정에 해당합니다. 사단이라 하면, 주로 측은․수오․사양․시비를 말합니다. 측은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고, 수오는 자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거나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이며, 사양은 남에게 양보하거나 사양하는 마음이며, 시비는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마음입니다. 이때 마음은 감정과 같은 의미입니다.

강민우: 도덕적 감정이 사단이라면 일반적 감정은 무엇입니까?

이단상: 인간의 감정에는 사단 외에 또한 칠정이 있습니다. 도덕적 감정이 사단이라면, 일반적 감정은 칠정이며 주로 기쁨(喜)․분노(怒)․슬픔(哀)․즐거움(樂)․사랑(愛)․미움(惡)․욕심(欲)을 말합니다. 이들 사단과 칠정에 대한 해석을 두고 이이와 이황의 견해가 갈라집니다. 이들의 해석을 두고 학파간의 논쟁이 벌어지는데, 사단칠정 논쟁이라 부릅니다. 퇴계학파에서는 주로 이황의 이론을 견지하고, 율곡학파에서는 주로 이이의 이론을 견지합니다.

강민우: 그 구체적 내용이 궁금합니다.

이단상: 이황이 말하길 사단은 선한 정이고 칠정은 악으로 흐르기 쉬운 정이라 하여 서로 다른 별개의 정으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이이는 정은 칠정 하나뿐이며 그 속에서 선한 정만을 가리켜서 사단이라 한다고 해석합니다. 이황이 선한 사단의 정과 악으로 흐르기 쉬운 칠정의 정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이는 칠정 속에서 선한 정만을 가리킨 것이 사단이니 결국 칠정 하나뿐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황의 사단칠정을 사단대칠정(四端對七情)으로 표현하고, 이이의 사단칠정을 칠정포사단(七情包四端)으로 표현합니다. 전자는 사단과 칠정이 상대하는 대립적 관계라는 뜻이며, 후자는 칠정에 사단이 포함되는 포괄적 관계라는 뜻입니다.

강민우: 여기에서 이황과 이이의 이론적 차이를 엿볼 수 있군요.

이단상: 그렇습니다. 또한 이황은 사단과 칠정이 근원적으로 구분된다고 하여 그 근원(소종래)을 구분합니다. ‘소종래(所從來)’는 그것이 따라 나온 곳이라는 말이니 근원에 해당합니다. 사단은 리에 근원하고 칠정은 기에 근원하며, 또한 사단의 근원은 리가 되고 칠정의 근원은 기가 됩니다. 이황은 사단이 선한 이유를 ‘리’에 근거지어 설명하고, 칠정이 악으로 흐르기 쉬운 이유를 ‘기’에 근거지어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성리학의 이론체계인 이기론이 등장합니다. 리와 기는 현상세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를 기라 한다면, 눈에는 보이지 않으면서 기의 존재 이유나 원리에 해당하는 것을 리라고 말합니다.

강민우: 리와 기가 무엇인지 그 내용이 너무 어렵습니다. 쉬운 비유로써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단상: 예컨대 의자가 기라면, 앉을 수 있게 하는 원리가 리입니다. 사람이 기라면,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본성․도덕성․양심 등이 리입니다. 컵이 기라면, 물을 담을 수 있는 원리가 리입니다. 철학적으로 표현을 하면, 기의 존재 이유가 바로 리입니다. 이황과 이이는 모두 리와 기라는 개념으로 사단칠정을 해석하는데, 이것을 사단칠정의 이기론적 해석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이황은 사단은 리에 근원하므로 리가 발한 것(理發)이고, 칠정은 기에 근원하므로 기가 발한 것(氣發)이라고 해석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황의 ‘이기호발설’입니다.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므로 ‘이기호발설’이라 말하고, 또한 리가 발하고 기가 발하여 서로 발한다는 의미에서 ‘호발(互發)’이라고 부릅니다. 이때 리는 곧 성이므로 인․의․예․지를 말하며, 기는 주로 형체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인․의․예․지에 근원하는 것이 되고, 칠정은 형체에 근원하는 것이 됩니다.

강민우: 이황이 보기에, 사단은 인․의․예․지의 성에 근원하고 칠정은 형기에 근원하나는 말씀이군요.

이단상: 또한 사단은 리가 발하고 기가 따르는 것이라 하여 이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라고 하고, 칠정은 기가 발하고 리가 타는 것이라 하여 기발이이승지(氣發而理乘之)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단의 리가 발할 때에도 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며, 또한 칠정의 기가 발할 때도 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이황이 ‘기수지’와 ‘이승지’를 말한 것은 이이의 ‘이발이라고 하면 사단에는 기가 없는 것이 되고 기발이라 하면 칠정에는 리가 없는 것이 된다’는 비판에 대한 답변입니다. 사단이든 칠정이든 모두 성이 발한 이후에 드러난 정이므로 이때는 리와 기가 함께 존재합니다.

강민우: 이황의 호발설에 대응하여 이이는 ‘기발이승일도’를 주장한 것이군요.

이단상: 그렇습니다. 이이는 사단과 칠정이 모두 기발이승일도(氣發理乘一途)라고 해석합니다. 여기에서 발(發)이란 발동하거나 작용한다는 뜻이니 ‘기발이승일도’란 실제로 작용하는 것은 기이고 리는 타고 있을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리는 원리이므로 작위적 개념으로 쓰일 수 없고, 실제로 작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기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사단과 칠정은 모두 정이며, 이때의 정은 성이 드러난 이후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단과 칠정은 모두 리와 기를 겸합니다. 사단에도 리가 있고 기가 있으며, 칠정에도 리가 있고 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황처럼 사단은 ‘이발’이고 칠정은 ‘기발’인 것이 아니라, 사단과 칠정이 모두 ‘기발’ 하나가 됩니다. 왜냐하면 사단과 칠정이 모두 성이 드러난 정의 단계로 리와 기를 겸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에도 리와 기가 있고 칠정에도 리와 기가 있으며, 이들 중에서 실제로 작용하는 것은 리가 아니라 기이기 때문에 모두 ‘기발이승일도’인 것입니다.

강민우: 이기론의 구조에서 보면 이이의 이론이 더 옳은 것 같습니다.

이단상: 꼭 그런 것은 아니고 각자의 입장이 있습니다. 이황은 사단을 그대로 ‘이발’로 연결시켜 선한 감정으로 확장시켜 나갈 대상으로 이해하고, 칠정을 ‘기발’로 연결시켜 악으로 흐르기 쉬운 감정이므로 조심하고 절제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합니다. 예컨대 측은․수오․사양․시비 등의 감정은 넓혀 나가도록 연습하고, 기쁨․분노․슬픔․즐거움․사랑․미움․욕심 등의 감정은 단속시켜 나가도록 조심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황이 마음 또는 감정을 다스리는 수양공부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기쁨이나 즐거움이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항상 그 지나침을 경계했으며, 특히 분노와 미움과 같은 것은 엄격히 경계했습니다. 칠정이란 일반적인 감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황이 사단과 칠정을 이발과 기발로 구분지어 해석한 이유입니다. 사단과 같은 선한 감정은 확충시켜 나가고 칠정과 같은 악으로 흐르기 쉬운 감정은 단속해 나가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강민우: 사단과 칠정에 그런 깊은 뜻이 있다니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이이의 사단칠정설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나요?

이단상: 이이는 이황처럼 수양공부의 측면보다는 이론적 정합성을 추구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천지만물은 모두 리와 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리와 기의 관계에서 볼 때, 이들은 결코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사물이든 리와 기는 항상 함께 존재하니, 리가 있으면 기가 있고 기가 있으면 리가 있습니다. 사단과 칠정 역시 성이 발하여 드러난 정이므로 모두 리와 기가 함께 존재합니다. 사단에도 리와 기가 있고 칠정에도 리와 기가 있습니다. 이때는 리는 무위(無爲)하여 작위성이 없고 기는 유위(有爲)하여 작위성이 있습니다. 리는 작위할 수 없고 기만 작위할 수 있으니, 발하는 것은 기이고 기에 타고 있는 것은 리입니다. 그러므로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발이승일도’가 됩니다. 이러한 이론적 구조는 사단과 칠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강민우: 결국 이황이 수양방법의 측면에서 사단과 칠정을 이발과 기발로 구분한 것이라면, 이이는 이기론이라는 성리학의 체계 속에서 이론적 정합성을 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단상: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황과 이이의 사단칠정론에서 또 하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단과 칠정을 선악의 문제와 연결시키는데, 사단을 선으로 보는 것은 모두 동일합니다. 다만 칠정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합니다. 이황이 칠정을 악으로 흐르기 쉬운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이는 칠정을 선악이 결정되지 않는 중립적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이황처럼 칠정을 악으로 흐르기 쉬운 감정으로 본다면, 인간의 감정이 모두 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이는 칠정이 절도에 맞지 않는(不中節) 경우에만 악으로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마땅히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하지 않거나 마땅히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이는 칠정이 발할 때에 기가 리를 따르면 선하고 기가 리를 따르지 않으면 불선하다고 말합니다.

강민우: 그렇군요. 이황과 이이의 사단칠정설의 차이에 대해서는 조금 이해가 됩니다. 이제는 이단상선생의 사단칠정설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설명은 이단상선생님의 사단칠정설을 알기 위한 배경설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군요.

이단상: 사단칠정의 문제는 이황과 이이의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이들의 이론적 차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이들의 내용에 근거하여, 저를 비롯한 문인들의 내용을 설명하여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강민우: 선생님의 사단칠정설의 이론적 특징은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까?

이단상: 저는 사단에서의 리를 도리가 드러나는 것(道理之著見)으로 봅니다. 이것은 이이가 이황을 비판한 내용의 핵심 부분입니다. 이이는 이황의 ‘이발’이라는 말을 비판하는데, 리는 형이상의 원리이므로 결코 ‘발’이라는 작위적 개념을 쓸 수 없으며 다만 기만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리는 정의도 없고 조작도 없는 무위(無爲)한 개념임을 강조합니다. 무위하므로 결코 발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이발’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강민우: ‘도리가 드러난다’는 것은 ‘리가 드러난다 또는 발한다’는 의미와 유사해 보입니다. 결국 이것은 이황이 말한 ‘사단은 이발이다’는 해석을 인정한다는 뜻이 되겠군요.

이단상: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단을 그대로 ‘리가 드러난다 또는 발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칠정과 사단의 차이는 칠정이 ‘기의 기틀(氣機)’이 발동한 것이고, 사단은 ‘도리가 드러난 것’으로 이해합니다. 또한 기의 기틀이 발동한 것은 기가 발동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강민우: 그러한 해석은 이황의 사단은 이발이고 칠정은 기발이라는 내용과 달라 보이지 않는데요, 이러한 주장은 율곡학파 내부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많았겠습니다.

이단상: 그렇습니다. 그래서 율곡학파 내에서는 몇 갈래의 분파가 일어납니다. 조선의 유학사는 16세기를 기점으로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이황이 제기한 ‘이발’의 명제를 둘러싼 논변입니다. 이것으로 율곡학파는 크게 세 계열로 분류되는데, ①이이 직계 계열 ②이재(李縡) 계열 ③이단상 계열입니다. 이이 직계 계열은 ‘기발이승일도’의 노선위에서 철학체계를 세우게 되는데, 대표적인 학자로는 김장생(金長生)․송시열(宋時烈)․권상하(權尙夏)․한원진(韓元震) 등이 있습니다. 이들 직계 계열은 이황의 ‘이발’을 부정하는 이이의 논리를 그대로 계승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김장생에서 비롯된 이이 직계 계열에서는 ‘기’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나타나는데, 이이의 ‘리는 무위(無爲)하고 기는 유위(有爲)하다’는 대원칙이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강민우: ‘무위하다’는 것은 작위성이 없다는 말이고, ‘유위하다’는 것은 작위성이 있다는 말이니, 결국 리는 작위성이 없고 기가 작위성이 있다는 뜻이군요. 작위성이 없으므로 발동(또는 발)할 수 없고 작위성이 있으므로 발동(또는 발)할 수 있습니다. 발동할 수 없으므로 ‘이발’이라는 말을 쓸 수 없고, 오직 ‘기발’이라는 말만 쓸 수 있겠군요. 그래서 이이가 이황의 ‘이발’을 비판한 것이겠습니다.

이단상: 그렇습니다. 그래서 김장생․송시열․권상하․한원진 등으로 이어지는 이이의 직계계열이 율곡학파의 적통이라 불립니다. 이들에게서 보이는 학문적 최대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주자언론동이고(朱子言論同異攷)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단상의 도학적 학문세계와 정치1

 

이단상의 도학적 학문세계와 정치

 

강민우: 이단상선생님은 문장뿐만 아니라 당시의 도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도학은 당시 성리학 주도의 학문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단상: 도학(道學)은 중국 송나라 때 새롭게 체계화된 정주학(程朱學) 또는 주자학(朱子學)의 다른 명칭입니다. 도학이라는 용어는 대학과 중용의 서문에서도 보이지만, 선진유학에서는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으로 대두하게 된 것은 송대에 이르러 공자와 맹자의 도를 계승한 새로운 유학이 수립되면서부터입니다. 송대의 유학자들은 공자가 집대성한 선진유학이 맹자 이후 약 천 여 년간 이른바 ‘도통(道統)’이 끊어지고, 도가나 불교의 영향 등으로 학풍도 크게 훼손되었다고 인식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하여 북송의 주돈이(周敦頤)․소옹(邵雍)․장재(張載)․정호(程顥)․정이(程頤) 그리고 남송의 주희(朱熹) 등 일련의 유학자들은 공맹의 선진유학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그 근본정신에 투철한 새로운 유학을 완성했습니다.

강민우: 이 새로운 학풍의 유학은 도학․정주학․주자학․성리학․송학(宋學)․성학(聖學)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렸던 것이죠.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각각의 명칭이 담고 있는 내용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만. 또한 선진 유학과 구분되는 새로운 유학이라는 뜻에서 이들의 학문을 ‘신유학’이라 부르기도 한 것이고요.

이단상: 도학은 송대 유학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기도 하지만, 특히 그 기본 성격은 개인의 높은 도덕적 수양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 : 자기 자신을 위한 학문)’을 본령으로 하면서 동시에 사회의 여러 현실 문제에도 깊이 관계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이론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강민우: 도학은 학자들로 하여금 올곧은 기개로써 현실 문제에 깊이 참여하게 하는 매우 실천 지향적인 특성을 지녔다는 뜻이군요.

이단상: 그래서 도학은 수기안인(修己安人 : 자신을 잘 가꾸고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것) 혹은 내성외왕(內聖外王 : 내면적으로는 성인의 덕을 갖추고 외면적으로는 제왕으로서의 능력을 갖춤)이라는 유학의 본령을 가장 충실하게 실천하고자 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유학의 본령을 올바르게 지켜온 선현들을 선정하여 유림의 표상 또는 진리를 실천한 사표(師表)로 존숭함으로써 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을 수립합니다.

강민우: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에 원나라로부터 처음 도학이 수용된 후, 당시 신진 사대부들에 의해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를 교체하는 이념적 기반이 되었던 것이고요. 또한 조선 왕조 개창 이후에는 국가의 정통 이념이 되어 한말(韓末)까지 유학의 정통적인 흐름으로 존숭됨으로써 우리의 정신사와 학술 문화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죠.

이단상: 그렇습니다. 저는 문장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과거를 거쳐 관료로 입신했지만, 젊은 시절부터 도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당시의 심정은 인조 말년 무렵에 썼던 시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평생토록 스스로 공자의 간략함을 지키려 하니, 平生自擬守孔約

아침에 바르게 보고 저녁에 죽고자 하네. 朝欲貞觀而夕死

성인들이 남긴 말씀의 실마리를 더듬으며, 方將群聖緖餘論

그 연원을 탐구하여 날로 나아가려 하네. 探賾淵源期日就

(정관재집권1, 「次濟卿兄嗚呼吟」)

이 시구에서 정관(貞觀)은 본래 주역에 나오는 말로서 ‘천지의 도는 항상 올바르게(貞) 드러나기(觀) 마련이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세상을 관통하는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법칙(道)의 존재를 확신하며, 그 법칙에 따라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성리학자로서의 전형적 태도입니다.

강민우: 선생님의 도학자적 풍모를 잘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기필(期必 : 꼭 이루어지기를 기대함.)하던 도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 모습이었습니까?

이단상: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의 시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나는 지금 한 귀퉁이에 태어나 況我今生一隅阨

아득한 지치(至治)를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邈矣至治其難覿

밝고 밝은 천리(天理)는 칠흑같이 캄캄하고 昭昭天理黑如漆

오랑캐가 변방에서 칼자루를 거꾸로 잡았구나. 夷羯倒執潢池柄

임금을 받들어 더러움을 씻어낼 재주가 없다면 如無捧日滌穢才

그저 자취를 감추고 운명에 순응할 뿐 好須斂跡安吾命

예악과 황제의 패도를 종횡으로 논하며 縱橫禮樂帝伯論

아름다운 경치 속에 한가로이 노니리라. 徜徉風花雪月景

(정관재집권1, 「次濟卿兄嗚呼吟」)

저는 세상의 도가 정작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못함을 한탄하며, 청나라가 중원을 차지해 가던 당시 정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관직에 나아가 오랑캐를 소탕할 수 없다면 산림처사의 삶을 선택해 학문에 전념할 뿐이라는 다소 체념적인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이는 실제로 효종의 조정에 나갔다가 여의치 않자 양주에 있는 동강(東岡)으로 물러나 학문에 전념하게 되는 저의 미래를 예시한 말이기도 합니다.

강민우: 1649년 5월 왕위에 오른 효종은 즉위 직후 산림(山林 : 초야에 은거하면서 학덕을 겸비해 국가로부터 존중을 받은 인물.)을 등용하여 청나라에 대한 복수를 추진합니다. 조선 전기 국정을 주도한 세력이 주로 서울의 공신과 관료였다면, 효종 초반 호서 산림의 등장은 조선 후기 정치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끈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만.

이단상: 당시는 김집과 송시열 등 산림의 학자들과 김육을 중심으로 한 재경관료들의 현실적 태도가 충돌을 빚으며, 이른바 산당(山黨)과 한당(漢黨)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재경관료를 대표하는 가문 출신인 제가 효종 초반 출사 직후부터 산당과 가까운 관계였음이 특이합니다. 물론 선대부터 쌓아 온 서울 지역 명문집안 간의 대대로 이어진 친분 역시 두터웠습니다. 일가의 먼 친척이자 반정공신 이귀(李貴)의 아들인 이시백(李時白)․이시방(李時昉) 형제나, 신흠(申欽)의 손자이자 신익전(申翊全)의 아들 신정(申晸)과는 형제 같은 사이였습니다. 또한 현종 연간 절교하게 된 김좌명(金佐明)과 서필원(徐必遠) 등 한당의 주요 인물들과도 교분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조정에서 뜻과 행동을 함께 한 사람들은 대체로 산당에 속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강민우: 선생님은 병자호란 때 겪은 풍파로 인해 정식으로 스승을 모시고 벗을 사귈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교유 관계가 그리 넓어 보이지 않습니다.

이단상: 저의 주변 인물들은 대략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제가 직접 배우지 않았지만 스승처럼 여기던 사람들로서 김상헌(金尙憲)과 이경여(李敬輿)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인조 말년 친청파(親淸派: 중국 청나라와 친한 무리)가 득세하던 조정에서 척화론의 계승을 주장하고, 효종의 북벌에 적극 공감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효종 초반 산림의 영수였던 김집(金集)에 대해서도 그의 문하에서 공부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할 정도로 각별한 존모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강민우: 둘째와 셋째의 부류에 대해서도 마저 말씀해주세요.

이단상: 둘째는 큰형 이일상과 비슷한 연배이자 당시 조정의 중진이었던 홍명하와 조복양, 그리고 산림의 핵심인 송준길과 송시열이었습니다. 이들은 30세를 전후한 시기에 병자호란을 경험한 세대로, 호란 후유증의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직접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선배라 할 수 있는 이들을 통해 조정 내부의 긴요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고, 또한 학문과 현실 정치의 방향성에 관하여 긴밀히 상의했습니다. 또한 평생의 지기(知己: 자기를 알아주는 벗)이자 사돈인 이정기 역시 제가 크게 의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셋째는 동년배인 민정중(閔鼎重)․김수항(金壽恒)․박세채(朴世采) 등이었습니다. 10세 무렵 전쟁을 겪었던 이들은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을 앞 세대와 공유했으나, 복수의 필요성과 방법론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 차이를 보였습니다. 또한 일찍 관계를 끊었던 윤증(尹拯) 및 종묘 문제로 논쟁을 벌였던 남구만(南九萬) 등도 비슷한 또래였는데, 이 세대의 사상적 차이가 훗날 노론과 소론의 분립으로 귀결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강민우: 효종 초반 조정에 나아간 선생님은 승문원․예문관․춘추관․홍문관 등 국가의 문한(文翰 : 문필에 관한 일 혹은 문장에 능한 사람)을 관장하는 관직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정의 인사권을 담당하는 이조․병조의 낭관, 언론의 중책을 맡은 사헌부․사간원, 국왕과 세자를 측근에서 보필하는 승정원과 시강원 등의 청렴한 요직을 두루 역임했습니다. 고위 관료로 성장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했던 이 같은 관료경력은 당시 선생님이 서인 내부에서 중망을 받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정구의 손자이자 이명한의 아들이라는 가문의 배경 때문이기도 하였겠지만, 조정에 있는 동안 늘 지제교(知製敎: 조선시대 임금에게 문서 등을 기초하여 바치는 일을 담당한 관직)를 겸직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자신이 갖추었던 뛰어난 문장 덕분이기도 하였던 것이죠. 또한 효종 때에 내내 경연과 서연에 출입했던 사실은 문장 뿐 아니라 학문에 대해서도 세간의 높은 평가를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이단상: 과찬이십니다. 그렇다고 저의 관직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효종의 시대는 청나라의 강압이라는 외부적 요인과 더불어, 내부적으로는 두 가지 난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소현세자 죽음 이후 효종의 세자 책봉 과정에서 야기된 정통성의 문제였고, 둘째는 군사 훈련과 군비 확충에 대한 신료들의 비판과 불신이었습니다. 따라서 효종은 왕실 및 군사정책과 관련된 간언을 좀처럼 용납하지 못하고 강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강민우: 선생님은 기본적으로 청나라에 대한 복수를 추진하던 효종의 입장을 지지하신 것 같아요.

이단상: 1650년(효종 1) 김자점(金自點)이 청나라에 북벌 동향을 밀고하자, 청나라는 국경에 군사를 집결시키고 6명의 사신을 잇달아 파견하여 조선의 조정을 압박했습니다. 이때 저는 사관(史官: 조선시대 역사서 편찬 및 국가 기록물 관리를 담당한 관리)의 신분으로 효종을 수행하여 남별궁에 나아가 청나라 사신을 만났습니다. 그 당시 저의 심정을 적은 시가 있는데, 그것이 <분함을 쏟아내며>라는 시 입니다.

온 세상이 풍진으로 캄캄하더니 四海風塵暗

중원에 전쟁이 멈췄구나. 中原戰伐停

하늘은 어찌 지금까지 취해 있는가 天何今日醉

피비린내 10년인데…… 血已十年腥.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어야 하나 主辱臣宜死

시대가 위태하니 權道만 헤아리누나. 時危算出權

칼을 울릴 의지가 없지 않으나 非無鳴劍志

외진 나라 뒤웅박 신세를 어이하랴. 瓠繫奈邦偏.(정관재집권1, 「寫憤」)

청나라의 강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 조정은 영의정 이경석(李景奭) 등을 백마산성에 구금했고, 북벌을 위해 출사했던 송시열 등 산림들도 모두 조정을 떠났습니다. 관료의 처지에서 이러한 상황을 목도한 저는 분노와 무기력한 심경을 위와 같이 토로했습니다. 강성한 청나라의 위세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던 힘없는 나라의 신하가 지녔던 울분이었습니다.

강민우: 선생님은 친청파가 득세하던 인조 말년에 비하여 효종 즉위 이후 김상헌․김집 그리고 송준길․송시열․홍명하 등이 조정을 주도하자, 천하의 대의(大義)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단상: 저는 북벌의 대업을 도모하던 효종의 성세를 만났음을 다행이라 여기며, ‘물러나 밥 먹을 때가 아니면 늘 임금 곁에 있었다.’고 한 행장의 서술에서처럼, 효종의 측근에서 그 뜻을 보필했습니다.

이단상의 도학적 학문세계와 정치2

 

이단상의 도학적 학문세계와 정치

 

강민우: 효종과의 관계는 어떠셨습니까?

이단상: 효종과의 관계가 늘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제가 언관으로 재직하며 형식적인 열병의식 및 군사훈련 검열제도를 중지할 것을 청하는 등 효종이 민감하게 여기던 사안들에 대하여 직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특히 김홍욱(金弘郁)이 강빈옥사를 거론하다 맞아 죽은 지 불과 1년 만에 경연에서 그 사건을 언급하고, 언로의 개방을 청하는 상소를 거듭 올렸던 일은 효종의 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강민우: 당시 홍명하(洪命夏)는 ‘오늘 일은 이단상이 아니었다면 필시 헤아릴 수 없는 화가 일어났을 것이다’라고 탄식할 정도였다지요. 또한 효종이 총애하던 인평대군이 세상을 떠났을 때 예법을 따지며 친제(親祭: 임금이 몸소 제사를 지내는 것)하지 말 것을 청한 일로 ‘감히 들을 수 없는’ 엄한 하교를 받기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단상: 저는 효종 연간 관직에 있는 동안 호서 산림들과 의견을 같이 하며 서인의 도학적 정통성을 옹호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는 1658년(효종 9) 전라도 함평의 정개청 서원, 즉 자산서원(紫山書院)에 관한 상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1616년(광해군 8) 북인에 의해 건립된 자산서원은 산림의 영수 김장생이 인조반정 직후 출사하자마자 문제 삼았던 곳이었습니다. 당시 김장생은 퇴계학파의 도통의식과 비교하여 서인 학통의 미비함을 우려하며, 16세기 서인의 정치적․사상적 계보를 정리하는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서인의 구심점으로서 성혼․이이와 더불어 박순(朴淳)의 위상을 높이 평가하며, 기축옥사 당시 서인의 정치적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했습니다.

강민우: 퇴계학파의 도통의식에 관한 간단한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이단상: 이황의 많은 제자들 가운데 퇴계v문하의 학문적 계보를 형성한 대표적 제자로는 정구․김성일․유성룡 등을 듭니다. 이 세 계열의 특징과 학맥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구(鄭逑)는 성주 출신으로 김굉필의 외증손입니다. 처음에는 오건(吳健)에게 배우고, 뒤에 조식(曺植)과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습니다. 예학에 대단히 밝았으며, 경학․의학․병학에도 뛰어났습니다. 학문과 덕행이 훌륭하여 사림의 존경을 받았으며, 친구 및 문인으로 장현광(張顯光)․김면(金沔)․정온(鄭蘊) 등 60여 명이 있습니다. 그의 학맥은 허목(許穆)에게 이어져서 기호지방의 퇴계학파를 형성하고, 그 뒤 이익(李瀷) 등의 실학파로 이어집니다. 한말의 학자로서 영남 출신인 허훈(許薰) 등이 이 계열에 속합니다.

강민우: 유성룡의 학맥은 어떠합니까?

이단상: 유성룡(柳成龍)은 안동 하회 출신이며 선조 때에 재상으로 임진왜란을 극복한 정치가입니다. 그의 문집에는 성리학보다 시사 및 경세에 관한 내용이 많아 이론체계를 구명하기 어려우나, 대체로 이황의 학문을 계승하여 리를 강조하고 수양의 첫 단계로 마음의 주재를 세울 것을 말합니다. 문인으로는 이준(李埈)․김봉조(金奉祖) 등 10여 인이 있으나, 상주 출신으로 예학에 밝은 정경세(鄭經世)가 으뜸입니다. 정경세 문하에 유진(柳袗)과 유직(柳稷) 등이 있고, 뒤에 이구(李榘)로 이어지고 한말의 학자인 유수목(柳疇睦)으로 이어집니다.

강민우: 김성일 학맥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세요.

이단상: 김성일(金誠一)은 안동의 천전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진주성 방어에 힘쓰다가 순절합니다. 일본에 통신부사로 다녀와서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후대의 평가가 분분하나, 그의 강직한 지절과 일본 사행에서의 주체적 외교 활동 등은 칭송되고 있습니다. 문집이 있으나 대부분 시문이나 언행록이어서 학문에 관한 구체적 내용이나 사상적 특징을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이 흥성하여 그 학맥이 연면하게 이어짐으로서 퇴계학파 정통학맥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합니다.

강민우: 이황의 퇴계학파는 정구․유성룡․김성일로 이어지는 학맥의 지위가 확고해 보입니다. 그래서 당시 김장생은 퇴계학파의 도통의식과 비교하여 서인 학통의 미비함을 우려했던 것이군요.

이단상: 김장생의 제자인 송준길과 송시열 역시 서인 도통론 정립에 각별한 책임감을 가졌습니다. 송준길이 1657년(효종 8) 다시 조정에 나오며 요구한 첫 번째 과제가 자산서원 훼철이었던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자산서원은 조선후기 정개청(鄭介淸)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입니다. 1589년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희생당한 정개청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사당을 세워서 위패를 모신 것입니다. 1657년에 서인의 집권으로 훼철되었다가 허목(許穆)·윤선도(尹善道) 등의 상소로 1677년(숙종 3)에 다시 복원되기도 합니다. 그 후 여러 차례 훼철과 복원을 반복하다가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됩니다.

강민우: 송준길은 정개청이 박순을 배신한 잘못을 거론하며 자산서원 훼철을 효종에게 청합니다. 그러나 남인의 윤선도(尹善道)가 이를 반박하는 상소 가운데 ‘김장생의 견해가 지극히 공정하고 지극히 바른 듯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무리와는 당을 만들고 다른 자는 공격한 것에 불과하다’며 조롱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때 김장생 문하의 호서 산림과 별다른 관계가 없던 이단상선생님이 나서서 윤선도의 주장을 ‘망령된 말’이라고 비난한 상소를 올린 것은 뜻밖의 일인 것이죠. 아마도 서인 학통의 제1세대인 박순․성혼․이이의 뒤를 이어, 제2세대의 영수였던 이정구의 손자로서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됩니다.

이단상: 윤선도는 부친 이명한이 이이첨에게 아부하는 시를 지었다고 거론하며 정개청의 무고함을 주장하자, 저는 임금에게 그가 시강관(경연에 참석하여 임금에게 경서를 강의하는 일을 맡은 관직)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 줄 것을 청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저는 서인 안에서도 강경파로 자리 잡게 됩니다. 대다수 재경관료들이 산림에 비해 비교적 온건한 당파적 입장을 지녔던 것을 감안하면, 저는 특히 북인에 대해 시비분별을 엄정하게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그 즈음 경연에 입시한 제가 정인홍을 두둔하던 권시(權諰)를 신랄하게 공격하여 인천으로 낙향하게 만든 일도 있는데, 이때 시작된 윤선도 및 권시와의 악연은 현종 초반 기해예송으로 이어집니다.

강민우: 지금까지 이단상선생님의 도학적 또는 정치적 성향을 알아봤습니다. 이어서 선생님계열의 철학사상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강민우: 이단상선생님은 문장뿐만 아니라 당시의 도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도학은 당시 성리학 주도의 학문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단상: 도학(道學)은 중국 송나라 때 새롭게 체계화된 정주학(程朱學) 또는 주자학(朱子學)의 다른 명칭입니다. 도학이라는 용어는 대학과 중용의 서문에서도 보이지만, 선진유학에서는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으로 대두하게 된 것은 송대에 이르러 공자와 맹자의 도를 계승한 새로운 유학이 수립되면서부터입니다. 송대의 유학자들은 공자가 집대성한 선진유학이 맹자 이후 약 천 여 년간 이른바 ‘도통(道統)’이 끊어지고, 도가나 불교의 영향 등으로 학풍도 크게 훼손되었다고 인식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하여 북송의 주돈이(周敦頤)․소옹(邵雍)․장재(張載)․정호(程顥)․정이(程頤) 그리고 남송의 주희(朱熹) 등 일련의 유학자들은 공맹의 선진유학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그 근본정신에 투철한 새로운 유학을 완성했습니다.

강민우: 이 새로운 학풍의 유학은 도학․정주학․주자학․성리학․송학(宋學)․성학(聖學)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렸던 것이죠.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각각의 명칭이 담고 있는 내용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만. 또한 선진 유학과 구분되는 새로운 유학이라는 뜻에서 이들의 학문을 ‘신유학’이라 부르기도 한 것이고요.

이단상: 도학은 송대 유학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기도 하지만, 특히 그 기본 성격은 개인의 높은 도덕적 수양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 : 자기 자신을 위한 학문)’을 본령으로 하면서 동시에 사회의 여러 현실 문제에도 깊이 관계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이론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강민우: 도학은 학자들로 하여금 올곧은 기개로써 현실 문제에 깊이 참여하게 하는 매우 실천 지향적인 특성을 지녔다는 뜻이군요.

이단상: 그래서 도학은 수기안인(修己安人 : 자신을 잘 가꾸고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것) 혹은 내성외왕(內聖外王 : 내면적으로는 성인의 덕을 갖추고 외면적으로는 제왕으로서의 능력을 갖춤)이라는 유학의 본령을 가장 충실하게 실천하고자 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유학의 본령을 올바르게 지켜온 선현들을 선정하여 유림의 표상 또는 진리를 실천한 사표(師表)로 존숭함으로써 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을 수립합니다.

강민우: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에 원나라로부터 처음 도학이 수용된 후, 당시 신진 사대부들에 의해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를 교체하는 이념적 기반이 되었던 것이고요. 또한 조선 왕조 개창 이후에는 국가의 정통 이념이 되어 한말(韓末)까지 유학의 정통적인 흐름으로 존숭됨으로써 우리의 정신사와 학술 문화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죠.

이단상: 그렇습니다. 저는 문장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과거를 거쳐 관료로 입신했지만, 젊은 시절부터 도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당시의 심정은 인조 말년 무렵에 썼던 시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평생토록 스스로 공자의 간략함을 지키려 하니, 平生自擬守孔約

아침에 바르게 보고 저녁에 죽고자 하네. 朝欲貞觀而夕死

성인들이 남긴 말씀의 실마리를 더듬으며, 方將群聖緖餘論

그 연원을 탐구하여 날로 나아가려 하네. 探賾淵源期日就

(정관재집권1, 「次濟卿兄嗚呼吟」)

이 시구에서 정관(貞觀)은 본래 주역에 나오는 말로서 ‘천지의 도는 항상 올바르게(貞) 드러나기(觀) 마련이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세상을 관통하는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법칙(道)의 존재를 확신하며, 그 법칙에 따라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성리학자로서의 전형적 태도입니다.

강민우: 선생님의 도학자적 풍모를 잘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기필(期必 : 꼭 이루어지기를 기대함.)하던 도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 모습이었습니까?

이단상: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의 시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나는 지금 한 귀퉁이에 태어나 況我今生一隅阨

아득한 지치(至治)를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邈矣至治其難覿

밝고 밝은 천리(天理)는 칠흑같이 캄캄하고 昭昭天理黑如漆

오랑캐가 변방에서 칼자루를 거꾸로 잡았구나. 夷羯倒執潢池柄

임금을 받들어 더러움을 씻어낼 재주가 없다면 如無捧日滌穢才

그저 자취를 감추고 운명에 순응할 뿐 好須斂跡安吾命

예악과 황제의 패도를 종횡으로 논하며 縱橫禮樂帝伯論

아름다운 경치 속에 한가로이 노니리라. 徜徉風花雪月景

(정관재집권1, 「次濟卿兄嗚呼吟」)

저는 세상의 도가 정작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못함을 한탄하며, 청나라가 중원을 차지해 가던 당시 정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관직에 나아가 오랑캐를 소탕할 수 없다면 산림처사의 삶을 선택해 학문에 전념할 뿐이라는 다소 체념적인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이는 실제로 효종의 조정에 나갔다가 여의치 않자 양주에 있는 동강(東岡)으로 물러나 학문에 전념하게 되는 저의 미래를 예시한 말이기도 합니다.

강민우: 1649년 5월 왕위에 오른 효종은 즉위 직후 산림(山林 : 초야에 은거하면서 학덕을 겸비해 국가로부터 존중을 받은 인물.)을 등용하여 청나라에 대한 복수를 추진합니다. 조선 전기 국정을 주도한 세력이 주로 서울의 공신과 관료였다면, 효종 초반 호서 산림의 등장은 조선 후기 정치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끈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만.

이단상: 당시는 김집과 송시열 등 산림의 학자들과 김육을 중심으로 한 재경관료들의 현실적 태도가 충돌을 빚으며, 이른바 산당(山黨)과 한당(漢黨)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재경관료를 대표하는 가문 출신인 제가 효종 초반 출사 직후부터 산당과 가까운 관계였음이 특이합니다. 물론 선대부터 쌓아 온 서울 지역 명문집안 간의 대대로 이어진 친분 역시 두터웠습니다. 일가의 먼 친척이자 반정공신 이귀(李貴)의 아들인 이시백(李時白)․이시방(李時昉) 형제나, 신흠(申欽)의 손자이자 신익전(申翊全)의 아들 신정(申晸)과는 형제 같은 사이였습니다. 또한 현종 연간 절교하게 된 김좌명(金佐明)과 서필원(徐必遠) 등 한당의 주요 인물들과도 교분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조정에서 뜻과 행동을 함께 한 사람들은 대체로 산당에 속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강민우: 선생님은 병자호란 때 겪은 풍파로 인해 정식으로 스승을 모시고 벗을 사귈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교유 관계가 그리 넓어 보이지 않습니다.

이단상: 저의 주변 인물들은 대략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제가 직접 배우지 않았지만 스승처럼 여기던 사람들로서 김상헌(金尙憲)과 이경여(李敬輿)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인조 말년 친청파(親淸派: 중국 청나라와 친한 무리)가 득세하던 조정에서 척화론의 계승을 주장하고, 효종의 북벌에 적극 공감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효종 초반 산림의 영수였던 김집(金集)에 대해서도 그의 문하에서 공부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할 정도로 각별한 존모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강민우: 둘째와 셋째의 부류에 대해서도 마저 말씀해주세요.

이단상: 둘째는 큰형 이일상과 비슷한 연배이자 당시 조정의 중진이었던 홍명하와 조복양, 그리고 산림의 핵심인 송준길과 송시열이었습니다. 이들은 30세를 전후한 시기에 병자호란을 경험한 세대로, 호란 후유증의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직접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선배라 할 수 있는 이들을 통해 조정 내부의 긴요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고, 또한 학문과 현실 정치의 방향성에 관하여 긴밀히 상의했습니다. 또한 평생의 지기(知己: 자기를 알아주는 벗)이자 사돈인 이정기 역시 제가 크게 의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셋째는 동년배인 민정중(閔鼎重)․김수항(金壽恒)․박세채(朴世采) 등이었습니다. 10세 무렵 전쟁을 겪었던 이들은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을 앞 세대와 공유했으나, 복수의 필요성과 방법론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 차이를 보였습니다. 또한 일찍 관계를 끊었던 윤증(尹拯) 및 종묘 문제로 논쟁을 벌였던 남구만(南九萬) 등도 비슷한 또래였는데, 이 세대의 사상적 차이가 훗날 노론과 소론의 분립으로 귀결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강민우: 효종 초반 조정에 나아간 선생님은 승문원․예문관․춘추관․홍문관 등 국가의 문한(文翰 : 문필에 관한 일 혹은 문장에 능한 사람)을 관장하는 관직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정의 인사권을 담당하는 이조․병조의 낭관, 언론의 중책을 맡은 사헌부․사간원, 국왕과 세자를 측근에서 보필하는 승정원과 시강원 등의 청렴한 요직을 두루 역임했습니다. 고위 관료로 성장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했던 이 같은 관료경력은 당시 선생님이 서인 내부에서 중망을 받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정구의 손자이자 이명한의 아들이라는 가문의 배경 때문이기도 하였겠지만, 조정에 있는 동안 늘 지제교(知製敎: 조선시대 임금에게 문서 등을 기초하여 바치는 일을 담당한 관직)를 겸직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자신이 갖추었던 뛰어난 문장 덕분이기도 하였던 것이죠. 또한 효종 때에 내내 경연과 서연에 출입했던 사실은 문장 뿐 아니라 학문에 대해서도 세간의 높은 평가를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이단상: 과찬이십니다. 그렇다고 저의 관직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효종의 시대는 청나라의 강압이라는 외부적 요인과 더불어, 내부적으로는 두 가지 난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소현세자 죽음 이후 효종의 세자 책봉 과정에서 야기된 정통성의 문제였고, 둘째는 군사 훈련과 군비 확충에 대한 신료들의 비판과 불신이었습니다. 따라서 효종은 왕실 및 군사정책과 관련된 간언을 좀처럼 용납하지 못하고 강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강민우: 선생님은 기본적으로 청나라에 대한 복수를 추진하던 효종의 입장을 지지하신 것 같아요.

이단상: 1650년(효종 1) 김자점(金自點)이 청나라에 북벌 동향을 밀고하자, 청나라는 국경에 군사를 집결시키고 6명의 사신을 잇달아 파견하여 조선의 조정을 압박했습니다. 이때 저는 사관(史官: 조선시대 역사서 편찬 및 국가 기록물 관리를 담당한 관리)의 신분으로 효종을 수행하여 남별궁에 나아가 청나라 사신을 만났습니다. 그 당시 저의 심정을 적은 시가 있는데, 그것이 <분함을 쏟아내며>라는 시 입니다.

온 세상이 풍진으로 캄캄하더니 四海風塵暗

중원에 전쟁이 멈췄구나. 中原戰伐停

하늘은 어찌 지금까지 취해 있는가 天何今日醉

피비린내 10년인데…… 血已十年腥.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어야 하나 主辱臣宜死

시대가 위태하니 權道만 헤아리누나. 時危算出權

칼을 울릴 의지가 없지 않으나 非無鳴劍志

외진 나라 뒤웅박 신세를 어이하랴. 瓠繫奈邦偏.(정관재집권1, 「寫憤」)

청나라의 강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 조정은 영의정 이경석(李景奭) 등을 백마산성에 구금했고, 북벌을 위해 출사했던 송시열 등 산림들도 모두 조정을 떠났습니다. 관료의 처지에서 이러한 상황을 목도한 저는 분노와 무기력한 심경을 위와 같이 토로했습니다. 강성한 청나라의 위세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던 힘없는 나라의 신하가 지녔던 울분이었습니다.

강민우: 선생님은 친청파가 득세하던 인조 말년에 비하여 효종 즉위 이후 김상헌․김집 그리고 송준길․송시열․홍명하 등이 조정을 주도하자, 천하의 대의(大義)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단상: 저는 북벌의 대업을 도모하던 효종의 성세를 만났음을 다행이라 여기며, ‘물러나 밥 먹을 때가 아니면 늘 임금 곁에 있었다.’고 한 행장의 서술에서처럼, 효종의 측근에서 그 뜻을 보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