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택(沈奎澤)


심규택(沈奎澤)                                                             PDF Download

 

181812(순조 12)∼1871(고종 8). 조선 말기의 학자.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치문(穉文), 호는 서호(西湖). 아버지는 의생(宜生)이며,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로 재선(在選)의 딸이다. 오희상(吳熙常)·송치규(宋穉圭)·홍직필(洪直弼)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경학에 힘써 「태극명의설(太極名義說)」·「중용기의(中庸記疑)」·「대학서문분절(大學序文分節)」·「대학경전기의(大學經傳記疑)」·「대학혹문경일장분절(大學或問經一章分節)」·「태극도군서구해기의(太極圖群書句解記疑)」·「근사록기의(近思錄記疑)」 등을 저술하고, 남이목(南履穆)·유신환(兪莘煥)·심의덕(沈宜德)·강진(姜溍)·조병덕(趙秉悳) 등과 서신을 통하여 학문을 논의하였다. 성리학은 율곡 이이의 설을 따랐고, 학문의 방법은 퇴계 이황을 본받으며, 위정척사는 송시열(宋時烈)을 따르려 하였다. 저서로는 「서호문집」이 있다.

심규택은 해동악부(海東樂府)의 저자인 휴옹(休翁) 심광세(沈光世)의 9대손이며 선산 사람이다. 선산은 경치가 좋은 곳으로서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뒤로는 비봉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남쪽으로는 금오산(金烏山)이 그림처럼 서 있는데 끝이 뾰족하여 붓끝 같았으므로 선산사람들은 예로부터 이를 필봉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런지 조선 때의 인재 반은 영남사람이고 영남인재 반은 선산에 있다고 할 만큼 선산에는 문학하는 선비가 많아 급제자와 명현들이 많이 나왔으며, 그 중에서도 유명한 명필인 초성(草聖) 황기로(黃耆老, 德山 사람)는 명종 임금으로부터

‘천하의 초성이 왕희지 뒤의 일인이다
(天下之草聖 羲之後一人)’

이라 칭찬받기도 하였다.

선산에서는 선현들이 모여 시를 많이 지은 곳이기도 하였다. 야은(冶隱) 길재(吉再, 海平 사람), 백암(白巖) 김제(金濟, 一善 사람), 강호(江湖) 김숙자(金叔滋, 一善 사람), 경은(耕隱) 이맹전(李孟專, 碧珍 사람),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一善 사람), 신당(新堂) 정붕(鄭鵬, 海州 사람), 송당(松堂) 박영(朴英, 密陽 사람),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 晋陽 사람), 옥산(玉山) 이우(李瑀, 德水 사람), 주촌(注村) 김효정(金孝貞, 一善 사람), 진악당(眞樂堂) 김취성(金就成, 善山 사람), 죽월헌(竹月軒) 노계정(盧啓禎, 慶州 사람), 서호(西湖) 심규택(沈奎澤, 靑松 사람), 춘하(春下) 심연택(沈淵澤, 靑松 사람), 소봉(小鳳) 심정섭(沈廷燮, 靑松 사람), 수당(睡堂) 강걸(康傑, 信川 사람) 등 많은 선현들이 이곳 선산에서 많은 시를 지었다. 여기에서 심규택이 지은 선산에 있는 오산(烏山, 지금의 금오산)과 관련된 시를 소개한다.

 

<登烏山: 금오산에 올라>

螺鬟一抹入雲寄  (라환일말입운기)
쪽머리 봉우리에 구름이 걸려

怱憶天公造化時  (총억천공조화시)
자연의 조화가 아름답구나

長江綠水鐵鐵帶  (장강녹수철철대)
장강의 푸른물은 철철 흐르고

大野群山點點碁  (대야군산점점기)
군산(群山)의 너른 들은 바둑판 같네

剩喜遊心千里遠  (잉희유심천리원)
저 멀리 구경하니 아주 즐거워

却憐多病一登遲  (각연다병일등지)
늦게 사 올라 온 것 후회스럽네

滿目無煙無限處  (만목무연무한처)
청명함에 절경이 끝없이 펼쳐지니

何人到此不留詩(하인도차불류시)
누구인들 여기 와서 시(詩)가 없겠나

 


<烏山雜詠: 오산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

天半烏岑恁麽靑  (천반오잠임마청)
이 맑은 날 우뚝 솟은 오산(烏山)에 올라

後人爲起古人亭  (후인위기고인정)
옛사람이 남겨둔 정자에 앉았으니

千古不滅西山節  (천고불멸서산절)
언제나 불멸(不滅)의 서산(西山)의 절개가

長使忠臣淚滿纓  (장사충신누만영)
긴 세월 충신(忠臣)의 갓끈 적시네

 

서호문집⌋은 조선 말기의 학자 심규택의 시문집이다. 20권 10책으로 석인본이다. 1923년 손자 심기섭(沈起燮)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전우(田愚)의 서문, 권말에 김재경(金在敬)이 쓴 발문이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권1∼6에는 시 819수, 권7∼14에는 서(書) 201편, 권15∼16에는 서(序) 6편, 기(記) 6편, 제발(題跋) 19편, 잠명(箴銘) 2편, 고문(告文) 4편, 제문 24편, 권17∼19에는 묘표 1편, 행장 1편, 유사 1편, 잡저 11편, 권20은 부록으로 행장·묘갈·제문·만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자연을 노래한 시가 대부분이지만 선현들의 시에 차운한 것도 많다. 서(書)는 이기설(理氣說)에 관한 것이 많으며, 주로 퇴계 이황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부인하고 있다.

“발하는 것은 기요, 발하게 하는 소이는 리이다
(發之者氣也, 所以發者理也)”

라고 하는 율곡 이이의 기발이승일도(氣發理乘一途)설을 따르고 있다.

중용⌋의 허령지각(虛靈知覺)과 지각에 대해서 마음의 체와 용에 대입시켜 설명하고 있다.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에 대해서도 율곡의 이론을 따르고 퇴계의 학설이 이원(二元)의 모순을 가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단은 측은․수오․사양․시비의 도덕적 정감을 말하고, 칠정은 기쁨(喜)․분노(怒)․슬픔(哀)․즐거움(樂)․사랑(愛)․미움(惡)․욕망(欲)의 일반적 정감을 말한다. 심규택에 따르면, 사단과 칠정이란 서로 다른 별개의 정이 아니라 하나의 정인데, 다만 이름이 다를 뿐이다. 정의 전체를 통틀어 말하면 칠정이요, 그 가운데 선한 정만을 가리켜 말하면 사단이다. 다시 말하면, 칠정의 중절한 것이 사단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정이란 칠정 하나가 된다.

그러나 퇴계는 사단의 정과 칠정의 정을 별개의 정으로 구분한다. 사단은 선한 정이요 칠정은 악한 정은 아니지만 악으로 흐르기 쉬운 정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퇴계는 선한 사단과 악으로 흐르기 쉬운 칠정을 서로 다른 별개의 정으로 구분하려고 한다. 그래서 선한 사단은 확충이 필요하고, 악으로 흐르기 쉬운 칠정은 단속하거나 재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정의 근원인 성이 하나인데 어찌 두 개의 정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하여 퇴계의 사단칠정에 대한 해석이 이원의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중용기의(中庸記疑)」와 「대학경전기의(大學經傳記疑)」에서는 「중용」과 「대학」을 배우는데 있어 어려운 문제점을 제시하고, 선현들의 학설을 인용하여 설명한 뒤 미진한 것은 자기의 사견을 첨가하여 알기 쉽게 해석하였다. 이밖에도 태극의 명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 「태극명의설(太極名義說)」과 그때까지 저자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던 「명심보감」의 저자를 밝힌 「명심보감발(明心寶鑑跋)」이 있다. 그리고 「대학」의 차례를 세분한 「대학서문분절(大學序文分節)」과 이황의 「사서질의(四書質疑)」에 대해 난해한 곳에 해석을 추가한 「퇴계선생사서질의기의(退溪先生四書質疑記疑)」가 있다.

이 책은 이이의 이기설을 따르는 조선 말기의 철학사 연구에 일차적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서호문집(西湖文集)」,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