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병(李師炳: 1714∼1782)


이사병(李師炳: 1714∼1782)                               PDF Download

 

의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도삼(道三)이며, 부친은 외암(巍巖) 이간(李柬)이간(李柬):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낙론(洛論)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이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자질이 특출하여 사물을 독서를 통해 이해하려 들지 않고 문리(文理)를 깨우쳐 빠르게 터득하였다 한다. 그는 14세 때 아버지 외암공이 별세하자, 심히 애통해 하였으나 그 애통함이 절도를 넘어서지는 않았다.

이후부터 경전(經傳) 공부에 전념하여 주야를 가리지 않고 더욱 정진하였다. 과문(科文)과 명리(名利)에 관한 공부를 멀리하고 오로지 성인(聖人)의 말씀을 독실하게 따르면서 ‘심(心)’에 관한 공부를 제일 과제로 삼아 전념하였다.

그는 20세가 되던 1735년(영조11)에 도암(陶菴) 이재(李縡)를 처음 만났는데, 도암은 첫 눈에 그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당시 사람들은 외암의 네 아들이 제각기 외옹(巍翁)의 일면씩을 닮았는데, 첫째는 그의 통민(通敏)함을 이어 받았고, 둘째는 화수(和粹)함을, 셋째는 엄정(嚴正)함을 그리고 넷째는 강과(剛果)함을 이어 받았다고 하였다. 그 말대로 이사병은 셋째였으며, 매사에 엄정한 면이 있었다고 한다.

1782년(정조6)에 향년 69세의 나이로 졸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인명사서(朝鮮人名辭書)》
– 《해동인물지(海東人物志)》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