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원리


 

비가 내리는 원리

 

란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겨 작은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는 현상이다. 한 개의 빗방울이 되기 위해서는 10만개의 구름방울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구름이 모여 있다고 해서 곧장 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려면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 첫째 찬 기운과 더운 공기가 교차하는 전선(前線)이 형성되어야 하거나, 여름철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아래와 위로 뒤바뀌고 섞이면서, 또 지형적으로 높은 산이 있거나 태풍이 불 때 비가 온다.

천도책」의 비에 대한 질문 역시 두 가지 관점에서 묻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아래와 같다.

 

“비는 구름을 따라 내리는 것인데, 간혹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오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비가 내리기 위해서는 구름이 있어야 하는 것이 필요조건이다. 그런데 빽빽한 구름이 있어도 비가 내리지 않을 때가 있다.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까닭은 무엇인가? 앞에서 비가 오는 네 가지 현대 기상이론을 소개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율곡의 경우는 어땠을까? 그의 답은 이렇다.

 

“비와 이슬은 다 구름에서 나오는 것인데 젖은 기운이 왕성한 것은 비가 되고, 젖은 기운이 적은 것은 이슬이 됩니다. 음양이 서로 합하면 이에 비가 내리는데, 간혹 구름만이 자욱하고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아래위가 서로 합하지 못해서입니다. 『홍범전(洪範傳)』에 이르기를, ‘황제가 지극하지 못하면 그 벌(罰)은 항상 음(陰)하다.’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입니다.”

 

‘젖은 기운’이란 말을 썼는데 현대말로 물방울로 보아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니까 물방울이 왕성하면 비가 된다는 것은 일리가 있으나 젖은 기운이 적은 구름이 이슬이 된다는 말은 맞지 않다. 여기서 음기와 양기가 합하면 비가 된다는 말에서 음기와 양기는 찬 공기와 더운 공기로 바꾸어 말할 수 있어, 앞에서 소개한 대로 비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음기와 양기는 순수한 자연의 기로만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황제가 지극하지 못하면 그 벌은 항상 음하다.’라는 설이 나왔다. 『홍범전』의 이 말은 『한서(漢書)‧하후승전(夏侯勝傳)』에 보이는데, 황제가 바르지 않으면 하늘은 벌을 내려 음기가 왕성하고, 양기가 부족해 합쳐 비를 만들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여기서도 자연과 인간의 일이 서로 감응한다는 천인상감(天人相感)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도 이 같은 맥락에서 묻고 있다.

 

“신농씨(神農氏) 때에는 비를 원하면 비가 오는 태평한 세상이라 연간 36번의 비가 있었으니, 자연 또한 사사롭게 운행하는 것이 두터운가? 혹은 군사를 일으킬 적에 비가 오고, 혹은 옥사(獄事)를 판결할 적에 비가 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신농씨는 중국 전설에 농사를 가르쳐 준 제왕이다. 자연의 운행도 태평한 세상에는 알맞게 비가 오니, 그것이 인간의 일과 관계 되느냐의 질문이다. 다른 인간의 중대사 또한 그러한 까닭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율곡의 답안은 다음과 같다.

 

“양기가 가득 차오르면 가물고, 음기가 왕성하면 장마가 지는데, 반드시 음양이 조화하여야 비 오거나 맑은 날씨가 때를 맞춥니다. 대개 신농씨 같은 성인이 다스리는 순박하고 밝은 시대에는 맑은 날씨를 바라면 맑고, 비를 바라면 비가 온 것은 진실로 당연한 이치입니다. 성왕이 백성을 다스릴 때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5일에 한 번씩 바람이 불고, 10일에 한 번씩 비가 내린 것도 역시 그 떳떳한 이치입니다. 이 같은 덕이 있으면 반드시 이 같은 보응이 있는 것이니, 어찌 자연의 운행이 사사로이 두텁게 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대개 원통한 기운은 가뭄을 부르기 때문에 한 여자가 한을 품어도 흉년이 됩니다.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이긴 것이 족히 천하의 억울한 기운을 해소하기에 충분하였고, 안진경(顔眞卿)이 옥사를 판결한 것이 한 지방의 원통한 기운을 해소하기에 충분하였으니, 알맞게 비가 내린 것이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하물며 태평한 세상에는 본래 필부필부(匹夫匹婦)조차도 그 은택을 입지 않은 이가 없으니, 어찌 비와 바람이 순조롭지 않겠습니까? 지극히 추울 때에도 하늘과 땅이 비록 닫히고 막혔으나, 음양이 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비가 엉겨서 눈이 되는데, 이는 대개 음기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옛날 자연에서 양기는 보통 덥고 건조한 공기이며, 음기는 그것에 상대적으로 차갑고 습한 공기를 일컫는다. 이런 공기가 만나야 비를 이룬다. 이런 자연의 기는 인간이 내뿜는 기와 관계할 수밖에 없는데, 인간사회에 억울하거나 원통한 일이 있으면 인간의 기가 자연의 기와 섞여 날씨나 기후가 고르지 않게 된다고 믿었다. 결국 그 원인은 통치자인 왕이나 그 통치를 대신 맡은 관리들에게 있다. 율곡의 답안에서 주나라 무왕(武王)이나 당나라 정치가이자 서예의 대가로 알려진 안진경의 예를 든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다.

앞의 글에서도 잠시 언급하였지만 비의 문제에 있어서도 어김없이 자연의 원리에 인간사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여기서 순수한 자연과학적 견해를 추출해 볼 수도 있지만, 문제나 답안 자체는 자연과학적 문제에 그다지 비중을 두기보다, 오히려 인간사와 그것을 관련시키는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물론 답이란 문제 때문에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숙제는 율곡이 과연 자연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예전의 견해처럼 그대로 수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아니면 자연 이해에 미신적 견해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전제 왕권을 제한하기 때문에, 아니면 시험관들이 정치적 자연관을 묻는 그 의도를 간파해서 이런 답을 하였을까? 이 문제를 답하기는 아직 이르고, 좀 더 숙고해 볼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