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휘면(蘇輝冕, 1814-1889)


소휘면(蘇輝冕, 1814-1889)                                 PDF Download

 

소휘면은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순여(純汝), 호는 인산(仁山)이다. 아버지는 형술(亨述)이다. 익산에서 출생하였다. 홍직필의 문인이다.

스승 홍직필은 9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엄한 훈육을 받으며 할아버지 수구(洙榘)에게 학업을 닦아 20세 이전에 문명을 떨쳤다. 홍직필 문하에서 전병순(田秉淳)·조병덕(趙秉悳)·한운성(韓運聖)·임헌회(任憲晦)와 함께 매문오현(梅門五賢)으로 일컬어졌다.

1858년 도백(道伯)이 소휘면의 학행을 조정에 천거하였다. 1881년 선공감가감역을 제수 받았으며 곧 전설시별제(典設寺別提)에 제수되었다. 그 뒤 전라도사로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아니하고, 1882년 사헌부지평에 제수되었으나 역시 취임하지 아니하였다. 오직 후학을 교육하여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인산문집(仁山文集)』 17권이 있다.

 

인산문집⌋은 17권 8책으로 된 목활자본이다. 서문과 발문이 없어 자세하지는 않으나 1900년에 간행된 듯하다.

서(書)는 이 문집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홍직필(洪直弼)·송내희(宋來熙)·조병덕(趙秉悳)·전우(田愚) 등 당시 이름난 학자 및 제현들과 주고받은 것이다. 대부분 경전의 내용이나 성인들의 행동에 대한 의문점, 도학의 원리에 대한 의논과 후학들의 질문에 답변한 것들이다.

특히, 조병덕·구인조(具寅祖)·조장하(趙章夏)·이선식(李善植)·권성문(權聖文) 등 기호학파 학자들과는 많은 양의 편지를 통해 학문적으로 상당히 깊이 있는 문제를 토의하고 있다. 이 중 「상숙재조장(上肅齋趙丈)」은 조병덕에게 학문을 하면서 평소 품고 있던 여러 가지 의문점을 묻고 있다. 주로 『중용』의 성(性)·도(道)·교(敎)에 대해 다루었다. 미발설(未發說)에 대해 주희(朱熹)의 생각에 반론을 제기한 점이 주목된다.

 

잡저 중 「용현론(用賢論)」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용현이 급선무임을 주장한 것이다. 「혹인문답(或人問答)」은 어떤 사람이 이이(李珥)의 『경연일기(經筵日記)』 중 의심스러운 곳을 질문한 것에 답한 글로 율곡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간서차록(看書箚錄)」은 수필 형식의 짤막한 독후감으로, 수록된 내용이 다양한데, 주로 우리나라와 중국 선유들의 말이나 왕복서에 나오는 내용에 대해 주석을 달거나 시사와 관련시켜 풀이한 글이다.

현강기문(玄江記聞)」 역시 「간서차록」과 마찬가지로 수필 형식의 글이다. 자신의 의견을 시사와 관련하여 논한 것이다. 저자의 깊고 해박한 지식과 당시 시국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엿볼 수 있다. 「혼례동뢰설위도(婚禮同牢設位圖)」는 기호지방 사대부가의 혼례 상차림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인산문집(仁山文集)』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