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영(金駿榮)


김준영(金駿榮)                                                           PDF Download

 

181842(헌종 8)~1907(융희 1). 조선 말기의 학자.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덕경(德卿)이고, 호는 병암(炳菴)이다. 아버지는 김상억(金相億),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 찬(瓚)의 딸이다. 공주 현암(玄岩)에서 출생하였다. 학문이 거의 성숙한 뒤에 간재 전우의 문인이 되었으며, 전우의 여러 제자들 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의 동문 오진영(吳震泳)은 그를 위해 쓴 「묘갈명」 서문에서 “스승 간재선생 문하에 재덕이 뛰어나고 독실하며 신중한 선비들은 나라가 기울어갈 때 현명한 자이든 우매한 자이든 그 재능에 따라 각기 자질이 더해졌다. 그 덕과 학문의 순수함을 구하고, 성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성인의 법도를 전하는 것을 보좌하는 후세의 학자 중 병암선생 김공을 넘을 수 있는 자는 없다”라고 썼다. 이는 김준영의 위상을 적절히 나타낸 말이다. 김준영의 학문이 전우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가세가 극도로 곤궁하여 주경야독을 하였으나, 워낙 독실하게 공부하여 임헌회(任憲晦)·신응조(申應朝)·송병선(宋秉璿)·박운창(朴芸牕)·김계운(金溪雲) 등 당시 학자들에게 모두 인정을 받았으며, 성리학을 더욱 공부하기 위하여 한 살 연상인 전우에게 3번씩이나 찾아가 사제(師弟)관계를 맺었다.

김준영은 전우를 추종하였으며, 전우는 그의 스승 전재 임헌회를 추종하였다. 전재의 학문은 매산 홍직필에서 나왔고, 매산 홍직필의 학문은 근재 박윤원에서 나왔고, 박윤원의 학문은 미호 김원행을 근원으로 하며, 김원행의 학문은 농암 김창협․삼연 김창흡의 학문을 계승하였으며, 김창협․김창흡의 학문은 우암 송시열을 종주로 하며, 송시열은 율곡 이이 제자의 제자이다. 따라서 김준영 성리학은 율곡과 기호학파에 가깝다. 김준영의 이기론(理氣論)과 율곡의 ‘기발이승(氣發理乘)’설은 일치한다.

이기설(理氣說)과 예학(禮學)에 특히 주력하였으며, 이항로를 중심한 벽문학자(檗門學者)들의 주리설(主理說)과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하는 한원진 계열의 학설을 비판하였으며, 반면 율곡의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과 전우의 학설을 적극 지지하는 학문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외암 이간과 남당 한원진 사이에는 한국 성리학사에 있어서 유명한 ‘인물성동이’논쟁이 있었다.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같은지 다른지를 두고 논쟁을 벌인 것이다. 이 논쟁에서 외암은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같다는 동론(同論)을 주장하였고, 남당은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다르다는 이론(異論)을 주장하였다.

논쟁의 결과 낙론(洛論)과 호론(湖論)의 양파로 분열되었다. 김준영은 스승인 전우처럼 낙론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김준영은 기질지성은 등급이 가지런하지 않을 수 있지만, 본연지성은 인간이나 사물, 성인이나 보통 사람이 모두 같다고 보았다. 만약 성인과 보통 사람의 본성이 다르게 설정된다면 그들은 덕을 이루어 성인이 되는 희망을 포기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이 본래 다르다면 보통 사람들을 넘어 성인으로 들어가는 길이 없으며, 선비는 현자를 희구할 필요가 없고 현자는 성인을 희구할 필요가 없다”

 

라고 하였다.

또한 정부의 개화정책과 천주교에 대하여 적극 반대하는 시국관을 갖는 학자였다. 저서로는⌈병암집(炳菴集)⌋이 전해진다.

병암집⌋은 조선 말기의 학자 김준영의 시문집이다. 3권 3책으로 석인본이다. 1958년 김준영의 손자 김문호(金文鎬) 등에 의해 편집·간행되었다. 권두에 전우의 서문과 권말에 오진영(吳震泳)의 발문이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권1에는 서(書) 200편, 권2에는 잡저 43편, 권3에는 서(序) 24편, 기 40편, 발 15편, 명·찬(贊) 각 1편, 고축 8편, 제문 13편, 묘갈 5편, 행장 9편, 전(傳) 3편, 시 6수, 부록으로 행장·묘갈·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의 「여김판서(與金判書)」에는 이기설에 관한 그의 학문적 견해가 잘 나타나 있다. 치중화(致中和)와 미발(未發)·이발(已發)을 설명함에 있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여러 학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이·김창협·이간(李柬)·이재(李縡)의 설을 제시한 끝에

 

“내가 본 것과 믿는 것은 이밖에 다시 다른 설이 없다”

 

라고 하여,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모두 같다
(人物性俱同)’

는 낙론 학자들을 지지하는 견해를 취하고 있다.

인물성에 대한 견해는 「답조경헌(答趙景憲)」 등에도 나타나 있다. 「답임자경(答林子敬)」에는 ‘의병에 참여하는 것이 옳으냐 산중에 숨어서 보발(保髮)하고 학문을 닦는 길이 옳으냐’ 하는 문제를 놓고 논변한 내용이 있다. 이것은 당시 선비들의 현실 참여에 관한 논쟁에서 스승인 전우의 처지를 해명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밖에 예학(禮學)과 경의(經義)에 관한 문답이 많다.

잡저의 「유집변(柳集辨)」·「유집여기사김씨왕복서의의(柳集與其師金氏往復書疑義)」·「유집심설정안의의(柳集心說正案疑義)」·「독퇴계선생집(讀退溪先生集)」 등은 성리설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이항로를 중심으로 이른바 벽문학자(檗門學者)들의 주리설을 집중적으로 논박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간졸수임창계이설(看拙修林滄溪二說)」에서는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을 비판한 조성기와 임영의 학설을 논박하고, 이들의 학설을 은근히 인정한 김창협·김창흡의 태도에 불만을 표시했으며, 이들의 학설에 적극 찬성한 이항로와 기정진에 대해서는 맹렬히 비판하였다. 「독송연재잡저(讀宋淵齋雜著)」에서는 천주교와 개화 정책에 반대하며 척화(斥和)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은 특히 성리설에 관해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 조선 말기 성리학계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병암집(炳菴集)」,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병암 김준영 학문의 계승성과 독립성」(마진탁, 「간재학논총」제3집, 간재학회,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