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근(金洙根,1798-1854)


김수근(金洙根,1798-1854)                                  PDF Download

 

1798(정조 22)∼1854(철종 5).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관은 안동(安東). 자는 회부(會夫), 호는 계산초로(溪山樵老)이다. 김원행(金元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이직(金履直)이고, 아버지는 목사 김인순(金麟淳)이며, 어머니는 신식(申○)의 딸이다.

김수근에 앞서 증조할아버지 김원행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면 다음과 같다. 김원행의 자는 백춘(伯春), 호는 미호(渼湖)로, 당숙인 김숭겸(金崇謙)에게 입양되어 종조부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손자가 되었다. 이재(李縡)의 문인이다. 당시의 학문은 송시열(宋時烈)을 종장(宗匠)으로 받드는 성리학이 주조를 이루고 있었으며, 그 학파 내에서도 낙론(洛論)과 호론(湖論)의 대립이 있었다. 대립의 발단은 김창협과 권상하(權尙夏)의 학설에서 시작되었다. 권상하의 제자인 이간(李柬)은 김창협의 학설을 이어 이재와 함께 낙론의 중심이 되고, 권상하의 제자 한원진(韓元震)은 권상하의 학설을 이어 호론의 중심이 되었다. 김창협의 손자이자 이재의 문인인 김원행은 자연히 낙론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학자로 활동하였다. 그의 사상은 대체로 김창협의 학설을 답습하여 주리(主理)와 주기(主氣)의 절충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 그는 심(心)을 리(理)라고도 하지 않고 기(氣)라고도 하지 않으며, 리와 기의 중간에 처하여 이기(理氣)를 겸하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겼다. 이것은 바로 이황의 주리설과 이이의 주기설을 절충한 김창협의 학설을 계승한 것이다. 그의 학통을 이은 제자로는 아들 김이안(金履安)과 박윤원(朴胤源)․오윤상(吳允常)․홍대용(洪大容)․황윤석(黃胤錫) 등이 있다.

김수근은 1828년(순조 28)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음사(蔭仕)로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으며, 1833년 시제에서 수석하여 전시에 곧바로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어 이듬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5년(헌종 1)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가 된 뒤 1837년 대사성, 1840년 이조참의, 1845년 우윤(右尹), 1847년 충청도관찰사, 1850년(철종 1) 이조참판․공조판서, 1851년 우참찬․대사헌, 다음해에 이조판서와 홍문관대제학․선혜청당상, 1853년 병조판서, 1854년 형조판서․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당대 세도가의 출신으로서, 동생 김문근(金汶根)은 철종의 장인으로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에 봉하여졌고, 두 아들 김병학(金炳學)과 김병국(金炳國)도 모두 정승에 올랐다. 철종 묘정(廟庭)에 배향되고 거제의 반곡서원(盤谷書院)에 배향되었다. 편저로는 삼연선생연보(三淵先生年譜)가 있다. 시호는 정문(正文)이다.

⌈삼연선생연보⌋는 김창흡(金昌翕)의 연보로서‚ 김수근이 1854년(철종 5)에 간행한 것이다. 1책(91장)으로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김창흡은 본관이 안동, 자가 자익(子益)‚ 호가 삼연(三淵)으로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이며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다. 1673년에 진사가 되었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아버지가 죽음을 당하자 영평(永平)에 은거하여 그 후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둘째 형인 김창협(金昌協)과 함께 이단상(李端相)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고 숙종 연간의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는 형인 김창협과 달리 낙론에 속하였으나 그 사상적 경향은 역시 이황과 이이를 절충하는 태도를 보였다. 익호는 문강(文康)이다.

이 책은 원래 김창흡의 4대손인 김매순(金邁淳)이 연보를 엮고 행장과 묘지를 붙였던 것에 김창흡의 방계 5대손인 김수근이 1854년 그의 선조의 문집을 간행하면서 약간의 내용을 보충하여 같이 간행한 것이다. 김창흡의 연보에 더하여 김양행(金亮行)이 지은 행장‚ 김매순이 지은 묘지로 이루어졌으며 김수근이 붙인 발문이 있다. 연보에서는 김창흡의 생애와 함께 그가 저술한 서(書)․제문(祭文)․상소문(上疏文) 등도 다수 수록하였다. 사후의 사실까지도 특히 자세히 정리하여 본서가 편찬되기 직전인 1853년에 유생들이 그를 석실서원(石室書院)에 배향하기를 청한 것까지 기록하였다. 연보의 마지막 부분과 묘지의 가족관계 기록 중 일부는 본서 간행시에 보충하였던 것이다. 김창흡의 생애는 물론 당시의 정치적 학문적 상황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될 자료이다.

참고할만한 문헌으로는 ⌈순조실록(純祖實錄)⌋, ⌈헌종실록(憲宗實錄)⌋, ⌈철종실록(哲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청선고(淸選考)⌋, ⌈조선도서해제(朝鮮圖書解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