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민(金時敏)1681∼1747 –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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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1(숙종 7)∼1747(영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

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수(士修), 호는 동포(東圃) 또는 초창(焦窓)이다. 여기서는 지난번의 내용에 이어 김시민의 문예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후기 회화사에서 주목할 특징이라면 ‘眞景山水’라는 사실 혹은 현실에 비중을 둔 회화 장르가 새롭게 탄생했다는 것인데, 이것의 이면에는 실학적인 학문사상이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주의 화풍이 성행하는 즈음에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진경산수를 그리는 화가와 그 교유 문인에게서 발견된다. 시론(詩論)과 화론(畵論) 상에서의 ‘정신’의 가치를 일깨우며 참된 예술 활동을 실현하자는 ‘진(眞)의 강조’ 움직임은 김시습에게서도 나타난다. 동포집 「일대육법(一代六法)」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병중에 할 일이 없어 그림 수집에 마음을 붙였는데, 모은 것이라고는 오직 지금시대의 그림이고 옛 것은 모으지 않았다. 손님 중에 이를 괴이하게 여겨 묻는 자가 있었다.

“그림을 모으시면서 옛 그림은 왜 수집하지 않으십니까?”
내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내가 옛 그림을 수집하지 않고 지금의 그림만을 수집하는 것은 특별한 뜻이 있고 또 의미가 있다네. 자네에게 들려줄까? 세상에 그림에 벽(癖)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들은 대체로 지금의 것을 버려두고 옛 것을 쫓으며, 먼 시대의 것을 귀하게 여기고 가까운 시대의 것을 천시한다네. 심지어는 해진 비단조각에 그린 그림이나 떨어진 종이에 그린 그림, 불에 그슬린 채색화나 좀먹은 묵화까지 천금의 값으로 머나먼 만리타국에서 사와서 수놓은 비단으로 표구를 하여 사람들에게 과시하기를, ‘이것은 당나라 때의 그림이다’, ‘이것은 송나라 때의 그림이다’, ‘송설(松雪)의 그림이다’, ‘현재(玄宰)의 그림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오래될수록 멀어질수록 더욱 그 참됨을 잃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에 미혼된다네.……아. 우리 선대왕께서 태평한 세상을 다스리시어 북돋아 길러주시는 아름다움을 완성하셨나니, 여기에서 그 일단을 볼 수 있네. 그러므로 나의 이 화첩은 진실로 국가의 태평한 운수를 고찰하는 거울이 되니 어찌 등한한 옛 그림과 바꿀 수 있겠는가? 천금을 주고 멀리서 사온 그림과 경중을 비교한다면 도리어 어떠한가?”

손님이 듣더니 시원하게 여기고 이윽고 나를 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조리가 있고 또 진실로 그런 것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사물의 본질을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태도인데, 당대의 지식층에 만연하던 호고(好古)에 반발하여 객관적인 검증이 가능하고 진실된 우리 시대 우리 사람의 문예작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밑바탕으로 기능하였다. 스스로 그림에 대한 벽(癖)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림만 있으면 문득 눈여겨보며 관찰하고 완상하는 동안 완전히 그림과 정신이 하나되는 ‘신회(神會)’의 경지에 도달하는 애호가가 김시민이다.

그가 병중의 무료함을 달래고자 나선 일이 그림 수집이다. 그런데 수집한 그림이라고는 그와 동일한 시대의 우리나라 유명 화가의 것들 뿐이었다. 중국물품에 대한 동경과 애호가 넘쳐나던 시대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사뭇 다른 행보였기에 김시민의 수집 형태는 객의 궁금증을 유발하였다. 이에 대해 김시민은 이와 같은 수집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먼저 그는 옛 것을 좋아하는(好古) 당시의 풍조를 비판한다. 조선의 이름난 그림수집가들 혹은 애호가들이 지금 시대의 것은 도외시하고 오로지 옛 것, 오로지 중국의 것에 광적일 만큼 집착하여 해진 비단 조각이나 떨어진 종이, 불에 그슬린 채색화나 좀먹은 묵화 등 본그림의 진면목을 알 길 없는 종이쪽을 천만금의 값을 주고 사들여 와서 화려하게 배접하고는 누구의 것이다, 어느 시대의 것이다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허울과 이름에 집착하는 당대 조선지식인의 과시적 풍조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이어서 그는 유명한 것, 먼 시대의 것, 외국의 것에 집착하는 과시욕에 사로잡힌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참됨(眞)’이라고 강조함으로써 문예 창작이 담보할 것은 바로 진실에 있음을 주장한다. 회화에서 ‘참됨’을 소중히 여기는 그가 소유한 소장품은, 위로는 선배․장자, 중간은 동년배, 아래로는 후배나 천인 등의 그림이며 모두 그의 한 세대를 벗어나지 않는 유명한 화가의 것들이다. 더욱이 정체를 확인할 길 없는 외국의 그림들과 달리, 그가 소장한 그림은 단순히 유명한 아무 화가의 집에서 무조건적으로 구매해 온 것이 아니다. 유명 화가 본인에게 부탁하여 그려진 것이기에 그림의 진위(眞僞)에 대한 염려도 없다.

화첩을 펼치면 친구와 동년배들이 좌우에 빽빽이 늘어서 있고, 그들이 직접 그린 붓의 흔적이 찬란히 보이고, 그들의 얼굴과 똑같은 그림이 보이기에 그들의 ‘정신’과 ‘풍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서술은 회화에서 사실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육법(六法)에서 ‘육’은 김시민이 화첩의 그림들을 산수․인물․매죽․포도․화초․령모(翎毛)의 여섯 항목으로 분류한 것이다. ‘법’은 여섯 부분의 대표 화가를 나이순에 따라 배열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연령별 구별이 아니다. 모범이 될 만한 선배, 이후의 진보와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후배, 뛰어난 재능을 가져 높이 인정해줄만한 비천한 지위의 인물, 부자간에서부터 친구간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 관계에서의 모범 전승 등의 의미를 내포한다.

여섯 부분의 대표 화가들이 단순히 화폭 위에서의 모범만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림의 전형(典刑), 미래의 발전 가능성, 미천한 자들의 재능 존중 등 총체적으로 ‘조선’이라는 한 나라의 국운의 무궁한 발전 가능성을 점치는 거울과 본보기로서의 그림의 가치를 평가하였다. 이것은 과서 ⌈시경⌋에 수록된 다양한 시들을 통한 가르침이 궁극적으로 풍속교화를 통해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염원하던 것과 같다. 그렇기에 이 한편의 화첩에 거는 김시민의 기대치는 ⌈시경⌋에 대한 유가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방불케 한다.

김시민이 말하는 ‘진’의 개념은 그와 한 시대를 살던 우리나라 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것이라는 측면을 중시한다. 이것은 그가 단순한 형체나 골격의 외형적 유사성을 앞세우는 단선적이고 편협한 사실주의를 추구했다는 말이 아니다. 더욱이 그가 중국의 것을 거부한 채 오로지 우리 시대 우리 사람의 것만을 고집하며

‘시대가 오래 될수록 지역이 멀어질수록 더욱 그 참됨을 잃는다’

라고 한 말은 우리의 것, 조선의 것에 대한 자존심과 자심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시민의 이러한 주장은 박지원(朴趾源)이나 정약용(丁若鏞)이 산문과 시론에서 제창한 조선적인 것의 가치에 대한 인식보다 훨씬 이전 시대에 예술 전반에서의 조선적인 것, 현재적인 것의 가치를 적극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동포 김시민의 문예관 연구」(「동방한문학」제44집, 김영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