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과 서리


 

이슬과 서리

 

구 대기권에서 일어나는 기상현상에는 비·바람·눈·안개·서리·이슬·우레·구름·우박·무지개·황사 등이 있다. 이런 것들은 오늘날 과학에서 볼 때 파악하기 쉬운 것들이지만, 옛날에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이러한 기상현상이 평상시와 다르게 이변이 되었을 때, 그것을 가지고 인간사의 일을 점치기도 하였다.

따라서 자연현상에 대해 옛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졌던 견해는 첫째 그것이 일어나는 원리가 어떤 것인지 하는 것과 둘째 이변과 인간사가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파악하는 문제였다. 지금까지 소개한 「천도책」의 문제와 답은 모두 이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서리와 이슬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 첫 번째 문제는 이렇다.

 

“서리는 풀을 죽이고 이슬은 만물을 적시는데, 서리가 되고 이슬이 되는 까닭이 무엇인가?”

 

서리가 풀을 죽인다는 말은 풀이 서리를 맞으면 죽는 것을 의미한다. 늦은 가을 찬 서리가 풀 위에 앉으면 풀은 말라 죽고, 나뭇잎은 낙엽이 지기도 하고 말라서 떨어지기도 한다. 사실은 서리 때문에 풀이 죽은 것이 아니라 서리가 내릴 정도로 온도가 영하로 내려갔기 때문에 얼어서 죽은 것이다. 왜냐하면 서리란 영하의 기온에서 공기 중의 수증기가 땅에 접촉하여 얼어붙은 매우 작은 얼음이다.

이슬은 주로 봄철이나 여름철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갔을 때 공기 중의 수증기가 응결하여 풀이나 물체 위에 작은 물방울로 맺혀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만물을 적신다고 표현하였다. 여름철 차가운 음료수 병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서리와 이슬이 생기는 원리를 율곡은 뭐라고 답했을까?

 

“양기(陽氣)가 펴질 때에 이슬이 만물을 적시는 것은 구름이 축축하게 한 것입니다. 음기(陰氣)가 혹독할 때에 서리가 풀을 죽이는 것은 이슬이 동결(凍結)한 것입니다. 『시경(詩經)』에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갈대는 푸르고 푸른데, 흰 이슬은 서리가 된다.’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양기가 펴질 때’란 주로 봄철과 여름철을 말한다. 대개 양기가 펼칠 때 만물이 소생하여 무성하게 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슬은 봄과 여름철에 구름이 축축하게 했다고 하는데, 물론 틀린 생각이다. 잘 알다시피 이슬은 공기 중에 습도가 높고 구름이 없는 맑은 날 기온의 일교차가 클 때 잘 맺힌다.

음기가 혹독할 때는 늦가을부터 겨울철이다. 대개 찬 기운을 음기로 표현한다. 이때의 서리를 이슬이 동결한 것이라 표현한 것은 비교적 정확하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밤 동안 얼지 않고 맺히면 이슬이요, 얼어서 물건에 달라붙으면 서리가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은 이렇다.

 

“남월(南越)은 따뜻한 지방으로 6월에 서리가 내리는 것은 혹독한 괴변인데, 당시의 일을 상세하게 말할 수 있는가?”

 

남월은 지금의 중국 광동·광서 지방에 있었던 한나라 때의 나라 이름으로, 중국에서도 남쪽 지방에 속한다. 이 문제는 이슬이나 서리가 생기는 원리에 이어, 이변이 생겼을 때 인간사와 연결시키는 질문이다. 사실 첫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은 절기상으로 보면 입동(立冬) 바로 앞에 있다. 그런데 더운 여름철에 내린다면 이변이다. 여기서 6월이란 아마도 음력일 것이므로 양력으로 환산하면 대개 7월에 해당된다.

율곡의 답은 이렇다.

 

“음기가 극성하면 서리가 내립니다만, 간혹 서리가 제 때에 내리지 않기도 합니다. 당나라 때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조정에 임하자, 음·양의 위치가 바뀌어 남월(南越)은 지극히 따뜻한 지방인데도 6월에 서리가 내렸으니, 생각건대 이는 반드시 온 세상이 온통 몹쓸 음기(陰氣) 속에 갇혀서 그런 것 같습니다. 측천무후의 일은 말할 수 있지만 말하려면 길어집니다.”

 

여기서 측천무후는 중국에서 여성으로 유일하게 황제가 되었던 인물이다. 당나라 고종의 황후였지만 690년 국호를 주(周)로 고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15년 동안 중국을 통치한 인물이다. ‘음양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말은 여성이 황제가 된 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옛날에는 음양으로 사물을 두 가지 방식으로 분류하기도 했는데, 가령 양은 따뜻함, 남성, 군자, 임금, 강함, 적극성, 태양, 봄과 여름 등을 상징하고, 음은 차가움, 여성, 소인, 신하, 부드러움, 소극성, 달, 가을과 겨울 등을 상징했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가능했다. 전통적으로 음을 누르고 양을 붙들어 세우고자 하였다.

그러니 여성이 황제가 되었으므로 음의 기운이 왕성하여 6월인데도 서리가 내렸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것은 과학적인 판단보다는 상당히 정치적인 견해에 가깝다. 율곡이 정말로 여왕이나 여자황제가 있기 때문에 여름에 서리가 내린다고 믿었는지 알 수 없지만, 과거시험을 통해 수험자들에게 전통의 음양사상의 내용을 물었기 때문에 이렇게 답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참고로 조선후기 최한기(崔漢綺)는 이슬과 서리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땅의 습기가 높이 치솟지 않아 구름을 맺을 수 없어 지면에 흘러 다니다가, 해가 진 후 차가운 밤기운을 받아 상승했던 강한 힘이 소멸하고 아래로 떨어지는데, 이것이 이슬과 서리이다. 외부의 냉기가 많은 가을과 겨울에는 서리를 맺고, 외부의 냉기가 적은 봄과 여름에는 이슬을 이룬다. 하늘이 맑고 바람이 없으면 이슬이나 서리가 맺힐 수 있으나, 만약 바람이 불거나 흐린 날에는 기가 흩어져 서리나 이슬이 맺힐 수 없다. 물에 비유하면 흐름이 멈추어 있는 것은 쉽게 얼고 흘러 움직이는 것은 얼기 어려운 것과 같다
(최한기저|이종란 옮김, 『운화측험』, 한길사, 2014, 299쪽).”

이런 견해는 당시 서양과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19세기에 말한 것이므로 당연히 현대 과학의 견해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