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시징(郭始徵)1644∼1713 –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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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인조 22)∼1713(숙종 39). 조선 후기의 학자이다.

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숙(敬叔) 또는 지숙(智叔)인데, 처음 경숙이었다가 스승인 송시열에 의해 지숙으로 고쳤다. 세거지는 목천(木川)이며 호는 경한재(景寒齋)이다.

지난 호에 이어 여기서는 그이 대표적 시조인 <경한정감흥가(景寒亭感興歌)>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조는 곽시징이 지은 것으로 진동혁(秦東赫)에 의해 처음 학계에 소개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모두 24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일 제목으로 전해지는 시조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많은 작품 수로 구성되어 있다.

곽시징이 <경한정감흥가>를 창작한 시기는 기사환국 때 사사되었던 송시열이 갑술환국 이후 신원되자 태안에서 은거하던 그가 목천으로 돌아온 때였다. 그는 고향이 목천으로 돌아와 경한정(景寒亭)을 지어 은거하였는데, ‘경한’은 그의 스승인 송시열이 직접 써 준 것으로 스승을 기리기 위해 이것으로 편액을 한 것이다. 그는 이 곳에서 독서를 하기도 하며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때때로 자연을 완상하다가 즐거움이 지극하여 감흥이 일어나면 문득 시와 노래를 지어 자기의 뜻을 부치기도 하였다. 그는 단순히 자연을 노래하는데 그치지 않고 세교(世敎)에 목적을 두고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시와 노래를 지었던 것이다.

곽시징이 퇴계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과 율곡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의 영향을 받아 시조 <경한정감흥가>를 창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형식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시조의 효용성에 대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면 근심도 잊어버리고, 마음을 맑게 하기도 하며, 욕심도 적게 하기 때문에 ‘배움에 뜻을 둔 자’에게 보탬에 된다고 한 것이다.

즉 시조는 노래 부르는 자와 그것을 듣는 자에게 모두 유익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경한정감흥가>를 창작한 동기이다.

여기서는 율시 8구를 제목으로 하는 시조 가운데 5편을 살펴보기로 한다.

곽시징 poem1

이것은 ‘아유경한암(我有景寒菴)’의 취지를 해석한 시조이다. 제목만 놓고 보면 ‘나에게 경한암이 있다’라고 해석이 된다. 여기에는 경한암이라는 정자를 소유하고 있다는 정도의 정보밖에 없다. 나머지 정보는 시조에 실어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시조에는 경한정이 건립한 목적이 나와 있다. 내가 있는 경한암은 한천(寒泉)을 상상하며 주자의 도덕을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모하니 이에 밤낮으로 제자들에게 강학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설립하였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한천’이란 주자가 40대에 머물렀던 정자인 ‘한천정사(寒泉精舍)’를 뜻한다.

주자는 이곳 한천정사에서 사서삼경에 대한 주석의 대부분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 한천정사는 신유학을 집대성하는 중요한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래 한천은 주역의 수풍정괘(水風井卦)에 나오는 말로 중정지도(中正之道)를 지칭하는 말이다. 즉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경한암은 주자의 한천정사를 본떠서 지은 것으로, 이곳에서 주자학을 계승하고 이를 제자들에게 전수하겠다는 목적으로 지은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곽시징 poem1

 이것은 제목으로는 보면 ‘낙수가에 깃들어 산다네’ 정도로 해석을 할 수 있으나, 시조에는 낙수가에서 어떻게 깃들어 살고 있는가를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스승이 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세상과 인연을 끊은 곽시징은 이 세상의 부귀공명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바람과 달 등 자연을 벗삼아 생활하며 틈틈이 낙수가에서 낚시질을 하는 등 한가하게 사는 모습을 시조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곽시징 poem3

이 제목은 ‘군왕의 은덕으로 우물 파서 농사짓는다’이다. 이것은 농부로 초야에 묻혀 농사를 짓는 것을 생애로 삼아 아무런 걱정 없이 늙어갈 수 있는 것은 모두 군왕의 은혜임으로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한다는 취지로 시조를 지은 것이다.

곽시징 poem4

‘어버이의 은혜가 깊음을 풍수로 느끼노라’는 뜻의 제목 아래 ‘부모의 은혜를 갚으려 하나 다 갚을 수도 없고, 갚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돌아가셨으니 더욱더 갚을 길이 없다. 그래서 허물이나 적게 하여 부모의 명성에 욕 끼치지 않는 것이 그나마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이라는 뜻의 시조로 그 취지를 해석한 것이다.

곽시징 poem5

이것은 창작시기를 재구성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는 작품이다. 이 시조의 제목은 ‘달을 바라보며 형의 얼굴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것의 취지를 해석한 것이 시조인데, 거기에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형들에 대한 깊은 정이 나타나 있다. 곽시징의 네 형들 중에 아직 생존해 있으나 서호(西湖)와 결성(潔城) 등지에 떨어져 있어 만나지 못하는 두 형의 모습을 낙수의 맑은 연못에 비치는 달을 통해 떠올리게 되는 내용이다.

이상에서 보면 시조가 시여(詩餘)라는 명칭으로도 사용되듯이 한시구(漢詩句)만으로는 표현하기가 어려운 취지와 감흥을 우리말 가락에 얹어 충분히 풀어내고 있다. 이것이 이 시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곽시징의 <景寒亭感興歌> 연구」(시조학논총제29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