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선(朴燦璿)(1735~1796)


박찬선(朴燦璿)(1735~1796)                              PDF Download

 

의 자는 순옥(舜玉)이고, 호는 운영정(雲影亭)이며 본관은 진원(珍原)이다. 3,4세의 어린 나이에 이미 《천자문》을 읽었으며, 유년기(幼年期)에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서책를 읽고 문리(文理)를 깨쳤다는 소문이 나자, 고을 현감인 한만경이 그 소문을 듣고 와서 보고는 문방지구(文房之具)를 넉넉히 선사하였다. 문장(文章)뿐만이 아니라 서예(書藝)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남다른 효성이 있었다.

1765년(영조41)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에 입격하였고, 동궁책례일(東宮冊禮日)에 실시한 어제연구(御製聯句)에 참여하여 장원한 부상으로 병풍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종제인 찬영과 함께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독서와 자질(子姪)의 교육에 힘썼다.

김원행의 아들 삼산재(三山齋) 김이안(金履安),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등과 교유하면서 경사(經史)와 예문(禮文)에 대하여 많은 논의를 거쳐 학문을 연마하였다. 치산(治産)의 근검(勤儉)으로 흉년에 대비하여 걱정을 덜게 하였고, 고향 마을에 무너져 내린 효자의 정려(旌閭)를 극력 보수하여 수축하였고, 향약(鄕約)을 제정하여 풍속을 교화하고자 하였다. 1796년(정조20)에 62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그의 문집 《운영정유고(雲影亭遺稿)》 1권 1책은 신연활자본으로 1954년 고흥에서 출간되었다.

<참고문헌>
– 《미호집(渼湖集)》
– 《정조실록(正祖實錄)》
– 《이재유고(履齋遺稿)》 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