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의 수와 우박


 

눈꽃의 수와 우박

 

사람들도 자연현상의 원리가 어떤 것인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어떤 꽃들은 꽃잎의 수가 일정하다든가 또 눈꽃이나 얼음의 결정이 육각형을 띠고 있는지 그 원리를 알고 싶었던 것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러한 호기심이랄까 궁금증은 「천도책」의 질문에도 반영되어 있다.

 

“초목의 꽃잎은 다섯 잎으로 된 것이 많은데, 눈꽃은 유독 여섯인 것은 무엇 때문인가?”

 

꽃잎이 5장이 되는 식물에는 살구·복숭아·채송화·패랭이꽃·찔레·딸기·사과 등이 있고, 붓꽃은 3장이고, 달맞이꽃·냉이·무·배추 등은 4장이며 코스모스나 모란은 8장이다. 또 금잔화는 13장이고, 과꽃은 21장, 질경이는 34장이라고 한다. 꽃잎의 수가 반드시 홀수나 짝수에 한정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 눈꽃이 육각형인 것은 물분자의 구조와 관계있다고 한다. 곧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가 두 개로 이루어진 물분자가 동결될 때는 다른 물분자와 달라붙어서 안정된 형태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6각형을 띤다고 한다.

그렇다면 율곡은 어떻게 답했을까?

 

“초목의 꽃은 양기(陽氣)를 받았기 때문에 꽃잎이 다섯 장이 많은데, 다섯은 양수(陽數)입니다. 눈꽃은 음기(陰氣)를 받았기 때문에 유독 여섯이 되었으니, 여섯은 음수(陰數)입니다. 이 역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전통의 양수와 음수는 제각기 홀수와 짝수를 말한다. 오늘날 양수(+)와 음수(-)의 그것과 다르다. 율곡의 답은 전통의 양수와 음수 곧 홀수와 짝수를 가지고 초목과 눈의 꽃잎의 수를 설명했다. 만약 식물의 꽃잎이 모두 홀수로만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그나마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는 근거가 없다.

이어서 눈꽃이 여섯인 것은 음수로 음기와 관련시키고 그렇게 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눈꽃이 육각형 형태를 띤 것은 필연적인 자연의 원리이므로 근거가 있다. 그러나 이 논리로 보자면 모든 액체가 온도가 내려가 응고할 때 모두 짝수의 결정체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결정체의 분자구조를 밝히지 못한 이상, 음수와 양수를 유비적으로 사물에 적용한 것은 근대과학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그런데 자연현상 가운데 보기 드문 사례에는 우박·지진·해일·화산폭발 등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우박 외의 다른 것들은 흔한 일이 아니어서 이런 자연현상에 대한 질문은 없다. 그래서 우박의 문제를 내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우박은 서리도 아니고 눈도 아닌데 무슨 기(氣)가 모인 것인가? 어떤 것은 말의 머리만큼 크고 어떤 것은 달걀만큼 커서, 사람과 새와 짐승들을 죽인 것은 어느 때에 있었는가?”

 

이 문제에서 우리는 ‘우박은 어떤 기가 모여서 된 것인가?’라는 질문에 관심을 가져 보아야 한다. 두 가지 방향으로 문제를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순수한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우박이 생기는 원리를 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적 관점 또는 인간사회의 일과 관련시켜서 묻는 관점이다. 앞에서도 줄곧 이런 두 가지 패턴으로 질문했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기가 모인 것인가?’라는 질문은 형체가 있는 모든 사물은 기가 모여서 형성된다는 기철학적인 전제를 갖고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율곡의 답안은 이렇다.

 

“우박은 어그러진 기가 만든 것입니다. 음기가 양기를 위협하기 때문에 그 우박이 생길 때는 물건을 해칩니다. 옛일을 상고하면 우박이 큰 것은 말 머리만 하고 작은 것은 달걀만 하여, 사람을 상하게 하고 짐승을 죽였던 일은 전란이 심한 세상에 일어나거나 재앙의 기초가 되는 임금을 경고하기 위하여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역대의 경계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은 반드시 여러 번 진술하지 않더라도 이것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박은 적란운(積亂雲: 수직으로 크게 발달한 구름)이 발달되어 얼음알갱이가 형성되어 떨어지면서 과냉각된 구름 알갱이와 충돌하면서 얼어붙고, 또 상승기류를 만나 상승과 하강을 반복해 큰 얼음알갱이로 변해 떨어지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5㎜∼10㎝ 크기의 얼음 또는 얼음 덩어리이다.

여기서 율곡은 우박을 어그러진 기가 만든 것으로 보는데, ‘어그러진 기’의 원문은 여기(戾氣)이다. 이것의 반대는 ‘바른 기’ 곧 정기(正氣)이다. 그 여기를 한의학에서 괴려지기(乖戾之氣) 또는 독기(毒氣)라고도 말하며 감염증과 전염병을 일으키는 사기(邪氣)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다. 어째든 그 어그러진 기란 인간과 만물에 해가 되는 기로서 음기에 속한다고 보았다. 우박이 찬 얼음알갱이로 이루어져 있고, 찬 공기에 의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음기로 본 것은 당연하다.

고대의 인류는 기후나 날씨가 차가운 것보다 따뜻한 것을 선호했다. 그것은 당시에 기술적으로 난방시설을 잘 갖추지 못했고 또 몸을 따뜻하게 하는 옷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날씨가 추우면 농장물이나 가축이 잘 자랄 수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인류의 생산과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농업이 주요산업이었던 동아시아에서는 차가운 음기(陰氣)보다 따뜻한 양기(陽氣)에 더 가치를 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연의 영역에서도 양기를 선호하고 음기를 멀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박이란 그런 음기의 소산이다.

이런 음기가 왕성한 것은 비록 자연적인 현상이라 할지라도 인간사와 무관하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거나 포악한 군주가 있으면 경고하기 위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이점은 앞에서 여러 차례 밝혔기 때문에 율곡 자신도 더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 재차 강조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