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풍(金樂灃)1786∼1834


김낙풍(金樂灃)                                                             PDF Download

 

1786(정조 10)∼1834(순조 34). 조선 후기의 문신.

관은 의성(義城). 자는 적여(績汝), 호는 삼락재(三樂齋). 김섭(金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표로(金彪老)이고, 아버지는 김성(金城)이며, 어머니는 장학호(張學浩)의 딸이다. 김이안(金履安)의 문인이다. 김이안의 호는 삼산재(三山齋)으로 김창협(金昌協)의 증손자이며 김원행(金元行)의 아들이다.

1814년(순조 14)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이듬해평안도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이 되었으며, 온릉령(溫陵令)을 거쳐 예조좌랑과 호조정랑․병조정랑을 역임하면서 춘추관기사관을 겸하였다.

1822년 장령이 되었다가, 같은 해 종부시정 겸 편수관이 되어 선원보(璿源譜)를 찬수한 공으로 1823년 병조참의에 올랐으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1824년 돈녕부도정으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조선 중기의 예학의 대가인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예론을 열심히 따랐다. 김장생은 구봉 송익필(宋翼弼)에게서 예학을 배우고 후에 율곡 이이(李珥)에게 성리학을 배워서 유학의 거두가 되었다.

 

[참고문헌]

⌈순조실록(純祖實錄)⌋, ⌈철종실록(哲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매산집(梅山集)⌋, ⌈노사집(蘆沙集)⌋,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