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상(吳允常:1746년∼1783)


오윤상(吳允常:1746년∼1783)                         PDF Download

 

관은 해주(海州)이며 자는 사집(士執), 호는 영재(寧齋)이다. 대제학(大提學) 판서(判書) 순암(醇庵) 오재순(吳載純)의 맏아들로, 김원행(金元行)의 문하(門下)에서 글을 배웠다. 그는 성품이 온화하고 너그러웠으며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였고, 특히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다. 그가 아버지에게 올린 서간문을 통해서 그의 성품을 짐작해 볼 수 있겠는데, 그의 아버지가 청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아들에게 받은 것으로 보이는 서간문이 남아 있어서 참고가 된다. 먼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아버지에게 집안이 평안하니, 남은 여정도 무사하시라는 문안의 편지이다. 이 편지글에서 먼 길을 갔다가 돌아오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반가움, 그리고 집안 소식을 전하며 아버지의 걱정을 살피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또 평소에 책 읽기를 좋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차기(箚記)하였다. 호남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이는 오윤상이라며, 동문 박윤원(朴胤源)은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逸話)를 기록하고 있다.
박윤원이 오윤상에게,

“윤상이여, 공자(孔子)께서 ‘위편삼절(韋編三絶)’했다고 하는데 대단하지 않은가?”

하자, 그가 웃으며 대답하기를,

“성인도 반드시 나처럼 많이 읽지는 않았을 걸세! 공자께서 ‘위편삼절’했다지만 익숙하게 읽었다는 것일 뿐, 1만 번씩 읽지는 않았을 걸세! 성인은 지나치거나 모자란 일이 없으니[過猶不及], 책을 읽는 횟수도 중도(中道)에 맞았으리라!”

하였다.

실제로 그는 《상서(尙書)》는 2만 번,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傳)>은 1만 번을 읽었다고 한다. 학문에 뛰어나 두 아우를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경학(經學)에 정통하였고 여러 경전(經傳) 중에서는 《논어(論語)》를 제일로 삼았다고 한다. 그의 저서로는 《중용차기(中庸箚記)》와 《대학차기(大學箚記)》가 있다. 37세에 요절하였다.

그의 아내도 성품이 남달라서 성년이 되기 전부터 모두들 여중군자(女中君子)라고 칭찬하였다. 금슬(琴瑟)이 서로 좋았던 남편이 죽자, 그의 아내는 성복(成服)을 마치고 물 한 모금 미음 한술도 먹지 않다가 죽었다. 남편의 죽음을 애통해하던 아내의 이야기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문집에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다.

오윤상이 죽자, 유인은 애통해함이 도를 넘지 않았으며 염하고 입관할 때 쓰는 수의와 이불을 손수 재봉하니, 집안사람들이 처음에는 그가 따라 죽을 뜻이 초혼(招魂)하던 날에 이미 굳어져 있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성복(成服)을 하자마자 시부모에게 청하여, 처소를 밀실로 옮기고 이로부터는 이불을 쓰고 누워 다시는 하늘의 해를 보려 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과 말도 하지 않고 물 한 모금 미음 한 술도 입에 넣지 않았다. 시부모가 울며 거듭거듭 타이르면 마지못해 슬픈 빛을 거두고 몇 모금 마시고는 곧바로 생강탕을 복용하여 위장의 작용을 제거하니, 날이 갈수록 목숨이 꺼져 갔다. 주위 사람들이 비록 그가 창졸간에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게 목숨이 사그라지는 것은 누가 지키고 막는다고 해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시댁 쪽의 한 부인이 마음 돌리기를 바라고 달래며 말하기를,

“시부모님은 이미 늙으셨네. 자네가 따라 죽는 것도 옳은 일이나 남편의 평소 효성을 어찌 생각하지 않는가? 죽은 사람의 마음을 거듭 슬프게 하지 말게.”

하니, 유인이 울며 이르기를,

“내 어찌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리오마는 동서 두 사람이 있으니 봉양을 맡길 곳이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고는 시집올 때의 의상을 꺼내어 세탁하고 새로 꿰매어 수의를 갖추게 하고는, 마침내 시부모에게 인사를 올리고 집안사람에게 두루 영결을 고하고 얼굴 씻고 머리 빗기를 겨우 마치더니 마치 기름 다한 등잔이 꺼지듯 목숨을 거두었다. 이 소식을 듣고는 모두들 탄식하고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열녀로다, 이 사람이여! 기어코 죽었구나.”

라고 하였다. 이 기록은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에 <김유인(金孺人) 사장(事狀)>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 《근재집(近齋集)》
– 《연암집(燕巖集)》
– 《매산집(梅山集)》
– 《정조실록(正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청성잡기(靑城雜記)》
– 오윤상 간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