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별과 붙박이별


 

떠돌이별과 붙박이별

 

늘날 일식과 월식 그리고 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일은 천문학자나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 또 우주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이나 어린이들의 몫이다. 그 밖의 사람들 특히 정치가들은 별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별의 이동이나 변화가 인간사회의 문제와 전혀 관계없기 때문이다. 혹시 지구로 향해 달려오는 괴행성이 있다면 모를까 당장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별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의 관심거리가 못된다.

그런데 조선시대 하늘의 별이 과거시험 문제에 등장했다니, 어찌 보면 생뚱맞은 일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관리로서 꼭 알아야 할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이렇다.

 

“오성(五星)은 행성(行星)이 되고 여러 별은 경성(經星)이 되는 것을 또한 상세하게 말할 수 있는가?”

 

율곡의 「천도책(天道策)」에 등장하는 세 번째 질문은 이렇게 별을 묻는 질문이다.

여기서 오성(五星)이란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이며, 행성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동하는 별 곧 떠돌이별이다. 그 옛날 태양계 토성 바깥의 천왕성이나 해왕성은 망원경도 없어서 육안으로 발견하지 못했으니 오성까지만 떠돌이별이었던 것이다. 또 경성(經星)이란 한 곳에 머물러 있는 별로서 붙박이별이다. 참고로 옛날에는 해와 달도 하늘에서 이동한다고 보아 오성과 합쳐 칠요(七曜)라 불렀다.

그러니까 질문의 요지는 떠돌이별과 붙박이별이 있게 되는 이치를 물은 질문이다. 이에 대한 율곡의 답은 어땠을까?

 

“저 반짝거리고 깜빡거리는 별에 제각기 궤도와 차례가 있는 것은 어찌 원기(元氣)의 운행이 아님이 없겠습니까? 뭇별들은 하늘을 따라 운행하지 스스로 운행하지 못하므로 경(經: 날)이라 말하고, 오성(五星)은 때를 따라 제각기 나타나고 하늘을 따라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위(緯: 씨)라고 말합니다. 하나는 정해진 차례가 있고 하나는 일정한 도수(度數)가 없습니다. 대체로 말하면 하늘은 경(經: 날)이 되고 오성은 위(緯: 씨)가 됩니다. 그 상세한 것을 말한다면 한 장의 종이에다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율곡의 답안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가? 동아시아 전통과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알 수 있지만, 그것에 문외한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당시 우주관을 하나씩 살펴보아야 한다.

앞에서 당시 천문학이 하늘은 둥글고 땅이 네모지다는 천원지방을 배경으로 하는 천동설이라고 말했다. 물론 서양에서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오기 전까지는 하늘이 움직인다는 천동설이었다.

바로 율곡도 하늘이 움직인다는 당시 설을 따랐는데, 그 하늘이 움직이는 원인이 원기(元氣)에 있다고 보았다. 원기는 기철학에서 우주에서 만물을 구성하는 가장 원초적인 물질의 근원이자 생명의 원천으로서 기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하늘이 도는 것은 기가 돌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사실 그것은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보이는 하늘의 겉보기운동이다.

여기서 ‘뭇별들이 하늘을 따라 운행하지 스스로 운행하지 못한다.’는 말은 천체 상에서 위치를 바꾸지 않는 별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보통 항성(恒星)이라 일컫는 별이다. 이 별들은 지구의 자전에 따라 하루에 한 바퀴 도는 것처럼 보이며, 또 지구의 공전 때문에 계절에 따라 자리가 바뀌어 보일 뿐, 서로 간의 위치의 이동은 없다. 그래서 경성(經星)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그 경(經)이란 ‘날실’이라는 뜻으로 베틀에서 옷감을 짤 때 세로 방향으로 매인 실을 뜻하는 말이다. 이 날실은 이동하지 않는다.

반면에 베틀에서 가로 방향으로 들락날락하는 실을 ‘씨실’이라 부르는데 이것처럼 하늘에서 이동하는 떠돌이별을 위성(緯星)이라 부르며 다섯 떠돌이별이니 오위(五緯)라 했던 것이다. 오위는 경성과 달리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자체로 움직이는데, 사실 이 별들도 지구처럼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는 정해진 차례가 있고 하나는 일정한 도수(度數)가 없습니다.’라고 말을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경성을 말하고 후자는 오위를 말했으며, ‘대체로 말하면 하늘은 경(經: 날)이 되고 오성은 위(緯: 씨)가 됩니다.’라는 말은 하늘의 운동과 경성의 운동이 일치한다고 보았고, 오성은 베틀의 씨실처럼 자체로 이동하는 것을 말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우주는 보는 관점은 중세 서양과 비슷한 점이 많다. 중세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학을 이었는데, 이 또한 지구 중심의 천동설이었다. 달-수성-금성-태양-화성-목성-토성, 그리고 항성(恒星)이 차례로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여겼다. 바로 오성에 해당하는 것이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이고, 경성(經星)에 해당하는 것이 항성(恒星)이었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 때부터 이미 지구가 둥근 것을 알았고, 하늘이 움직이는 것은 항성 바깥에 종동천(宗動天, 또는 原動天)이 있어서 그것이 최초의 원인자로서 모든 하늘의 움직임을 이끌어 낸다고 생각했다. 중세 때에는 종동천이 하느님과 천사들이 살면서 여러 하늘을 움직임을 주관한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당시 서양인들이 생각한 우주는 여러 개의 둥근 원과 같은 하늘이 지구를 중심으로 겹쳐져 있는 닫힌 우주였다.

그런데 율곡은 ‘그 상세한 것을 말한다면 한 장의 종이에다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여 우주의 모습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지 않았는데, 북송 때 장재(張載)의 말에 보면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말하고 있고, 조선전기 서경덕(徐敬德)도 그 이론을 받아들였다.

곧 우주는 기로 채워져 있고 만물은 기가 만들었다고 한다. 땅이 우주의 중심이고 태양과 달과 별은 하늘에 매달려 있다고 여겼다. 양기(陽氣)는 능동적으로 움직여 펼치는 기로서 그 운동이 극에 도달하면 양기의 정수(精髓)가 쌓여 태양이 되었고, 음기(陰氣)는 수동적으로 움츠려 모이는 응취(凝聚)하는 성질을 지녔으므로 그것이 극에 도달하면 그 정수가 쌓여 달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도 남은 찌꺼기는 별이 되었으며, 땅에서는 불이나 물 등이 각각 양기와 음기로서 존재한다고 한다고 보았다.

율곡이 말하지 않은 ‘그 상세한 것’이 혹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