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행(金砥行)


김지행(金砥行)                                                             PDF Download

 

171716(숙종 42)~1774(영조 50). 조선후기의 유학자이다.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유도(幼道)이며, 호는 밀암(密庵)으로 김시정(金時淨)의 아들이다. 병계 윤봉구(1681~1767)에게서 수업을 받았으며, 학문도 「소학(小學)」·「심경(心經)」 및 사서(四書)․육경(六經) 등에 두루 통달하기 않음이 없었다고 한다. 「밀암선생문집」이 전해진다.

밀암선생문집」은 조선후기의 학자인 김지행의 시문집이다. 18권 9책으로 필사본이다.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찬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판본의 내제지에 ‘원본소장자(原本所藏者) 경성(京城) 김인진(金寅鎭), 등사년월(謄寫年月) 소화(昭和) 14년(1939)’의 기록을 통해, 6대 종손인 김인진(생몰 미상)이 소장한 원본을 1939년에 등사한 판본임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규장각 도서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로, 아들 김이수(金履脩)가 아버지 김지행의 언행(言行) 140여 편과 문경(文經) 5권을 채록하고, 조카 김이홍(金履弘)이 보유(補遺) 42장, 시 90여 수, 부․제문․잡저․서 40편을 채록하였으나 간행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밀암선생문집」은 6대 종손 김인진(金寅鎭)이 소장한 등사본(謄寫本)으로, 저자의 아들 김이수와 조카 김이홍이 정리한 것의 관계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권1·2에는 시 97수가, 권3∼6에는 서(書) 68편이, 권7∼9에는 「사문질의(師門質疑)」로 어록조품(語錄條稟)·어록조대(語錄條對)·강설문대(講說問對), 권10에 잡지(雜識), 권11∼15에 잡저 26편, 제문 4편, 행장 2편이, 권16에는 서(書) 1편, 잡저 1편이, 권17~18은 부록으로 권17에는 「계하견문(溪下見聞)」, 권18에는 제문 8편, 만사·묘지명·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 등사기(謄寫記)가 있다. 특히 「사문질의」나 제문 등은 18세기 지식인들 간의 상호 교류와 학문경향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는 각종 자료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주목된다.

시는 스승 윤봉구(尹鳳九)의 심성(心性)을 논한 시에 화답해 지은 시 23수, 송나라의 대학자 주희(朱熹)의 글을 읽고 느낌을 시로 표현한 것, 주희의 도설(圖說)과 성리학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소재로 하여 지은 시 등이 있는데, 이것은 김지행이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음을 보여준다. 시에는 대개 서문을 붙여 그 시를 짓게 된 동기를 밝혔으며, 성현의 말을 인용할 때는 세주로 달아서 전거를 밝혔다.

특히 「화정구암선생논심성시(和呈久菴先生論心性詩)」에는 각 수마다 장편의 해설을 덧붙여, 저자의 성리학설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밖에 한거하면서 느끼는 감회를 읊은 시와 윤봉구의 동생 윤봉오(尹鳳五)와 윤계정(尹啓鼎)·윤심위(尹心緯)·홍양명(洪陽明) 등의 시에 차운(次韻)한 것이 있다.

서(書)는 윤봉구·윤심위·윤창정(尹昌鼎)·임성주(任聖周)·임정주(任靖周)·홍주종(洪柱宗) 등 당대의 유명한 학자들과 주고받은 것이 대부분이다. 성(性)·리(理)·오상(五常) 등 성리학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토론한 장편의 편지가 많다. 「사문질의」는 스승으로부터 성리학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 내용과 질의·응답한 내용을 기록한 글이다.

잡지는 성리학의 중요한 개념들에 관한 주희·정호(程顥)·장재(張載) 등의 설을 인용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내용이다. 또한 종형 김원행에게 보낸 편지에는 화양서원(華陽書院) 묘정비(廟庭碑) 건립 건에 대한 장문의 글이 있다. 당시 윤봉구가 죽고 발견된 화양 비문(碑文)의 내용을 두고 시비 논쟁이 벌어졌는데, 화양서원 원유(院儒)들은 건립을 주장하는 반면, 원장이던 김원행은 이를 중지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김지행은 이 편지에서 비문 새기는 것을 중지시킨 처사의 부당함을 논하고 스승을 위해 변론을 하고 있다.

권11∼14의 잡저에는 「이정전서」·「주서절요」·「주자어류」 등의 성리학 서적과 만동묘(萬東廟)의 비문의 구절에 해설을 붙이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 글, 권익관(權益寬)의 성설(性說)과 왕양명(王陽明) 등의 글을 읽고 비판한 글, 그리고 일상생활 및 학문하는 가운데 꼭 지켜야 할 사항을 모아놓은 글 등이 있다.

권15의 잡저에는 자서(自序)·부(賦)·찬(贊)·잠(箴)·명(銘) 등이 있다. 그 가운데 설은 아들 김이수(金履修)의 이름을 풀이한 글과, 송나라 고종의 세실(世室)에 대한 주희설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이다. ‘찬’은 심학(心學)과 주역에 관한 글이다. ‘잠’은 신독(愼獨)·존덕성(尊德性) 등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것을 경계하여 지은 것이다. ‘신독’은 「중용」에 나오는 구절로 홀로 있을 때라도 삼감으로써 자신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공부방법이다.

‘존덕성’ 또한 학문을 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써 도문학(道問學)과 대조된다. ‘도문학’은 글자 그대로 묻고 배우는, 즉 이목기관으로 보고 듣고 사고하여 객관대상을 고찰해나가는 공부이다. ‘존덕성’은 마음의 덕성을 보존하는, 즉 마음속에 본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본성을 자각해나가는 공부이다.

권16의 서(書)는 윤창정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보낸 별지로, 오상에 대해 논의하였다. 부록의 「계하견문」은 아들 김이수가 아버지에 관하여 들은 이야기, 아버지의 언행과 가르침 등을 적어 놓은 글이다. 이는 조선 후기의 성리학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밀암문집(密庵文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