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金命喜)-2


김명희(金命喜)-2                                                     PDF Download

 

[su_dorpcap}17[/su_dropcap]1788(정조 12)~1857(철종 8)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원(性源), 호는 산천도인(山泉道人) 또는 산천(山泉)이다. 김노경(金魯敬)의 아들이며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동생이다. 송계간(宋啓榦)의 문인이다.

작년에 이어 여기서는 치원(巵園 황상(黃裳, 1788~1863)의 시에 대한 김명희의 해석을 소개한다. 황산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 강진에서 가르친 읍중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정약용의 유배기는 읍내시절과 초당시절로 구분되는데, 시기에 따라 모여든 제자들의 성격도 달랐다. 읍중 제자들은 아전가 출신이었으며, 초당 제자들은 해남윤씨를 주축으로 하는 양반가 출신이었다. 황상은 15세에 장약용 문하에 들어가 매우 성실하게 수학하였고, 정약용으로부터 남다른 촉망을 받기도 하였다. 따라서 정약용의 시학을 계승한 황산에 대한 김명희의 평가를 소개한다.

황상의 시가 사가(四家)와 흡사하다는 세인의 평가에 대하여 김명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가’는 두보(杜甫)․한유(韓愈)․소식(蘇軾)․육유(陸游)를 말한다.

 

“황상이 50년 동안 오로지 네 사람에게 마음을 쏟았다는 점에서 멀리서 구해보면 두보와 같고, 한유와 같고, 소동파와 육유와 같고, 가까이에서 구하면 다산과도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따라 지은 것이 없으니 황상의 시가 될 뿐이다.”

 

김명희는 황상이 50년간 두보․한유․소식․육유를 진심으로 따랐다는 점에서 일단 그의 시가 ‘사가’와 흡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동생인 추사 김정희도

 

“심지어 사람들이 칭송하는 두보와도 같고 한유와도 같으며 소식과 육유와도 같다는 것을 장황히 늘어놓아 찬양하였다”

 

고 말하여, 김명희가 세인들의 평에 전적으로 동의한 듯 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김명희는 세인의 평에 만족하지 않고 황상의 시가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두보도 아니고, 한유도 아니고, 소식과 육유도 아니고, 아울러 다산의 시도 아니다’라고 하여 ‘사가’나 다산의 시와 같다는 세인의 평을 부정하는 결과로 나아간다. 김명희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가 50년간 네 사람에 전심하여 이 네 사람에게서 침식을 하였으니 이른바 ‘다른 것을 보지 않으면 자연히 그곳으로 옮겨간다’라는 것이다. 감정과 뜻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고 시간적․공간적 환경이 외부에서 닥쳐오면, 네 사람에게서 능히 심신(心神)으로 깨달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실체가 있는 말이 앞으로 달려 나오고 뿜어져 나와 능히 작품을 이루게 된다. 이것은 두보의 시도 아니요, 한유의 시도 아니요, 소식과 육유의 시도 아니요, 아울러 다산의 시도 아닌 것이다. 이것이 네 사람을 잘 배운 것이며 또한 다산을 잘 배운 것이 아니겠는가?”

 

황상이 50년간 네 사람을 따른 것에 때해 김명희는 ‘다른 것을 보지 않으면 자연히 그곳으로 옮겨간다’는 관자(管子)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관자는 사농공상이 섞이지 않고 따로 모여 살게 하면, 다른 것을 보지 않게 되어 각각 전공하는 바가 자연스럽게 전수된다고 주장하였다. 김명희는 황상이 어려서부터 네 사람의 시만을 익혀 그 속에서 인격이 형성되고 자연스럽게 시재(詩才)도 체득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지에서 시를 짓게 되면 심신(心神)으로 네 사람과 소통하는 가운데, 자신의 감정과 의식, 그리고 자신이 처한 현실들이 자신도 모르게 시로 분출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김명희는 시인의 진실성이란 원칙론에 입각해서 황상 시의 독자성을 설명한다.

“대저 사람이란 각자 감정이 있고, 또 각자 뜻이 있으며, 만나는 때와 처하는 경우가 또 각각 같지 않다. 그러나 뒷사람들의 말이 반드시 앞사람과 다 똑 같지 않는 것은 그 말에는 실체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김명희는 말(言)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시로 바꾸어 이해할 수 있다. 시인마다의 정이 있고, 또 각기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후대 시인의 시는 앞 시대 시인의 시와 당연히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논리를 따른다면, 어느 시인이 어느 시인과 같다는 것은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이 된다. 그 이유에 대하여 김명희는 「주역」의 ‘말에는 실체가 있다(言有物)’는 말을 근거로 든다. ‘언유물’이란 언어가 어떤 실체나 실상에 근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성이 있으면 실체가 있고, 정성이 없으면 실체가 없다
(誠則有物, 不誠則無物)’

는 말을 참조한다면, 시인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 자신이 처한 시대와 현장에 진실로 충실하다면 그의 시는 실체가 있는 것을 표현한 것이 되며, 따라서 어느 누구의 시와도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명희가 시인의 진실성이라는 원칙론에 입각하여 황상 시의 독자성을 또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시란 반드시 자기에게 절실하고 시대에 절실하고 사실에 절실하여서 하나하나가 다 실지의 것을 갖춘 뒤에야 점차로 화공(化工)에 가까워질 수 있다.”

 

즉 자기 자신과 시대와 사실에 절실해야만 자연의 조화와 같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명희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 자신이 처한 시대와 현장에 충실해야 된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을 지닌다.

이처럼 김명희가 시인의 진실성을 강조한 점은 황상이 다산의 ‘시사(詩史)’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자신의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다산과 황상은 동일한 시기, 강진이라는 동일한 공간에서 혹 동일한 사건을 다루기도 하였지만 황상이 자신의 처지와 정서에 진실했다면 황상의 시는 다산의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김명희는 ‘황상의 시가 다산가문의 규범을 떠나지 않았으면서도 서로 비슷한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김명희는 황상을 사법 대상으로부터 독자성을 획득한 개성적 시인이자, 자신의 감정과 의식 그리고 자신치 처한 시대와 현실에 충실한 시인으로 평가하였다.

[참고문헌]: 「다산 시학의 계승자 黃裳에 대한 평가와 그 의미-추사 김정희와 산천 김명희의 巵園遺稿序 분석-」(이철희, 「대동문화연구」제53집,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