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택환(安澤煥, 1844~1917)


안택환(安澤煥, 1844~1917)                               PDF Download

 

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송병선은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으로 1905년 을사늑약에 비분강개하며 스스로 자결한 순국지사이다. 그는 송시열 – 권상하 – 한원진 – 송능상 – 송환기, 김정묵 – 송치규 – 송달수, 송근수 – 송병선, 송병순으로 이어지는 학맥의 계승자이다.

송병선은 국운을 회복시키기 위해 우선은 동지들을 규합하여 세를 이루고, 사상적 무장을 확대하고자 제자들을 양성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는 이를 위하여 유림들이 모이는 자리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조선을 사상적으로 지탱해 온 성리학적 유교질서를 전파하고, 정신적 무장을 강조하면서 진취적인 기상을 불어넣었다. 1867년 옥천 이지당(二止堂)에서의 강회활동을 시작으로 기국정, 고암서당 등지에서 강회를 개최하고, 성주의 노강 등지에서 향음례를 행하고, 무주 구천동의 서벽정을 중건하여 강학하기도 하였다.

본관은 죽산(竹山)으로 자는 여은(汝恩)이고 호는 삼희당(三希堂)이다.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의 9대손으로 아버지는 안순(安栒)이고 어머니는 수원 백씨(水原白氏) 백진훈(白鎭勳)의 딸이다.

안택환은 자질이 순박하고 성품이 인후하였다. 어려서 백부(伯父) 안숙(安橚)에게 배웠고, 1888년(고종 25)에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98년 4월에 송병선이 월출산과 천관산을 유람할 때 여러 날을 배종하였으며 향음 주례(鄕飮酒禮)에도 참여하였다. 1902년 7월에 최익현(崔益鉉)이 하동 쌍계사에 머문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시국의 의리를 강론하였다. 1908년에 송병순(宋秉珣)을 찾아가 몇 개월을 머물며 강론하였고, 만동묘(萬東廟)의 제향에 관한 일을 논의하였다.

유저로 『삼희당유고(三希堂遺稿)』를 남겼으나 아직 간행되지 못하고 초고본으로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