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레와 벼락은 누가 만드나?


 

우레와 벼락은 누가 만드나?

 

레와 번개가 치면 사람들은 습관처럼 두려워한다. 빛과 소리가 사람의 눈과 귀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 옛날 공자도 천둥이 울리면 얼굴빛이 변하며 자다가도 일어나 의관을 갖춰 입고 바로 앉았다고 전한다. 우레 소리에 삼가고 두려워하는 모습이 아닐까? 이것은 오늘날처럼 전기방전에 따른 단순한 기상현상이라는 사실을 그 옛날에는 몰랐기 때문에 생긴 일로 보이며,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우레와 번개에 대해 여러 가지 신화적 또는 미신적 견해가 생기게 되었다.

옛날에는 통속적으로 우레와 번개를 다스리는 신이 있었다고 여겼는데, 그것을 뇌공(雷公) 또는 뇌사(雷師)나 뇌신(雷神)으로 불렀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제우스나 유피테르가 우레를 일으키며 손에는 뇌정(雷霆)과 왕홀(王笏)을 가진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이런 번개나 우레의 원인이나 원리를 얼마나 실제와 가깝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태도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율곡의 「천도책」에서 묻는 이번 문제는 바로 우레와 벼락에 관한 것이다. 그 첫 번째 질문은 이렇다.

 

“우레와 벼락은 누가 이를 주재(主宰)하여 그 빛이 번쩍번쩍하고 그 소리가 두려운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문제에서 ‘누가 이를 주재하며’라는 말은 분명 어떤 인격적인 존재가 우레나 번개를 주재한다는 옛 신화 또는 종교적 흔적이 남아 있는 표현이다. 아니면 시험관이 이 자연현상을 수험생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파악하고 있는지 묻는 함정일 수도 있다.

율곡의 답안은 이렇다.

 

“양기가 발산한 뒤에 음기가 양기를 싸서 양기가 나오지 못하면, 떨치고 쳐서 우레와 번개가 됩니다. 우레는 반드시 봄과 여름에 일어나니, 이는 천지의 노한 기운입니다. 빛이 번쩍이는 것은 양기가 발하여 번개가 된 것이요, 소리가 두려운 것은 두 기가 부닥쳐서 우레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반드시 어떤 누군가가 그 벼락 치는 권한을 잡고 주관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이치에 맞지 않게 따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 답안을 여기까지만 읽어보면 신화적·종교적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음기와 양기로서 나름의 합리적 견해로 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자연현상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을 설명할 때 기(氣)를 사용한다. 그래서 양기와 음기로써 설명해내었는데, 뻗어나가는 양기와 움츠려드는 음기의 성질을 가지고 설명했다. 실제로 양전하(+)와 음전하(+)의 방전현상으로 생기는데 번개는 빛이고 소리는 우레이다. 여기서 단지 방전현상이라는 것만 몰랐지 두 기가 관계해서 생긴다는 견해는 실제에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

17세기까지도 서양 사람들 가운데는 번개를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따랐는데, 이렇게 말하였다.

“건조하고 더운 공기가 이미 차가운 구름 안에서 막혀서 이리저리 날라 다니면서 충돌하기 때문에, 불에 타면서 빛이 생기므로 번개가 된다
(알폰소 바뇨니 저|이종란 옮김, 『공제격치』, 한길사, 2012. 참조).”

이 또한 천둥과 번개가 전기방전이라는 점을 몰랐기 때문에 이렇게 설명했던 것이다.

우레에 관한 두 번째 질문은 벼락에 대한 것으로 옮겨간다.

 

“간혹 사람이나 물건이 벼락을 맞는 것은 또 무슨 이치인가?”

 

오늘날에도 우리는 가끔 야외에서 등산을 하거나 골프를 치다가 벼락을 맞았다는 뉴스를 접할 때가 있다. 그 사람들은 왜 벼락을 맞았을까? 그들에게 도덕적으로 나쁜 죄가 있어서일까?

율곡의 답안은 이렇다.

 

“예전 선비들이 말하기를, ‘우레와 번개는 음양의 정기(正氣)라, 겨울잠 자는 동물이 놀라서 깨어나게도 하거나 간사한 사람을 치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본디 사기(邪氣)가 모인 것이 있고 물건에도 역시 사기가 붙어 있으니, 정기가 사기를 치는 것은 또한 당연한 이치입니다. 공자께서 심한 천둥이 칠 때면 반드시 얼굴빛이 변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물며 마땅히 벼락이 쳐야 할 곳에 친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상(商)나라의 무을(武乙)에게, 또 노(魯)나라의 이백(夷伯)의 사당에 벼락이 친 것에 대해 이런 이치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을 가치중립적으로 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유학자들은 비록 인격적인 신이 자연의 운행을 주관한다고 믿지는 않았지만, 자연의 이법이나 원리에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그래서 정기(正氣)란 지극히 공평하고 크고 바른 천지의 원기(元氣)로 여겼으며, 반면에 사람과 물건에 바르지 못한 나쁜 기운인 사기(邪氣)도 있다고 여겼다. 이런 사기가 있는 까닭은 기의 운동과 변화과정에서 치우치거나 막히거나 거칠거나 어둡거나 잡된 것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벼락은 정기가 사기를 치는 것이라 여겼다.

여기서 무을은 상나라의 무도한 왕인데, 가죽 주머니에 피를 넣어 나무에 매달아놓고 활을 쏘아 맞히고는 ‘내가 하늘과 싸워 이겼다.’라고 했다가 들에 나갔을 때 벼락에 맞아 죽었다고 전한다. 또 노나라 대부 전씨(展氏)의 조상인 이백(夷伯)의 사당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기록을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것을 두고 하늘이 벌을 주었는데, 전씨에게는 다른 사람이 모르는 죄악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튼 조선시대까지 천둥과 번개를 비롯한 자연현상을 보는 것에는 인간의 도덕적 관점이 녹이 있다. 오늘날도 누구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흔히

“야, 이 벼락을 맞아 죽을 놈아!”

이렇게 말하는데, 바로 이런 자연관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조선후기 홍대용의 글에서도 이런 점이 발견된다.

“무릇 우레는 그 성질이 굳세며 세차고 그 기세는 떨치며 맹렬하여, 바르고 곧은 것은 피하고 부정하고 악한 것에 반드시 달려간다. 대개 바르고 곧은 것은 우레가 두려워하고, 부정하고 악한 것은 우레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의산문답』).”

여러분은 아직도 죄 있는 사람이 벼락을 맞는다고 믿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