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의 천재성

 

(3) 율곡의 천재성

강민우: 율곡선생님은 49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정확하게 계산해보면 47년하고 21일간의 짧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밝은 빛은 오래가기 어려운 것처럼, 천재적 자질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선생님의 천재적 자질은 3살 때 말을 배우면서 곧바로 글을 읽을 줄 알았다는 등 여러 일화가 전해집니다.

율곡: 저는 강릉 외가에서 태어난 이후, 여섯 살(1541)에 서울로 올라올 때까지 외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서울에서 생활하다 강릉에 내려가면, 외할머니께서 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3살 때 말을 배우면서 곧장 글을 읽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살 때 인근의 스승에게 나아가 간략하게 기술한 역사책인 사략(史略)을 배웠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스승을 찾아가 글을 배우기도 하였으나, 주로 어머니한테서 글을 배웠습니다.

강민우: 일찍부터 천재성이 드러나 별달리 애쓰지 않고도 학문이 날로 성취되어, 7세 때는 유학의 기본 경전인 논어(論語)․맹자(孟子)․중용(中庸)․대학(大學) 등을 비롯한 여러 경전과 역사서 등에 통달했다죠.

율곡: 저는 어려서부터 책읽기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책 속에 들어있는 성현의 말씀이 저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선대의 고향인 파주 율곡촌 인근 임진강 강변 언덕 위에는 저의 5대조인 이명신(李明晨)이 세운 정자로 화석정(花石亭)이 있습니다. 저는 화석정의 풍경을 좋아하여 즐겨 찾았으며, 그때 제가 손수 심은 노송나무 아홉 그루가 있었는데, 뒷날 모두 베어졌다고 합니다.(金平默, 重菴集, ‘花石亭, 次栗谷先生韻)

강민우: 8세 때의 가을에 화석정에 올라 시를 한 수 짓기도 하셨습니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율곡: 그때를 회상하며 한번 읊어보겠습니다.

숲 속 정자에 가을은 어느 덧 저무는데, 林亭秋已晚,
시인의 상념은 끝없이 일어나누나. 騷客意無窮.
멀리 흐르는 물 하늘에 닿아 푸르고, 遠水連天碧,
서리 맞은 단풍은 햇볕 향해 붉었네. 霜楓向日紅.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내고, 山吐孤輪月,
강은 만 리의 바람을 머금네. 江含萬里風.
변방의 기러기 어디로 가는지, 塞鴻何處去,
저무는 구름 속에서 울음소리 끊어지네. 聲斷暮雲中. (「花石亭」)

강민우: 제자인 김장생(金長生)이 지은 율곡선생의 「행장」에는 “일찍이 화석정에 올라가 시를 지었는데, 그 격조가 높아 시에 능숙한 사람이라도 능히 따를 수 없었다”라는 시평을 남겼습니다. 당시에 얼마나 유명세를 탔는지 짐작이 갑니다.

율곡: 과찬이십니다.

강민우: 17세기에 활동한 이식(李植)이라는 학자도 율곡선생님의 학문과 문장에서 보인 천재적 조숙함에 대해 “나면서부터 신비롭게 큰 뜻을 가졌으며, 총명하고 지혜로웠다. 7세에 이미 경서에 통하고 글을 지었으며, 문장이 성숙하여 일찍이 이름이 사방에 알려졌다.”(李植, 「澤堂雜槀」)라고 평가했습니다. 한 마디로, 선생님의 소년시절 행적에 대한 기록들은 모두 천재적 자질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무 일찍부터 천재성을 드러낸 것이 오히려 일찍 돌아가게 된 사실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율곡: 저는 19세에 금강산에서 나와 강릉 외가에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이듬해 21세(1556) 봄에 서울로 돌아와 소과(小科) 과거시험인 한성시(漢城試)에 응시하여 책문(策文)을 시험보았는데 장원으로 뽑혔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과거시험에 응시하면서 벼슬에 나아갈 뜻을 가졌습니다.

강민우: 선생님이 보셨던 과거시험은 오늘날 공무원 시험에 해당되는 듯합니다. 공무원은 주로 국가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역할을 합니다. 과거시험에서 율곡선생님은 ‘책문’이라는 주제에서 최고의 답안을 작성하셨습니다. 책문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요. 오늘날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입니다.

율곡: 조선시대의 과거는 임금이 국정운영을 위해 필요한 인재를 선발하는 중요한 시험입니다. 과거시험은 여러 단계로 진행되는데, 시험의 최종 단계인 전시(殿試)에서는 임금이 직접 등용될 인재들에게 당시의 현안들을 제시하고, 그 해결책을 묻는 시험을 치룹니다. 이때 제시된 현안은 정치․경제․군사․문화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이 시험에서 예비 선발자들은 현안 해결을 위한 다양한 대책들을 글로 쓰는데, 이 글을 책문(策文)이라 합니다.

강민우: 책문은 임금에게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학식을 바탕으로 당시의 시대적 현안에 대한 소신과 포부를 마음껏 펼치는 토론의 장이 되겠군요. 책문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습니까.

율곡: 책문은 임금이 제시한 제목에 대답하는 글이기 때문에 일정한 형식에 따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신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臣對)”라는 말로 시작하며, “보잘것없는 말들이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말씀드립니다”와 같은 식의 겸사를 쓰며, “신이 삼가 대답합니다(臣謹對)”라는 예를 갖춘 말로 마무리합니다. 또한 책문을 작성할 때는 반드시 사서(四書)․오경(五經)과 같은 유교 경전과 역사서에 근거하여 대답해야 합니다. 이러한 문헌들을 인용하여 이상적인 사회는 어떠해야 하며, 임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립니다.

강민우: 선생님의 천재성에 대해서는 이것으로 마치고, 당시 최고의 유학자인 퇴계선생과의 만남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