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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와 금장태의 저술 비교 1 저자와 목차

 

이병도의 『율곡의 생애와 사상』과 금장태의 『율곡 평전』 1 :

저자와 목차의 비교

 

 

1) 저자 비교

 

이병도(1896∼1991)는 경기도 용인군 출신으로 1914년에 보성전문학교 법률과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1919년에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문학부 사학 및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서울대 교수, 문교부 장관(1960년 4월 ~ 1960년 8월) 등을 지냈다.

그는 문헌고증을 위주로 한 한국사 연구 전문가인데, 일제시대인 1925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한 경력이 있으며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가 있다.

초기에 그는 한사군(漢四郡)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지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였으며, 나중에는 한국사상사, 특히 율곡 이이와 도참사상, 한국 유학사상 등에 관한 연구물을 발표하였다. 신라사, 고대사, 중세사 등에도 흥미를 가지고 연구하였다.

주요저서로는 『역주 삼국사기』(1941), 『조선사대관』(1948), 『고려시대의 연구』(1948), 『국사와 지도이념』(1955), 『역주 삼국유사』(1956), 『한국고대사회와 그 문화』(1972), 『율곡의 생애와 사상』(1973), 『한국고대사연구』(1976), 『한국사의 이해』(1984), 『조선유학사략』(한문본, 1986) 등이 있다.

 

이병도는 특히 율곡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1)「학계에 자랑할 동방의 대철인 이퇴계와 이율곡」, 『別乾坤』통권12-13합호, 1928

2)「유학사상으로 본 율곡 선생」, 『朝光』3권 2호, 1937

3)「이율곡 론」, 『思想界』제2권 제1호, 1954

4)「율곡선생의 향약과 계, 상중하」, 『食糧과農業』제1권 제1-3호, 1957

5)「이율곡과 그의 경세사상」, 『행정논총』7(2), 1969

 

한편, 『율곡 평전』의 저자 금장태(1944∼)는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철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77년부터 동덕여자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 부교수를 거쳐 1985년부터 2009년까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에서 교수로 재임하였다.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종교학과에서 유교를 담당하는 교수가 된 것이다.

그의 저서로는 『화서학파의 심설논쟁』(문사철, 2022), 『비판과 포용-한국 실학의 정신』, 『귀신과 제사-유교의 종교적 세계』, 『퇴계 평전-인간의 길을 밝혀준 스승』, 『다산평전-백성을 사랑한 지성』, 그리고 현재 소개하는 『율곡 평전-나라를 걱정한 철인』을 발표하였다. 이 외에도 『퇴계학파와 理철학의 전개』, 『한국유학의 심설(心說)』, 『한국유학의 노자 이해』, 『불교의 유교 경전해석』 등이 있다.

 

두 저자는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보면 서로 약 50년의 차이가 있다. 이병도가 정확히 48년을 앞선다. 이병도는 역사학자이며, 금장태는 동양철학자이다. 따라서 이병도의 『율곡의 생애와 사상』는 역사학자가 쓴 사상 서적이고, 금장태의 『율곡 평전』은 동양철학자가 쓴 사상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 이병도 책은 역사와 관련된 부분이나 역사적인 서술 내용이 풍성할 것 같고, 반면에 금장태의 책은 역사적 내용이나 그와 관련된 부분보다는 동양철학 관련 내용 설명이 좀 더 많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반대다. 이병도의 책은 철학 사상 쪽이 더 많고, 금장태의 책은 율곡의 생애사적인 부분을 더 많이 다루었다. 금장태의 전문 연구 분야인 철학 사상 관련 내용은 많지 않다.

 

 

2) 목차 비교

 

이병도의 『율곡의 생애와 사상』은 목차 구성이 다음과 같다.

 

  1. 총설
  2. 시대적 배경
  3. 가정적 배경과 그의 생애
  4. 정통적 사상계보
  5. 유자관과 학적 태도
  6. 성리철학
  7. 수양 및 교육론
  8. 불교관
  9. 경세철학
  10. 시무책
  11. 연보

부록 동호문답 (국역문 및 원문)

 

율곡의 생애 부분은 이 책의 제2장, 3장이다. 여기에는 제2장 시대적 배경과 제3장 가정적 배경이 서술되어 있는데, 시대적 배경으로는 ‘정치방면’, ‘사회경제면’, ‘사상계 및 학계’, 가정적 배경으로는 ‘출생과 가계’, ‘입산과 그 동기’, ‘이퇴계를 방문’, ‘출세경력과 생애’, ‘율곡에 대한 『실록』의 사신(史臣 : 사관)평’ 그리고 ‘율곡의 저술과 문인’ 등이 소개되어 있다.

 

제4장 이하는 율곡의 사상이다. 서술된 사상 내용을 보면 사상적 계보(제4장), 학문적 입장(제5장), 성리학 이론, 즉 성리철학(제6장), 수양론과 교육론(제7장), 불교관(제8장), 그리고 경세 철학(제9장, 10장) 등이 있다.

제6장 성리철학은 ‘태극’, ‘음양설’, ‘이기론’, ‘심성론’을 소개하였고, 제7장 ‘수양 및 교육론’에서는 ‘수양론과 교육론’, ‘학교모범의 내용과 논평’, ‘사회교화로서의 향약’ 등을 소개하였다. 제10장 ‘시무책’에는 ‘시폐의 제거와 시정을 촉구하는 구체안’ 그리고 ‘적극 추구적인 시무책’ 등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뒷부분은 7쪽에 걸쳐 작성된 율곡 연보가 있고 60쪽 가까운 『동호문답』의 번역이 있다. 문헌고증을 중시한 역사학자답게 연보와 원문 번역에 심혈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동호문답』을 소개하면서 율곡이 선조 2년에 임금에게 제출한 독서 보고서로 ‘율곡 자신의 철인(哲人 : 품성이 어질고 사리에 밝은 사람 혹은 철학자) 정치사상과 당시의 현실 문제를 주객간(主客間 : 주인과 손님 사이의) 문답식으로 논한 저술’이라고 소개하고 율곡의 사상을 연구하는데 큰 참고자료가 된다고 하였다.(185쪽)

 

한편 금장태의 『율곡 평전』 목차는 다음과 같다.

 

머리말

1부: 가족적 배경과 성장

2부: 청년기의 탐색과 교유

3부: 벼슬길에 나와 나라를 근심하며

4부: 생활 속의 풍모

5부: 인물에 대한 평가

6부: 도학의 학문세계

7부: 율곡 학파의 전개와 율곡 사상의 의미

 

이 중에서 1부부터 3부까지가 율곡의 생애에 관한 내용이다. 좀 더 살펴보면, 1부(가족적 배경과 성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출생과 가족배경
  2. 유년에서 소년시절까지
  3. 혼인과 가정생활

 

2부(청년기의 탐색과 교유)의 내용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입산하여 금강산에서 불도를 닦다
  2. 하산하여 유교로 돌아오는 길
  3. 퇴계를 찾아가 학문의 길을 묻다
  4. 과거시험마다 장원하다
  5. 선배를 따르고
  6. 평생의 벗-성혼/정철/송익필

 

3부(벼슬길에 나와 나라를 근심하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상소문으로 밝힌 현실인식과 개혁정책
  2. 문장으로 발휘한 외교활동
  3. 외직에 나가 펼친 백성을 교화하는 행정
  4.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화합을 위한 노력
  5. 49세로 떨어진 큰 별

 

4부(생활 속의 풍모)는 율곡의 3가지 모습을 서술하였다. 즉 교육자로서의 율곡, 학자로서의 율곡 그리고 시인으로서의 율곡이다. 장별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물러나 후학을 가르친 교육자
  2. 후세를 위해 저술을 남긴 학자
  3. 시인의 정취

 

5부(인물에 대한 평가)는 율곡이 다른 인물에 대한 평가를 한 글을 모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1. 선대의 인물론
  2. 선비의 귀감-정암/화담/퇴계론
  3. 당대 인물론

 

율곡의 철학 사상에 대해서는 6부에서 다루었다. 6부(도학의 학문세계)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사칠론과 인심도심론의 성리설
  2. 경장의 현실인식과 개혁방책
  3. 이단에 대한 비판과 열린 자세

 

여기에서 저자는 율곡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기보다는 최소한도로 소개하는 것에 그친다. 그쳤다. 1장이 전부다. 2장은 율곡의 개혁 방안, 그리고 3장은 불교나 도교에 대한 율곡의 자세를 소개하였다.

다음으로 7부(율곡학파의 전개와 율곡사상의 의미)는 율곡의 영향에 대해서 논한 글이다. 내용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율곡 문하와 율곡학파의 전개
  2. 율곡 사상이 조선후기 실학에 미친 영향
  3. 우리시대에서 율곡 정신이 지닌 의미

 

전체적으로 보면 이 책은 저자의 전문분야인 동양철학 및 사상에 대한 서술이 많지 않아 아쉽다. 이 책의 이름이 『율곡 평전』이기 때문에이라서 생애사 이야기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저자가 율곡 사상에 관한 연구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저자의 석사학위 논문은 『제례에 관한 연구 : 공자를 중심으로』(성대 대학원, 1971)이며 박사학위 논문은 『동서교섭과 근대한국사상의 추이에 관한 연구』(성대 대학원, 1979)이다. 전문 연구 분야가 율곡 철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리고 100편이 넘는 저자의 학술 논문을 보더라도 다산 정약용, 실학, 서학 그리고 퇴계 학파와 퇴계 관련 연구는 많으나 율곡에 관한 연구는 다음과 같이 4편 정도에 그치며, 이중에서도 특히 율곡의 유학 철학 관련 연구는 극히 드물다.

1) 「퇴계·남명·율곡률곡과 선비의식의 세 유형」 (『퇴계학보』105, 2000)

2) 「율곡의 심성론과 인간이해」 (『종교와문화』5, 1999)

3) 「율곡사상과 실학」 (『율곡사상연구』제1집, 1994)

4) 「『순언』과 율곡의 노자 이해」 (『동아문화』제43집, 2005)

 

하지만 율곡의 삶 자체가 사실은 율곡의 철학사상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율곡 사상 대한 정확한 이해는 결국 율곡의 삶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 저술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저자는 학계에서 치밀하고 빈틈없는 연구로 정평이 나 있는 학자로 『율곡 평전』 전편에서 그러한 평가를 확인해볼 수 있다.

 

 

시작하면서 새로 소개하는 단행본 6권

지난해 필자는 이 사이트를 통해서 「율곡 사상 입문을 위한 6권의 단행본」이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이미 소개한 책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송석구, 『율곡의 철학사상』(중앙일보사, 1984)
  2. 황준연, 『율곡철학의 이해』(서광사, 1995)
  3. 황의동, 『율곡 이이-성리학과 실학을 겸비한 실천적 지성』(살림, 2007)
  4. 임옥균, 『이이–정치적 실천철학의 완성』(성대출판부, 2007)
  5. 이광호,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홍익출판사, 2013)
  6. 김형찬, 『율곡이 묻고 퇴계가 답하다』(바다출판사, 2018)

 

1과 2번의 책은 1980년과 1990년대의 책이고, 3번과 4번은 2000년대에 출판된 책이며, 5번과 6번은 2010년대 출판된 책이다. 이들 책을 소개하면서 두 권 씩 모아서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면 각 책들의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묶어서 소개했었다.

 

<1>

이광호, 2013,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

김형찬, 2018, 『율곡이 묻고 퇴계가 답하다』

 

<2>

황의동, 2007, 『율곡 이이 – 성리학과 실학을 겸비한 실천적 지성』

임옥균, 2007, 『이이 – 정치적 실천철학의 완성』

 

<3>

황준연, 1995, 『율곡철학의 이해』

송석구, 1984, 『율곡의 철학사상』

 

이번에도 필자는 모두 6권의 율곡학 입문서를 소개하려고 한다. 방법은 작년과 같이 두 권씩 모아서 소개한다. 다음과 같다.

 

<1>

이병도, 1973, 『율곡의 생애와 사상』(서문당)

금장태, 2011, 『율곡평전-나라를 걱정한 철인』(지식과 교양)

 

<2>

조남국, 1983, 『율곡의 사회사상』(양영각)

이동인, 2002, 『율곡의 사회개혁사상』(백산서당)

 

<3>

김경호, 2018, 『모던 율곡-청년을 위한 현대유학』(학아재)

곽신환, 2019, 『1583년의 율곡 이이』(서광사)

 

각 책들을 소개할 때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저자와 목차 소개

2) 저자들은 왜 이 책을 썼는가?

3)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곽신환과 김경호의 저술 비교3 저자의 주장

곽신환의 『1583년의 율곡 이이』와 김경호의 『모던율곡』 3 :

저자들의 주장은 무엇인가

 

1) 곽신환의 『1583년의 율곡 이이』

 

여기에서는 제1장 ‘1583년의 율곡 이이’에 집중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1절 산림에서 다시 조정으로. 1581-1582년의 율곡

 

율곡은 29세에 조정에 나아갔다. 그리고 1576년 41세 봄에 자신이 조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판단하고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5년간 재야의 지식인으로 자연에 파묻혀 수양과 연구의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선조는 율곡이 45세 되던 1580년 12월에 그를 대사간으로 임명하여 조정으로 불러냈다.(17-18쪽)

 

하지만 1581년 3월, 율곡은 병이 나서 3번이나 사직을 요청하였으나 선조는 허락하지 않았다. 율곡이 사망하기 3년 전의 일이었다. 그는 대사간으로서 당연한 직무인 부정축재 관리들 몇 명을 지목하여 탄핵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나중에 율곡을 비방하고 탄핵하는 주동자들이 되었다.(19쪽) 율곡은 당시 쓸모없는 법을 고쳐서 변통할 것을 임금에게 건의하였다. 예를 들면 공안을 개정하고, 불합리한 지방 군현을 합병하여 줄일 것, 감사의 임기를 늘릴 것, 현자를 고루 등용할 것, 그리고 사사로운 붕당을 제거하고 조정을 화합시킬 것 등이었다. 이것들은 율곡이 이전에도 자주 임금에게 요청한 것들이었다.(19쪽)

 

1582년 율곡은 이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이조판서 자리는 관리를 임명하는 자리로 당쟁이 격화되고 있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자리였다. 율곡은 “묵은 폐단을 개혁하고 관직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 힘썼다. 현명한 선비를 발탁하여 대사헌의 자리에, 학문과 덕행이 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대사성의 자리에 앉히고, 관직이나 명예에 뜻이 없는 사람을 천거하여 절개를 숭상하는 기풍을 가다듬고, 수령직을 감당할 재능이 있는 사람을 천거하여 목민관의 자리에 세웠다.”(21쪽)

 

이해에 그는 임금에게 『인심도심도설』, 『학교모범』, 『김시습전』 등을 지어 올렸다. 『인심도심도설』에서 그는 퇴계는 당시 이미 사망하고 없었으나 퇴계 사상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퇴계는 리도 기도 서로 발동할 수 있다고 하는 호발설을 제창했는데 율곡은 리는 혼자서 발동할 수 없으며, 기라고 할지라도 기는 리가 없으면 발동할 이유가 없다고 하여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이 나중에 동인에 속한, 퇴계의 후학들로부터 모진 비판과 비난을 받게 되었다.(22-23쪽) 그리고 율곡은 이해에 형조판서를 거쳐 병조판서가 되었다. 저자는 이 일이 율곡에게 커다란 시련의 발단이었으며, 그가 활동한 마지막 해가 되는 다음 해에 참혹한 재앙이 되었다고 평하였다.(24쪽)

 

2절. 계미년 기록 문헌

 

이 책은 기본적으로 『선조실록』의 기록을 근거로 하지만 저자는 『율곡전서』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고 있다. 이 절에서 저자는 1583년(계미년)의 일을 기록한, 여러 편의 문헌 자료를 소개하면서 당시 사정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1583년은 율곡 이이에게 있어서 결과적으로 그의 생명을 앗아간 일들이 벌어졌다. 이해에 벌어진 당파의 싸움은 조선 사림 정치의 단면을 보여준다. 위에 소개한 것처럼 1583년의 일에 여러 사람이 관심을 갖고 일기체로 정리할 만큼 관심을 가졌는데 이는 당쟁과 관련이 있는 일련의 일들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28쪽)

 

1583년에 당쟁은 이미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율곡에 대한 탄핵 상소는 정부 기관인 사간원과 사헌부, 홍문관 등이 나섰으며, 승정원에서도 동참하였다. 이에 대해 선조 임금은 율곡에 대해서 각별한 지지를 표명하였으며, 하락, 성혼 등 지인들은 율곡을 옹호하고 상소문을 올리기도 하였다. 성균관 유생들이나 지방 유생들 중 일부도 율곡을 변호하는데 적극 참여하였다.(28-29쪽)

 

당시의 당파적 상황을 저자는 다음과 분석했다.

 

“당시의 동인들은 대부분 신진 사류 소장파 중심이었고 서인들은 경륜을 갖춘 구세력 중심이었다. 소장파는 이념적 시비에 기울고 구세력은 원만한 문제해결에 중점을 두었으나 양 진영의 단점이 더 부각되는 상황이었다.”(30쪽)

 

저자는 율곡의 글(『율곡전서』7권)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당시의 당쟁을 소개하였다. 조정이 동서로 나뉜 다음에 서로 당파가 같고 다름으로 좋아하고 싫어함을 결정하였으며 말을 만들고 일을 만드는 자가 서로 얽히게 되었는데, 지식인 관료 중에서 논의를 주도하는 자들은 상당수가 동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의견이 한쪽으로 치우쳤으며, 사람의 재능이나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묻지도 않고 동과 서를 나누는 데만 힘썼다. 또 동인을 비난하면 억압하고, 서인을 배척하면 끌어주었으며, 조정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관리들은 출세 길이 서인을 배척하는데 있다고 여겼다.(29쪽)

 

 

3절. 율곡에 몰아치는 탄핵

 

이 절에서 저자는 두만강 주변에서 니탕개 등 여진족들이 난을 일으켜 조선의 성곽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사건을 서술하였다. 병조판서 율곡은 이때 임기응변의 대책을 강구했다. 그것은 서자와 노비를 모집하여 변방을 지키게 하고 그 대가로 벼슬을 주고 양민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징병에 응하지 못한 사람은 대신 군량미를 바치게 하는 조치를 취했다. 임금은 율곡의 조치를 허락하였으나 반대파 관리들은 그를 견제하고 비방하였다.(31쪽)

 

여름에는 2만 명이 넘는 오랑캐들이 또 침략해 들어왔다. 이러한 사태로 말미암아 병조판서 율곡은 건강이 악화되었는데 임금의 부름을 받고 궁궐에 들어오다가 어지럼증 때문에 임금을 만나지 못하고 병조의 건물 한쪽에서 잠시 쉬었다. 이일을 빌미로 반대파 관리들이 율곡을 탄핵하였다. 이유는 ‘권력을 멋대로 휘두르고, 교만하여 건방져서 왕을 업신여긴다.’는 것이었다. 기타 여러 가지 율곡이 취한 조치에 대한 비난도 함께 추가되었다.(31쪽)

 

율곡을 지지하는 관리들과 유생들은 탄핵 반대의견을 임금에게 올려 조정 안 밖이 몹시 시끄러웠다. 이 때 율곡 탄핵을 주도한 사람들은 박근원, 송응개, 허봉 등이었는데, 임금은 이들을 귀양 보냄으로써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이를 ‘계미삼찬’이라고 한다.) 물러나 있던 율곡에게는 판돈령부사의 직을 주고 이조판서에 임명하였다. 하지만자지만 율곡의 병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깊어져 다음 해 1월 16일 사망하게 된다.(32쪽)

 

저자는 이 장에서 율곡을 공격한 인물들, 그리고 율곡이 비난을 받은 사유와 탄핵 일자 등을 상세히 정리하여 율곡이 사망 1년 전에 얼마나 가혹한 비난에 휩싸였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9월 3일 이조 좌랑 김홍민은 율곡의 성품이 경솔하여 모든 제도를 바꾸고 고치려고만 애썼다고 비난하였으며, 말과 행동이 다르고, 자기가 당을 만들고서도 자기는 마치 시비에 물들지 않은 것처럼 하며,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사사로운 사귐과 모임을 옹호한다는 둥 율곡이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들 정도의 비난을 쏟았다. 율곡을 변호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비난에 대해서 일일이 대응하며 그러한 비난이 근거가 없음을 강변하였다.(38-40쪽)

 

저자는 이러한 비난 상황에서도 율곡의 학술 사상이 퇴계와 다른 점에 대해서는 일체 비판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율곡 철학에 대한 반대파들의 비난은 율곡을 문묘에 배향하고자 할 때 비로소 제기된 것이라고 하였다.(40쪽) 이는 율곡 사상과 퇴계 사상의 차이가 율곡 생전에는 그다지 문제되지가 않았다는 점으로 사상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4절. 1583년 조정의 풍우

 

이 장에서 저자는 다시 1583년의 1월로 돌아가 월별로 율곡을 둘러싸고 일어난 중요한 일들을 정리, 소개하였다.

예를 들면 이해 3월에 율곡은 임금의 인재 천거를 받아들여 친구 성혼을 추천하였다. 성혼은 이때 병조 참지(參知)로 임명되었다.

 

이해 9월에 율곡은 이조판사에 임명되었는데 여러 번 사양하다 궁궐에 들어가 임금에게 글을 올려, 자신이 중책을 맡을 수 없는 이유로 다음과 같은 4가지 사항을 들었다.(90-91쪽, 일부 문구를 수정함.)

 

1) 저는 타고난 기질이 경박하고 학문이 졸렬한데다 재주는 없는데 뜻은 크기만 하고 지식도 없으면서 큰소리만 칩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승복을 하지 않고 책망을 합니다. 저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어찌 원한 때문만으로 그러하겠습니까?

 

2) 지금은 아무리 호걸스러운 선비와 충성스러운 신하라도 손을 쓰기가 어려운데 더구나 저처럼 어설프고 잡스러운 자가 감히 홀로 무엇을 해보려고 하는데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3) 오늘날 저를 둘러싸고 한 차례 소요가 일어난 일도 제가 동료들에게 신임을 받지 못한 소치입니다. 어찌 꼭 그 사람들이 재앙을 일으켜 모함해서 그렇게 된 것이겠습니까? 친구에게 신임을 받지 못하고서 윗사람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뻔뻔스럽게 이조판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인물을 뽑거나 물러나게 한다면 누가 믿고 승복하겠습니까?

 

4) 신은 젊어서부터 병이 많았는데, 노쇠해지면서 더욱 심해져 혈기가 소모되고 정신이 감소되어 잠시만 노동해도 바로 현기증이 발작합니다. 지금 지혜와 생각을 다 짜내어 위로 임금의 일을 보필하고 싶지만 정신력과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힘을 내어 조정의 반열에 나아가 미력이나마 바치고 싶지만 체력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임금은 율곡의 이러한 글을 읽고 다음과 같이 한탄하였다.

 

“경(그대)의 상소를 보니, 아 하늘이 우리나라를 평치(平治 : 평온하게 다스리게) 하지 않으시려는가 보구나. 어찌하여 경과 같은 인물이 시대에 뜻을 얻지 못한단 말인가. (중략)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말은 한번 웃어넘길 가치도 없는데, 경은 어찌하여 이를 마음에 꺼림칙하게 생각하여 성급히 사직하겠다고 하는가.”(92쪽)

 

이 절에서 저자의 서술은 1584년 1월 16일 율곡이 49세로 사망한 날에 이르러 끝난다. 저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율곡이 병사하니 일각에서는 누군가 그를 무고(巫蠱 : 무당의 주술로 사람을 죽이는 일)했다고 했고 이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아 확인하려는 시도가 문인들(제자들)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성혼은 이를 만류했다. 율곡 같은 바른 기운의 사람이 한갓 음사에 의한 무고로 생명을 잃는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102쪽)

 

율곡의 사후에 임금은 제문에서 이렇게 슬픔을 표했다.

 

“나라 위해 온 힘을 다한 뒤에야 그만두었으니 경이야 무엇이 슬플 것이 있겠는가만 큰물 가운데서 노를 잃었으니 나는 못내 슬퍼하노라.”(102쪽)

 

이하 이 책은 5절 ‘율곶 강마을의 밤 – 도학자와 유지’, 6절 ‘비방 무고에 대한 율곡의 대응’, 7절 ‘심통원 심의겸과 율곡의 관계’, 8절 ‘율곡의 사후에 일어난 비방과 엽등(獵等)’ 등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에서는 상세한 소개를 생략한다.

 

 

2) 김경호의 『모던율곡』

 

 

‘제1부 율곡을 보다’에서 저자는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이야기부터 서술을 시작한다. 그는 율곡이 자기 어머니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소개하고 그 어머니 신사임당의 이미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그녀(신사임당)은 학술권력과 정치권력이 구분되지 않았던(즉 대부분의 관료들이 학자이면서 관리였던 – 필자주) 17세기 후반부터, 율곡을 낳은 ‘성스러운 어머니’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일제 식민의 과정과 계몽적 근대화 과정에서 ‘현모양처’의 모범으로 다시 등장하지요. 그녀가 ‘신사임당’으로 다시 발명되는 이 과정은 매우 드라마틱합니다.”(30쪽)

 

저자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신사임당의 원래 이미지는 산수화를 잘 그리는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 노론계 인물들의 필요에 의해서, 그들이 활동한 18∼19세기에 이르러 그런 이미지는 사라지고, 초충도(풀과 벌레 그림)나 매화의 대가로 바뀐다. 그것은 율곡과 같은 성현을 낳은 어머니가 호방하게 산수화를 그렸다는 사실을 감추고, 조신하고 단아하며 풀벌레와 매화처럼 작은 세계를 그리며 유교적 가정 윤리에 충실한 부인의 모습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39-40쪽)

 

그리고 어머니와 사별한 율곡이 불교 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과정을 소개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율곡은 어려서부터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머니 사망을 계기로 19세가 된 1554년에 금강산으로 들어간 일을 상세히 기술하였다.(44-49쪽) 그러나 율곡은 1년 후에 다시 속세로 내려와 유학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저자는 율곡이 하산 후에도 자신이 머물렀던 암자의 승려들과 교류를 이어갔지만, 불교를 통해서 얻은 것은 ‘불교는 참다운 진리가 아니다.’라는 결론이었다고 한다. 이를 저자는 ‘무소득’과 ‘파국’이었다고 설명한다.(54쪽) ‘무소득’의 소득인 셈이다.

 

이후 율곡은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리가 되었는데 율곡이 직면한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젊은 시절 율곡의 생각을 전한다.

 

“율곡의 현실 인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비관적 색채가 강하지요. 율곡이 당대를 파악하는 비판적 인식에는 그 시대의 삶에 대한 우울함이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를 불만스러워합니다. 그래서 『경연일기』에 기록된 율곡의 다른 인물들에 대한 평가는 매우 박절합니다. 이렇듯 율곡의 철학적 사유는 현실의 질곡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고식적인 세계의 막강한 위력을 실감하고 현실의 부조리함을 제거할 수 있는 철학적 방법을 고민합니다.”(60쪽)

 

율곡 철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 것이다. 자기 시대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바로 율곡의 성리 철학으로 나타난 셈이다.

 

이어서 저자는 05 ‘염치: 간신배와 비루한 자’에서 율곡이 말년에 겪은 ‘병조판서 탄핵사건과 그 전말’에 대해서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그리고 저자는 율곡에 대한 탄핵이 임금이 그것을 수용함으로써 13일만에 일단락되었으나 그 이후에 율곡에 대한 인신공격과 율곡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탄핵으로 이어진 사실을 들어 조선시대의 간관(諫官: 임금에게 간언을 하는 관리)에 의한 ‘공론’제도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들었다.

 

“서로 다른 정파가 국정 현안에 대한 현격한 인식 차이로 대립하면 아주 작은 촉매제만 있더라도 누적된 갈등이 폭발할 여지가 있게 됩니다. 이것이 공론으로 포장되어 확장되는 경우 ‘여정(輿情)’ 즉 다중이 공감하는 집단 감성은 수렴의 주체에 따라 왜곡되기 쉽습니다.”(82쪽)

 

이러한 이유로 저자는 오직 간관 개인의 양심에만 의존하는 공론 시스템은 정치 세력 간의 첨예한 대치 국면에서 쉽게 흔들릴 우려가 있으며, 율곡의 사후, 조선 유교사회가 급속하게 동인과 서인의 대립 구도로 양분되고 신·구의 갈등을 통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 이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82쪽)

 

제2부 ‘율곡에게 듣다’에서 저자는 율곡의 『격몽요결』, 『성학집요』, 『학교모범』 등 저술을 이용하여 율곡의 당시 사회에 대한 인식과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을 소개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율곡은 자신의 시대를 어두운 시대, 몽매한 시대로 봅니다. 선비가 제대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근본적인 자기 혁신이 전제되지 않은 이념적 지향은 현실에 의해서 거듭 전도될 수밖에 없습니다. 율곡이 출사와 사퇴를 거듭하던 1570∽1580년대는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원기와 같은 존재였던 선비들이 불의에 침묵하고 사사로운 이익에 따라 이합 집산하는 불의의 시대였습니다.”(103-104쪽)

 

“율곡은 치심(治心 : 마음을 다스림)의 문제가 통치자의 핵심적인 공부라고 합니다. 임금의 마음이 다스림을 펴 나가는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가 잘 다스려지거나 어지러워지는 것은 통치자 한 사람에게 달려있고, 한 사람이 훌륭하고 그렇지 못함은 한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115쪽)

 

제3부 ‘율곡처럼 품다’에서 저자는 자신의 뜻을 견지하는 마음,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마음, 대화를 통해서 세상과 공명하기, 포용력과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도량을 키우는 일, 백성들과 함께 근심하고 즐거워하는 일 등을 율곡이 경험하였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저자의 이러한 서술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수필과도 같다. 이 부분은 매우 교훈적인데 이 저서가 오늘을 사는 청년들을 향한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해할 수 있는 서술방식이다.

 

제4부 ‘율곡을 넘다’에서 저자는 율곡의 경험을 따라가면서 ‘무실: 힘써야 할 일을 안다는 것’, ‘변통: 시중과 시의’, ‘원칙: 기강과 공정사회’, 그리고 ‘여정: 민심과 감성적 공론장’ 등에 대해 설명을 이어간다.

예를 들면 저자는 ‘마땅함’ 즉 시의 적절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율곡은 마땅함의 기준을 백성으로 삼습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합니다. (중략) 민생의 안정을 위해서는 시대에 맞지 않는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법제를 무조건 다 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오늘의 상황이 다르다고 해서 어제의 법을 끊임없이 고치면 그 또한 많은 부작용을 낳을 것입니다. 문제는 법의 공정성과 안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바뀐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율곡이 시의(時宜)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때에 맞음이란 결국 백성들의 현실적 삶에 맞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율곡이 제안하는 국가적 소통의 방식, 곧 경장(更張)입니다. 이 시대의 리더를 꿈꾼다면 명심해야할 덕목일 것입니다.”(219쪽)

 

마지막으로 저자는 ‘마치며: 우리의 율곡’에서 율곡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고(1. 율곡의 시대적 삶, 245-252쪽) 율곡의 철학 사상을 간략히 소개하였다.(2. 지금-여기, 모던 율곡, 253-265쪽)

율곡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저자의 평가와 주장을 빨리 살펴보려면 이 책을 펼치고 이 부분부터 먼저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감히 평 하건데 약 20쪽에 달하는 이 부분의 중요성은 저자가 앞서 서술한 240여 쪽의 내용과 맞먹을 것 같다.

 

저자는 여기에서 율곡의 유학사적 위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매우 중요한 평가이기에 여기에 소개한다.(대화체로 서술된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필자주)

 

“율곡은 제도의 개혁뿐만 아니라 법제와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천적 기여를 했어. 학술적으로도 여러 점이 거론될 수 있는데, 나는 그가 자신의 철학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대다수 후대 유학자들은 주희나 퇴계의 논의를 그대로 따랐지만, 율곡은 자신의 관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논리를 구성해냈어. 율곡이 심시기(心是氣 : 마음은 기다)를 말하고, 리기지묘(理氣之妙 : 리와 기의 묘함), 리통기국(理通氣局 : 리는 널리 통하고 기는 국한됨)과 같은 새로운 철학적 용어를 만들어 자기 철학을 전개한 것은 주목할 만하지. 율곡이 조선의 유학자를 넘어서 동아시아 유학사에서 특별한 것은 ‘자신의 어휘’가 있었기 때문이야.”(264쪽)

 

곽신환과 김경호의 저술 비교2 저작 의도

곽신환의 『1583년의 율곡 이이』와 김경호의 『모던율곡』 2 :

저자들은 왜 이 책은 집필하였는가?

 

 

1) 곽신환의 『1583년의 율곡 이이』

 

저자는 왜 이 책을 지었는가?

교보문고(http://www.kyobobook.co.kr/) 홈페이지에 실린 출판사 서평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오늘 우리에게 율곡은 누구인가? 훌륭하지만 별 관계가 없는 현자인가? 그의 삶과 사상은 아직 유효한가? 그가 오늘의 한국 사회에 있다면 어떤 주장과 처신을 할 것인가?”

 

저자는 율곡 사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물은 것이다.

저자 곽신환은 1970년대 대학원생 때부터 율곡을 연구하면서 줄곧 이런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그리고 40여 년의 교수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 율곡의 생애 마지막 1년을 회고하면서 율곡의 철학과 삶을 살펴보았다고 한다.

이 책은 아울러 동시에 율곡 뿐만 아니라 16세기 이후 조선의 정치·사회의 틀과 유학사의 맥락을 폭넓게 들여다보는 작업을 시도하면서, 율곡의 사상과 삶의 태도를 바탕으로 오늘의 우리 사회를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왜 1583년인가?

저자는 율곡에 대해서 많은 연구들이 있었는데, 자신은 초점을 달리해서 율곡을 살펴보려고 한다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어문자를 능란하게 다룰 줄 아는 유교 지식인 고위 관료가 사림정치에서 구현코자 하는 정치적 이상의 실천과정, 정치적 상태에 대한 공격, 그 양상의 잔인함과 거짓됨, 그로 인하여 휘둘리는 집단의 정서 등을 다루면서 진리정치를 표방하는 유교의 한 실상을 보는 한편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수용과 대응의 인격적 면모를 살펴보려 함이다.”(6쪽)

 

이러한 문제의식, 즉 율곡을 둘러싼 다소 혼란스러운 문제들을 1583년 율곡이 겪은 삶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1583년은 어떤 해였는가? 저자는 1) 율곡이 48세가 되는 해이며, 2) 그의 생애의 마지막 1년이고, 3)당쟁의 화가 극도에 이르렀던 해였다고 한다. 그리고 4) 이해 정월에 두만강변에서 번호(오랑캐)들이 반란을 일으켜 침입하였는데, 이때 율곡은 병조판서로 국방을 책임지고 있었다. 5) “이후 300여년 이상 조선 사회의 흐름이 이때에 결정되었다고 할 만큼 (이 해는) 큰 세력의 분기가 되었다.”(9쪽)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1장은 1583년의 탄핵의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상황 속에 있는 율곡을 다루었다. 5년간의 산림생활을 마치고 다시 조정에 나온 그가 겪는 모진 삶의 역정을 1583년 한 해를 다룬 여러 문헌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그해 조정에서 있었던 갈등, 탄핵 비방 무고자에 대한 율곡의 대응, 그해 늦가을 율곶 강촌마을에서의 관기 유지와의 만남, 탄핵자들이 율곡의 후원자라고 지척한 심통원 심의겸과의 관계, 그리고 율곡 사후에 일어난 비방과 무고에 대해서 살피고 정리하였다.”(7쪽)

 

교보문고 홈페이지에 실린 「『1583년의 율곡 이이』 리뷰」에는 1583년에 대해서 이런 설명이 달려 있다.

 

“1583년(선조 16, 계미년) 한 해 동안에 사헌부와 사간원의 수장인 대사헌, 대사간이 각각 11차례나 교체되었다. 홍문관과 더불어 언론 삼사(三司)라 불리는 이들 기관의 장들, 조선 유교 정치의 꽃이라 불리기도 하는 대표적 청환(淸宦) 요직의 수장들이 왜 이렇게 자주 수모스럽게 교체되었을까? 이 해, 계미년의 사건들에 주목하여 쓴 조신들의 일기체 기록이 여럿 있다. 『계미기사(癸未記事)』, 『계갑일록(癸甲日錄)』, 『계미진신풍우록(癸未晉臣風雨錄)』 등이 그것이다. 무슨 까닭에 이 해의 기록이 많은가? 그 비바람의 중심에 율곡 이이가 있다.

율곡은 1584년 정월 16일에 병으로 서거했다. 그러니 1583년은 사실상 율곡 이이 생애의 마지막 1년이다. 1583년, 율곡은 병조판서로서 새해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당시 조선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연초부터 두만강 주변에서 여진족들이 대규모 침범을 하였다. 조선에 지속되던 평화의 시기가 끝나고 이민족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미 서까래와 들보가 부패하여 언제든 무너질 것 같은 낡고 큰 집, 기력이 쇠잔한 노인의 근근이 근근히 이어지는 숨결 같은 상태가 율곡이 진단한 당시의 국가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무장관으로서 율곡이 시행한 시의(時宜)적 여러 조치, 그리고 조정에서의 그의 처신을 두고 삼사의 관원들이 집요하게 또 가혹하고 황당하게 탄핵하였다. 권신들의 모함과 무력과 암계에 의한 사림 척출이 이제 명분과 도리를 내세운 언론과 문장에 의한 정쟁(政爭)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율곡의 당시 소망과 지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율곡의 일생 소망과 지향은 성리학적 진리 사회의 구현에 있었다. 오늘 우리가 성리학 체계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율곡의 판단과 실천은 그의 시대 상황에서 최선의 것, 곧 전체(全體)이며 대용(大用)의 체계였다. 그는 참 유자(眞儒)는 안으로 성인의 덕과 밖으로 제왕의 도를 겸하여 갖추어야 하며, 때가 주어지면 나아가 그가 배운 도를 시행하고, 물러서 향촌 산림에 있게 되면 연구, 저술, 교육에 종사하여 후대의 사람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해야 한다고 하였고, 일생 이 말을 스스로 실천하였다.”

 

또 나아가 율곡이 혼란스러운 당시 상황과 조정 내외부에서 발생한, 자신을 향한 근거 없는 비방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율곡은 공적 생활에서 가혹한 모함과 비난과 시비에 시달렸다. 진리의 사람, 의로운 사람이 겪는 시련이 그를 비껴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환난의 상황에서 자재(自在)하고 의연(毅然)하였다. 소행(素行), 곧 어떤 처지 상황에서든지 자신의 자리를 얻지 못함이 없었고, 구현할 도리를 잃지 않았다. 특히 무고한 탄핵과 비방이 쏟아져도 그는 남에게 변명하지도 않았고 상대에게 분노하지도 않았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율곡은 누구인가? 그의 삶과 사상은 아직도 유효한 것이 많은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자신이 본 율곡의 모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10쪽)

 

“(율곡 사상이 훌륭한 점은 – 필자) 기발이승일도(起發理乘一途)에 토대를 둔,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그의 통합적 그리고 긍정적 태도이다. 천지의 조화(造化)와 내 마음의 발동이 모두 기(氣)의 발동과 그 위에 이(理)가 타고 있는 형식이 아님이 없다는 그의 존재론적 선언은 타자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간 존재에 대한 아름다운 긍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은 특정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다 해당된다는 점에서 매우 앞서 있는 사상이었다.”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통합적이고도 긍정적인 태도, 그리고 타자에게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아름다운 긍정, 이러한 것은 인간 누구에게나 다 해당된다고 하는 평등주의가 율곡 사상의 장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율곡의 삶을 통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는다고 하였다.

 

“현재 어떤 처지에 있든지 굳이 거기서 벗어나려 하거나 지위를 잃지 않고 유지하려고 하지만 말고 우선 그 주어진 처지에서 해야 할 도리를 찾아 그것을 온전히 구현하라는 것이다. 진퇴존망에서 그 때의 옳음을 잃지 않는 자가 거룩한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11쪽)

 

그리고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충고를 덧붙였다.

 

“율곡이 1583년에 겪었던 참혹한 무고와 탄핵을 계기로 살펴본 그의 생각과 태도의 가치를 다룬 이 이글을 읽는 분들이 각자의 삶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억울함이나 원망이 극복 해소되고, 자유로우나 진지한 자세로 각자에게 들려오는 무상의 명령, 분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도 남도 속임이 없는 데 이루고, 화복의 고정적 틀을 깨며, 개체적 고립감을 벗어나 우주적 통합을 체험하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기대한다.”(11쪽)

 

 

2) 김경호의 『모던율곡』

 

『모던 율곡』은 부제목으로 ‘청년을 위한 현대유학’이 달려있다. 청년들에게 율곡 선생의 삶과 철학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보문고 홈페이지(http://www.kyobobook.co.kr/)에 올린 출판사 서평을 보면 다음과 같은 소개 글이 실려 있다.

 

“어느 시대나 청년들은 방황했습니다. 그런 청년들에게 어떤 길을 보여줄 수 있는지 살펴보면 그 시대의 성숙도를 알 수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청년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있을까요? 세상에 나가 성공한 사람들은 멋진 말을 늘어놓지만 결국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소리 높입니다. 한편에서는 세상의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며 평화와 위로를 말하지만 결국 세상과 담 쌓고 나 홀로 조용히 살라는 셈입니다. 이 시대의 많은 청년들은 시대가 보여주는 길 앞에서 경쟁에 뛰어들어 고통 받거나 파편화된 나에 갇혀 고독하게 살아갑니다.”

 

부제목 ‘청년을 위한 현대유학’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소개하기 위해서 먼저 청년들이 직면해 있는 현실을 위와 같이 진단한 것이다. 그리고 왜 ‘유학’인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장면 뒤에 ‘꼰대’ 혹은 ‘망국의 주역’이란 꼬리표가 따라붙는 ‘유학’을 말하는 것은 어쩌면 의아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꼬리표를 뗀 유학 안에는 내가 나로 설 수 있는 힘, 그러나 나에 갇히지 않는 포용을 지혜롭게 배워 나갈 수 있는 길이 담겨있습니다. 유학의 본원인 공자는 변변치 않은 환경에서 태어나 방황했지만 홀로 서는 삶을 결단하고 내가 세상을 따뜻하게 품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비판하는 ‘유학’에 사실은 청년들이 귀담아 들어야할 지혜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나로 설 수 있는 힘, 그러나 나에 갇히지 않는 포용을 지혜롭게 배워 나갈 수 있는 길’이다. 고대 유학 사상을 집대성한 공자도 젊었을 때 ‘방황했지만 홀로 서는 삶을 결단하고 내가 세상을 따뜻하게 품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서평은 유학에 대해서 이렇게 호소하였다.

 

“이처럼 교조화되고 경직된 유학을 조금만 걷어내 보면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게 고민하고 방황했던 선인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로지 나의 성공을 이루기 위한 경쟁적 삶, 작은 나의 평화에 머무르고자 시끄러운 세상과 단절하는 삶과는 조금 다른, 이제는 우리에게 낯선 감수성이 그들의 삶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 낯섦을 섬세하게 느껴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지혜로 재창조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낡은 것에서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통시대 유학자들의 삶을 잘 살펴보면 그들도 고민하고 방황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삶을 통해서 ‘이제는 우리에게 낯선 감수성’을 느낄 수 있으며 나아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지혜로 재창조’할 수 있는 계기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이 율곡의 삶과 철학을 소개하는 이 책이 의도하는 바인 것이다.

이어서 출판사 서평은 왜 율곡인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율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청년시절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고민하며 잠시 불교에 귀의하기도 했습니다. 전도유망했던 청년이 모든 것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갈 만큼 방황은 깊었고 절실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다시 세상으로 나와 시대의 모순을 온 몸으로 겪어내며 삶과 사람을 껴안는 삶을 살았습니다.”

 

젊었을 때 율곡이 겪은 방황의 삶을 소개하고 그런 고통을 이겨내고 주변 사람들을 껴안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하였다.

 

“이 책은 천재적 면모를 지닌 청소년기의 율곡이 어머니를 여의고 방황을 시작하는 장면에서부터 다시 세상으로 나와 온 세상을 품으려 했던 그의 치열했던 삶 전반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1부: ‘율곡을 보다.’ 에서는 지난하지만 꿋꿋했던 율곡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2부: ‘율곡에게 듣다.’ 에서는 선조에게 올린 여러 조언들을 통해 내 삶의 왕으로 바로 설 수 있는 원리를 살펴봅니다. 3부 ‘율곡처럼 품다.’ 에서는 세상을 품어 더 큰 나로 성장해가는 길을 배워봅니다. 4부: ‘율곡을 넘다.’ 에서는 시대와 당당히 맞섰던 율곡의 지혜를 오늘의 현실에 적용해봅니다.”

 

율곡의 삶(1부), 율곡이 제안하는 삶의 원리(2부), 나 자신이 성장하는 길(3부), 그리고 율곡의 지혜(4부)를 이 책을 통해서 읽을 수 있다고 하였다.

서평은 또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겪게 될 지적 체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전망도 하였다.

 

“총 4부에 걸쳐서 율곡의 궤적을 쫓다 보면 ‘그 역시 나처럼 방황했구나’ 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참으로 치열하고 탁월하게 노력했구나’ 라는 위기감이 찾아올 것입니다. 저자는 그 궤적 끝머리 마다 내 삶의 주인으로 내 뜻을 펼치며 사는 삶에 대한 감성을 때론 강하게 때론 나지막하게 남겨두었습니다. 유학의 지혜를 삶 속에 구현했던 그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느껴보고 오늘날 나의 삶에 적용가능한 원리를 발견해 본다면, 박제되고 신화가 된 율곡이 아닌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서평은 이 책의 제목이 왜 ‘모던 율곡’인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저자 김경호는 고려대에서 율곡의 심성론을 연구하여 학위를 받은 후 2014년에 ‘율곡대상’을 수상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율곡학 전문가 중 한 사람입니다. 그 역시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그 시절의 많은 청년들처럼 시대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으며 방황하고 배회했습니다. 그는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 속에서 청년시절 율곡을 만났고 율곡의 자취를 통해 용기를 얻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렇기에 그가 길어 올린 율곡은 책장 속에 갇힌 낡은 율곡이 아니라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며 저마다에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모던 율곡’입니다.”

 

이미 낡아버린 책장 속의 율곡이 아니라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누구나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율곡이 즉 ‘모던 율곡’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어떤 편견에 갇혀 있는 율곡이 아니라 새로운 해석이 열려있는 율곡, 즉 모던한 율곡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을 지은 저자의 집필 의도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머리말, 즉 ‘책머리에’는 제목으로 ‘모던 율곡, 불온한 경계인의 시대공감’이란 글제목이 달려있다. 여기에서 ‘불온한 경계인’이란 율곡을 지칭하기도 하고 저자 자신을 의미하기도 하는 말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정치가였고 관료이자 교육자였던 율곡 이이를 통해 우리시대의 들쑥날쑥한 세상풍경을 읽어본 것입니다. 한국철학을 전공한 글쓴이가 ‘율곡의 시선’을 매개로 하여 동시대의 세상읽기를 시도한 것이지요.”(「책머리에」)

 

이러한 저자의 말을 통해서 우리는 이 책의 서술범위가 단지 율곡의 삶이나 사상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의 ‘세상읽기’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은 율곡의 시선, 즉 사상을 통하여 시도해보는 세상 읽기다.

저자는 왜 지금, 우리시대에 율곡인가? 하고 물으며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시대공감’을 들었다. 그것은 율곡이 살았던 시대에 사용되었던 단어들, 예를 들면 탄핵, 적폐, 농단, 인식, 기강 등이 지금 우리시대에도 같은 맥락으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으며, 그 시대의 문제들과 이 시대의 문제들이 서로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율곡이 보았던 1570년대∼80년대의 조선 사회가 우리 시대의 그것과 그리 큰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또 율곡 시대의 문제의식들은 그 시대만에 한정된 고민이 아니었으며, 그 때 일어났던 일들이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전혀 다를듯하지만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이 율곡에 대해서 크게 공감하는 점을 다음과 같이 율곡이 말한 두 가지 말을 들었다.

 

1) “어머니는 평소에 항상 강릉을 그리워하여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2) “신은 실로 간신배나 비루한 자처럼 처신하지 않겠습니다.”

 

이러한 두가지 공감 사항에 대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 지점에서 나는 과거의 율곡을 현재에 다시 만납니다. 두 모습에는 삶의 세계에 대한 율곡의 감성과 공동체 유지를 위한 비판적이고 윤리적인 사유가 혼성되어 있지요. 감성과 사유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진리를 향한 율곡의 힘겨운 여정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이 격동하고 부침했던 최근 한국사회의 흐름을 성찰하면서 율곡과 함께 고민했던 공감의 기록이자 많은 사람들의 인연으로 만들어진 연대의 결과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책의 후속 작업으로 『율곡 평전』이 그려질 것이라고 예고하였다.

이러한 저자의 말을 근거로 생각해보자면 이 책은 『율곡 평전』은 아니며 율곡에 대한 간략한 생애사적 소개와 함께 율곡 사상의 부분적인 소개가 담겨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저자 자신이 바라본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소회가 담기게 될 것임을 추측해볼 수 있다.

곽신환과 김경호의 저술 비교1 저자와 목차

곽신환의 『1583년의 율곡 이이』와 김경호의 『모던율곡』 1 :

저자와 목차의 비교

 

 

1) 저자 비교

 

곽신환(1954∼)은 충북 옥천 출신으로 대전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주역의 자연관과 인간관』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한 바 있으며, 성리학, 주역철학, 한국철학사, 동아시아철학 등에 대해서 전문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주역의 이해』(서광사, 1990), 『중국철학의 정신』(서광사, 1993), 『직하철학』(철학과 현실사, 1995), 『주자언론동이고』(소명출판, 2002), 『조선유학자의 지향과 갈등』(철학과 현실사, 2005), 『태극해의』(소명출판, 2009), 『소강절의 선천 역학』(예문서원, 2012), 『우암 송시열』(서광사, 2012), 『조선유학과 소강절 철학』(예문서원, 2014) 등이 있다.

곽신환은 율곡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학자는 아니고 주역, 중국철학, 주자학, 한국철학 등 비교적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연구하였다. 이러한 점은 『1583년의 율곡 이이』를 읽어나갈 때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곽신환의 장점은 율곡과 관련된 주변 사상을 풀어나갈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편 김경호(1966∼)는 강원도 고성 출신으로 고려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서양철학, 한국유학 등을 배우고 율곡의 심성론에 관한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전남대학교에서 교수 재직한 경력이 있다.

저서로는 『감성의 유학』(전남대출판부, 2014), 『동양적 사유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 리와 기의 조화와 충돌 그리고 탈출』(글항아리, 2012), 『인격성숙의 새로운 지평-율곡의 인간론』(정보와 사람, 2008) 등이 있다.

김경호는 율곡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자다. 율곡학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모던 율곡』은 그로서는 자기 전문분야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저자소개에서 최근에 감성인문학, 호남학 이론 정립, 한국인의 감성 연구 등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김경호의 책 『모던 율곡』은 키워드가 두 개라고 할 수 있다. ‘율곡’과 ‘감성’이다. 따라서 이 책은 ‘감성’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이 부분이 이 책을 읽어나갈 때 다소 난해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참고로 감성이란 감수성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 이성과는 대조되는 개념으로 외부의 어떤 자극을 받아서 느끼는 것을 말한다. 욕구 또는 본능을 가리키기도 한다. 율곡에 대해서 연구하고, 학문 활동은 하는 일은 대개 이성이 주가 되는 활동이다. 엄밀히 말한다면 ‘과학’적인 활동이다. 그런데 감성을 내세운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점이 난해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저술 집필 시기를 보면 곽신환은 2019년에 『1583년의 율곡 이이』를 발표하였으며, 김경호는 2018년에 『모던율곡』을 발표하였다. 1년 차이로 발표되었지만 거의 같은 때에 발표된 책들이다.

두 저자는 나이 차이로는 12살로 곽신환이 앞선다. 학문적으로는 곽신환이 1세대 빠르다. 말하자면 김경호는 곽신환의 제자 세대에 속한다. 이 두 책을 통해서 이러한 세대 차이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2) 목차 비교

 

곽신환의 『1583년의 율곡 이이』 목차 구성은 다음과 같다.

 

서문

1장. 1583년의 율곡 이이

2장. 성리학적 진리의 담지(擔持)

3장. 주돈이 본원(本源)론의 이해와 추존

4장. 소옹 선천역학의 이해와 수용

5장. 주재자(主宰者)와 화복(禍福)

6장. 실리(實理)·실심(實心)의 자연관

7장. 행도(行道)와 수교(垂敎)

8장. 율곡과 우계 –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사귐

9장. 율곡에 대한 송시열의 존숭과 지수(持守)

10장. 율곡학과 화서학파

11장. 율곡 성리설과 전우

참고 문헌

찾아보기

 

이렇게 보면 이 책이 제1장의 장 제목을 그대로 가져와 책제목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언뜻 보면 ‘1583년의 율곡’은 제1장에서 서술이 끝나고 제2장부터는 전혀 다른 내용이 서술되어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저자는 모두 11편의 각기 다른 논문을 하나의 단행본으로 묶으면서 편의상 제목을 제일 먼저 나오는 문장의 제목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교보문고(http://www.kyobobook.co.kr/) 홈페이지에 실린 출판사 서평 중에서 각 장의 내용구성을 소개하는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우선 1장의 소개는 다음과 같다.

 

“1장은 1583년 탄핵의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상황 속의 율곡을 다루었다. 5년간의 산림생활을 마치고 다시 조정에 나온 그가 겪은 모진 삶의 역정을 여러 문헌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그해 조정에서 있었던 갈등, 탄핵 비방 무고자에 대한 율곡의 대응, 그해 늦가을 율곡 강촌마을에서의 관기 유지와의 만남, 탄핵자들이 율곡의 후원자라고 지적한 심통원, 심의겸과의 관계, 그리고 율곡 사후에 일어난 비방과 무고에 대하여 살피고 정리하였다.”

 

1583년, 즉 율곡이 사망하기 1년 전에 율곡에게 일어난 일들을 상세하게 기록, 소개한 것이 제1장이다.

제1장(1583년의 율곡 이이)의 절 제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산림에서 다시 조정으로, 1581-2년의 율곡 (17쪽∽)
  2. 계미년 기록 문헌 (24쪽∽)
  3. 율곡에 몰아치는 탄핵 (30쪽∽)
  4. 1583년 조정의 풍우(風雨) (41쪽∽)
  5. 율곶 강마을의 밤 – 도학자와 유지(柳枝) (102쪽∽)
  6. 비방 무고에 대한 율곡의 대응 (121쪽∽)
  7. 심통원 심의겸과 율곡의 관계 (127쪽∽)
  8. 율곡의 사후에 일어난 비방과 엽등(獵等) 논란 (135쪽∽)

 

‘1583년의 율곡 이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필자는 제1장에 나오는 이러한 내용이 이 책의 맨 마지막 부분에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혹시 그런 구성을 하였으면 더 좋았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 책의 제2장부터 제11장까지의 내용이 이 제1장의 곳곳에 녹아져있어 클라이맥스로 향해가는 스토리텔링이었다면 더 흥미진진하지 않았을까?

즉 2장부터 11장의 내용을 없애고 제1장에 모든 내용을 집어넣고 서술을 해나갔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으로 이 책을 열어보면 가벼운 실망감과 함께 내용 전개의 혼란스러움에 당황하게 된다.

 

참고로, 이 책처럼 연도를 타이틀의 첫 부분에 내세운 책이 있다. 레이 황(Ray Hung, 黃仁宇)이 발표한 『1587 만력 15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1587, A year of no significance: the Ming dynasty in decline)』(새물결, 2004)이다. 이 책은 명나라 황제 만력제, 대학사 신시행, 장거정, 관리인 해서, 그리고 장군 척계광, 철학자 리지를 각 장에 다루면서 명나라가 무기력해지는 상황을 다루었다. 즉 중국의 명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중국 사회의 몰락 과정을 세밀하게 서술하였는데, 이야기 전개가 소설과도 같고 전체적으로 매우 통일되어 있다. 『1583년의 율곡 이이』 타이틀을 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레이 황의 저술 구조를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나 『1583년의 율곡 이이』는 이 책이 율곡 사상을 설명해가는 화두일 뿐이지, 큰 줄거리나 결론이 아니다. 아울러 이 책의 각 장은 상호 관련성이 밀접하지 않다. 각각 서로 다른 주제를 다른 관점과 소재를 가지고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이 책에서 어떤 스토리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러한 기대는 오히려 이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출판사 서평은 제2장부터 제4장까지의 소개를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2장은 율곡이 성리학적 진리 사회의 담지(擔持)자로 살아간 동기와 내용과 진행을 다루었는데, 그가 필부성인론(匹夫聖人論)을 실천한 사람이라는 데 초점을 두었다.

3장은 율곡이 이학(理學)의 비조로 추앙되는 주돈이의 태극론 곧 ‘본원(本源)론’을 어떻게 이해하고 추존했는지를 다룬 것이다.

4장은 율곡이 내심 가장 존모했던, 그와 비견되는 철학자 소옹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다루었다. 율곡 역시 소옹처럼 광활(曠闊)한 마음과 사통팔달의 철학을 추구했고 성취했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이렇게, 율곡의 학문과 사상에 영향을 준 주자(제2장), 주돈이(제3장) 그리고 소옹(제4장)에 대한 소개를 1장씩 할애하여 집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제5장부터 7장은 다음과 같다.

 

“5장은 천지만물의 주재자(主宰者)와 인간의 삶에 닥치는 화복(禍福)에 관한 율곡의 견해를 다루었다. 그는 무고나 탄핵도 천지의 조화 속에 있는 사건으로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할 것이 못된다는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6장에서는 율곡이 이해하는 자연을 실리(實理)·실심(實心)의 관점에서 다루었다. 7장은 율곡의 진유론 속에 담긴 행도(行道)와 수교(垂敎)라는 두 개념으로 그의 삶을 해명했다.”

 

즉 제5, 6, 7장은 율곡의 사상을 다루었는데, 제5장은 주재자에 대한 인식, 제6장은 율곡의 자연관, 제7장은 율곡의 진유론이라는 것이다.

제2장부터 제7장은 언뜻 장제목만 보면 율곡과 관련성이 없는 것 같지만 실지 내용은 율곡의 사상적 배경과 율곡 사상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제8장 이하는 장 제목에 ‘율곡’이 등장하므로 율곡 관련 내용이 서술되어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제8장은 율곡과 우계, 제9장은 율곡에 대한 송시열의 존숭과 지수(持守), 제10장은 율곡학과 화서학파, 제11장은 율곡 성리설과 전우 등 제목을 보면 율곡과 타인의 관계 속에서 율곡을 논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우계 외에는 모두 율곡의 후학들이므로 율곡 사상의 영향력을 이 부분에서 주로 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출판사 서평을 다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8장은 율곡과 도의지교의 관계에 있는 성혼과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사귐을 다루었다. 9장에서는 율곡학의 천양(闡揚)과 확산에 가장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평가되는 송시열의 율곡 존숭과 그 지수(持守) 및 변통을 다루었다.

10장에서는 한말 화서학파의 율곡 사상 조술을 다루었는데, 화서학파는 율곡 사상의 19세기적 용출이라고 보았다. 11장에서는 한말의 대학자 전우가 퇴계 성리설의 만년정론이 율곡이 주창했던 내용과 일치한다고 한 관점을 소개하였다. 전우는 율곡이 퇴계의 만년정론을 보지 못했기에 그의 주장과 부합, 일치하는 것을 알지 못했고 퇴계·율곡의 문하들이 다툰 것은 스승의 학술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이렇듯 이 책은 매우 독특한 구성을 가진 율곡 사상 소개 전문서적이다. 내용 구성을 다시 대략적으로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머리말 : 1583년의 율곡 이이

제1부 율곡 사상의 기원 : 제2장, 3장, 4장

제2부 율곡의 철학사상 : 제5장, 6장, 7장

제3부 율곡의 영향력 : 제8장, 9장, 10장

 

이렇게 구성을 단순화해서 읽어보면 조금은 각 장별로 연관성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역시 저자의 이 책은 율곡을 집중하여 이야기하는 서적은 아니다. 율곡 안에 담긴 어떤 철학이나 사상을 중심으로 서술해나가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율곡을 통해서 저자가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연구한 성리학, 주역철학, 한국철학사, 동아시아철학 등을 살펴보는 원심원적인, 율곡 철학에서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구조를 가진, 확대지향형의 전문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김경호의 『모던율곡』은 다음과 같은 목차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작하며: 나의 율곡

제1부 율곡을 보다

제2부 율곡에게 듣다

제3부 율곡처럼 품다

제4부 율곡을 넘다

마치며: 우리의 율곡

 

이러한 목차만 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서술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책은 각 부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부 율곡을 보다

01 그리움: 어머니

02 경계: 입산과 환속, 사이

03 연민: 타자와 고통

04 상상: 무이고곡과 고산구곡

05 염치: 간신배와 비루한 자

06 사람의 품격: 공중누각

 

제2부 율곡에게 듣다

01 열림: 몽매함과 격몽

02 천리: 거짓 없는 진실한 마음

03 욕망: 이익과 의리

04 관점: 자득과 의양

05 군심: 정치와 교화의 근본

 

제3부 율곡처럼 품다

01 견지: 소나무와 기다림

02 겸손: 자기를 낮춤

03 대화: 공명하기

04 도량: 포용과 용기

05 동락: 누구의 나라인가

 

제4부 율곡을 넘다

01 무실: 힘써야 할 일을 안다는 것

02 변통: 시중과 시의

03 원칙: 기강과 공정사회

04 여정: 민심과 감성적 공론장

 

이렇게 각 부별로 살펴보아도 김경호의 『모던 율곡』은 내용 구성을 추측해보기가 쉽지 않다.

실지로 책을 들춰보면 제1부는 율곡의 전 생애가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제2부부터 그 뒷부분은 율곡 사상의 편린들이 특별한 질서가 없이 이곳저곳에 산재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저자는 이렇게 혼란스러운 독자들을 위해서 각 부의 첫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설명문을 달았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제2부 율곡에게 듣다 : 율곡이 왕에게 절실하게 말했던 간언들을 들어 본다.

제3부 율곡처럼 품다 : 세상을 품는 큰 나로 도약하기 위한 조언을 듣는다.

제4부 율곡을 넘다 : 혁신을 꿈꾸던 율곡의 마음을 우리 사회에 빗대본다.

 

 

조남국과 이동인의 저술 비교3 저자의 주장

조남국의 『율곡의 사회사상』과 이동인의 『율곡의 사회개혁사상』 3 :

저자들의 주장은 무엇인가?

 

1) 조남국의 『율곡의 사회사상』

 

 

여기서는 이 책의 부록으로 실린 첫 번째 논문 「율곡 철학 형성의 연원에 관한 연구」을 중심으로 저자의 주장을 살펴보려고 한다. 두 번째 논문 「율곡 사상에 나타난 사회철학 문제연구」는 첫 번째 논문과 내용이 비슷하기 때문에 소개를 생략한다.

 

저자는 율곡의 사회의식을 분석하면서 먼저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였다.

 

“인간성의 발견과 실리의 추구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율곡에게 있어서 사회의식의 관심사이었음을 앞에서 고찰하여 보았다. 그는 인간의 정의(正義)에 실리의 추구를 어떻게 수렴할 것이냐에 지대한 관심으로 보였던 것으로 이해된다.”(203쪽)

 

저자는 ‘인간성의 발견’을 다른 말로는 ‘사회 정의의 강조’라고 표현하고 ‘실리의 추구’는 ‘경제문제’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사회정의와 경제문제 사이에서 이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율곡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이 논문의 제2장 ‘율곡의 사회의식’에서는 율곡의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즉 7남매 중에서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나 위로는 두 형과 두 누님 아래로는 누이와 남동생이 있었던 중간자적인 위치를 분석하고 어머니 신사임당이 집안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부친보다 더 컸던 컷던 점을 들어 율곡이 원만한 인격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지적하였다.(203쪽)

 

율곡의 역사의식에 대해서는 그 배경으로 조선의 건국부터 성종 말년까지 약 100여년간이 창업과 수성의 시기였다면 연산군 시대부터 임진왜란까지 약 100년간은 정치가 문란해지고, 사화로 인해 지도력이 상실되고 국난의 위기에 해당한 시기였다고 하였다. 율곡은 이러한 시기에 태어나 사회가 끝난 후의 후유증을 체험하면서 성장하였다고 진단하였다.(205쪽)

그리고 저자는 율곡이 학문적으로 성리학 외에도 불교와 도교 그리고 양명학 등으로부터 다방면의 영향을 받았음을 지적하고 다음과 같이 율곡 철학의 특징을 정리하였다.

 

“당시의 학풍이 성리학을 위주로 하였다 하더라도 실제 사회적 상황은 불교, 도교, 양명학의 위치가 전혀 무시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사회적 배경을 배제하고 오로지 성리학 그 자체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당시 사회상황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포괄적이 아니라는 것을 율곡은 파악했던 것으로 보인다.”(216쪽)

 

그리고 율곡의 성리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화담이나 퇴계에 있어서 성리학 전개의 특징과는 달리 율곡의 성리학 전개는 대립과 모순의 문제를 어떻게 조화 융합하느냐에 있었다고 볼 때 그의 이러한 학적 특징은 이미 앞에서 전개한 그의 사회의식과 역사의식, 그리고 당시 사회가 안고 있는 제사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떠나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고, 오히려 이러한 그의 문제의식은 그의 철학형성에 외적 요인으로 작용된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다.”(216쪽)

 

율곡 철학이 조화와 융합을 중시했던 점을 지적한 것이다. 화담 서경덕이나 퇴계 이황의 사상이 주기론, 혹은 주리론 등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것을 염두에 둔 설명이다. 그래서 저자는 율곡 철학의 본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율곡철학의 본질이 집약된 저작으로는 『성학집요』를 지적하여 말할 수 있다. 『성학집요』는 통설, 수신, 정가, 위정, 성현도통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전개한 많은 양의 역저이다. 통설에서 율곡은 중화(中和)의 공(功)을 중시하여 정리하고 있으며 이 중화의 의미는 성학집요 전체에 흐르는 중심체이기도 한 것이다.”(217쪽)

 

율곡은 이러한 입장에서 ‘중화’의 개념으로 가정, 국가, 세계 인류에까지 연결하여 설명하며 결국에 중화의 공적이 천하에 이르면 천하가 안정되고 명덕(明德)도 천하에 밝혀질 것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217쪽)

율곡이 말하는 ‘중화’라는 개념을 주목하여 율곡 사상의 본질을 ‘융합성’으로 보는 저자 조남국의 이러한 설명은 매우 독창적이고도 명쾌하다. 그는 율곡의 이기론도 이렇게 설명한다.

 

“화담은 기(氣) 밖에 리(理)가 없으며, 리가 기보다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하여 유기론(唯氣論)의 입장을 취하였다. 그리고 퇴계는 이기를 이원적 입장에서 전개하였고 다시 이귀기천(理貴氣賤, 리는 귀하고 기는 천하다)의 사상을 연출하였다. 이와 같은 화담과 퇴계의 입론과는 달리 율곡은 기의 경험적 실재성과 리의 관념적 합리성을 통일, 조화의 측면에서 이기론을 전개하고 있다.”(218쪽)

 

나아가 저자는 율곡이 리와 기의 성격이 서로 전혀 다른 2원적 관계에 있지만 그것들을 모두 긍정하고 포괄하면서 동시에 양자 모두를 지양(止揚)시키고 있으며, 이기의 묘(妙)라는 개념으로 리의 초월성과 기의 실재성을 포용하여 이 양자를 융화의 관계로 파악하였다고 주장하였다.(219쪽)

 

저자는 결론에서 율곡 철학에 대해서 다시 이렇게 정리하였다.

 

“율곡철학의 특징은 관념적 합리성과 경험적 실재성을 조화의 입장에서 전개하는데 있다. 그는 관념적 합리성으로서의 리와 경험적 실재성으로서의 기를 이원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이 양자를 일원적으로 어떻게 융화시키느냐 하는데 깊은 관심을 가졌다.”(219쪽)

 

그리고 율곡이 이러한 점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에 대해서 저자는 율곡의 가정 환경을 들었다. 그는 “당시 사회가 대체로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분위기에서 성장기를 보냈던 것과는 달리 율곡의 경우는 유년기를 학덕이 겸비된 신사임당과 함께 외가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권위적인 가정 분위기가 아닌 민주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원만한 인격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인격은 원만성과 포용성을 겸비하여 닦여질 수 있었고, 동시에 이러한 그의 인격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와 역사를 융자적(融資的)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219-220쪽)라고 하였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부언하기를 자신의 논문이 또 하나의 다른 목적도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이 연구는 율곡) 철학 형성의 특징이 어디에 근원을 두고 이루어진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입론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성장기의 민주적 분위기가 철학사상 형성에 기여하는 바가 매우 크다는 것에 초점을 둔 것으로 특히 성장기의 주변 분위기가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데에도 이 연구의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220쪽)

 

조남국의 이러한 연구논문이 발표된 해는 1982년이었다. 이 해는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기세등등하던 시기로 민주주의를 함부로 말하기 힘든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곡 사상이 ‘민주적 분위기’에서 탄생하였음을 밝히고 자라는 아이들의 성장에 있어서도 민주적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강조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결국 군인들의 독재적이고 가부장적 권위주의 통치에서 벗어나 보통 사람들이 국가를 통치하는 민주화를 이룩하였다. 이 덕분에 2000년대 들어 각 분야에서, 특히 가요, 영화, 드라마 등 문화 분야에서 민족의 창조성이 극대화되고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세계적인 문화 강국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돌이켜보면 민주주의의 힘이었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유학사상계에는 화담 서경덕, 퇴계 이황 등 많은 유학자들이 각자의 사상을 갈고 다듬어 깊이 있는 토론이 거듭되었다. 그런데 율곡이 등장하여 이들의 철학을 창조적으로 조화롭게 융합하여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를 율곡을 둘러싼 ‘민주적 분위기’로 설명한 것은 참으로 혜안이 아닐 수 없다.

 

 

2) 이동인의 『율곡의 사회개혁사상』

 

여기에서는 저자가 제1부 ‘율곡과 사회개혁’에서 서술한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율곡은 자신이 살던 시대의 나라 형세를 “집으로 치면 서까래며 들보가 다 썩어 가는 집과 같고, 사람으로 치면 곧 넘어지게 생긴 병자와 같다.”(15쪽)고 인식했다. 그래서 율곡은 자신의 시대가 창업의 시대도 아니고 수성(守成)의 시대도 아닌 경장(更張 : 사회의 폐단을 개혁하여 새롭게 하는 일.)의 시대로 규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율곡의 철학사상인 이기론과 개혁사상을 연결 지어 다음과 같이 율곡이 제시한 개혁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율곡)는 오히려 때와 기회도 인간이 만드는 것이라는 적극적인 역사관을 제시했다. 그는 발(發)하는 것은 기(氣)이며 발하게 하는 것은 리(理)이나, 리는 기에 의착(依著: 의존)하고 그것을 탄다는(乘) 자신의 이기설에 기초하여 리(道)는 무위(無爲)이고 작용이 없고 인간은 감각이 있고 작용이 있으므로, 공자가 말한 대로 ‘사람이 능히 도를 넓힐 수 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때와 기회도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만들어 지는 것으로 보았다.”(20쪽)

 

율곡의 개혁사상은 바로 율곡 철학이 기초하고 있는 것이며,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간 중심적’ 개혁사상이라는 것이다. 율곡은 이렇게 인간의 가능성을 믿고 인간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21쪽)

 

그리고 저자는 율곡의 개혁관을 1)수시 변통의 개혁관,(21-24쪽) 2) 왕도정치의 실현을 목표로 한 개혁관(24-27쪽)으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 ‘수시(隨時) 변통’의 개혁이란 ‘때(時)’, 즉 시대의 상황 맞추어 변통하는 것을 말한다. 율곡은 자신이 개혁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변하면 그 상황에 따를 수밖에 없으며 백성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23쪽)

 

2) 왕도정치의 실현이란 율곡에 의하면, 백성을 가르치고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정치를 말한다. 그리고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는 정치이다. 나라 안에서 관리들(오늘날의 공무원들)의 기상이 바로 서고(25쪽) 선비들(지식인들)의 행동과 풍습이 바르고 재상(오늘날의 고위 공직자, 총리, 혹은 대통령)이 나라를 잘 경영하고 여러 관리들이 성실하게 자신의 직분을 잘 이행하며, 백성들이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왕도정치에 가깝다고, 율곡은 강조하였다.(25쪽) 그리고 이러한 왕도 정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언로(言路 : 오늘날의 언론, 여론의 소통, 의회 정치)의 창달과 활성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매우 강조했다. (26쪽) 즉 공무원들과 백성들의 의견이 국가 경영을 책임지는 자들에게 잘 전달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아울러 율곡은 누가 ‘의견(言)’을 제시하면 그 의견에 대해서 뿌리를 캐지 말고, 그 말에 대해서 벌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재삼 강조했다. 이것은 오늘날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는 공무원들(특히 경찰, 검찰, 법원 공무원들)이 귀담아들을 일이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제시되어있는 언론의 자유를 400여년 전에, 그것도 왕조시대에 율곡이 주장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율곡의 이러한 주장은 쓰러져가는 조선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물론 조선 사회와는 다르다. 1990대의 민주화 이후에 사회 각 분야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는 대한민국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는 더욱 풍요롭고, 더욱 역동적이고, 더욱더 많은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자유로워야 되며, 율곡이 말하였듯이 언로의 창달과 활성화가 무엇보다도 필수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 이동인은 이어서 율곡이 제시한 사회 개혁사상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제시하였다.(27-32쪽)

 

1) 내실과 실천

 

율곡은 실질적인 개혁, 내실 있는 개혁을 중시했다. 그래서 화려한 말이나 실천할 수 없는 개혁안은 삼갔다. 율곡이 제시한 『만언봉사』에는 그래서 ‘무실(務實 : 실질적인 것에 힘쓰자)’, 실공(實功 : 실제의 공적, 실질적인 공적) 등을 언급한 문장이 많다.

2) 민중을 위한 개혁

 

왕도정치는 본질적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다. 율곡의 개혁론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명백한 모티브는 바로 이것이다. 율곡은 임금에게 올리는 음식을 간소하게 할 것을 주장했다. 임금 한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는 정치를 지양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강조하였다. 예를 들면 백성의 조세 부담을 줄이고, 사병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천민의 권익을 신장하고, 또 백성들의 기쁨과 괴로움을 고르게 해 줄 것을 주장했다.(29쪽)

저자는 이러한 사상을 제시한 율곡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오늘날의 안목으로 보면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율곡의 개혁안은 새로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수없이 부르짖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도 정작 국민을 위한 정치가 실현되는가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이 의심을 품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고, 율곡의 시대는 임금의 권위가 온 국민의 위에 있던 전제군주 시대였다는 것을 참작하면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율곡의 의지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29쪽)

3) 점진적 개혁

 

율곡의 개혁론은 점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율곡은 늘 개혁의 부작용을 염두에 두었으며, 부작용이 크다고 생각되면 아무리 좋은 개혁안이라도 시의에 맞지 않은 것으로 보아 추진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기도 했다. 향약의 실시에 대해서 반대의견을 냈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입장은 율곡이 앞 시대에 급진적 개혁을 추진했던 조광조의 실패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이어서 율곡이 제시한 사회개혁 사상의 의의를 논하였다. 저자는 율곡이 여러 가지 면에서 그 전 시대에 활약하였던 정암 조광조와 대비된다고 하였다. 조광조는 고위 관료로 재직한 기간이 4년에 불과하였지만 임금 중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각종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향약이나 현량과를 실시하여 추천으로 인재를 뽑고, 공신들의 과분한 토지와 노비 몰수 등을 추진하였다.(32쪽)

하지만 율곡의 경우는 임금 선조가 율곡의 제안을 듣기만 하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추진할 수 없었다. 율곡이 자주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것은 자신의 말을 임금이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개혁과 관련한 율곡의 공적은 업적으로 남아 있지 않고 글로만 남아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33쪽) 이런 점에서 율곡이 제안한 각종 개혁 방안이나 사상은 후세인들의 과제가 되었다.

 

율곡은 당시 조선사회의 신분제도에 대해서도 다양한 개혁 방안 제시하였는데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59-60쪽)

 

1) 율곡은 모든 사람의 생명과 권익을 존중했다. 그는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인정하였다. 그래서 채무송과 같은 후대의 학자는 그의 사상을 ‘만민 평등주의’라 평가하였다.

 

2) 율곡은 기존 신분제의 테두리 안에서라도 신분제의 제약을 최대한 극복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신분제의 제약이란 나라 안의 인적자원을 어느 한 계층으로만 한정하는 것을 말한다. 조선 시대는 양반들만, 그것도 과거에 합격한 양반들만 국가 경영에 동원한 체제였다. 율곡은 선비들의 등용과 승진을 과거시험이나 경력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오직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보고 특채를 하거나 승진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율곡의 이러한 제안은, 이미 신분제가 없어진 오늘날의 상황에 대응해보면, 다음과 같은 제안이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삶의 희망을 버리고 있다. 우리 사회는 비록 신분제의 굴레에서 벗어났지만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금전적 ‘속박’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주목해야 한다. 나라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야 할 인적자원이 대규모로 소실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고,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인 일이다.- 필자주)

 

3) 천민과 서얼에 대한 율곡의 관심은 국가의 인적 자원 활용과도 관련이 있지만, 그의 신분개혁안은 사회 전체로 보면 신분의 상향이동을 지향하고 있다.

 

4) 율곡은 항상 상위 신분층보다는 하위 신분층, 있는 사람보다는 없는 사람을 위한 정치를 추구했다. 즉 율곡의 정책은 기층민의 생활향상과 신분 격차 축소를 지향하고 있었다.

 

5) 율곡의 신분제도 개혁론은 온건하고 점진적인 성격의 것이었지만, 장기적인 발전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한 것이었다.

 

이외에도 저자는 율곡의 정치사상과 정치개혁론(제3장, 61-103쪽), 경제개혁 사상(제4장 105-128쪽), 교육에 대한 개혁 사상,(제5장 129-157쪽) 그리고 국방을 위한 병제 개혁(제6장 159-184쪽)에 대해서도 각 장을 할애하여 상세하게 분석했다. 여기서는 상세한 소개는 생략한다.

조남국과 이동인의 저술 비교2 저작 의도

조남국의 『율곡의 사회사상』과 이동인의 『율곡의 사회개혁사상』 2 :

저자들은 왜 이 책을 썼는가?

 

 

1) 조남국의 『율곡의 사회사상』

 

저자는 본인이 율곡의 문장 『인심도심도설』(제1장)과 『진시폐소』(제2장), 그리고 『만언봉사』(제3장)을 먼저 번역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준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인심도심도설이 심성론(心性論 : 마음과 본성에 관한 논의)에 관한 율곡 철학의 진수를 그 내용으로 하였다면, 진시폐소와 만언봉사는 당시 사회 전반을 안정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요체를 그 내용으로 하였다고 분석된다.”(서문 ⅰ)

 

인심도심도설은 철학적인 내용이고, 진시폐소와 만언봉사는 당시 사회현실에 대한 내용이다. 이 두 종류의 글을 읽어보면 율곡의 사회사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 편의 상소문은 서로 별개의 내용으로 하여 독립된 의미로 보려는 것이 아니고, 인심도심도설의 인성론적 핵심 내용을 사회 현실에 확충·심화하려는 의도에서 진시폐소와 만언봉사의 저술의의를 찾아볼 수 있는, 즉 인심도심도설과 진시폐소·만언봉사의 상호 연계는 연역적 구조 속에서 그 진의를 밝힐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분석에서 율곡 사상이 가지는 사회사상의 의의, 나아가 사회철학적 의미의 측면을 발견하게 된다.”(서문 ⅰ)

 

말하자면 율곡의 사회사상은 진시폐소·만언봉사에서 발견할 수가 있는데, 이러한 사상은 결국 인심도심도설의 인성론적 핵심 내용을 사회 현실에 확충·심화시킨 것이라는 말이다. 율곡의 철학과 율곡의 사회사상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또 율곡은 사회 전반의 제문제를 분석하고 그 대책을 제시함에 있어서 사회 일반의 제도와 인습, 그리고 구성원의 자질, 특히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자질을 지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판단에서 결국 율곡은 “선조로 하여금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인격을 함양하게 하여 불안정했던 당시 사회를 안정의 기반 위에 올려놓아야 하겠다는 충정에서 그렇게 많은 상소문을 썼던 것이다.”(서문 ⅱ)라고 하였다.

 

저자 조남국은 인간의 본성은 시대가 흘러도 기본적으로는 동질적이기 때문에 율곡의 사회관과 역사관이 오늘날 우리 현실 문제를 조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율곡의 문장 3편을 번역하고 본인의 논문 2편을 부록으로 올려 이러한 책을 출판한 것이다.

 

 

2) 이동인의 『율곡의 사회개혁사상』

 

저자 이동인은 이 책이 학자이자 정치가이며 철학자였던 율곡의 사상을 사회학자의 시각에서 분석한 결과를 담고 있다고 하였다.(머리글.)

그리고 율곡 사상을 오늘날 다시 음미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2가지로 대답하였다.(머리글)

 

첫째, 우리는 율곡을 연구함으로써 조선시대의 유학이 절대로 공리공론을 지향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조선의 선비들이 무엇에 관심을 가졌고, 무엇을 염려했는지를 알게 된다고 하였다. 즉 우리는 율곡을 통해서 조선의 시대와 사상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율곡이 조선시대에 고심했던 문제는 그 시대에 종결된 것이 아니다. 여전히 우리의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곡을 연구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사회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시사를 얻을 수 있다. 일례로 율곡은 인재를 등용할 때 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 등용할 것을 주장했다. 이는 오늘날에 비추어 보아도 매우 진취적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취지에서 이 책이 발간되었는데, 이 책은 저자의 서울대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인 『이이의 사회개혁사상 연구』를 보완, 개편한 것이라고 하였다. 저자는 아울러 이 책이 시대를 걱정하고 나라를 염려한 율곡의 사상을 이 시대에 되살리는데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머리글에 소개하였다.

조남국과 이동인의 저술 비교1 저자와 목차

조남국의 『율곡의 사회사상』과 이동인의 『율곡의 사회개혁사상』 1 :

저자와 목차의 비교

 

 

1) 저자 비교

 

『율곡의 사회사상』 저자 조남국(1939∼2020)은 충남 보령군 출신으로 대농초교, 주산중, 홍성고를 졸업하고 1965년 성균관대 철학과에 입학하여, 1971년 동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1981년에 다시 서울대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88년 성대 대학원에서 『율곡 철학사상의 사회학적 탐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그는 사망 후 2006년 10월에 율곡 선생 철학 대중화에 앞장선 공로로 제8회 율곡대상(栗谷大賞) 공로부문에 선정되었다.(<강원일보> 2006.10.26.기사) 율곡대상은 강원도와 강원일보, 그리고 (사)율곡학회가 율곡학의 홍보와 연구에 공이 큰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강원일보>의 당일자 기사를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공로부문 수상자인 고 조남국교수는 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난 2000년 작고 때까지 20년간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율곡학의 연구와 교육에 탁월한 공적을 남겼다. (중략) 특히 17권의 저서와 학술지 게재 연구논문 57편을 통해 일반인들의 율곡학 이해를 돕는 대중화에 앞장서는 등 모범적인 삶을 실천했다는 평을 받았다.”

 

참고로 윤사순 고려대 명예교수는 조남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강원일보>, 앞의 기사에서 인용)

 

“학계의 율곡 연구의 계보를 살펴보면 1960년대 고려대 김경탁 교수가 학술적인 연구를, 성균관대 유승국 교수는 대중적인 강의를 통해 율곡 사상을 설파한 이후 2세대 연구자로 이동준, 채무송, 조남국 교수를 꼽는다. (중략) 그러나 이동준, 채무송 교수는 율곡과 퇴계를 함께 연구한 데 반해 조남국 교수는 죽는 날까지 율곡만을 연구하고 대중들에게 설파하며 율곡학의 계보를 이었다. 조남국 교수의 뒤를 이어 황의동 충남대교수가 율곡 연구를 하는 등 조교수 이후 율곡학만을 연구한 학자는 크게 늘었다.”

 

조남국이 율곡 연구를 시작한 시기, 즉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는 퇴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으나, 율곡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율곡사상과 율곡학을 널리 알리는 공을 인정받아, 율곡 대상을 타게 된 것이다.

 

한편 『율곡의 사회개혁사상』의 저자 이동인(1949∼)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995년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학위 논문은 『율곡의 사회개혁사상연구』이다.

그는 이후 충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한국사회의 유교적 해석과 한국 전통사상연구에 흥미를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앞서 소개한 조남국이 제8회 율곡대상에서 공로부문에서 수상을 하였을 때, 이동인은 학술부문에서 그 공을 인정받아 수상을 한 바 있다.

 

그가 발표한 율곡 관련 저술로는 여기서 소개하는 『율곡의 사회개혁사상』(백산서당, 2002)외에 『이율곡의 격몽요결 읽기』(세창미디어, 2013)가 있다. 논문으로는 「율곡의 사회개혁사상과 인권」(『동양사회사상』13, 2006), 「율곡의 정치사상과 정치개혁론」(『한국학보』77, 1994), 「『격몽요결』을 통해 본 율곡의 사상과 생애」(『사회사상과 문화』29, 2014), 「유교문화와 한류」(『동양사회사상』15, 2007) 등이 있다.

 

조남국과 이동인은 학문적인 공통점으로 ‘율곡’과 ‘사회’가 그들 연구의 핵심 키워드라는 점이다. 이들이 말하는 ‘사회’란 무엇일까?

조남국은 철학과 출신이나으로 ‘사회’의 문제에 관심이 많고, 이동인은 사회학과 출신이며 사회학과 교수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회’를 키워드로 연구를 하고 있다. 사회학과는 인간의 행동이나 사상을 사회와 연관 지어 설명하고 분석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학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동인의 ‘사회’에 대한 논의는 철학과 출신인 조남국보다는 좀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다. 반면에 조남국은 아무래도 철학을 연구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인간과 사회의 관련성을 중시하는 것 보다는 사회와 관련된 철학 사상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참고로 조남국은 1981년 서울대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을 때에도 석사 논문으로 『율곡사상에 나타난 사회철학 연구』를 제출한 바 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율곡 철학사상의 사회학적 탐구』였다.

1996년에는 「율곡사상에 나타난 경제윤리의 현대적 적용에 관한 연구」(『국민윤리연구』35), 1997년에는 단행본 『율곡의 삶과 철학 그리고 경제 윤리』(교육과학사)를 발표하였다. 이들 저작물의 제목을 보면 아무래도 ‘철학사상’이 중심이며, 먼저라는 인상을 준다.

참고로 조남국의 저서 『율곡의 삶과 철학 그리고 경제 윤리』의 목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부 삶

1장 삶과 탈속

2장 겸손함으로의 만남과 학문의 진지함

3장 의리를 지키는 삶

4장 유지에게 써 준 시와 그 숨은 뜻

5장 사회문제의 진단과 잘살기 위한 노력

 

2부 철학

6장 철학사상 형성에 끼친 영향들

7장 다양한 사유의 세계와 그 의미

8장 성리학의 한국적 수용과 전개

9장 자연의 의미와 인간의 문제

10장 성리학에서의 인간 이해

 

3부 경제윤리

11장 도덕적인 삶과 경제적인 삶

12장 도덕적 행위와 부의 축적

13장 경제윤리의 의미와 그 현대적 실현을 위한 방안

14장 경제윤리 교육의 의미

15장 지도계층의 도덕적 삶과 서민계층의 안정된 삶

 

 

 

2) 목차 비교

 

조남국의 『율곡의 사회사상』은 엄밀히 말하면 편역서다. 저자 자신도 이 책이 편역서라 부르고 자신을 편역자로 소개하였다.(여기서는 편의상 ‘저자’라고 칭한다.)

그 목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인심도심도설

제2장 진시폐소

제3장 만언봉사

부록 1. 율곡 철학 형성의 연원에 관한 연구

부록 2. 율곡 사상에 나타난 사회철학 문제연구

 

1장부터 3장까지가 율곡의 문장을 한글로 번역한 내용이다. 원문도 번역문 뒤에 첨부되어 있다. 저자가 소개하는 ‘율곡의 사회사상’은 이 책의 뒷부분에 부록으로 실린 저자의 부록 논문 2편에서 읽을 수 있다. 논문 2편의 목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율곡 철학 형성의 연원에 관한 연구

 

1) 서언(序言 : 머리말)

2) 율곡의 사회의식

3) 율곡의 역사의식

4) 율곡 철학의 특징

5) 결어(結語 : 맺음말)

 

  1. 율곡 사상에 나타난 사회철학 문제연구

 

1) 서언

2) 율곡의 사회관

3) 율곡 철학의 본질

4) 율곡의 경세론과 그 사회철학적 문제

5) 결어

 

이 책의 앞부분에 소개한 율곡의 문장을 꼼꼼히 읽어보고 이 두 편의 논문을 숙독해보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율곡의 사회사상의 전모를 그려볼 수 있다.

참고로 조남국이 주목하는 ‘사회’란 ‘사회현실’이라는 단어로 바꿀 수 있다. 부록 논문 1의 제2장 (율곡의 사회관)에서 그는 이렇게 ‘사회’를 언급하였다.

 

“율곡의 사회의식은 그의 가정생활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194쪽)

“사람은 누구든지 가정생활을 모체로 하여 사회의식이 형성된다.”(194쪽)

“율곡이 전개하는 도학의 진수는 단순한 이론적인 것을 논하려는 데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사회현실의 제 문제를 시의에 부합시켜 신의를 중심으로 하여 논의하였던 입장, 곧 그의 사회의식에 도학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202쪽)

 

한편, 이동인의 『율곡의 사회개혁사상』은 목차가 다음과 같다.

 

제1부 율곡과 사회개혁

제1장 현실인식과 개혁사상

제2장 신분관과 신분제도 개혁론

제3장 정치사상과 정치개혁론

제4장 경제개혁론

제5장 교육개혁론

제6장 국방사상과 병제개혁론

 

제2부 율곡의 시대, 율곡의 삶

제7장 율곡의 일생

제8장 율곡의 시대

제9장 사상적 배경

제10장 율곡의 철학

맺음말

부록 1 : 유가사상과 사회개혁 – 공자와 율곡의 사상을 중심으로

부록 2 : 정암과 율곡의 사회개혁사상 비교연구

 

이동인의 책에는 율곡의 사회개혁 사상이 전면에 나타나있다. 즉 제1부에 사회와 관련된 주제가 먼저 등장한다. 보통 인문학자라면, 예를 들면 철학과 출신이나, 역사학 혹은 문학 연구자들은 이러한 구성에 익숙하지 않다.

제2부에 나오는 율곡의 시대나 삶이 먼저 나와야 한다. 제7장 율곡의 일생이나 제8장 율곡의 시대, 그리고 사상적 배경이 먼저 나와야 논의가 시작되는 것이 인문학적 방식이다. 그러나 이 책은 순서가 바뀌어있다.

제10장의 율곡의 철학도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다. 이것은 앞에 소개한 조남국이 논의를 전개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이러한 이동인의 논리 방식은 아마도 사회과학자의 방법이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회과학적 방법이라기보다는 사회과학자의 입장에서 인문학자들의 방식을 절충한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참고로 이동인이 서울대학교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 목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서 론

 

제2장 개인적 배경

제1절 이이의 가족배경

제2절 이이의 학문과 지적 교류

제3절 이이의 관직 생활

제4절 이이의 우국과 개혁

 

제3장 사회적 배경

제1절 신분제와 그 모순

제2절 사림정치의 부흥과 사림의 분열

제3절 민생의 피폐

제4절 국제정세와 조선의 상황

 

제4장 사상적 배경

제1절 이이와 유가의 개혁전통

제2절 이이와 사림파

제3절 한국사상사에서의 이이의 위치

 

제5장 이이의 사회사상의 철학적 기초

제1절 자연존재론: 이기설

제2절 인간존재론: 심성정론

제3절 수양론: 교기질과 성기의

제4절 이이의 철학사상의 특징과 사회사상적 합의

 

제6장 이이의 현실인식과 개혁사상

제1절 이이의 역사관과 현실인식

제2절 이이의 개혁사상

제3절 이이의 사회개혁사상의 성격과 의의

 

제7장 이이의 신분관과 신분제도개혁론

제1절 이이의 신분관

제2절 신분제도의 개혁

 

제8장 왕도정치의 구현방안

제1절 이이의 왕도정치론

제2절 왕도정치 실현을 위한 개혁

 

제9장 이이의 경제개혁론

제1절 이이의 경제사상

제2절 이이의 경제개혁론

 

제10장 이이의 교육개혁론

제1절 이이의 학문관과 교육관

제2절 이이의 교육개혁론

 

제11장 이이의 국방사상과 병제개혁론

제1절 이이의 국방사상

제2절 병제개혁론

 

제12장 결론

 

이 목차를 『율곡의 사회개혁사상』과 비교해보면 제1부와 제2부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제2부의 내용이 앞으로 가 있다.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율곡의 사회개혁사상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제7장 율곡의 일생 제2장 개인적 배경
제8장 율곡의 시대 제3장 사회적 배경
제9장 사상적 배경 제4장 사상적 배경
제10장 율곡의 철학 제5장 이이의 사회사상의 철학적 기초

 

저자는 아마도 ‘율곡의 사회개혁사상’을 출판하면서 책 제목에 더 가까운 내용을 전면에 내세우고자 했던 것 같다. 사회과학자의 전문서로서는 그런 구성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1부와 2부로 나누고 제1부에 ‘율곡과 사회개혁’내용을 배치하고 제2부에는 서론적인 내용 즉 ‘율곡의 시대, 율곡의 삶’을 집어넣고 뒤에 배치한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율곡의 사회개혁사상』 제1부의 구성은 매우 조직적이다. 조남국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율곡의 사회 개혁 사상을 신분제, 정치분야, 경제분야, 교육분야, 국방분야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교보문고의 ‘책 소개’난을 보면 이동인의 『율곡의 사회개혁사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소개가 있다.

 

“조선의 뛰어난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율곡의 사상을 현대의 사회학자 시각에서 분석했다. 공리공론이 아닌, 경세를 위한 현실지향적 이념이었던 조선 유학을 통하여 조선의 시대와 사상을 새로이 인식하고 시대의 간격을 넘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도 과제로 남아있는 비용절감과 업무 추진의 효율을 위한 관공서의 구조조정,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 등에 대한 율곡의 문제 의식과 해법을 재조명했다. 율곡의 현실 인식과 개혁 사상, 신분제도, 정치 경제, 교육, 국방 및 병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율곡의 개혁 사상을 알아보고 당시 시대와 철학을 정리했다.”

 

‘사회학자의 시각’이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율곡의 개혁 사상을 알아보고 당시 시대와 철학을 정리했다.’고 하였다. ‘철학’은 역시 뒤에 나온다. 이 말은 율곡 철학에 대해서 저자가 소홀히 취급했다는 뜻이 아니라, 저자가 사회학자·사회과학자이기 때문에 저자는 자연스럽게 사회인식에 대해서 먼저 주목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병도와 금장태의 저술 비교3 저자의 주장

 

이병도의 『율곡의 생애와 사상』과 금장태의 『율곡 평전』 3: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1) 이병도의 『율곡의 생애와 사상』

 

『율곡의 생애와 사상』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율곡의 생애 관련 내용이며, 다른 하나는 율곡의 사상 부분이다.

 

가) 율곡의 생애

 

이 책은 율곡의 생애를 시대적 배경과 가정적 배경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시대적 배경으로 ‘정치방면’, ‘사회경제면’, ‘사상계 및 학계’, 가정적 배경으로 ‘출생과 가계’, ‘입산과 그 동기’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율곡이 성장한 이후의 생애를 ‘이퇴계를 방문’, ‘출세경력과 생애’, ‘율곡에 대한 『실록』의 평가’ 그리고 ‘율곡의 저술과 문인’으로 나누어 소개하였다. 아울러 11장에 붙여진 연보도 크게 보면 율곡의 생애 소개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시대적 배경에서 저자는 ‘중쇠기적(中衰期的)’ 현상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중쇠기’라는 단어는 율곡이 자신이 살던 시대를 표현한 말로 ‘중쇠(中衰)’란 번창하던 나라나 집안이 중간에 쇠퇴하는 일을 뜻한다.

 

저자 이병도는 조선시대 초기 100년간, 특히 세종, 세조, 성종의 치세를 조선의 문예 중흥기라고 할 수 있는 시대로 동양문화의 정화를 재현한 시기였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 시기를 거치면서 조선사회는 특히 지배계급 사이에서 타성이 싹트기 시작하였다고 보았다.

그 결과 연산군 같은 방탕한 군주가 등장하였으며, 조정에서는 기성세력과 신진세력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고, 궁중과 조정 사이에도 충돌이 일어나 마침내 무오사화, 갑자사화 등 참담한 사화가 발생하였다

이후 연산군이 폐위되고 중종이 정권을 잡아 폐습을 일신하고자 하였는데, 이때 조광조 등 신진 사대부들이 등장하여 사회개혁을 시도하였으나 기묘사화가 발생하여 실패하였다. 중종이 사망하고 인종, 명종 등이 대를 이었으나 이제는 외척들 사이에서 권세다툼이 노골화하여 다시 많은 지식인들이 화를 입는 을사사화가 발생했다.

 

그리고 율곡이 고위 관료가 되어 조정에서 활동을 하였던 선조시대가 되었다. 선조시대에 선비 관료들은 동인 서인 양파로 나뉘어 서로 배척하기 시작하였고, 정치는 고식적이고 미봉적이 조치로 일관하고 재정은 수지가 맞지 않아 경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북쪽 변경에서는 여진족이, 남쪽에서는 왜구가 자주 침범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상황에서도 조정은 어떤 확고한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16-18쪽)

율곡은 이러한 상태를 지켜보면서 자신의 시대를 중쇠기(中衰期)라 진단한 것이다.

 

저자는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농촌이 황폐되고 세금 징수와 관련하여 온갖 부조리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서술하고 1562년(명종 17년)에 황해도 일대에서 발생한 임꺽정의 난을 들어 농촌사회의 빈궁과 인심의 악화를 설명하였다.(20쪽)

 

이어서 저자는 율곡 사상의 학문적 배경으로 율곡이 활동을 시작하기 직전의 학계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당시 학계의 동향을 살펴보면 그동안 여러 차례의 사화, 그 중에도 기묘사화 이후 사류(士類 : 지식인들, 선비들, 유림)들의 기분이 저상(沮喪 : 기력이 꺾이어 기운을 잃음)하여 그들은 대개 정계를 등지고 산림(山林 : 전원, 향촌)을 유일한 낙원으로 삼아 오로지 지조를 닦는 – 말하자면 ‘정치는 정치’, ‘학문은 학문’이라 하여 양자를 둘로 나누는(별도시하는-저자)- 경향이 학계를 지배하였다.”(21-22쪽)

 

이러한 학계의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결과적으로 성균관이나 향교 등 공적인 학술 기관은 쇠퇴하고 각 지방의 서원이 흥성하게 되었다. 학문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각 지역에 은거하는 선비들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지방의 유생들은 사설 서원을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선현에 대한 추모와 봉사를 중요시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등장한 당시의 학술 사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공리적인 세속적인 관학에 대하여 수양과 사색을 주로 하는 진지각득(眞知覺得)의 참다운 성현의 학을 하겠다는 사조의 경향이 농후히 드러났음을 웅변으로 말하는 것이다. 동시에 사학의 대연원이 열리게 된 것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리하여 이때 유학의 경향은 체험실천과 사색과 이론에 기울어져 고상한 형이상학적 철리(哲理 : 성리학) 연구를 주안으로 하게 되었다. 당시 이 방면의 대가를 들면 기하의 김안국, 김정국 형제, 서경덕, 그 문인인 이지함, 김인후, 기대승 등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의 대개는 향토를 근거로 문호를 열고 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만큼 사림 세력의 확대와 그 영향이 컸던 것도 사실이었다.”(23쪽)

 

율곡의 사상은 이러한 학술적인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저자는 특히 율곡이 조광조와 서경덕 그리고 이황의 사상적 학문적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지적하였다. 다만 이기 학설과 관련해서 율곡은 고봉 기대승의 학설에 공감하였다고 하였다.(23쪽)

 

이어서 저자는 율곡의 생애와 관련하여 출생과 가계(25-27쪽), 입산(출가)과 그 동기(27-29쪽), 이 퇴계 방문(30쪽), 출세 경력과 생애(31-40쪽), 그리고 율곡에 대한 『실록』의 평가(40-42쪽), 율곡의 저술과 문인(42-46쪽)으로 나누어 소개했다. 이 중에서 율곡의 문인 즉 제자들에 대한 소개는 『율곡전서』 부록에 나오는 문인록을 참고하여 정리하였는데 수제자로 사계 김장생을 들었다.

 

 

2) 율곡의 사상

 

저자는 율곡의 사상에 대해서 먼저 사상적 계보를 살펴보고(제4장), 학문적 입장을 고찰하였다.(제5장) 그리고 율곡의 성리철학을 분석한 뒤(제6장), 수양론과 교육론을 살폈다.(제7장) 그 뒤에 율곡이 가지고 있던 불교관을 검토한 뒤에(제8장), 경세철학과 시무책을 분석하였다.(제9장, 10장).

 

율곡 사상에 대해서 먼저 저자는 ‘정통적 사상계보’(제4장, 48-51쪽)라 칭하여 자료를 제시한 뒤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율곡의 말을 빌어 말하면 「조광조는 도학을 창명(倡名)하고, 이황은 리굴(理窟 : 도학)에 침잠하였다.」하고 또 「이황의 재조(才調)와 기국은 광조(조광조)에게 미치니 못하나 그 의리(진리)를 깊이 연구하는 점에 이르러는 광조가 미치지 못한다.」고 하여 각각 그 장점과 단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가팅 율곡은 양현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자기 자신에 의해서 절충하고 혹은 보충하였던 것이다. 율곡은 요컨대 공맹·정주의 학을 정통으로, 본국의 정암 및 퇴계의 사상을 자기 일신에 절충하여 다시 집대성한 철인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학설에 있어서는 명의 정암 나흠순과 본국의 선학인 화담 서경덕의 영향도 있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51쪽)

 

이어서 저자는 율곡의 유학자에 대한 인식 및 학문적 태도(제5장, 52-57쪽)를 논하고 성리학으로 주제를 옮겼다. 율곡의 성리학(제6장 성리철학)에 대해서는 다시 태극 음양설(59-62쪽), 이기론(63-74쪽), 심성론(74-87쪽)으로 나누어 논했다. 이 중에서 태극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율곡은 결국 정주학에 입각하여 태극을 음양의 근저로 보고 이를 어디까지나 ‘리’로 규정하는 동시에 그것이 항상 음양가운데 내재하여 있는 ‘존재’로 해석하였다. 일음일양(一陰一陽) – 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되는 까닭은 – 즉 태극으로서 태극은 그 어느 쪽에고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음양은 시(始 : 시작)와 종(終 : 마침)이 없으므로 음양 이전에 태극이 따로 독립해서 있었다고 보아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59쪽)

 

저자는 이러한 율곡의 주장은 사암 박순과 주고받은 논의에서 자세히 엿볼 수 있는데 박순은 화담 서경덕의 제자이며, 서경덕은 또 송나라 장횡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였다. 율곡의 태극 사상 연원을 따져 올라가면 그렇다는 것이다. 저자는 율곡이 “태극을 음양 동정 가운데 내재한 ‘리’로 규정하였다는 것은 즉 음과 양, 동(動)과 정(靜)의 공통된 원인의 공통분모가 곧 태극이요, 리라는 것이었다.”(62쪽)고 결론을 지었다.

 

율곡의 이기론에 대해서는 율곡이 ‘이통기국(理通氣局)’이라는 새 발견어를 제시하여 이기론을 전개하였음을 밝히고(67쪽), 나아가 율곡의 이기론은 불교 철학과도 관련이 있으며 주기론자인 서경덕의 학설과도 상통되는 점이 많다고 주장하였다.(69쪽) 아울러 그는 율곡의 이기론을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율곡 사상의 절충성(종합성)을 지적하였다.

 

“나로서 솔직히 율곡을 평하라하면 그는 퇴계의 근신(謹愼 : 말이나 행동을 삼가고 조심함)과 화담(서경덕)의 창견(創見)을 아울러 본받으려고 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율곡이 주리적(主理的)이면서도 퇴계의 ‘이발설(理發說)’을 반대하고, 기의 담일(湛一)을 말하면서도 화담의 일기장존(一氣長存 : 질량과 에네르기 불감不減)설에는 좇지 아니 하였음을 보면 율곡은 주리, 주기 양파의 거두인 퇴계와 화담의 사상을 자기에 의하여 절충·조화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71쪽)

 

이어서 저자는 율곡의 사상에 대해서 제7장 수양 및 교육론(89-117쪽), 제8장 불교관(118-121쪽), 제9장 경세철학(122-135쪽), 제10장 시무책(136-170쪽) 등으로 나누어 논하였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약 3쪽의 맺음말(餘言)을 덧붙였는데, 첫머리에 쓴 저자의 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율곡은 참으로 불행한 시대를 만났었다. 처음에는 너무도 큰 포부를 가지고 현상을 타파하여 도의의 세계, 이성의 세계를 건설하려고 노력하였고, 만년에는 패멸과 붕괴의 단계를 밟는 이 나라를 모든 수단을 다하여 구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선조를 비롯하여 대신 동료들의 협력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동인측의 격렬 분자로부터는 맹렬한 비난을 받으면서 도로(徒勞 : 헛된 수고) 10수년에 최후를 마치고 말았다. ”(173쪽)

 

저자는 이렇게 율곡의 헛된 노력에 대해서 말하고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나는 감히 말한다. 저 임진왜란에 당하여 무인으로서 적성(赤誠: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참된 정성)과 신책(神策)을 가지고 눈부신 활약을 하여 마침내 국난을 타개하고 국가사회를 구출한 은인이 충무공 이순신이라고 하면 임진 이전에 있어 국가가 날로 그릇돼가는 것을 개탄하고 모든 수단을 다해서 상하에 호소, 최후 일각에 이르기까지 국가사회를 구출하려고 혼신 노력한 유일한 철인이 이율곡이었다고 하겠다. 이상하게도 양인(두 분)은 본시 같은 덕수 이씨의 혈통을 받아 한 분은 철인 경세가로서, 또 한 분은 성웅으로서 이 민족의 경종과 횃불이 된 것이다.”(173쪽)

 

 

2) 금장태의 『율곡 평전』

 

 

가) 율곡의 생애

 

저자는 율곡의 생애를 가족적 배경과 성장(1부, 11-42쪽), 청년기의 탐색과 교유(2부, 45-115쪽), 벼슬길에 나와 나라를 근심하며(3부, 119-174쪽)로 나누어 소개하였다.

이 책은 율곡의 생애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저술한 만큼 율곡의 생애사 관련 서술이 매우 상세하다.

예를 들면 저자는 율곡의 부친 이원수 대해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율곡의 부친 이원수에 대해 「율곡연보」에는 ‘성격이 착실하고 꾸밈이 없으며, 너그럽고 겸손하여, 옛 사람의 기풍이 있었다’고 아름답게 서술하였지만, 전해오는 단편적 일화들은 성격이 유약하고 큰 뜻을 품은 것이 없어 선비다운 기상을 지니지 못했던 평범한 인물로 보인다. 율곡 자신이 서술한 말로는 ‘부친은 성품이 호탕하여 세간 살이를 돌아보지 않았으므로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려웠다’는 한 구절이 보인다. 이 말은 호걸스러운 인물이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가정에는 관심이 없이 밖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다는 방탕한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13쪽)

 

이어서 저자는 “이원수가 수운판관에 올랐고, 뒤에 사헌부 감찰에 올랐다고 하는데, 과거에 급제한 일이 있는지, 누구의 천거를 받아 벼슬에 나간 것인지 아무런 기록이 없다.”(13쪽)고 하였다. 철저히 기록을 찾아보고 서술해나간 저자의 정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저자는 율곡의 성품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하고 평가를 하였다.

 

“문인(제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둘째형 이번은 벼슬에 나가지도 못했으며 물정에 어둡고 어리석은 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으면 번번이 율곡을 불러서 시켰는데, 율곡은 이미 벼슬이 높았지만 종이를 자르는 일이나 차를 올리는 일 등 형이 시키는 대로 몸소 하여 게을리 함이 없었다 한다. 곁에서 제자들이 보기가 민망하여 스승에게 공손함이 지나치니 자제들이 대신하게 하도록 청했던 일이 있었다. 이때 율곡은 ‘부모나 형이 나에게 분부하는데 내가 어찌 감히 다른 자제로 수고로운 일을 대신시키겠는가. 부모나 형의 앞에서는 지나친 공손이 예법이다. 뜻밖에 부여된 벼슬은 천성(天性)이 아니니, 지위가 높고 낮음은 논할 것이 아니다. 더구나 세월이 유수와 같은데, 형이 작고한 뒤에는 비록 예를 행하려 해도 행할 수 있겠는가(이유경 「栗谷遺事」)’라고 했다. ”(14-15쪽)

 

이와 같은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는 율곡의 큰 누님 매창의 일, 그리고 작은 누님의 일을 소개하면서 율곡이 형제들과 우애가 각별하게 깊었으며, 그래서 고향을 찾아갈 때마다 어릴 적에 형제들이 함께 지내던 시절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고 하고 율곡의 시문을 소개하기도 하였다.(16-17쪽)

 

아울러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과 외할머니 이야기 그리고 부친 이원수가 신사임당 사망 후에 들였던 처 권씨에 대해서 소개하였다. 권씨는 율곡에게는 서모인데 성질이 아주 고약한 사람이었다.(25쪽) 이러한 가정사를 소개한 뒤에 저자는 이러한 환경이 율곡에게 미친 영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서모에 대한 이야기는 율곡이 예법을 극진하게 지킨 것이라는 이야기보다는 인간적으로 포용하는 덕이 컸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이해되며, 율곡이 가정의 화합을 위해 얼마나 참고 견디며 노심초사하였던 지를 넉넉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율곡에게는 평범하기만 한 아버지와 너무나 탁월한 어머니가 대조될 뿐만 아니라, 지극히 현숙하고 자애로운 어머니와 극도로 패악한 서모가 극적으로 대조되면서, 마치 뜨거운 불과 차가운 몰로 번갈아 쇠를 단련하듯이 율곡의 인격과 정신을 단련해주는 배경이 되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26쪽)

 

계속해서 저자는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사망하고 방황하다 불교에 입문하게 된 과정을 소개하였는데, 율곡이 “18세 때 어느 날 봉은사에 가서 불서를 뒤져 보다가 불교에서 말하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론에 깊이 감명을 받았고, 또 불교의 학문이 간결하고도 오묘함을 좋아하여 시험 삼아 한 번 속세를 떠나 불법을 연구해 볼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라고 하였다.(36쪽)

 

그리고 저자는 율곡의 혼인과 가정생활(37-42쪽), 장인이야기 등을 소개하고 율곡의 지인 허봉(許篈)이 율곡의 집을 방문하여 율곡 가족이 아주 가난하여 끼니로 죽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으며 매우 가련했다고 한다. 이러한 허봉의 기록에 대해서 저자는 조선시대 당시 선비들의 생활을 서술하면서 흔히 쓰는 말투로만 들리고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항복의 기록에 보이는 것처럼 ‘율곡은 해주에 살 때 대장간을 차리고 호미를 만들어 팔아서 생활하였다. 의리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이라면 대인(大人)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실행하였다.(이항복, 『백사집』)’는 언급이 훨씬 더 율곡다운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관습과 통념에 얽매여 허례허식이나 찾아서 신분적 권위를 유지하려는 것은 결코 율곡의 생활태도가 아닐 것이다.”(42쪽)

 

이어서 이 책은 율곡이 금강산에 들어가 불도를 닦던 일, 하산하여 다시 유교 경전을 읽기 시작했던 일, 그리고 퇴계를 찾아가 학문의 길을 물었던 일, 과거시험마다 장원을 했던 일, 평생의 벗인 성혼과 송익필, 정철 등을 사귀었던 일을 소개하였다.(제2부)

이 가운데 퇴계사상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한 저자는 다음과 같이 퇴계와 율곡의 학문적 관심에 대해서 평가하였다.

 

“퇴계와 율곡이 보여준 학문적 관심의 초점은 퇴계가 ‘수양론’에 두고 있다면 율곡은 ‘경세론’에 두고 있는 것으로 차이를 드러내준다. 뿐만 아니라 성리설에서도 퇴계는 ‘이치(理)’와 ‘기질(氣)’을 분별하여 혼동할 수 없음을 강조하여 ‘이원론’의 경향을 보이는데, 율곡은 ‘이치’와 ‘기질’은 서로 떠날 수 없다는 일치성을 강조하여 ‘일원론’의 경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조선시대 성리학논쟁의 두 축을 이루었던 것이 사실이다.”(80쪽)

 

저자는 이러한 차이는 퇴계가 선비들이 탄압받던 시대에 살았으며 율곡은 선비들이 정치를 주도하는 시대에 살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시대 배경이 달랐기 때문에 두 사람의 사상차이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저자는 퇴계와 율곡의 차이를 보고 어느 쪽이 옳은지를 따질 것이 아니라 두가지 시야로 퇴계와 율곡의 철학을 함께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80쪽)

 

이어서 이 책은 율곡이 벼슬하던 시기의 이야기(3부)를 서술하였는데, 율곡의 개혁정책, 외교활동 이야기, 지방에서 펼친 백성 교화 행정의 이야기, 당쟁을 막기 위한 율곡의 노력 그리고 49세로 사망한 이야기 등을 서술하였다.

 

나) 율곡의 사상

 

율곡의 사상은 이 책의 4부, 5부, 6부, 7부에 서술되어 있는데, 핵심적인 내용은 6부 ‘도학의 학문세계’에 담겨 있다. 이 중에서도 제1장의 ‘사칠론과 인심도심론의 성리설’에 서술되어 있는데 이 부분(251-270쪽)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저자는 먼저 심성론의 인간학적 성격을 소개하였는데, 저자는 다음과 같이 유학의 심성론을 정의하였다.

 

“심성론이 제기되는 성리학적 문제의식의 전제는 도덕적 주체로서 인간자신에 대한 인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인간존재는 도덕적 실천을 함으로써 의미 있는 존재라는 이해가 성립한다. 여기서 인간존재에 내재되어 있는 도덕적 근거를 인식하고 도덕적 실천의 가능성과 방향을 확인하기 위해 심성론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251-252쪽)

 

유교에서 심성론이 왜 중요하게 논의되는 지를 저자는 위의 인용문과 같이 설명한다. 결국 저자는 심성론의 문제가 “원초적으로 ‘인격의 도덕적 실현을 위한 실천적 관심’에서 출발한 것”이라 정의한다.

 

저자가 이러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다음 절 즉 제2절 마음의 전개양상과 ‘인심’·‘도심’의 구조에서 율곡의 심성론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저자는 “율곡은 마음을 하나의 통합된 인격적 주체로 이해한다.”(252쪽)고 하였다. 즉 인간의 성품(性)이나 감정(情), 혹은 의식(意)이 무슨 독립적 실체가 아니라 이들 모두는 마음의 양상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율곡이 몸과 마음을 엄격하게 이원적으로 분리기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율곡)는 인간의 몸이 기질로 이루어진 것처럼 마음도 기질로 이루어져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하나의 통합된 인간존재를 이루는데, 이 인간존재의 주체를 마음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몸은 신체라는 부분적 의미와 함께 자신으로서 몸과 마음을 합친 전체적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일체성의 중시는 그의 성리설을 관통하는 관점이다.”(253쪽)

 

여기서 저자가 ‘기질’이라고 표현한 것은 성리학에서 ‘기(氣)’를 말한다. 말하자면 율곡은 몸과 마음이 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이 두 개로 엄격히 구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즉 마음이 몸을 주재하여 마치 임금과 같은 존재이며, 몸은 신하처럼 마음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율곡의 이기론과도 관련이 되어 있는데, 율곡은 리와 기의 관계를 인식함에 있어서도 두 가지가 원래 합치되어 있는 것이라고 본다. 리와 기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심(心, 마음)과 신(身, 몸)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성(性), 정(情), 의(意)도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고 본다. 즉 이기 일원론의 입장에 서있다고 한다.(253쪽)

 

율곡은 이러한 입장에서 인심(人心, 인간적인 마음)과 도심(道心, 도덕적인 마음)을 설명할 때도 이 두 마음이 서로 독립된 두 존재 양식이 아니라 두 가지 상반된 가치를 지향하는 것뿐이라고 하였다. 즉 인간의 마음이 도덕적 가치를 위해서 발동할 때는 도심이요, 신체적 욕구를 위하여 발동할 때는 인심이 되는 것이지 이 두 가지가 별도로 존재하는 어떤 서로 다른 마음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그것들은 마음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그는 이를 인심과 도심이 서로 시작과 끝이 된다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율곡의 인심도심설이다.(254쪽)

 

저자는 율곡의 성리학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266-267쪽)

 

첫째, 그것은 결코 이기론으로 분해되는 추상적인 관념론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매우 구체적으로 인간의 주체성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인간이해의 성리학이었다.

둘째, 그것은 우리의 심성을 하나의 통합된 주체로서 현실의 전체적 존재로 파악하는데 관심을 기울인다. 곧 인간존재는 도덕적 가치에 앞서서 존재하는 독립적이고 통합적인 인격의 주체이다.

셋째, 그의 성리학에서는 기질의 차이에 따라 존재의 영역을 구별하는 데 주의하면서 특히 인간의 기질과 성품이 지닌 독특한 위치를 중요시한다. 즉 천지 만물과 인간이 다름을 주목한다.

넷째, 율곡의 심성론은 수양론의 근거와 방법의 탐색으로 연결되고 있다.

 

저자는 율곡의 일원론을, 이와 기를 분리하여 인식한 퇴계의 이기 이원론과 대비하면서 ‘천하를 착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퇴계의 이원론은 ‘자신을 착하게 하는’ 사상으로 보았다. 이러한 퇴계의 이원론은 ‘사회현실의 격류를 벗어나 강언덕에 자리 잡은 것’인 반면에, 율곡의 이기 일원론은 ‘사회와 역사의 역동성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신념의 철학’이라 보았다.(270쪽) 말하자면 율곡은 ‘격류 속으로 뛰어들어 물길을 바로잡음으로써 ‘이치(理)’가 모든 현상과 사물에 관통’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이병도와 금장태의 저술 비교2 저작 의도

이병도의 『율곡의 생애와 사상』과 금장태의 『율곡 평전』 2 :

저자들은 왜 이 책을 썼는가?

 

 

1) 이병도의 『율곡의 생애와 사상』

 

1973년에 쓴 서문에서 저자 이병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일찍이 역사학(史學)을 전공하는 한편, 우리나라 유학 발달사에 큰 관심을 가지고 먼저 퇴계와 율곡을 중심으로 하여 그 이전과 이후를 연구하여 왔다.”(4쪽)

 

그는 역사학자답게 유학 발달사, 즉 사상사에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퇴계와 율곡을 주목하였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중에서도 율곡에 관하여는 연래 단편적으로 그의 학설과 정치 철학 내지 시무책에 대하여 누차 발표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이를 일괄하여 전체적으로 묶는 공작의 기회를 잃었었다.”(4-5쪽)

 

그리고 1973년 9월 서문당 출판사의 도움을 받아 이미 발표한 단편들을 묶어서 이 책자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가 조선시대 유학사를 주목하게 된 1970년 당시 사람들은 유교 혹은 유학에 대해서 낡은 사상이니 썩은 학문이니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이 보기에 유교 사상의 모든 것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훌륭한 가치를 인정할 만한 사상이 담겨 있다. 예를 들면 인격 도야의 정신, 기질 변화의 정신, 혹은 인애의 정신, 그리고 민본주의 등은 만고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하였다.(3쪽)

특히 우리나라는 그동안 수 천 년을 일관하여 유교·유학을 숭상해왔는데, 동양 사상의 가장 중심이 되고 근간이 되는 이 사상을 하루아침에 버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또 유교의 근본 사상은 인애주의이며 도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므로 널리 인류 사회의 평화와 질서와 번영을 꾀하는데 적절한 사상이라고 하였다.

이런 이유로 유교 경전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며, 그 사상과 학문이 어떻게 변천 발달하여 왔는가, 그 과정을 더듬어 볼 필요가 있으며, 유학사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절실히 요청된다고 하였다. 그는 퇴계와 율곡을 중심으로 한국 유학사를 연구하고 특히 율곡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단행본을 내게 된 이유를 이렇게 소개하였다.

 

그는 율곡 이이에 대해서, 퇴계 이황과 함께 언급되는 동방의 대현(大賢 : 큰 현자)이며, 조선이 낳은 위대한 철인(철학자)이요, 학자요, 정론가이며, 교육가, 문장가, 그리고 능변가(말을 능숙하게 잘하는 사람)이기도 하다고 하였다.

또 율곡은 ‘탁월한 재분(才分 : 타고난 재능 혹은 천부적인 재질)과 고결한 인격, 심오한 학문과 원대한 포부, 창달한 문장과 도도한 변론, 정연한 체계, 예리한 비판력, 공정한 태도 등등은 우리 한국 유학사상에 드물게 보은 거유였다.’(13쪽)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율곡은 한국과 중국의 유학자들이 제시한 여러 학설을 모두 한 몸에 절충하고, 이를 집대성하여 자기적인 견해와 논리를 전개하였으며, 초년에는 불교서적을 탐독하고 산에 들어가 참선의 체험 공부를 하다가 다시 유학과 성리학으로 돌아와, 그의 성리철학에는 불교, 특히 화엄철학의 영향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13쪽) 또한 율곡은 형이하학적인 실용과 실사의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한 검토와 연구를 거듭하는 등 매우 다채로운 유학자였다고 하였다.

 

저자 이병도는 율곡의 ‘우국의 정열은 대단하였다.’(14쪽)고 지적하고 만약에 율곡이 살았을 당시 그의 제안과 정책을 받아들여 대경장(大更張)을 단행하여 폐해를 시정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여 중흥 강국을 이루었다면, 외부의 침략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였다. 혹시 외침이 있었더라도 충분히 막아내고 말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우리 민족 천추의 한이며, 우리가 율곡 선생을 숭배하고 흠모하는 것은 그의 고결한 인격과 도의 사상과 훌륭한 학식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열렬한 우국 애민의 정신 그것에 있다고 지적하였다.(15쪽)

저자는 이러한 점이 그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주의를 끄는 중요한 점이며, 이 책에서 율곡의 현실 문제에 관한 발언언론을 많이 소개하고 서술한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였다고 하였다.

 

 

 

2) 금장태의 『율곡 평전』

 

저자는 율곡에 대해서 “우리 역사가 파탄의 위기에 놓였을 때 횃불을 들어 위험을 경고해주고 나가야 할 길을 비쳐주었던 선각자의 한사람”이라고 평하고,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율곡은 퇴계와 더불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도학(주자학)의 높은 봉우리를 이루었던 학자이다. 그는 성리설의 철학적 논변에서 명석한 이론을 정립하였지만, 결코 관념적 이론에 매몰되었던 인물이 아니다.”(「머리말」)

 

율곡이 퇴계와 함께 조선시대 유학의 양대 산맥 중 한 봉우리를 이루었다는 것은 율곡이 살아있을 때를 기준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율곡이 사망한 뒤의 평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율곡(1536-1584)이 활동하였던 16세기 후반의 유학계는 퇴계 이황(1502-1571)의 권위가 압도적으로 우위였고 율곡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았다. 하지만 인조, 효종, 현종, 숙종의 시대를 거치면서 율곡은 퇴계와 어깨를 겨루는 사상가로 떠올랐고 많은 유명 유학자들이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율곡의 사상적 특징은 성리학의 관념적 이론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것은 퇴계와 비교해 볼 때 더욱 뚜렷이 부각 된다. 퇴계는 일찍부터 벼슬에 대한 꿈을 버리고 경상도 예안(안동)의 산촌에 머물면서 수양을 하거나 후학을 양성하는데 열성이었다. 한양에서 관직 생활을 하면서 속세의 잡다한 일에 파묻혀 살았던 율곡은 당연히 ‘성리학의 관념적 이론’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저자는 율곡의 철학사상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율곡은) 인간 심성에 대한 성리설의 철학적 분석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인물이다. 그의 철학을 한마디로 집약한다면 근원의 이치와 현실의 당면과제를 연결시켜 해석하는 ‘체용일원(體用一源)’ 내지 ‘본말일체(本末一體)’의 ‘일원론’이요, 그의 용어를 빌리면 ‘이통기국(理通氣局)’의 철학이다.”(머리말)

 

‘체용일원’이란 ‘체(體)’와 ‘용(用)’이 ‘일원(一源)’ 즉 하나의 근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체’는 사물의 본체(本體)나 본질, 실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용’은 사물의 작용이나 기능, 현상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사물의 두 측면, 즉 본체와 작용의 두 부분이 사실은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본(本)과 말(末)이 일체(一體), 즉 하나라는 것이 율곡의 철학이라는 말이다. 아울러 리와 기는 하나로 동일한 근원을 가지고 있으나 리는 전체적인 부분에 관여되며 기는 어느 한 국면에 관여되는 것뿐이라고 하였다. 이는 ‘이통기국(理通氣局)’의 사상이며 율곡의 독특한 이기론이다.

이러한 율곡 철학은 금장태의 해석에 따르면 “보편적인 이치의 빛으로 시대와 사회의 구체적 현실이 가야할 길을 밝혀야 한다.”(「머리말」)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나라의 병통을 샅샅이 살피고, 치료의 방법을 정성스럽게 제시하며, 나라가 가야할 방향의 이상을 제시하는데’ 헌신적인 열정을 기울였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성리학자이면서 경세사상가였다.

 

저자는 율곡을 높이 받들어 올리려는 눈길로 보려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이 책에서 “율곡의 일상생활과 공적 활동 속에서 번민하고 행복해하는 인간적 모습을 더듬어 보고, 꿈꾸는 이상과 현실 속의 좌절을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 묻고 싶다.”(「머리말」)고 하였다. 나아가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율곡을 4백여년전 옛 사람으로 만났던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우리 시대에 함께 살면서 우리가 안고 있는 이 시대의 문제를 먼저 고민하고 깊이 통찰하는 철인(哲人)을 찾아가는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율곡의 사상적 특징으로 이상과 현실의 양쪽 측면을 다 살피면서 시대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통찰하는데 있다고 보고 그러한 점을 이 책에서 서술하였음을 지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