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기를 좋아함 (4)

『대동야승(大東野乘)』을 통해 본 조선 시대 선비 이야기 Ⅲ

선비정신

 

배우기를 좋아함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입시 공부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라고 말하면 정신 나간 소리라고 비웃을 것 같다.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공부하라는 소리를 줄곧 들어 왔으니 공부가 즐거울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강요가 아닌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배움의 즐거움을 맛보게 한 부모가 있다면, 그의 자녀들은 틀림없이 공부를 좋아할 것이다.

이와 달리 필자는 한 번도 공부하라고 강요받아 본 적이 없이 청소년기를 보냈다. 공붓벌레여서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필자가 살았던 당시 시골에서는 학원도 과외도 없었고, 대학의 진학률도 낮고 그에 따른 경쟁도 적어서, 또 대학에 보낼 형편도 못 되어 어릴 때부터 공부를 강요하는 집은 드물었다. 그래서 농사일을 돕거나 자유롭게 자연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 경험이 적어도 공부에 대한 거부감은 만들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훗날 상급학교에 진학해 공부에 흥미를 느꼈을 때, 수업 중간의 10분 휴식도 아까워 책을 봤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 나이가 될 때까지도 책을 손에 놓지 않고 연구한다. 이렇게 배우기를 좋아하는 동력은 배움의 즐거움이다.

왜 배우는가?

청소년들이나 대학생들에게 왜 배우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원하는 직장을 얻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요즘 같아서는 원하는 직장은 아니더라도 안정적 직장이라도 얻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대답일 것이다. 물려받은 재산이나 사업체가 없는 청년은 어딘가에 자기 노동력을 팔아야만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진 게 없는 사람은 배워야 먹고 살 수 있다. 세계 3대 성인 가운데 한 사람인 공자도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배웠다. 그래서 자질구레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배워서 성인이 된 분이다. 그것을 유학의 용어로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 아래를 배워 위에 달한다.)이라 부른다.

생각해보라! 일차적으로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배워서 생계나 닥친 문제를 해결했을 때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래서 논어 첫머리에도

“배우고 날마다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공자의 삶에서 우러나온 독백일 것이다. 가난한 청년이 배워서 생계도 해결하고 더 나아가 훌륭한 인격을 소유한 인물이 된 일이 어찌 기쁘지 않았겠는가? 필자는 생계 문제를 도외시하고 처음부터 인격 함양이나 고상한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공부한다는 말은 현대 사회에는 공허한 말이라고 믿는다. 물론 인격의 향상과 무관하게 생계만을 위해 공부하는 일도 비루하지만, 그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공부도 허황하고 무책임하다.

선비들의 배움

조선 선비들에게도 그런 고민이 분명 있었다. 이이의 격몽요결에 보면 그 흔적이 보인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선비들은 오로지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벼슬해야만 제대로 먹고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은 선비가 벼슬길에 나아가 큰 뜻으로 바른 정치를 할 능력과 재주가 없으면 높은 벼슬을 해서는 안 되고, 생계만을 위해서는 낮은 직책에 만족해야 한다고 하였다. 맹자도 그런 경우에는 야경꾼이나 문지기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더라도 대다수 선비는 호구지책보다 세상을 위해 큰 뜻을 세워 포부를 펼치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학문과 덕을 쌓아야 하니, 배움이 문제가 된다. 논어의 첫 장도 또 같은 유가 계통인 순자의 첫 장도 배움에 관한 말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배움의 진정한 의미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다. 곧 자신의 덕을 이루기 위함이지, 남에게 팔려 재물과 명성과 권세를 노리는 ‘위인지학(爲人之學)’은 아니다. 이렇듯 배움의 가장 이상적 목표는 공자처럼 성인이 되는 일이다.

조선 시대만 해도 이렇게 자신의 덕을 향상하기 위해 배우는 문화 전통이 있었다. 그래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자신의 덕과 인격을 함양하는 배움에만 즐기는 선비들도 있었다. 입신양명하는 출세에 의미를 두지 않고, 배움을 즐겨 성현이 되는 일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배움의 즐거움을 잘 모른다. 그들은 그것을 괴로운 일로 여기지만, 자신의 덕과 정신적 성장을 맛본 사람들은 그 즐거움이 증폭되어 배움에 더욱 빠져든다. 앞으로 소개할 선비들은 이렇게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벼슬길에 나아간 사람도 있고 나아가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것은 해당하는 사람의 출처관과 선택의 문제이지, 배움이 어느 한쪽만 선택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움을 좋아했던 선비들

조선 시대 대 학자로 불리는 분들은 하나같이 배움을 좋아했다. 그분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잘 알고 있어서 다 소개할 필요는 없겠고, 특이한 사항과 아울러 숨은 인물을 발굴하는 차원에서 소개하겠다.

선비들의 공부 방법은 대개 독서와 수양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독서가 꼭 수양만을 위한 게 아니다. 전문 지식과 관련된 것도 있다. 그래서 배우는 내용이란 대개 유교 경전과 문장(문학)과 역사에 한정되지만, 천문(역법)·지리·문자(음운)·병법·산법(수학)·의술·기예(음악·글씨) 등에 능한 선비도 꽤 있다. 폭넓게 배우는 선비들은 이것들을 두루 섭렵하였다. 때로는 불교와 도교 및 복서(卜筮)에 조예가 깊은 선비들도 있었다. 호학과 관련지어 몇 가지 사례만 소개하겠다.

조선 전기 문신인 조수(趙須)는 일찍이 스스로 말하기를 “총명한 것이 많이 읽는 것만 못하다. 나는 모든 글에 있어서 반드시 백 번씩 읽었다. 그래서 비록 늙었으나 읽은 내용을 잊지 않고 있다.”라는 말이 해동잡록에 전한다.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하나의 책을 백 번 반복해서 읽는 일은 쉽지 않다. 좋아서 꾸준히 하는 일은 천재의 능력을 따라잡는 길인 것 같기도 하다.

또 평생 늙어 죽을 때까지 배운 이도 있다.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 따르면 조선 전기 유순(柳洵)이 글 읽기를 좋아하여 늙어서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일찍이 보지 못한 글을 읽다가 탄식하기를, “늙은 내가 하마터면 이것을 알지 못하고 죽을 뻔하였다.”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배우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는 글이다.

또 책을 많이 읽은 사람 가운데는 조선 중기 문신인 유희춘(柳希春)이 있다. 김시양(金時讓, 1581~1643)의 부계기문(涪溪記聞)에서는 그가 곤궁하게 살아가면서도 만 권이나 되는 서적을 독파하였다고 전하고, 이이의 석담일기에서는 그는 널리 읽고 기억을 잘하여 경서와 사기를 다 외웠다고 전한다. 또 윤근수(尹根壽 : 1537~1616)의 『월정만필(月汀漫筆)』에서도 임금 앞에서 성리대전(性理大全) 인용하였는데, 반 장을 외어 나가도록 한 자도 틀리지 않았다고 전한다.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 많은 책을 읽고 외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러 글에 등장하는 점을 보면 그가 독서를 즐기면서 많이 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배움이란 굳이 글공부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종 때 아악을 정리한 사람으로 박연(朴堧)을 잘 알고 있는데, 그가 처음부터 음악을 잘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으나 실은 그렇지 않다. 성현(成俔 : 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대제학 박연은 영동(永同)의 유생이다. 어려서 향교에서 수업할 때 이웃에 피리 부는 사람이 있어서 독서 하는 틈틈이 피리를 익히니, 그 지역에서 모두 훌륭하다고 인정하였다. 그가 과거 보러 서울에 가다가 장악원의 노련한 악사에게 교습을 받는데 선생이 크게 웃으며

“음악이 촌스러워 절주에 맞지 않고 나쁜 습관이 이미 굳어져 고치기 어렵다.”

라고 말하니, 박연이 말하기를,

“그렇더라도 가르침을 받겠소이다.”

라고 하고, 나날이 왕래하여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수일 만에 악사가 들어 보고,

“선비님은 가르칠 만하다.”

라고 말하고, 또 며칠 뒤 들어 보고,

“연주의 틀이 제대로 잡혔으니, 장차 크게 될 것 같다.”

라고 하더니, 또 며칠 뒤에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무릎을 치고 말하기를,

“나도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겠다.”

라고 하였다. 그 뒤에 과거에 급제하여 또 금슬(琴瑟: 악기 이름)과 여러 음악을 익히니, 정밀하고 절묘하지 않음이 없었다. 세종의 총애를 얻어 음악에 관한 일은 관장하였다.

우리는 흔히 박연을 음악가로만 안다. 그도 그럴 것이 교과서에도 그렇게 소개되기 때문이다.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그는 유생으로서 과거를 준비한 선비였다. 대제학이란 직책은 원래 학식이 높은 학자에게 내리는 벼슬임을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는 애초 음악을 취미로 배웠고, 전문 연주자인 장악원의 악사가 볼 때는 촌스러운 초보자에 불과했다. 그러던 그가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악사에게 배우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피나는 노력으로 훌륭한 음악가가 되었다.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결코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배움을 좋아하는 데는 그 내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요즘 아이들은 운동이나 예능을 배우기 좋아한다. 단순 논리로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과목을 순서대로 말하라면 일등이 단연코 체육이다. 거꾸로 싫어하는 과목을 순서대로 말하라고 하면 아마도 수학이나 국어가 아닐까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입시에서 국·영·수 과목의 비중이 제일 높다.

이처럼 선비들이 배우기 좋아하는 데도 우선순위가 있을 것이다. 유학에서는 자신의 덕을 쌓기 위해 배우는 일을 최고로 여기고, 이에 배움을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의 덕을 쌓는 일과 통한다. 그래서 앞서 소개한 박연의 일화처럼 누구에게서라도 덕의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배우려고 하였다. 다음은 정홍명(鄭弘溟 : 1582~1650)의 『기옹만필(畸翁漫筆)』 속의 일화이다.

조광조(趙光祖)는 8~9세 때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하루는 말리는 육포를 고양이가 물고 갔는데, 김굉필은 여자 하인이 그것을 잘 지키지 않았다고 화를 내며 야단쳤다. 그 육포는 어머니의 반찬으로 드리려던 것이었다. 이때 그것을 본 조광조가 천천히 말하기를,

“선생님의 어버이를 위하는 정성은 진실로 지극합니다만, 하인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선생님께서 그 일로 너무 화를 내시니 좀 온당치 못할까 합니다.”

라고 하였다. 김굉필이 놀라고 탄복하며 말하기를,

“네가 어린아이로 내게 와서 공부하는데 내가 도리어 너에게 배웠다.”

라고 하면서, 종일토록 데리고 칭찬하였다고 한다.

조광조가 선생께 바른 도리를 말하는 일도 대단하지만, 김굉필이 어린 제자에게 배우는 일도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조광조나 김굉필 모두 몸소 수양하여 도리를 실천하는 일을 학문의 으뜸으로 여기는 선비들이다. 김굉필은 소학의 가르침을 따라 몸가짐에서 한 점 흐트러짐이 없이 살았던 분이고, 유학 본래의 가르침대로 지치(至治)의 실현, 즉 말하자면 이상적인 나라로 만들려고 했던 분이 조광조이다.

하지만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하여 일찍 죽은 선비도 있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필원잡기(筆苑雜記)에 보인다.

성간(成侃)은 어려서부터 널리 보고 많이 기억하며 읽지 않은 서적이 없었다. 사대부나 친구의 집에 희귀한 서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반드시 구해보고야 말았다. 항상 장서각 속에 파묻혀 주변의 서적을 밤낮으로 다 열람하니, 동료들이 책을 너무 좋아하는 성벽이 있다고 놀렸다. 그러나 독서에 과로하여 몸이 여위고 파리하게 되어 나이 30에 숨을 거두었으니, 참으로 애석하다.

배움을 좋아하다 건강을 잃은 사람이 비단 한두 사람뿐이겠는가? 오래 읽으려면 몸도 건강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도 건강을 잃으면 다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만다. 만고의 명언이다.

배움을 즐겨라

배움을 좋아하는 일은 선비의 기본 자질이다. 이 세상에 배우기를 싫어하는 사람치고 현명한 사람은 없고, 성공한 사람도 없다. 공자 같은 이는 배워서 성인이 된 분이다. 배움이야말로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마법이다.

그런데 배우는 일이 즐겁지 않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 까닭은 애초 배움을 잘못 선택한 데서 온 것도 있고, 억지로 하기에 힘들고 고단해서 그럴 수도 있다. 여기서 고단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도 대개 배우는 내용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어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옹야」).”라는 말이 있고, 우리나라 해병대 표어 가운데 하나에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는데, 이 두 말에는 공통점이 들어있다. 억지로 하는 일보다는 즐기면서 하는 일의 성과가 크다는 사실이다.

사실 누구든 노는 일에는 지칠 줄 모른다. 즐겁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대인들은 생존을 위해 즐겁지 않은 일도 해야 한다. 그 대안 가운데 하나가 일과 취미를 병행하는 일이다. 더 좋게는 본업을 즐기는 방법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면 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