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방법의 차이


개혁방법의 차이

 

소라이: 그런데 선생님의 개혁안을 보고 제가 깜짝 놀란 것이 있습니다.

율곡: 무엇인지요?

소라이: 임금에 대한 건의가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율곡: 어떻게 많다는 것인지요?

소라이: 예를 들면 ⌈만언봉사⌋(1. 상하가 서로 믿는 실질적인 노력이 없음을 논함)에서 선생님은 이렇게 건의합니다.

“임금께서는 밝은 지혜가 넉넉하시지만 덕이 넓지 못하시고, 착한 것을 좋아하하기는 하시나 의심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신하들이 의견을 올리려고 힘쓰면 지나친 월권이라고 의심하시고, 기개와 절개를 높이는 자를 보면 과격하다고 의심하십니다. 신하 가운데 어떤 자가 여러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면 당파가 있어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의심하시고, 신하 중에 어떤 사람이 죄가 있을 경우, 그를 공격하면 삐딱하게 모함한다고 의심하십니다.”(원문을 현대어 문장으로 의역함, 이하 같음)

저는 우선 이렇게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에게 무차별적으로 직언을 한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습니다.

율곡: 허허,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요?

소라이: 저는 제가 제시하는 개혁안(⌈정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최고 직위에 있는 군주에게는 그렇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요구가 거의 없다고 할 수도 있지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도는 성인이 창조한 것입니다. 또 거꾸로 말한다면 성인이란 도를 창조한 사람이지요. …… 옛날에 도를 예악형정(禮樂刑政)의 제도로 체계화한 사람은 요․순․우․탕 그리 문왕과 무왕 등 이른바 삼대의 군주들입니다. 그들이 성인 중에도 성인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인이 성인인 까닭은 어디까지나 예와 악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점에 있는 것이지, 그 사람들이 도덕을 완전무결하게 모두 갖춘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인도 어디까지나 사람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도덕을 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규 소라이, ⌈일본정치사상사연구⌋, 211-212참조)

선생님은 임금에게 덕이 넓지 못하고 의심이 많다고 지적하시지만 사람의 덕은 그 사람의 성(性)에 따라 서로 다릅니다. 비록 성인이라 하더라도 그 덕이 어찌 하나같이 다 같겠습니까?

율곡: 제 생각하고는 많이 다르시군요.

소라이: 예, 그렇지요. 선생님이 위에 제시한 내용 외에도 ⌈만언봉사⌋를 보면 군주에 대한 요구가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보필하는 신하들이 맡은 일에 실질적 노력이 없다(臣隣無任事之實)’, ‘경연(經筵)을 해도 성취되는 실질적 노력이 없다(經筵無成就之實)’, ‘현인을 등용하는 실질적 노력이 없다(招賢無收用之實)’,
‘재이(災異)에 대응하는 실질적 노력이 없다(遇災無應天之實)’,
‘여러 정책에서 백성을 구제하는 실질적 노력이 없다(群策無救民之實)’
등도 거의 모두 임금을 향한 요구가 아닙니까?

율곡: 구체적으로 어떤 점인지요?

소라이: 예를 들면 경연과 관련하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요즘에는 경연을 자주 열지 않아 신하들이 임금을 접견하는 일도 드물지만, 경연을 열어도 전하께서 예를 차리는 모습이 엄숙하여 참석자들이 말을 자연스럽게 하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문답이 매우 드물지만 전하께서 따져서 묻는 것도 자세하지 못할뿐더러, 정치의 요체와 시대의 당면한 폐단을 물어보신 적이 없습니다.

간혹 한두 명의 강관(講官)이 성학(聖學)에 힘쓸 것을 권하면, 전하께서는 대수롭지 않게 들으시기만 할 뿐, 달리 체험해 보고 실천해 보시려는 실질적 노력이 없습니다. 경연을 마친 뒤에는 대전(大殿) 안이 깊어서 전하를 모시는 신하들은 바라보고 속만 태울 뿐입니다. 그러나 전하의 옆에는 단지 내시와 궁녀들만이 있으니, 전하께서 평소에 무슨 책을 보시고 무슨 일을 하시고 무슨 말을 듣고 계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가까운 신하들도 그것을 알 수 없는데 하물며 밖에 있는 신하들은 어떻겠습니까?

율곡: 이런 제안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요?

소라이: 선생님은 한 나라를 개혁하는데 임금의 의지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보시는 것이지요? 위에 열거한 문제들도 임금이 도두가 임금의 도덕적이며 실천적인 의지와 관련된다고 생각하시지요?

율곡: 그렇지요. 그러면 선생님은 그럼 어떻게 정치를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지요?

소라이: 저는 우선 정치는 최고 통치자와는 그렇게 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제도를 만들면 될 뿐입니다. 말하자면 법과 룰을 만드는 사람들이니 그들은 그것을 잘 만들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정담의 맨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예를 들면 바둑판에서 치수를 정확히 재서 종횡으로 선을 긋는 일과 같습니다. 바둑판에 선을 그어 넣는 것이지요. 그렇게 전체를 조망한 계획에 따라 모든 일을 추진해나가는 것입니다. 선이 그려져 있지 않은 바둑판에서는 아무리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라도 바둑을 제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계획이 없이 정치는 불가능합니다. 또 하천의 홍수를 막기 위해서는 지형을 고려하여 물이 잘 흘러가도록 우선 강의 물줄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줄기를 만들지 않고 단지 홍수를 막으려고만 해서는 설사 우왕(禹王)과 같은 치수(治水)의 달인이 다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율곡: 정치하는 과정을 중시하시는 군요. 그러니까 단계를 거쳐서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지요?

소라이: 구체적인 제도와 법률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최근에 에도에 있었던 실제 사례가 있습니다. 에도에서 시행한 화재 예방 조치이지요. 막부가 에도 시가지에 있는 건축물에 대해서 4면의 벽에 흙을 칠하도록 한 적이 있습니다. 건물의 모든 벽을 흙벽으로 칠하라고 지도를 하여 사람들이 자기 집을 모두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에도에서 일어난 화재가 그 이전과 비교해서 많이 줄었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행정지도와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율곡: 그러한 일이 중요하기는 하지요. 그것이 말하자면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적인 방법’인가요?

소라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화재 예방 이외에 막부의 정치에 관해서는 누구도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이나 중국에서 옛 시대에 행해진 정치의 방법에 근거하여 상세하게 제 생각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정담⌋이라고 하는 개혁론입니다.

율곡: 그래서 결국, 선생님의 개혁 구상에는 일본의 최고 실력자인 쇼군의 역할이 잘 보이지 않는군요. 그 점은 저의 개혁론과 너무 다릅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최고 통치자의 의지와 마음이 중요하지 않는지요?

소라이: 그렇습니다. 저는 최고 통치자보다는 그 최고 통치자가 만들어내는 법률과 제도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군주의 마음 수양이 아니라, 군주가 만든 제도와 법규가 세상을 바로 잡아갈 수 있다고 본 것이지요.

율곡: 저와는 생각이 많이 다르군요.

소라이: 그런 방향이 제가 주장하는 고문사학, 즉 소라이학의 큰 지향점이지요.

율곡: 그럼 바둑판 이야기를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그런 제안이 있는지요? 한 가지만 소개해주시면 어떨까요? 정치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소라이: 예, 우리 에도에서 요즘 문제가 되는 일을 한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요즘 에도에 도둑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여기저기에 나타나 사람을 죽이거나 물건을 훔치고 있지요. 아니면 건물에 불을 지르거나 야간에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에서 숨어 있다가 강도짓을 합니다. 또 나이어린 부랑자들이 칼을 빼 들고 사람을 위협하여 사람들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즐기기도 합니다.

율곡: 한양에도 그런 일이 가끔 있기는 합니다만.

소라이: 심한 경우에는 아이를 길에 버리거나 사람의 시체를 몰래 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를 제지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누가 “사체를 버리는 사람이 있다.”고 소리를 지르면, 그 주변 사람들은 야단법석을 피우면서 서로 자기 집 앞에는 못 버리게 할뿐입니다. 버리는 행위 자체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각 집의 담장 바깥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도로이기 때문에 그곳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사람도 없지요. 그러니 에도 전체가 무질서하게 됩니다. 이것이 지금 에도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문제를 보면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