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사회와 향약


대동사회와 향약

 

율곡: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나 건물에 방화를 하는 사람들은 그들 심성의 문제가 크지요. 사람들이 드믄 길에서 강도짓을 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나이 어린 부랑자들도 그렇고 사람 시체를 몰래 버리는 문제도 그렇고 도덕과 교육의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소라이: 선생님은 역시 정통 유학자이시며, 정통 성리학자이시군요.

율곡: 저는 1571년에 청주목사로 임명된 적이 있었지요. 그곳에서 향약(鄕約)이라는 것을 만들어 실시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향약이란, 소위 향촌 사회의 자치규약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조선 중기에 지방의 사림이 농민이나 노비 등 하층민을 강력하게 지배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유교 윤리를 기반으로 농촌의 공동체를 유교에서 말하는 대동사회로 이끌어가는 수단이지요.

소라이: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대동사회란 무엇인지요.

율곡: 제가 생각하는 대동사회는 ⌈예기⌋ 예운편에 나오는 대동사회와 같은 것이지요.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큰 도가 행하여지자, 사람들은 천하를 모든 사람들의 것으로 생각했다. 어질고 유능한 인물을 선택하여 정치를 맡겼고, 서로 믿고 화목하도록 가르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지 자기의 어버이만을 친애하지 않았으며 단지 자기 자식들만을 사랑하지 않았다. 늙은이들이 그 생을 편안히 마칠 수 있게 되고, 장년들은 항상 쓰일 곳이 있게 되었으며, 어린아이들은 의지하여 성장할 곳이 있게 되었다. 홀아비나, 과부, 고아 그리고 자식이 없는 사람들, 폐질에 걸린 사람은 모두 다 부양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남자는 자기 직업이 있고, 여자는 모두 돌아갈 남편의 집이 있었다. 재화가 헛되이 땅에 버려지는 것을 꺼려하였지만 반드시 자기만 사사로이 감추어 두지 않았으며 몸소 일하지 않는 것을 미워했지만 반드시 자기만을 위해서 일하지는 않았다. 이래서 간사한 꾀가 막혀서 일어나지 못했고, 도둑이 훔치거나 도적들이 난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래서 바깥문을 여닫지 않았으니 이것을 대동의 세상이라고 한다.

소라이: 제가 생각하는 사회도 결국은 그런 것이지요. 다만 그 과정이 조금 다르지만요.

율곡: 저는 그 다음해 청주에서의 일을 사양하고 해주로 내려갔다가 고향인 파주 율곡 촌으로 돌아가 학문에 힘썼습니다. 청주목사 때, 서원향약을 만들어 실시하면서 다소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임금 앞에서 향약을 반대하기도 했지요. 예를 들면 이런 주장을 하기도 했지요.

“요사이 신하들이 급히 향약을 행하고자 청하므로 주상(임금)께서도 행하도록 명령하셨으나 신의 생각으로는 향약을 행하기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백성이 잘 살도록 하는 일을 먼저하고, 백성을 가르치는 일은 나중에 해야 합니다. 백성들의 삶의 고통이 오늘날보다 더 심한 때가 없으니, 시급히 모든 폐단을 빨리 없애서 거꾸로 매달린 듯한 백성들의 고통을 풀어준 다음에야 향약을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덕 교육은 쌀밥과 고기반찬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건강이 아주 나빠서 죽도 잘 소화가 안 된다면 쌀밥과 고기반찬이 아무리 좋은들 먹을 수 있겠습니까?”

소라이: 그렇지요. 배가 부른 뒤에 예의가 있는 것이지요.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야지요.

율곡: 당시 궁정에서 제 의견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어떤 사람은 제 면전에 대고 비난을 하기도 했지요. 그런 사람에게 저는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당신의 생각에는 민생의 곤란이 아무리 심하여도 향약만 행하면 과연 백성을 교화시켜 좋은 풍속을 이루어 정치가 태평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오?”

그랬더니 그 사람은 “그렇소.”하고 대답하기에, 제가 그럼 “당신은 능히 향약으로 집안을 다스리고 있소?”라고 물었지요. 저는 또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부터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도 예속(禮俗: 예의 풍속)을 이루는 일이 있소? 지금 부자간이 비록 지극히 친한 사이라고 하지만 만일 아들의 기한을 생각해 주지 않고 날마다 매질이나 하며 학문을 권한다면 반드시 서로 헤어지고 말 것인데 하물며 백성들은 어떻겠소?”

제가 당시 그렇게 향약을 반대한 것은, 지방에 가보니 지방에서 큰소리치는 관리나 유지들이 향약을 핑계로 백성들을 매우 괴롭혔기 때문이요. 그것을 걱정한 것이지요. 그런 나쁜 사람들을 누가 단속할 것인가? 만약 향약을 행하게 되면 백성들은 더욱 곤란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서 반대한 것이지요. 하지만 향약 자체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향약은 필요하지요. 그래서 나중에 다시 향약을 시도해서 나중에 해주향약(海州鄕約)을 만들었는데, 후세 사람들은 그 향약의 체제와 내용이 잘 짜여 있어서 조선 향약 중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소라이: 해주 향약은 어떤 내용인지요?

율곡: 예, 농촌의 같은 마을 사람들, 즉 향약 구성원들 가운데 수재나 화재를 만나면 서로 돕게 했습니다. 그리고 도둑이 들었을 때나 질병과 상사(喪事)가 있을 때, 그리고 어린 자녀를 두고 어른이 죽었을 때도 주위 사람들이 그 남은 자식들을 돌보도록 했지요. 너무 가난한 사람이 있을 때도 주위 사람들이 상부상조하는 정신으로 그들을 돕게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농촌 사회가 평화롭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