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학


율곡학

 

소라이: 그렇습니다. 저의 소개가 많이 길어졌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율곡학에 대해서 호기심이 많습니다. 상세히 소개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율곡: 몇 가지 후인들이 평가한 내용을 중심으로 저의 학문을 소개하기로 하지요. 먼저 제 학문은 나중에 한국에서 김장생, 김집, 송시열, 권상하, 한원진 등 서인과 노론 혹은 소론으로 이어집니다. 이들과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일시적이나마 승려였기 때문에 성리학자가 아니라고 논박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계속 성균관 문묘 종사 운동을 벌이고 또 그 사람들이 집권을 하면서 문묘에 종사되고, 조선에서 퇴계 이황의 위상에 대응할 수 있는 존재로 추앙을 받게 됩니다. 사실상 임진왜란 뒤 조선이 끝날 때까지 저를 지지하는 학자들이 계속 정권을 장악하게 되어 저의 위상은 퇴계보다 더 높게 평가되기도 했지요.

소라이: 그렇군요.

율곡: 저의 학문은 정통 성리학에 근거합니다. 선생님은 성리학을 비판하시지만 조선에서는, 적어도 주류 학자라면 성리학을 벗어나 다른 학문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일본 에도시대보다 학문적인 폭이 좁았지요. 저는 비교적 논리적으로 성리학 이론을 따지는 편이고, 그런 학문이 실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지요. 공리공담은 싫어했습니다. 실지로 관료생활을 하면서 그런 쓸모없는 토론보다는 실용적인 토론에 더 관심이 많았지요. 나중에 조선에 등장하는 실학은 저의 영향이 큰 것으로 평가됩니다. 말하자면 저의 그런 관점을 실학의 효시로 보기도 하지요.

소라이: 조선에서 실학의 원조이시군요.

율곡: 그런 셈입니다. 그렇다고 나중에 저를 추종하는 학자들이 모두 그런 방향으로 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관념적, 교조적인 이론으로 빠진 경우도 많습니다.

소라이: 실학과는 반대되는 경향이군요.

율곡: 저는 조선의 개혁에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제가 살던 시대는 조선이 건국한 뒤에 시간이 흘러 사회가 쇠퇴해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지요. 기존에 정비된 각종 제도가 무너져가고 사치가 만연하며 나라의 쇠락이 경각에 달려있다고 보았지요.

소라이: 그래서 제시한 것들이 ⌈동호문답⌋, ⌈만언봉사⌋ 등 개혁안이지요.

율곡: 그렇습니다. 저는 성리학자로 주자의 이기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리는 형이상자이며 존재의 근원이자 원리이며, 기는 형이하자로 물질적 존재자이지요. 주자가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러한 리와 기가 서로 발동한다는 퇴계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비판했습니다.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이지요. 저는 리와 기가 사실은 하나나 마찬가지라고 보았습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선후가 없다고 본 것이지요. 이러한 주장을 일부 후인들은 퇴계의 주리설(主理說)과 대응시켜 주기설(主氣說)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지요. 그렇다고 제가 기의 뿌리인 리를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또 저는 는 서로 떨어지지 않고(理氣不相離), 서로 섞이지도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理氣不相雜). 그리고 이런 것을 합하여 리와 기의 오묘함(理氣之妙)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사실 이론에 치우친 이론일 뿐입니다.

소라이: 그 부분에 대해서, 저는 문외한입니다.

율곡: 문외한이시라기 보다는 비판자이시지요? 선생님은 이기론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소라이: 사실 그렇지요. 그러한 논의에 대해서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하하.

율곡: 저는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정이 발동할 때 도의를 위해서 발동하면 도심이요, 육체를 위해서 발동하면 인심이라고 보았습니다. 사실 인심과 도심은 한 가지 마음이지만 발동하는 원인에 따라 이름이 다를 뿐입니다. 마음은 하나인데, 성명(性命)에서 나오면 도심이요, 형기(形氣)에서 나오면 인심이지요.

소라이: 저는 그러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형기(形氣)를 중시하는 편에 속합니다. 인간에게 도심은 없다. 인심이 모든 것이다, 이렇게 보는 편입니다.

율곡: 그런가요? 더 설명을 드리자면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마음은 도심이요, 배고프면 먹고 싶고, 추우면 먹고입고 싶은 마음은 인심이지요. 제 생각에 인심은 자라나게 해서는 안 되고 절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도심은 마땅히 보호하고 양육하여 넓혀나가는 것이 좋다고 보고요.

소라이: 흥미로운 설명입니다. 일본 사상에서는 깊게 논의하지 않은 부분입니다. 일부 유학자들은 그 점에 대해서 논의도 하지만 저는 역시 그 문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