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이의 무사 개혁안


소라이의 무사 개혁안

소라이: 선생님이 조선의 군대 상황과 개선책을 자세히 소개를 해주셨으니 저도 제가 ⌈정담⌋에서 제시한 군대 개선안을 조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율곡: 예, 참 궁금한 부분입니다.

소라이: 사실, 저의 개혁안에는 군대의 이야기를 모아서 해둔 것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선생님처럼 ‘군정의 개혁’을 별도로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일본은 사회전체가 군대조직이기 때문입니다.

율곡: 사회 전체가 군대조직이라니요?

소라이: 예, 일본에서 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무사, 농민, 기술자, 상인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무사는 바로 군인입니다. 사회 전체 구조가 이렇기 때문에 별도의 군대가 없다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율곡: 우리 조선에서 사농공상은 글 읽는 선비, 농민, 기술자, 그리고 상인인데 많이 다르군요. 그리고 조선에서 군대는 별도로 존재하지요.

소라이: 제가 제출한 ⌈정담⌋은 모두 4권으로 이루어졌는데, 제1권은 다음과 같습니다.

1-1.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적인 방법
1-2. 에도 시가지와 무사 거주지에 대한 관리
1-3. 계약직 하인의 관리
1-4. 여행자의 체류에 대한 관리
1-5. 호적
1-6. 여행증명서
1-7. 실직한 무사와 수도승의 관리
1-8. 기녀, 배우, 그리고 거지의 관리
1-9. 세습 하인
1-10. 무사들의 생활방식을 바꿔야한다
1-11. 해상 교통의 관리

여기에서 구태여 군정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부분은 무사를 언급한 1-2와 1-7, 1-10입니다. 사실은 다른 부분도 무사와 관련된 것들이 많습니다만. 참고로 제2권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2-1. 경제 정책의 중요성
2-2. 조급한 풍습을 바꿔야 한다
2-3. 예법의 제도가 없다
2-4. 막부의 재정
2-5. 영주들의 빈곤을 구제하는 방법
2-6. 무사들의 빈곤을 구제하는 방법
2-7. 물가 문제
2-8. 금은 수량의 감소
2-9. 금전의 대차 거래
2-10. 예법 제도
2-11. 무가의 미곡 저장

이중에서 2-6, 2-11이 무사들과 관련이 있지만 다른 부분 예를 들면 2-2, 2-7, 2-10 등도 무사와 관련된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결국 일본 사회는 무사를 빼고는 성립이 안 되는 것이지요. 모든 사회가 말하자면, 좀 극단적인 표현일 수 있으나 ‘군대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율곡: 구체적으로 한 부분을 들어서 소개를 해주시면 선생님의 설명을 더 잘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다만.

소라이: 그렇게 하지요. 차분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10의 ‘무사들의 생활방식을 바꿔야한다’는 부분을 설명하겠습니다.

율곡: 알겠습니다.

소라이: 에도시대는 1603년에 성립이 되어 당시 제가 정담을 정리하던 1727년경에는 사회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건국의 기상은 사라지고 나태해지고, 사회가 평화로워지면서 사치풍조가 만연하게 되었지요. 즉 무사들의 기백도 사라지고, 그들의 생활이 궁핍하게 되었지요. 원래 무사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따르던 병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무사로서의 신분을 유지하고 막부에서 녹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각종 군사와 관련된 일을 맡았지요. 그리고 관리의 일을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무사들은 농민과 상인들, 그리고 기술자들이 하지 않은 일을 했지요. 조선에서 관리들 그리고 의사, 학자들의 일을 무사들이 했습니다.

율곡: 무사들의 역할이 의외로 컸군요.

소라이: 그런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궁핍해져 갔습니다. 정부에서 주는 급료는 정해져 있는데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은 자꾸 비싸진 것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거의가 에도에 집중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막부는 그들을 해산시키 않고 에도의 성 주변에 머물면서 에도 성을 지키고, 에도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지방에 있는 영지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 다스리게 했습니다. 영지에서 나는 산물이 그들의 월급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영지를 에도에서 살면서 운영을 했지요. 말하자면 그들은 봉건영주이기도 했습니다. 제 개혁안은 그들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율곡: 아, 그렇군요.

소라이: 저는 근본적으로 그들 무사들을 지방의 영지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궁극적으로 무사들을 영지에 속박해 두지 않고서는 완전한 관리가 불가능하다고 보았지요. 그리고 무사의 도(道)를 다시 일으키고 세상의 허황된 사치를 억누르며 무가의 빈궁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그런 방법 외에는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율곡: 왜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요?

소라이: 우선 그들의 생활방식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에도 시가지에 모여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마치 여행자와 같은 생활을 해야만 했지요. 왜냐하면 의식주를 비롯하여 젓가락 하나라도 필요한 물건은 모두 사두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무사들이 에도에서 살고 있다면, 그들은 일 년 간의 급료로 영지에서 받은 쌀을 전부 팔아서 그 대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두고 일 년 동안 그것들을 다 사용해버립니다.

율곡: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소라이: 그렇기 때문에 무사가 정성을 다해서 에도에서 막부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은 결국 모두 상인들의 이익이 되어 버릴 뿐입니다. 그 때문에 에도 상인들은 더욱더 번창하고 무사들은 더욱 궁핍하게 된 것입니다. 또 많은 무사들이 에도의 성 아래에 모여살고 있었기 때문에 화재도 빈번하게 일어났지요. 에도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 경우는 부인이나 아이들이 부담이 되고, 가재도구나 귀중품에 마음을 빼앗겨 불을 끄는데 전념할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에도 시민들의 나쁜 풍습이나 유흥가의 풍습이 무사들에게 전염되어 여러모로 에도는 무사들에게 나빴습니다. 오락이 많아 무예나 학문을 가까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율곡: 조선의 한성에서 근무하는 관료들과 상황이 비슷했군요.

소라이: 무사들이 에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의 영지인 농촌 지방에 대한 관리도 나쁘게 되어 그 정도가 매우 심해졌습니다. 옛날에는 농촌의 여기저기에 무사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농민들이 자기들 멋대로 행동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백년 이래 영주가 영지에서 살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이 없어져 농민들이 모두 자기 멋대로 하게 되었습니다.

율곡: 조선에서는 지방에 관리들을 조정에서 직접 파견했는데 일본 상황은 그것이 아니었군요. 말하자면 영지의 관리 책임이 영주들에게 있었군요.

소라이: 처음에는 그렇게 했지요. 하지만 막부 직속의 무사(旗本)가 신분이 낮을 경우에는 자기가 살고 있지 않은 영지를 에도에 있으면서 다스린다고 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대리인들(代官)을 파견하더라도 신분이 낮은 젊은 가신(家來)들이기 때문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았지요. 그 결과 나중에는 무사들의 개인 영지까지를 막부가 직접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농민들이 영주를 가볍게 여기게 되어버렸습니다.

율곡: 조선의 상황과 비슷하게 되었군요. 관리를 중앙에서 파견하는 체제이지요.

소라이: 무사들이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없어지자 지방의 관리가 문란해졌습니다. 예를 들면 중앙에서 지방에 도박 등에 대한 금지령을 내려도 지방 농민들은 모른 척합니다.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들이 지방에 가서 여러 가지 나쁜 일을 하는데도 농민들은 그들을 고발하지 않습니다. 결국 어떤 일이 일어나면 막부의 행정이나 통치력은 에도만으로 한정되게 되어 농촌까지는 미치지 않습니다. 지방 농촌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무사들이 현지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율곡: 그래서 선생님은 그 개선책으로 무사들이 지방에 거주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시는 것이군요.

소라이: 그렇습니다. 무사들이 농촌에 거주한다면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습니다. 맨 첫 번째로 의식주 생활에 경비가 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무사들의 살림살이가 다시 회복이 될 것입니다. 사실 모든 사치는 가정 내부로부터 시작되는 법입니다. 무사의 부인이 에도에 살고 있으면 차츰차츰 사치에 물들게 되어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병이 들기 때문에 그들의 배에서 나온 아이들은 나약하게 됩니다. 결국 그들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율곡: 선생님은 사회 현상에 대해서 분석하는 방법이 저와는 많이 다르군요. 저보다 치밀한 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둘러싼 환경을 예민하게 파악하는 점이 뛰어납니다.

소라이: 무사들 가족이 만약에 농촌에 거주한다면 자기가 옷을 짠다든지 노동을 한다든지 하여 사치도 그렇게 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도 신체가 건강하게 되고 무사의 부인에 어울리는 여성이 될 것 입니다. 남자들도 넓은 들을 여기저기 말을 타고 뛰어다녀서 손과 발이 튼튼하게 될 것이고, 친척들이나 지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용무가 있을 때도 5리든지, 10리든지 그런 거리를 항상 왕래하기 때문에 말타는 일도 자연스럽게 능숙하게 될 것입니다.

율곡: 그렇지요. 농촌에 살면 사람들이 그렇게 부지런하게 되기 쉽지요. 몸을 많이 움직이니까요.

소라이: 말의 사료도 입수하기 쉽기 때문에 200석이나 300석의 신분이라도 말을 5필이든지, 10필이든지 마음먹기에 따라 잘 키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일도 농촌에 있으면 가능합니다. 평소는 여가 시간이 많고 에도와 달리 다른 즐길만한 일이 없기 때문에 무예나 학문을 공부하기에도 정말 좋은 환경입니다.

율곡: 무사들은 결국 군인들이니 영지에서 살게 되면 군인으로서 많은 이점이 있게 되겠군요. 자연스럽게 훈련을 할 수 있고.

소라이: 예, 그렇습니다. 무사가 지방의 자기 영지에 살고 있으면 백성들도 어려서부터 무사들을 윗사람으로 존경하는 습관이 뼛속까지 스며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지도 잘 다스려지고, 만약에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영지의 농민들을 동원할 때 매우 편합니다. 같이 전쟁터에 나가면 갑자기 사라지거나 하는 일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자기들 영주가 공을 세우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율곡: 그것은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요.

소라이: 현재는 농촌에 영주들이 거주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급 무사가 농촌에 가게 되면 자기 멋대로 일을 처리할 위험이 있습니다. 누가 관리감독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그곳이 무사들 거주지가 아니니까 무책임해지기도 하지요.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 무사는 에도에서 5리 이상 바깥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막부에서는 규정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농촌에 영주가 거주하고 있다면 영주가 있는 곳에 가기 때문에 하급 무사들이 자기들 멋대로 행동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울러, 무사들이 농촌에 거주하면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야산에서 사슴을 사냥하거나 산천을 여기저기 달리고 걷고 하면서, 자기 영지 내의 지리도 잘 알게 됩니다. 험난한 산길도 익숙하게 되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유능한 무사가 될 것입니다.

율곡: 생활 자체가 군대 훈련이 되는 것이지요.

소라이: 제가 조사한 바로는 당시 일본 전체의 무사들 총 숫자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가(武家) 정치로서는 무엇보다도 좋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시마바라(島原)・아마쿠사(天草)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아주 조그마한 성에 농민들이 모여서 농성한 것을 숫자가 많은 서쪽 지방의 영주들이 전부 힘을 합해 전력을 다해 공격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무사들의 숫자가 감소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율곡: 병사들의 수가 감소한 것은 조선과 같군요.

소라이: 에도 막부에서는 처음에 막부가 시작할 때, 무사들과 지방의 영주들을 통제하고 일정 기간을 두고 심사를 하여 영지를 이동시키거나 폐지해버리는 정책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통해서 무사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관리를 했지요. 지금은 그런 제도가 오히려 독이 되어서 무사들의 숫자를 줄어 들고 있는 것이지요. 영주들의 힘도 약화되어 있고요.

율곡: 이미 중앙의 힘이 강력해졌으면 거기에 합당한 정책을 펴야겠지요.

소라이: 그렇습니다. 지금은 감히 막부에 대항할 영주들이 없습니다. 무사들도 자기 살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지 이전 제도를 폐지하고 영주의 밑에 있는 무사들에게도 모두 영지를 주어서 그 영지에 거주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병사들의 숫자도 옛날처럼 많아지게 되고, 일본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무사들의 용맹스러운 기풍이 재현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저는 ⌈정담⌋에서 주장했습니다.

율곡: 결국에는 에도 막부의 군사력을 강화시키는 방안이군요. 영지에 무사들을 거주시키는 방법이.

소라이: 그렇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주장을 한 것이지요.

율곡: 선생님의 개혁안을 듣고 보니 선생님은 행정가라기보다는 전략가적인 개혁자이시군요. 저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들고 나오셔서 그것을 바꾸려고 하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제가 제시한 군역의 개혁안은 선생님의 개혁안에 비추어 보면 매우 지엽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군적을 정확히 정리한다든지 군역을 공평하게 하자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주장은 사회 조직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니 매우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고대 유가의 이상사회를 염두에 두고 그런 발상을 하고 계시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소라이: 예, 근본적으로는 도시화되고 상업화되고 있는 에도사회를 거부하고 그 이전의 사회로 돌아가자고 하는 주장이기도 하지요. 농업을 중시하고 농민을 사회의 기초로 삼는 그런 고대의 사회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율곡: 일본사회의 모범으로, 선생님은 중국 고대를 염두에 두고 계시군요.

소라이: 정확합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