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의 독서법


율곡의 독서법

 

요즘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말을 흔히 듣게 된다. 지금 우리 시대 사람들이 다른 시대와 비교하여 특히 더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은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이 약간의 설득력을 갖는 것은 인터넷의 출현 이후 종이책의 위력이 현저히 떨어진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정보 제공의 매체로서, 아니면 오락적 매체로서 책의 기능을 인터넷과 영상이 상당 부분 잠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종이책이 되었건 전자책이 되었건 책은 소멸하지 않을 것이고, 책 읽기 역시 인간 고유의 습성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복잡한 문제이다. ‘무슨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물음은 ‘학문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과 같은 거창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음에 답한 사람이 있다. 바로 율곡 선생이다. 율곡은 특이하게도 독서론을 남기고 이 물음에 대해 답하고 있는데, 율곡의 독서론은 자신을 반성하는 문장, 곧 <자경문(自警文)>에 피력되어 있다.

 

새벽에 일어나면 아침나절 할 일을 생각하고, 아침밥을 먹고 나면 낮 동안 할 일을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 때면 내일 할 일을 생각한다. 아무 일이 없으면 마음을 내려놓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생각을 하여 일 처리에 마땅한 방도를 얻어야 할 것이다. 그런 뒤에 독서를 한다. 독서란 옳고 그름을 분변하여 일을 행하는 데 실천하는 것이다. 만약 일을 살피지 않고 오뚝 앉아 독서만 한다면, 무용한 학문이 된다.

 

율곡에게 독서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그의 일과는 일과 독서로 구성된다. 일을 하지 않으면 책을 읽고 사색하는 것이 율곡의 일과다.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독서를 통해 옳고 그름을 분변하고, 그 분변은 일상의 일에서 실천돼야 한다.

<자경문>에 간단히 언급된 독서의 원리는 『격몽요결』에 더욱 상세히 언급된다. 『격몽요결』은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비결’이라는 제목과 같이 일반 학도들에게 학문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편찬된 입문서이다. 여기서 율곡은 독서에 대해 보다 자세히 논한다.

 

공부를 하는 사람은 늘 이 마음을 잘 간직하여 다른 일이나 물건에 정신을 파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반드시 이치를 추구하여 훌륭한 길을 밝히고 나서야 마땅히 가야 할 길이 환하게 앞에 있게 되어 그의 공부는 진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이치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고, 이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성인들과 현명한 분들이 마음을 쓴 자취와 훌륭한 일과 악한 일 같은 본받아야 하고 경계해야 할 일들이 모두 책에 씌여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공부인 책읽기는 왜 하는 것인가? 그것은 책을 통해 성인들의 마음쓰임을 알고, 또 그것을 통해서 올바른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부하는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은 성인과 현명한 사람이 쓴 책이어야 한다. 성인이 쓴 책을 읽어야 성인과 같은 올바른 마음을 지닐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이 쓴 책을 읽어야만 현명한 올바른 판단력을 갖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책읽기를 통해서 성인의 마음쓰임을 터득하고 올바른 판단력을 갖게 되어야만 이치를 올바로 추구할 수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올바른 이치란 지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리나 같은 말이다.

율곡은 책을 읽는 순서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먼저 『소학(小學)』을 읽어 부모님을 섬기고 형을 공경하고 임금에게 충성을 하고 어른을 잘 모시고 스승을 존경하고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도리에 관해 익힌 다음 그것을 실천하기에 힘써야 한다. 다음으로 『대학(大學)』과 『대학혹문(大學或文)』을 읽어서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는 이치와 사람을 다스리는 도리를 배우며, 『논어(論語)』를 읽어서 어짊을 추구하고 자기를 바르고 충실하게 하며 근본적인 바탕을 철저히 잘 닦는 공부를 잘 터득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맹자』를 읽어 의로움과 이익을 분명히 분별하고 사람의 욕망은 막고 하늘의 이치를 잘 드러내는 설(說)을 밝게 살피며, 『중용(中庸)』을 읽어서 사람의 본성과 감정의 움직임을 잘 조절하여 가장 적절하고 조화되게 하는 공부와 하늘과 땅이 자리 잡히고 만물이 잘 자라나는 오묘한 이치에 대해 익히도록 한다.

다음으로는 『시경(詩經)』을 읽어 사람의 본성과 감정이 비뚤어지고 올바르게 되는 것과 착한 일이나 악한 짓을 해 상을 받고 벌을 받게 되는 일에 대해 깊이 공부하고, 『예경(禮經)』을 읽어 하늘의 이치를 근거로 한 예절과 형식 및 올바른 몸가짐과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법도를 연구하여 올바른 몸가짐을 지녀야 할 것이다. 다음에는 『서경(書經)』을 읽어 요임금․순임금과 하나라 우임금․상나라 탕임금․주나라 문왕과 무왕이 천하를 다스린 위대한 원리와 법도에 대해 그 요점을 터득하여 근본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는 『역경(易經)』을 읽어서 좋은 일이 있기도 하고 나쁜 일이 있기도 한 것과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것 및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는 것과 사라지기도 하고 불어나기도 하는 빌미에 대해 살펴보고 공부하여 그 근본을 추구해 알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춘추(春秋)』를 읽어서 성인께서 착한 일에는 상을 주고 악한 일에는 벌을 주며 억누르기도 하고 드러내 주기도 하면서 세상을 올바로 이끌려고 하여 은밀한 표현의 글로 담아 놓은 깊은 뜻에 대해 자세히 연구하여 잘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선현들이 지은 『근사록(近思錄)』․『주자가례(朱子家禮)』․『이정전서(二程全書)』․『주자대전(朱子大全)』․『주자어류(朱子語類)』와 성리학설을 정독할 것을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율곡은 『격몽요결』에서 책 읽는 방법과 독서의 바른 자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언제나 책을 읽는 사람은 두 손을 모으고 똑바로 앉아 공경히 책을 대해야 한다. 마음을 통일하고 뜻을 모아 골똘히 생각하고 깊이 두루 살펴 뜻을 철저히 이해하되 모든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찾도록 해야 한다. 만약 입으로만 읽어서 마음으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몸으로는 실행하지 못한다면 곧 책은 책대로 나는 나대로가 될 것이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책을 읽는 사람은 반드시 올바른 자세로 앉아 공경스러운 태도로 책을 대한 다음 정신을 통일하여 읽음으로써 그 책에 쓰인 글의 뜻을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통해 알게 된 지식은 반드시 몸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단정히 앉아 엄숙한 자세로 텍스트의 뜻을 연구하고, 언제나 실천의 방략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 요즘의 독서와 크게 다른 모양이다. 현대인에게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독서의 형태이다. 율곡이 살았던 조선시대의 독서는 양반 신분만의 일이었다.

따라서 율곡의 독서론이 오늘날의 시대에 그대로 통용될 수는 없다. 비록 율곡이 정한 독서목록과 근엄한 독서 자세에는 찬동하기 어렵지만, 그의 진지한 책 읽기에는 찬성해 마지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책 읽기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인간의 의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