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생활의 도리


가정생활의 도리

 

학교모범』의 아홉 번째 주제는 가정생활이다. 청소년들에게 가정생활을 말한다는 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더구나 요즘은 결혼조차 못하거나 하지 않으려는 청년들이 늘어나서,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늘어남에 따라 가정생활을 말한다는 게 지금보다는 어린 나이에 누구나 혼인했던 옛날과 다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 어떻든 간에 누군가 혼인하는 사람은 계속 있을 것이고 따라서 가정이 없어지기야 하겠는가? 어떤 공상소설이나 아나키스트의 주장처럼 아이가 생기면 국가에서 모두 길러주고, 부모는 육아나 교육 더 나아가 가정생활에서 자유롭게 해방되어 산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겠는가? 혹 먼 미래에는 그런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가정이 소멸하기까지 하겠는가?

따라서 가정을 이루게 될 경우 가정생활의 도리를 미리 알아두어서 나쁠 것은 없다. 옛날에는 이렇게 가정생활의 도리를 미리 가르쳐서 부모나 부부의 도리를 다 하도록 했는데, 요즘 학교에서는 이런 것을 좀처럼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부부의 도리나 자식을 올바르게 양육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고 부모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로인해 시행착오를 겪는 일은 어쩔 수 없고, 그 때문에 종종 나이든 부부 가운데 본인들이 젊었을 때의 자녀양육과 부부생활에 대해서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어버려서 어쩔 수 가 없다.

필자도 솔직히 말하는데, 이런 가정생활의 도리를 미리 배워서 부모가 된 것은 아니다. 비록 아이가 태어난 뒤였지만, 전통학문과 관련된 학문을 전공하면서 자녀교육과 부부생활에 도움을 받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제 나이도 들고 경험도 쌓였기 때문에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을 보면 그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가령 전철을 타고 가거나 어떤 장소에서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에게 영어단어를 외게 하는 것을 가끔씩 볼 때가 있다. 못 외면 야단까지 쳐 가면서 말이다. 차라리 영어를 가르치고 싶다면 단어보다 말을 가르치는 게 훨씬 낫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굳이 과거 자기들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의 영어 공부방식으로 단어를 외게 하는 것은 아이에게는 비교육적이다. 정작 아이는 단어가 문장 속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도 아직 모르고 있는데, 그걸 외게 하면 훗날 써먹을 수 있다는 생각은 기성세대들이 과거 잘못 배운 영어교육이 아니던가?

또 이런 사례도 있다. 국회에서 인사청문회 하는 과정을 보면 해당 후보자 개인의 경우에는 큰 하자가 없다가도, 그의 부인의 잘못이나 자녀의 일로 곤욕을 당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 또한 간접적으로 후보자가 평소 가정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일로서, 전통의 유교문화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서는 그 후보자의 부덕(不德)의 소치로 여긴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한 야당국회의원들의 집요한 지적은 국민들에게 일정하게 먹힌다고 봐야 한다.

자 그렇다면 율곡 선생은 가정생활에 대한 어떤 견해를 가졌을까? 그리고 그것이 현대의 우리들에게 과연 어떤 도움이 될까? 가정생활로 옮긴 원문은 거가(居家)이다.

 

가정생활에서는 도리를 다하여 형은 동생을 우애(友愛)하고 동생은 형을 공경하여 한 몸 같이 하여야 한다.

남편은 온화(溫和)하고 아내는 유순(柔順: 부드럽게 따름)하여 예법을 잃지 말아야 한다.

바른 도리로써 자녀를 가르치되 지나친 애정으로 아이의 총명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아랫사람을 부리는 선생의 말은 더 있지만 생략하였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노비와 같은 하인이 없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먼저 가정의 관계를 보면 형과 아우,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으로 구분하고 있다. 인간의 도리란 관계에서 나오는 도리이기 때문에 이렇게 가정 내에서도 관계가 등장하게 되었다.

먼저 형과 아우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도리가 형과 아우에 따라 조금 다르다. 형이 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전통적으로 우애라 불렀고, 동생은 형을 공경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니까 이런 도리는 형이나 동생 모두 지켜야 하는 문제이지, 한쪽이 지키지 않으면서 상대더러 지키게 요구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아내에게 따뜻하고 화합하는 자세로 대해야 하고 아내도 남편에게 부드럽게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옛날에는 남편이 학문과 도리를 익혀 가정을 이끌어야 했지만, 오늘날은 남자와 여자가 똑같은 교육을 받아 남녀가 평등한 세상이기 때문에 모두가 상대에게 온화하게 해야 하고 누구를 따르기보다 서로 의논해서 일을 결정해야 한다. 이렇게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는 고금의 시대적인 차이가 분명히 있다.

끝으로 자녀의 교육방식은 바른 도리로써 하되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녀의 총명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것은 요즘 젊은 부부들에게 해당되는 중요한 선생의 가르침이 될 것 같다. 어느 부모인들 바른 도리로 자녀를 가르치면서 사랑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랑이 지나치다보면 그 사랑에 눈이 멀어 자녀의 잘못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듯 자식이 잘못했는데도 훈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도 아니요 되레 자식을 망치게 한다.

 

그래서 『명심보감』에도

“자녀를 사랑하면 회초리로 때리고, 자식을 미워하면 밥을 많이 주라.”

고 하였는데, 이 말은 자식을 사랑할수록 잘못이 있을 경우 훈계하라는 뜻이다.

 

선생은 『격몽요결』에서 이런 가르침을 더 자세히 말하고 있다. 아마도 『학교모범』은 선조의 명에 따라 학교교육의 미비점을 올리는 글이기 때문에 요점만 간단히 진술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격몽요결』을 참고하면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 이렇게 봤을 때 선생이 말하는 가정생활의 도리는 여전히 현대인의 삶에서 참고해야 할 요소가 있다. 비록 전근대적인 조선사회와 근대화된 오늘날의 시간적 간격에 따라 당시에는 마땅했지만 오늘날에는 불필요한 것이 있어도,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도 분명히 있다.

예컨대 형제 사이의 우애와 공경도 여전히 필요하다. 어릴 때에는 비교적 잘 지내다가도 성인이 되어 각자 독립된 가정을 이루면 우애와 공경이 깨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가 물려준 유산을 놓고 서로 싸우고 왕래까지 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부부사이도 서로 공경하거나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특히 나이든 남편의 경우 가정을 제대로 이끌지 못해 아내나 젊은 자식들로부터 지탄을 받거나 심지어 따돌림을 당하는 가장도 있다. 가족은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므로 공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자식의 교육이야 말로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이다. 광복 후 최근 몇 십 년 동안 대부분의 가정을 살펴보면 남편은 자녀의 교육을 아내에게 맡겨버리고 관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옛날과 달리 산업이 근대화되고 보니 직장일로 바빠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하지만, 자녀의 교육을 아내에게만 맡겨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아내가 교육을 잘못시켜서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역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바른 도리로써 자식을 가르치자면 자신도 바른 도리로써 사회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모범이 못되는 가장이 어찌 밖에 나가서 남에게 좋은 역할을 하겠는가?

아무튼 청소년들이 당장 가정을 갖지는 않지만, 이들에게 가정생활의 도리를 제대로 가르쳐야 개인은 물론 사회든 국가의 장래도 밝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