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경(篤敬) – 자기 마음을 감독하라


자기 마음을 감독하라

 

보통의 어린이들은 세상 물정을 몰라서, 대개 행동의 준칙을 외부적인 것에 의존한다. 그래서 부모나 교사의 가르침을 따라 행동한다.

그러다가 청소년이 되면 부모나 교사의 가르침에 회의를 느끼거나 거기에 반항하기도 하며, 자신이나 동료의 감정이나 생각에 충실하기도 하고 때로는 연예인과 같은 우상으로 여기는 인물을 따라 하기도 한다.

성인이 되면 그 양상은 더 복잡하다. 어떤 경우는 그 행동의 준칙이 비록 부모나 교사의 가르침에서 종교나 철학 또는 특정한 어떤 사상의 그것으로 대체되기는 했어도, 여전히 그것을 추종한다는 의미에서는 그 기준이 외부에 있다. 이보다 한 단계 진전된 사람의 경우는 그런 사상이나 철학 또는 종교의 가르침을 내면화하여 마치 자신의 생각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자기행동의 잘잘못을 평가하는 기준의 여전히 자기 외부의 종교나 사상에 있다. 또 드물게 어떤 이들은 자기 행위의 입법자와 심판관이 모두 자기 자신인 사람도 있다.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 자율적으로 정한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바로 이때 자신의 행위와 마음을 감독 또는 심판하는 정신의 기능 또는 역할을 우리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이처럼 인간은 어렸을 때는 대개 부모나 교사를 공경(恭敬)하고, 자라면서 인류의 훌륭한 스승을 존경(尊敬)하며, 종교를 가짐으로써 경천(敬天)·경배(敬拜)하여 신을 섬기며 동시에 경건(敬虔)한 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와 달리 앞서 말한 자기 자신이 자기 행위의 입법자요 심판자의 경우에는 무엇을 공경해야 하는가? 아니면 어떤 경건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사실 이런 질문은 윤리적·도덕적 행위의 주체로서 인간에게 부여된 중요한 질문이다. 유학은 지금까지 전해오면서 많은 변모를 하였는데, 특히 송대의 성리학이 완성된 이후 앞서 말한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유학의 세계관에서는 그리스도교와 같은 절대적인 인격신이 없으므로 자율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감독하거나 살피거나 유지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러한 학문적 태도 또는 자세를 경(敬)이라 불렀다. 이렇듯 경이란 내 마음의 검찰이요 심판관과 같다. 당시의 유학은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가 요구되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경(敬)이라는 글자를 대개 ‘공경(恭敬)하다’라고 풀이하는데, 그 뜻이 대체로 공손히 섬긴다는 의미여서, 철학적으로 변화된 의미를 다 담지 못한다. 경이라는 의미가 포함된 낱말은 존경(尊敬)·경천(敬天)·경로(敬老)·경애(敬愛)·경배(敬拜) 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건(敬虔)·경외(敬畏)·외경(畏敬) 등의 엄숙하거나 삼간다는 뜻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모범』의 열네 번째 주제는 바로 이 경(敬)을 돈독히 하라는 독경(篤敬)이다. 이 말은 앞장에서 말한 충(忠)이 포함된 충신(忠信)과 함께 『논어』에 ‘행동이 독경하다’는 ‘行篤敬’이라는 말에 등장하는데, 이 독경의 풀이를 놓고 여러 학자들의 다른 주장이 있다.

그 요지는 독(篤)과 경(敬)을 독립된 두 개의 술어로 보아 ‘행동이 중후하고 공경하다’로 볼 것인지, 아니면 독(篤)만을 술어로 보아 ‘행동이 경에 돈독하다’라고 볼 것인지 크게 구별된다. 율곡 선생은 ‘독경은 경에 돈독한 것[篤敬者, 敦篤於敬]’으로 풀이한 남송의 장식(張栻)의 견해를 따랐다. 선생이 이를 따른 데는 조선 유학사에서 권근(權近)·김종직(金宗直)·김굉필(金宏弼)·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 등이 경을 중시하여 논의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배우는 자들이 덕에 나아가고 학업을 닦는 일은 오로지 경을 돈독하게 하는 데 달려 있다. 경에 돈독하지 않으면[不篤於敬] 다만 이것은 빈말일 뿐이다.

그래서 속의 마음과 겉의 행동이 하나같아야 하고, 이 경을 돈독히 하는 자세에 조금도 멈추거나 끊어지는 틈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말에는 가르침이 있고 행동에는 법도가 있으며 낮에는 하는 것이 있고 밤에는 얻는 것이 있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도 보존되는 것이 있고 쉴 때에도 길러지는 것이 있게 된다.

비록 공부하는 노력을 오랫동안 하더라도 그 효과를 섣불리 보려고 하지 말고 오직 날마다 부지런히 힘쓰다가 죽은 뒤에라야 그칠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참된 학문이다.

만약 이것을 힘쓰지 않고 단지 변설을 잘하고 박식함을 가지고 자신을 꾸미는 도구로 삼는 자는 유학을 해치는 도적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용문의 맨 앞 첫 문장은 조선 초 학자 김종직도 했던 말이다. 전체 내용을 보면 선생이 말한 경이란 단순히 외적인 대상만을 두려워하거나 공경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송대 이후 조선까지 이 경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아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송대에는 경을 주일무적(主一無適) 곧 마음이 하나에 집중하여 다른 데로 옮겨감이 없는 상태로 해석했다.

그래서 공부태도에서 경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이치를 찾을 것을 요구하는 거경궁리(居敬窮理)를 주장했고, 행동하기 전이나 그 이후에도 틈이 없게 경의 상태를 유지하기를 요구했다. 조선의 김굉필은 마음을 하나에만 집중시키는 것으로 풀이하였고, 조광조는 마음이 깨어 있는 상태로 보았으며, 이언적(李彦迪)은 활동하거나 머물러 있거나 인간의 내면과 외적인 행동을 꿰뚫어 적용되는 마음의 상태를 일컬었으며, 특히 이황은 경을 그의 학문의 중심에 놓고 논의하였는데, 인간다움을 실천하려는 인간의 자율적 정신에 해당된다.

이런 맥락에서 율곡 선생의 경을 이해해야 한다. 단순이 경만 말하지 않고 『논어』에 있는 말을 끌어와 독(篤)이라는 글자를 덧붙임으로써 더욱 강조하였다고 하겠다. 그래서 마음과 행동이 하나가 되어야 하고, 그러한 마음의 상태에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되며 사람이 죽은 뒤에라야 경을 할 필요가 없느니, 경이란 마음과 행동의 주체로서 자기를 감독하고 심판하는 마음의 고등기능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함으로써 유교(儒敎)는 신이 필요 없는 고등종교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유학자들이 불교는 물론이고 서양의 그리스도가 전파되었을 때도 그것을 하찮게 여기고 자신만만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이성적인 것도 아니고 완벽한 도덕성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의 욕망에 따라 재물을 구하기도 명예를 탐하기도 한다. 설령 선생의 주장처럼 살아온 선비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조선이나 지금의 사회가 이상적으로 전개되지 못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모두가 이러한 경을 돈독히 함으로써 학문을 한다면 그렇게 되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선생은 “만약 이것을 힘쓰지 않고 단지 변설을 잘하고 박식함을 가지고 자신을 꾸미는 도구로 삼는 자는 유학을 해치는 도적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한탄을 한 것 같다. 모든 철학이 그렇듯이 그 논리대로 모든 사람이 이상적 인격자가 되기 어렵다는 데 그 한계가 있다고 하겠다. 그 한계는 모든 인간을 도덕적으로 만들 수 없는 이유와 관계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이 현대의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현대는 문화도 다양하고 종교도 다양하며 철학도 다양하다. 그러나 적어도 어떤 문화나 철학 그리고 종교를 섬기고 따르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자율성에 기초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자신의 마음을 반성하거나 감독하는 또 다른 마음이 요청된다. 그것이 자신이 경외하는 신의 목소리일 수도 있고 양심의 소리일수도 있으며 달리 초자아(super ego)나 참나[眞我]든 뭐가 되었든 간에 내 마음의 중심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렇다면 결국 제일 두렵고 조심해야할 상대는 타자가 아니라 알고 보면 자기 자신이다. 당신에게 그런 마음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