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학(居學) –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라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라

 

이 글의 서두에서 말했지만 이 『학교모범』은 1582년(선조15) 율곡 선생이 왕의 명에 의하여 지은 책으로 당시 교육제도의 미비한 점을 보충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청소년·청년 교육을 새롭게 하기 위한 여러 주장들이 들어 있다.

총16개의 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그 순서에 따라 현대적 의미를 살펴보면서, 다만 내용상 유사한 독서와 독서의 방법의 항목만 통합하여 총15개의 주제로 소개했는데, 이 글이 마지막에 해당된다.

그런데 당시의 문화적 배경 그리고 교육과 학문의 목적 그리고 그 방법이 오늘날과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그 시간적 틈새를 좁히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오늘날의 청년이나 청소년들에게 선생이 말하는 글의 요지를 오해 없이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했지만, 몇 가지 주제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였다. 그것은 당시의 주류를 이루었던 유학 그 가운데서도 성리학의 학문적 성격과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만족할 수준인지 모르겠다. 이제 쉽고 가벼운 주제로서 이 글을 맺으려고 한다.

학교모범』의 열다섯 번째 주제는 학교생활과 관련된 거학(居學)이다. 이것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우리 청소년들은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생각해 보자.

우선 정해진 시간에 등교하여 짜여 진 시간표대로 공부하다가 집에 돌아온 다음, 학원에 가서 또 공부하다가 밤늦게 돌아와 자는 일이 요즘 다수 청소년들의 생활이다. 수업은 교사의 설명을 듣거나 문제를 풀기도 하고, 때로는 토론과 발표를 하며 필요에 따라 실습을 하거나 견학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다양한 교과를 학습하기 때문에 수업방식이 똑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학교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도 있지만, 대체로 해당 학교의 정해진 프로그램(교육과정)과 규칙(규정)에 따라 진행된다. 문제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대학입시 때문에 수업이 다양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입시위주의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전인적(全人的) 인격함양과 다양한 체험의 기회가 줄어들고, 비판적 사고와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데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취업을 위한 입시준비 때문에 대학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본래의 교육목표에 충실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대학은 취업준비 학원의 역할이 더 강조된 ‘취업의 전당’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른바 학문의 전당이란 말은 겨우 대학원에나 진학한 학생들과 교수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 되었다.

그렇다면 율곡 선생이 살았을 그 당시 학교 사정을 어땠을까? 또 어떤 생활태도가 요구되었을까?

 

학교에 있을 때에는 배우는 자의 행동이 모두 한결같이 학교규칙을 따라야 한다.

글을 읽거나 글을 짓거나 식후에 잠깐 노닐며 산책하면서 정신을 한가롭고 여유롭게 만든다.

돌아와서는 하던 공부를 다시 익히고 저녁을 먹은 뒤에도 그렇게 한다.

 

이 부분은 학생의 개인생활에 관한 내용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학교의 규칙을 지켜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또 이 내용을 보면 학교는 기숙학교이다. 선생이 살았던 시대의 학생들은 대부분 자기 집과 멀리 떨어져 있는 향교나 성균관에서 공부하려면 기숙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남아있는 향교나 성균관의 구조를 보면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는데, 그것이 당시 학생들의 기숙사였다. 또 식사도 공동으로 하였는데, 성균관에는 지금도 ‘진사식당’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

개인적인 공부는 독서와 작문이었다. 독서의 교재는 대개 유교의 경전과 사서(史書)였고, 작문의 경우는 시와 문장을 짓는 일이었다. 오늘날 입장에서 보면 공부의 내용이 인문학에 국한되는 것이지만, 이 또한 대단한 독서량이 필요했다. 참고로 앞서 독서를 주제로 말할 때 소개했듯이 선생이 제안하는 독서의 순서는 『소학』부터 시작하여 『대학』·『근사록』·『논어』·『맹자』·『중용』에 이어 오경(五經)과 『사기』 등으로 이어지는데, 모두 유학과 역사에 관련된 책이다.

그 종류와 내용면에서 오늘날 학생들이 읽는 책과 꽤 거리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유학이나 한국철학과 동양철학 또는 고전문학이나 중국문학 또 한국사나 중국역사를 전공한 대학생 이상은 아직도 이런 책을 한문으로 공부하고 있다. 결코 골동품 같은 책들이 아니다. 관심이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읽어두면 좋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처럼 공부 시간 틈틈이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실 독서는 독서로서만 끝내서는 안 된다. 그 독서한 내용에 대한 사색이 필요하다. 그래서 산책을 하면서 그 내용을 생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을 텅 비게 하여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제 선생은 수업현장에서 여럿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한다.

 

여럿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강론(講論)으로 서로 성장하게 하고 예법에 맞는 몸가짐으로써 가지런히 하고 엄숙하게 한다.

만약 선생으로서 스승이 학교에 있으면 읍(揖)을 행한 후 질문하여 편안히 앎을 보태되 마음을 비우고 가르침을 받아들이며, 그것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여 응용해 본다.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이나 책에 대해서는 질문하여 심력(心力)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강론으로 서로 성장한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울 듯하다. 이것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과 관계되는데, 가르치고 배우다보면 배우는 사람은 물론이고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게 된다는 뜻으로 서로 성장한다는 의미이다. 또 바른 자세와 예법에 맞는 몸가짐은 비록 예법은 조금 다를지라도 오늘날도 학교에서 강조하고 있다. 스승에게 읍을 한다는 것은 오늘날 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할 때 반장이 ‘선생님께 경례’하는 것과 유사한데, 손을 앞으로 모아들어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는 옛날 식 인사이다.

여기서 인상 깊은 점은 질문을 하라는 내용이다. 요즘 학생들은 질문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그런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지적 호기심이 없기 때문인데, 아마도 지나친 입시교육으로 이미 가공되고 만들어진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일에 지친 탓인지 모르겠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어떤 문제를 고민해서 질문할수록 머릿속에 깊이 남고, 그 답을 찾아냈을 때의 희열 때문에 공부에 즐거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 맛에 또 공부를 하게 되었다. 유명강사의 강의가 실제 큰 도움이 안 되는 이유는 너무 설명을 잘해준 탓에 들을 때는 다 아는 것 같지만, 정작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학생이 스스로 고생하거나 노력해서 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한 후 듣는다면 효과가 크겠다.

끝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이나 책은 당시 기준으로 보았을 때 유학과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예컨대 불교나 노자나 장자 또는 기타 잡술에 관계된 책이며, 또 유학 안에서도 양명학(陽明學)처럼 성리학이 아닌 학문이 그것이다. 모두 이단(異端)이나 외도(外道)로 배척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독서에 제한을 두지는 않지만 성장과 학습에 해로운 것은 피해야 한다.

이상은 비록 조선시대의 학교생활에서 지켜야 할 내용이지만, 우리가 참고할 것도 적지 않은 것은 중요한 교육적 원리나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저 옛날사람의 지나간 말로만 여기지 말고, 옛것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발견한다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