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讀書) – 독서와 그 방법


독서와 그 방법

 

요즘 청소년들은 책을 얼마나 읽을까? 학생들의 독서 상황을 보면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부모의 권유나 주변 사람들의 영향으로 그런 대로 책을 읽는 편이다. 그러나 정작 5학년만 되면 학원이나 과외 때문에 교과서나 참고서 외에 책 읽는 일이 드물다. 상급학교 입시를 위해 책을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펴내는 아동 대상 도서는 대개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을 넘어가지 않도록 한다. 불행한 일이다. 다행히도 일부 소수의 학생들만 상급학교 올라가도 계속해서 책을 읽고 또 독서토론에 참여하고 있어서, 큰 기대를 걸어본다.

 

명심보감』에 보면

‘독서는 가정을 일으키는 근본이다
(讀書起家之本).’

는 말이 있다. 그 말의 의미는 물론 그 시대적 배경에서 볼 때 글을 읽어 훗날 관리가 되어서 가정을 흥하게 하는 것도 포함되겠지만, 더 나아가 삶에 대한 이치를 터득함으로써 먼저 본인이 바르게 되어 자손을 올바르게 양육하여서 훌륭한 가문을 만든다는 의미도 있다.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독서를 강조하는 것도 가까이는 입시공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멀리는 자신의 교양과 인격을 함양하고 더 나아가 삶의 지혜를 얻어 합리적이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가정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

그래서 『학교모범』의 세 번째 주제는 독서이고 열여섯 번째 주제는 독서의 방법인데, 여기서 이 두 주제를 통합하여 살펴보겠다. 독서와 그 방법은 『격몽요결』과 중복되니 그 책을 참고하면 더 좋겠다(본 누리집의 “인성교육교재-『격몽요결』-초급편(하)-4.독서의 방법”을 참조바람).

먼저 독서의 목적은 의리(義理)를 밝히는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리란 조직폭력배의 의리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道理)로서 윤리도덕에 부합하는 행동준칙이며, 옛사람들이 말하는 천리(天理)이다. 쉽게 말해 독서의 목적이 도덕적 실천을 위한 원리의 탐구이다. 독서의 목적을 이렇게 좁혀서 본 것은 율곡 선생이 종사한 학문이 성리학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성리학은 도덕적 사회 건설을 이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청소년들이 책을 읽는 목적에는 도덕적 사람이 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입시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또 하루가 멀다 하고 생산되는 각종 지식과 정보가 본인의 성장이나 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이 꿈으로 여기는 직업에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독서의 목적이 다르다고 해서 옛날의 주장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사회나 학문이 지향하는 시대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만 취하면 된다. 따라서 선생이 말한 의리를 밝히는 것도 여전히 유효하다. 청년들이나 청소년들은 어려서 아직 경험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판단하려면 평소의 경험 못지않게 많은 독서량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리분별이 분명해져 실수와 손해를 줄여나갈 수 있다. 그러니까 독서가 당장에 써먹을 지식이나 실용적 목적만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독서의 방법에 대해서 선생은 이렇게 권유한다.

 

글 속에 깊이 잠겨 자맥질 하면서 반드시 마음으로 터득하기를 스스로 약속한다. 글을 읽을 때마다 반드시 태도를 정숙하게 하고 단정히 앉아서 마음과 뜻을 한 곳으로 모은다. 한 책을 숙독(熟讀)한 다음에 다른 책을 읽고, 이 책 저책 섭렵하는 것에 힘쓰지 말고 억지로 기억하는 것을 일삼지 말아야 한다.

 

먼저 글 속에 푹 빠져서 반드시 이해하기를 힘쓰라고 한다. 이해되지 않은 글은 읽으나마나한 일이어서 독서의 흥미를 잃게 만들고 짜증나게 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수준에 맞거나 수준보다 약간 높은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책을 굳이 읽으려면 함께 읽고 설명해주는 스승이 있어야 한다. 옛날의 유교 경전의 공부가 모두 이런 식이었다.

또 책을 읽을 때 태도나 주위가 정숙한 것이 좋고 단정히 앉아서 읽으면 마음과 의지를 한 곳으로 집중하기 쉽다. 그래서 조용한 도서관이나 독서실을 찾기도 하는데, 예전 청년들은 큰 시험을 앞두고 책 보따리 들고 절에 가서 책을 읽기도 했다. 그리고 자세가 나쁘면 집중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바른 자세를 요구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한 책을 완전히 숙독할 때까지 다른 책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한다. 숙독이란 무엇인가? 자세히 읽는 것을 말하는데, 요즘말로 거의 이해해서 읽는다는 뜻이다. 사실 학생들이 책을 읽다보면 백퍼센트 이해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지적 수준이 저자의 수준을 능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 책만 평생 읽을 수도 없다. 아무튼 그 이해라고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읽은 사람의 수준에서 말하는 이해일 뿐이다.

그래서 같은 책도 성인이 된 뒤에 읽어보면 이해하는 깊이가 다르겠지만, 청소년들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면 좋겠다. 또 하나 선생이 제안하는 중요 포인트는 억지로 외려고 하지 말하는 점이다. 억지로 외면 힘들고 피곤하다. 만약에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은 전제한다면 이렇게 외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의 책 읽는 독특한 방법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공부든 삶의 문제든 질문이 있게 마련이다. 삶이나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질문이 없을 수 없다. 아무튼 질문이 있다면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책을 읽으면 효과가 좋다. 책에서 답을 발견했을 때 그 기쁨을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더 읽게 된다.

또 선생이 제안하는 독서의 순서는 『소학』부터 시작하여 『대학』·『근사록』·『논어』·『맹자』·『중용』에 이어 오경(五經)과 『사기』 등으로 이어지는데, 모두 유학과 역사에 관련된 책이다. 그런데 오늘날 청소년들은 이렇게 읽을 수 없다. 아무튼 동서고금의 고전을 분야별로 선택하여 읽고, 현대인들이 쓴 책도 틈틈이 읽어야 하니, 옛날 사람보다 읽어야 할 게 더 많다는 게 또 하나의 불평이 될지 모르겠다.

끝으로 선생이 제안하는 것에는 당시의 학교에서 실시하는 일종의 독서토론이나 좌담회와 유사한 것이 있다. 그 방법은 매월 초하루나 보름에 학생들이 학교에 모여 스승과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담당자가 긁을 읽고 나면 뜻을 밝히거나 토론하면서 질문한다. 만약 의논할 일이 있으면 이런 강론(講論)을 통해 결정하고, 학생들이 의논할 일이 있으면 스승이 먼저 밖으로 나간 뒤에 한다.

그러나 언제나 글만 읽을 수는 없는 법, 틈틈이 여가를 즐겨야 한다. 사실이지 여가나 휴식은 독서나 공부의 능률을 올리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선생은 거문고 연주, 활쏘기 연습, 투호(投壺) 등을 적절하게 방해되지 않은 범위에서 하도록 권유한다. 그러나 바둑이나 장기 등과 같은 것은 공부에 방해되어 권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그것들은 머리를 많이 쓰거나 승부에 집착하여 독서에 방해가 되어서인지 모르겠다. 오늘날 청소년들도 노는 것에 너무 빠져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