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이유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이유

 

2015과 2016년에 걸쳐 초 모 방송사에서 방영한 주말 연속극 ‘장영실’을 보면 일식과 월식을 추보(推步: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는 일)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왜 이렇게 일식과 월식을 중요하게 여겼을까?

그것은 앞에서 말했지만 평상시와 다른 이변이기 때문이다. 재앙과 이변은 군주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 나라 때 동중서(董仲舒)가 주장하였지만, 훗날 그의 제자들은 재앙은 군주의 지난 일 때문에 일어나고, 이변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경계시키기 위해 일어난다고 여겼다. 이런 것이 전통이 되어 동아시아에서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면 장차 재앙이 생길까봐, 왕들은 긴장하고 조정에서는 구식례(救蝕禮)를 올려 자숙하며 해가 다시 나오기를 기원하였다. 물론 월식보다는 일식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것은 일식은 양(陽)을 가리고 월식은 음(陰)을 가리기 때문에, 음보다는 양을 중시하는 전통에서였다.

율곡의 「천도책(天道策)」에 등장하는 두 번째 질문은 바로 일식과 월식에 관계 되는 문제이다.

 

“간혹 해와 달이 함께 나와 때로는 겹쳐서 일식과 월식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질문을 보면 해와 달이 겹쳐서 일식과 월식이 되는 것을 알고 있은 듯하다. 사실 일식은 달이 해를 가리고 월식은 지구가 달을 가린 것인데, 율곡의 답은 이렇다.

 

“해는 임금의 상징이요. 달은 신하의 상징입니다. 그 운행하는 궤도를 같이 하고, 그 모이는 데도 도수(度數)가 같기 때문에 달이 해를 가리면 일식이 되고, 해가 달을 가리면 월식이 됩니다. 저 달이 희미한 것은 오히려 변괴가 되지 않으나, 이 해가 희미한 것은 음이 왕성하고 양이 미약해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깔보고 망하게 하며 신하가 임금을 거역하는 형상입니다.”

 

동아시아 문화에서 태양은 보통 임금, 남성, 남편을 상징하고, 달은 신하, 여성, 아내를 상징했다. 그래서 태양은 임금 달은 신하를 상징한다고 말하여,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자연현상을 해석한 점이 돋보인다. 곧 자연현상을 인간 세상의 일에 적용시켰는데, 그것은 실제로 그래서라기보다 그 형상을 보고 신하나 아랫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먹을까봐 염려했던 마음이 드러나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자연과학적 사실을 말하고 있는 곳이 있다. 곧 ‘그 운행하는 궤도를 같이 하고, 그 모이는 데 절도를 같이 하기 때문에 달이 해를 가리면 일식이 되고, 해가 달을 가리면 월식이 되는 것입니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과학적 사실로 보면 태양과 달과 지구의 운행이 일직선이 될 때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구에서 관측할 때 지구로부터 지구-달-태양의 순서로 일직선으로 배열되면 일식이 되고, 지구를 가운데 두고 태양과 달이 일직선으로 마주 볼 때는 월식이 된다.

이점은 훗날 중국에 온 예수회 선교사들이 제작한 지도나 책을 조선 사신들이 들여와 알리기 훨씬 이전부터 일식과 월식의 원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해가 달을 가리면 월식이 되는 것입니다.’는 것은 정확한 이해가 아니다. 태양은 너무 멀리 있어 달을 절대로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때는 태양이 그렇게 멀리 있다는 것과 또 땅이 둥글다는 사실을 아직 몰랐기 때문에 일식의 원리를 가지고 월식의 그것에 적용시킨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땅이 둥글다는 사실은 조선 후기에야 선교사들의 저술을 통해 알게 된다. 실학자 홍대용(洪大容)이나 최한기(崔漢綺)는 이 일식과 월식을 여러 각도로 자세히 설명해 내고 있으며, 그것이 단순히 자연현상일 뿐이며 인간 세상의 일과 무관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율곡은 두 해와 두 달이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하물며 두 해가 한꺼번에 나오거나 두 달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은 비상한 변고이니, 다 어그러진 기(氣)로 인해 그렇게 됩니다.”

 

하늘에 두 개의 해나 달이 보이는 경우는 서양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조선후기에 잘 알려진 책으로 서양 선교사 알폰소 바뇨니라는 사람이 쓴 『공제격치(空際格致)』에 보면 그런 설명이 나온다. 모두 구름과 관계 지어 설명했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관측된 적이 있는데 이것을 환일(幻日)현상이라고 한다. 이것은 공기 중에 떠 있는 얼음결정에 햇빛이 반사와 굴절을 했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율곡은 그 현상의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내지 못했지만 기와 관계시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어그러진 기 때문이라는 점은 역시 천인상감(天人相感: 자연과 인간이 서로 관여한다는 생각)적 사유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서 율곡은 일식과 월식의 원리를 말했다면, 여기서는 그것이 생기는 원인을 답하고 있다.

 

“제가 일찍이 옛일을 탐구해 보니, 재앙과 이변은 덕(德)이 닦인 치세(治世)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만, 모두 말세의 쇠퇴한 정치에서 나왔으니, 자연과 사람이 서로 통하는 관계를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일식과 월식의 이변이 이렇게 인간의 일에서 비롯함을 말하고 있는데, 앞에서 말한 동중서(董仲舒)의 학설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전국시대 순자(荀子)는 자연의 일과 인간사회의 일이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후대의 유가(儒家)는 이 순자의 학설을 따르지 않았고, 맹자의 천명사상(天命思想)과 어울린 동중서의 이러한 전통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군주가 권력을 남용하는 횡포를 견제하는 수단으로서 효용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물리적 대상으로만 보는 순자나 근대 서양과학의 입장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서양 종교처럼 인격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보는 것도 아니나, 원시유가나 공자(孔子) 이후의 도덕의 근거로서 하늘 관념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