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드는 마루를 벌써 쓸어놓고 기다리오” – 선비의 편지


“바람 잘 드는 마루를 벌써 쓸어놓고 기다리오”  –  선비의 편지

 

2009년에 정조가 노론의 지도자인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299점이 공개돼서 세간에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임금이 직접 쓴 편지라고 하는 점이 일단 관심을 끌지만 무엇보다도 일반인도 아닌 임금의 편지에서 ‘호로자식’이니, ‘감히 주둥아리를 놀리는가.’ 하는 상스러운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주목을 끌었다.

당시 공개된 간찰은 정조가 직접 쓴 어필이고 그 내용이 파격적이라서 화제가 됐지만, 사실 조선시대의 웬만한 선비들이면 적어도 수십 통에서 수백 통, 많게는 천여 통에 이르는 간찰을 남긴 사람이 적지 않다. 이처럼 많은 간찰은 중요도에 따라 분류하였다가 나중에 문집을 만들 때 그 내용을 수록하게 되는데,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 사이의 유명한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은 두 사람 사이에 무려 8년간이나 편지를 통해 주고 받으면서 진행된 논쟁이었다.

강릉을 연고지로 한 조선시대의 지식인 가운데 일반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매월당 김시습과 율곡 이이, 그리고 교산 허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사람은 각자 처한 시대적 상황은 달랐지만, 치열하게 현실과 부딪치며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다. 이들의 생애와 사상은 관찬사료나 문집 등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지만, 친우 사이에 주고받은 간찰을 통해 오히려 이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저는 외곬이라서 아무리 궁해도 구걸을 못합니다. 남이 주는 것도 받지 않고, 받더라도 어깨를 움츠리고 무릎으로 설설 기지 않습니다. 사례하더라도 감격해서 달려가는 법이 없고, 순결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제 자신 이것이 나쁜 습관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습관이 본성으로 굳어져서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이 편지는 1487년 양양부사 유자한(柳自漢)이 김시습에게 환속과 벼슬살이를 권하자, 거절의 뜻을 밝힌 간찰의 일부이다. 김시습은 세간의 불의를 참지 못하고 명리의 세간을 벗어나 지팡이 하나, 짚신 한 쌍으로 무심한 구름과 사심 없는 달빛처럼 방랑하였다. 스스로 사용한 청한자(淸寒子)라는 호와 같이 겨울 달 아래 외롭게 피어난 매화의 이미지는 곧 청한한 그의 정신세계를 상징한다.

“갑자기 삼대(三代)의 정치를 거론하여 건의해서 받아들여 시행되지 않으면 곧 떠나버리는 것으로 말하면, 그것은 오늘의 시국에 적절한 의리가 아닙니다. 그러니 호원(浩原: 성혼成渾의 字)이 오로지 물러나기만 구하는 것은 너무 집착이 심하다 하겠습니다. 지금은 억만 백성이 물이 새는 배에 타고 있으므로 그것을 구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마 벼슬을 버리고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편지는 1581년 율곡이 대사간의 직에 있으면서 송익필(宋翼弼)에게 보낸 것으로, 시대의 암울한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현실정치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율곡은 친구 성혼이 혼탁한 현실정치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태도를 취한 것을 옳지 않다고 보았다. 지금은 온 백성이 물 새는 배 위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이 위태로우니, 그런 때에 정치를 바로잡아 온 백성을 구원하는 일은 나와 그대 같은 지식인의 몫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대학자이면서도 현실정치를 결코 외면하지 않은 율곡의 모습을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못에는 물결이 출렁이고 버들 빛은 한창 푸르며, 연꽃은 붉은 꽃잎이 반쯤 피었고 녹음은 푸른 일산에 은은히 비치는구려. 이즈음 마침 동동주를 빚어서 젖빛처럼 하얀 술이 동이에 넘실대니, 즉시 오셔서 맛보시기 바라오. 바람 잘 드는 마루를 벌써 쓸어놓고 기다리오.”

이 편지는 허균이 친우 권필(權韠)에게 내방을 권하며 쓴 것으로, 그 미려한 문장이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하다. 허균은 실로 풍운아였다. 우리에게 그는 《홍길동전》의 저자이자 뛰어난 시인이었으며, 여류시인 난설헌의 동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권필은 허균과는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으로 허균 못지않은 천재적 재능을 타고난 시인이었고, 필화사건으로 곤장을 맞고 귀양 가다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도 허균의 비참한 죽음과 매우 닮았다.

E-mail에 익숙한 요즘의 세태에 손으로 편지를 쓴다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현실은 진정한 사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물질의 쾌락을 숭상하고 권력 추구를 인간 본성이라고 합리화하며 체면치례의 만남[面交]과 이익 추구의 만남[市交]을 우정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선 후기의 박지원은 <예덕선생전>에서 참된 사귐은 마음과 덕으로 벗을 사귀는데 있다고 하였다. 옛사람이 벗에게 적은 간찰을 읽으면서 그 속에 담긴 절절한 우정과 마음으로 사귀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