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임금과 순임금


<역사속의 유교이야기 18>

요임금과 순임금

 

국인들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이상적인 군주는 요임금과 순임금이다. 이들 두 임금은 그 실체가 모호한 존재이지만 그러한 실존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들은 항상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중국인들이 이들 군주를 실존의 인물로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우리까지 쫒아서 따를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왜 그러는지는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 고대의 통치자들은 그 대표적인 인물들을 ‘삼황오제(三皇五帝)’로 불렀다. 세 사람의 황제와 다섯 사람의 임금들이다. 이들은 중국문명을 만들어낸 시조, 혹은 중국이라고 하는 나라를 만들 위인들로 칭송을 받는다. 삼황은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을 그리고 오제는 복희, 신농, 황제(黃帝), 당요(唐堯), 우순(虞舜)을 꼽는다. 당요는 당나라 요임금, 우순은 우나라 순임금을 말한다. 이중 황제는 중국문명의 아버지로 추앙되며, 최근에 부쩍 중국 전역을 통합시킬 수 있는 상징적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삼황오제가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중국의 역사학계가 이미 오래 전부터 인정하여 왔으나 최근에는 중국 정치권 일각에서 실존하는 인물로 복권을 시도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으로 굳건히 통합된 중국을 만들기 위한 사상적 작업의 일환인 것이다.

논어⌋의 맨 마지막에 있는 요왈편에서도 요임금, 순임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요임금이 말했다.

“아아, 순(임금)이여. 하늘이 정한 운수가 그대에게 있으니, 중용의 도를 지키도록 노력하라. 천하가 곤궁해지면 하늘이 준 복록도 영원히 끊어지리라.”

순임금이 그대로 우왕에게 일러주었다.

(우임금의 뒤를 이은) 탕임금이 말했다.

“이 탕은 삼가 검은 황소를 바쳐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 아룁니다. 죄인은 용서하지 않겠으며, 상제님의 신하는 모든 것을 감추지 않겠으며, 모든 것을 상제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제게 죄가 있다면 백성들과는 상관이 없고, 백성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 죄는 모두 제게 있습니다.”

탕 임금은 은나라 창건자를 말한다. 탕임금이 한말도 사실은 신화에 가까운 것이지만, 중국인들은 이 기록을 사실로 보고 요임금, 순임금 등과 함께 흠모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들 고대의 성군들의 사상적 특징은 철저하게 백성 위주, 백성 중심이라는 것이다. 즉 민본(民本)사상의 실천자들이다.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정치를 행한 성군의 모범으로 그들을 흠모한다. 위에 든 인용문에서도 탕임금은 자신 죄는 당연히 자신의 것이요, 백성들의 죄도 자신의 것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가 중에서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한명이라도 있을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조선시대 지식인들도 이러한 임금을 이상적인 군주로 생각하고 그러한 이상적인 모습을 조선의 왕들에게서 찾고자 하였다. 경연에 참가한 학자들은 왕에게 고전을 설명하면서 반드시 그러한 군주가 되도록 노력하기를 당부했다.

선조 1년(1567년, 11월 17일)의 경연자리에서 선조 임금은 학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요임금과 순임금도 서로 비교해보면 우열이 있는가?”

당시 경연에 참석 중인 고봉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이 이렇게 답했다.

“어찌 우열이 있겠습니까.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요·순은 다 같이 ‘생지(生知)’의 성인이라 실로 우열이 없습니다.”

생지(生知)의 성인이란 태어나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성인을 말한다. 정상적인 인간은 이렇게 태어날 수 없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누구나 백지상태에서 태어난다. 그 뒤에 언어를 알고, 지각을 갖게 되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구축해간다. 그런데 당시 대학자로 존중을 받은 기대승은 복희·신농·황제·요·순을 태어나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던 성인이라고 설명했다. 이 오제는 어차피 허구의 인물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 어떤 상태였는가는 논의할 가치가 없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 우열은 없을 수밖에 없다.

기대승은 이어서

“다만 우(禹)의 덕은 무왕(武王)과 비슷하고, 문왕(文王)의 덕은 요·순과 비슷합니다. 만약 탕왕(湯王)이나 무왕을 요·순에 비교한다면 다소 차이가 있을 듯합니다.”

라고 하였다.

우왕은 하나라를 창건한 임금이며, 탕왕은 은나라를 창건한 임금이고, 무왕은 주나라를 창건한 임금이다. 소위 하․은․주 3대의 창건자들이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실체가 인정되지만 유교 경전에 언급된 이들의 말이나 인물 묘사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전설인 경우가 많다. 기대승이 말한 문왕은 무왕의 부친으로 주나라의 창건 기틀을 만든 인물이다. 그래서 문왕은 요임금과 순임금의 위치까지 올려서 칭찬했다.

선조 임금은 기대승의 설명을 듣고 다시 이렇게 물었다.

“요임금과 순임금 중에 누가 나은가?”

앞의 질문이나 별반 차이 없는 질문이었다. 아무래도 선조에게는 기대승의 설명이 불만스러웠을 것이다. 기대승도 그것을 느꼈는지 그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장황하게 설명을 하였다.

“요순시대는 1년으로 말한다면 4월과 같은 때입니다. 요임금의 덕은 공손하고 총명하고 우아하고 신중하시어 온유하셨습니다. 순임금은 여러 가지 고난을 두루 경험하여 농사짓고 질그릇 굽고 물고기까지 잡았습니다. 깊은 산중에 있으면서 목석(木石)과 같이 살고 사슴이나 멧돼지와 같이 놀았지마는 한 마디 착한 말을 듣거나 한 가지 착한 행동을 보게 되면 양자강이나 황하의 물을 터놓은 듯 막힘이 없이 통달하였습니다.”

요순에 대해서 배운 중국 고전의 표현을 모두 동원하여 그들의 훌륭한 모습을 그렇게 설명한 것이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자(程子)는 ‘요와 순은 서로 우열이 없다.’고 했는데 이 말이 과연 그렇습니다. 문왕 역시 생지(生知)의 성인이신데 ⌈시경⌋에 이르기를 ‘슬기도 없고 지혜도 없는 속에 천리(天理)에 순응한다.’라고 하였으며, 또 ‘상천(上天)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문왕을 본받으면 온 세상이 믿고 따르게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요순에 대해서 질문을 했는데, 기대승은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정자(程子), 즉 북송의 학자인 정이(程颐, 1033-1107)가 한 말, 즉 ‘요와 순은 서로 우열이 없다.’라는 말을 반복하였다. 말하자면 ‘중국의 성리학자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들 사이에는 우열이 없는 것입니다.’라는 뜻이다. 이어서 대뜸 선조가 물어보지도 않은 문왕, 즉 무왕의 아버지를 소개한다.

그리고 문왕의 뒤를 이어 공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문왕의 뒤에는 공자가 주(周)나라 말기에 태어나 모든 임금의 본보기가 되었는데 그 제자의 말에 ‘내가 선생님을 본 바에 의하면 요임금이나 순임금보다도 훨씬 더 훌륭하시다.’라고 했습니다. 대개 요순시대에는 백성이 잘 다스려져 화평을 누렸는데 그 은택이 한 시대에만 있었으나, 공자는 만세토록 법을 드리워 그 공이 요․순보다 더하였으니 이른바 성(聖)이라는 지위로 말하면 다름이 없겠지만 공으로 보면 다른 점이 있습니다.”

결국 기대승은 공자를 끌어들여 설명하는 것으로 선조의 질문에 답을 하였다. 공자는 요임금, 순임금 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더 나은 이유는 만세도록 유교의 가르침을 전하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대승이 선조의 질문에 답한 것은 다소 동문서답으로 흐른 감이 없지 않으나 16살 먹은 어린 임금에게 공자의 가르침을 본받아 ‘요임금, 순임금과 같이 되시오’라는 것이었다. 천하가 곤궁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백성들의 모든 죄는 당신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점을 가슴에 새기고 정치를 하시오라는 가르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