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일은 임금의 마음에 달려있다”


<역사속의 율곡학 스토리텔링09>

천하의 일은 임금의 마음에 달려있다

 국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통치자인 대통령의 마음에 달려있는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 나라는 독재국가일 가능성이 크다. 민주국가에서 통치자의 권한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국가의 세 권력, 즉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나뉘어 있는 것은 최고 권력자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한 제도이다.

 

고대 때부터 훌륭한 정치는 백성들이 그 통치자의 존재를 모르도록 하라는 말이 있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훌륭한 통치자는 그가 있는지 조차 모르게 하는 사람이다. 그 다음은 사람들이 그와 친하게 지내면서 그를 칭찬하는 사람이다. 그 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통치자다. 가장 좋지 못한 통치자는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이다. 통치자가 믿음직스럽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는다. 훌륭한 통치자는 말을 삼간다. 통치자가 훌륭하여 정치가 잘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노자의 말을 빌린다면, 날마다 저녁 아홉시 골든타임 뉴스에 통치자의 뉴스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방송된다면 그런 나라는 좋은 나라가 아니다.

유교에서 바라는 훌륭한 통치자는 누구일까? 선조 6년(1573년) 10월 어느 날 율곡이 김우옹 등과 함께 선조임금을 모시고 인심도심설 강의를 할 때의 이야기이다.

선조 임금이 갑자기 이렇게 하소연을 하였다.

“우리나라 일은 참으로 하기 어렵구나. 한 가지 폐단을 고치려 하면 다른 한 가지 폐단이 또 생겨, 그 한 가지 폐단이 고쳐지기도 전에 그 폐단을 더하게 되니, 손발을 쓸 수 없구나.”

이이가 이를 듣고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일이 그렇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국가에 기강이 서지 않아서 인심이 많이 해이해졌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벼슬을 주어 구차하게 자리만 채운 자가 많습니다. 이들은 먹고 지내는 것만을 알 뿐 나랏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폐단을 고치라는 명령이 한번 내려지면, 먼저 꺼리는 마음을 품고서 받들지 않을 뿐더러 고의로 폐단이 생기게 합니다. 이것이 공을 들여도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인 것입니다.”

율곡이 진단한 그 이유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 기강이 서지 않았다는 점, 둘째 사람을 잘 가리지 않고 벼슬을 주었다는 점, 셋째, 일부러 폐단을 고치지 않는 개혁 반대 세력이 있다는 점이다.

 

율곡이 선조에게 제시한 처방약은 다음과 같았다.

“위에서 임금이 먼저 스스로 뜻[聖志]을 정하여 반드시 다스려지기를 기원하며, 호오(好惡)·시비(是非)를 한결같이 천칙(天則)을 따라서 공정하게 하여 어지럽지 않게 되면 기강이 확립될 것입니다.”

 

율곡은 두 가지 사항을 요청했다. 먼저 임금이 개혁하고자 하는 뜻을 분명히 세울 것. 그리고 변함없는 원칙에 따라 매사를 공정하게 처리할 것.

임금 자신이 개혁할 뜻은 없으면서 신하들 앞에서 입으로만 백번 개혁을 외쳐본들 궁궐 안 밖의 변화는 없다는 것이다. 또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으니 국가의 기강이 헤이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을 듣고 옆에 있던 김우옹이 이렇게 거들었다.

“학문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많으나 옛사람의 말을 듣고 배워 그 진의를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몸과 마음에 꼭 필요한 공부를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옛글에 해박하더라도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선조 임금은 옛글을 읽기만 했지 자신이 몸소 실천하는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 제가 보건대, 삼가 임금의 학문이 고명하여 아는 것이 매우 광범위하지만 정사 일에서는 그 보람을 보지 못하니,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인 병폐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정심(正心)·성의(誠意)의 설에 대해 옛사람이 이미 극진하게 말하였는데 이제는 도리어 절실하지 않게 여깁니다.”

선조 임금이 경전 공부를 많이 하여 박식은 하지만 정치에는 그것이 잘 활용되지 못하니 필시 그가 배운 공부에 문제가 있거나 임금 자신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신랄한 비판을 한 것이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正心], 뜻을 정성스럽게 하라고 옛사람들은 말했으나, 임금은 이 말을 절실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아울러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천하의 일은 다 임금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성의·정심에서 힘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잘 다스려지기를 기대하여도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옛사람의 천만 가지 말이 모두가 매우 절실하나 그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敬)자 하나입니다. ‘경’자는 온갖 선이 있는 곳인데, 경을 논한 말은 매우 많으나 그 가운데에서 이른바 ‘정제(整齊)하고 엄숙(嚴肅)히 하면 마음이 곧 전일(專一)해지고 마음이 전일해지면 그르고 편벽된 것이 절로 없어지므로 이것을 간직하면 천리(天理)가 밝아진다.’는 말이 치밀하고 친절하니,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다 여기에 착수해야 합니다.”

뜻을 정성껏 가지고, 마음을 바르게 하지 못하면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경건한 마음을 가질 것을 요청하였다.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편벽된 마음을 잘 다스린다면 천리가 밝아진다고 까지 하였다. 이러한 지적은 임금의 마음이 교만해지고 자만해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이러한 말을 듣고 선조 임금은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은 옳다. 마음을 정제하고 엄숙히 하는 것을 어찌하여 착수할 곳이라고 하느냐 하면, 정제 엄숙은 외면으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힘쓰기 쉽기 때문이다. 주일무적(主一無適)은 내면을 말한 것이어서 착수하기 어렵다.”

‘주일무적(主一無適)’이란 성리학에서 ‘경(敬)’자를 풀어서 설명한 것이다. 정신을 한 곳으로 집중하여 바깥의 사물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을 뜻한다. 선조는 이렇듯 아주 깊이 있는 성리학의 가르침을 술술 풀어낼 정도로 박식한 군주였다.

율곡은 이러한 선조 임금에 대해 다시 한번 따끔하게 충고를 하였다.

“마음을 정제하고 엄숙히 하는 것은 겉으로만, 즉 외모만을 그렇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의 모습만 그렇게 가지고, 실질적인 정치는 천리(天理)와 다르게 행하신다면 마음 자체가 원래부터 정제하고 엄숙한 것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성제(成帝)는 조정에 임하면 아주 조심스러운 모습을 하였습니다. 그 모습이 존엄하기가 신(神)과 같았으나 정치가 엉망이었으니 어찌 그 마음 상태를 경(敬)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선조는 이를 듣고 다시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 성제의 경우는 마음이 정제하고 엄숙한 것이 아니요. 그의 행동을 기록한 사관(史官)이 그 태도를 잘 수식하여 말하였을 뿐이오.”

선조 임금의 말을 듣고 있으면 잘 배운 학생과 같다. 또박또박 자기 할 말을 다하고, 또 조리에 맞게 말한다. 하지만 율곡이 보기에는 그것뿐이었다. 율곡은 실질적으로 정치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목격하면서 선조의 부족함을 힘껏 지적하였으나 어찌할 수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당시는 천하의 모든 일이 임금의 마음에 달려있는 시대였으니 그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