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해야 할 공부


<역사속의 율곡학 스토리텔링 05>

임금이 해야 할 공부

 

‘대통령학’이라는 학문분야가 있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연구하는 것이다. 한국대통령학회도 있고, 한국대통령학연구소도 있다. ‘대통령학’이라면 사실 유교의 가르침만큼 체계적인 것이 없을 것이다. 유교, 특히 성리학은 그러한 학문이 집대성된 철학이다.

곡은 선조에게 수시로 대통령학 강의를 하였다. 선조 2년의 기록이다.

“임금이 백성을 다스릴 생각이 없으면 그만이지만, 만약 다스리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학문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이른바 학문이라는 것은 단지 부지런히 경연(經筵)에 나아와 고서(古書)를 많이 읽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반드시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하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실지로 효과가 있게 되는데, 그런 다음에야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연이란 궁중에서 학자들이 임금과 함께 유교 경전이나 역사서 등을 읽는 것이다. 말하자면 임금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다. 율곡은 임금이 잡다한 서적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의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격물(格物)이란 사물을 잘 살펴보고 연구하는 것을 말하며, 치지(致知)란 지식을 넓히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통하여 뜻을 정성스럽게 가지며[誠意],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正心]. 대학에 나오는 이러한 개념은 바로 마음 공부, 수양 공부를 의미한다. 마음을 바로 하는 공부를 한 뒤에야 실질적인 효과가 나오고 비로소 학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율곡이 선조 2년, 즉 1569년에 임금을 앞에 두고 이렇게 대통령학을 가르칠 정도가 되었던 것은 어떤 배경 때문이었을까?

율곡은 당시 34세였다. 그는 1564년(명종 19)에 문과에 급제한 뒤, 호조좌랑으로 임명되고, 곧이어 예조좌랑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 때 그는 왕실의 외척 윤원형을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비행을 일삼던 승려 보우를 제주도로 귀양 보냈다. 1567년 선조가 즉위한 해에는 횡포를 일삼던 재상 심통원을 탄핵하여 관직에서 쫓아냈다. 1568년에는 명나라 사신을 따라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에 동행하였으며, 그 다음해 1569년에 귀국한 뒤에는 홍문관의 부교리, 교리로 승진되었다. 그와 동시에 춘추관기사관을 겸임하였으며, 명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율곡은 당시 임금의 경연에 참석하고 임금을 가르치며, 임금과 관료들의 잘못을 살펴서 바로잡는 직책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왕에게 거침없는 충고와 가르침을 펼 수 있었던 것이다.

임금은 왜 수양 공부를 해야 하는가? 율곡은 임금에게 계속 이렇게 말했다.

“필부는 집에 있으므로 아무리 학문의 공이 있다 해도 그 효과가 세상에 나타나지 않지만, 임금은 그렇지 않아 마음과 뜻에 축적된 것이 정사(政事)에 발휘되는 까닭에 그 효과가 곧바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현재 민생은 궁핍하고 풍속은 경박하며 기강은 무너지고 관리들의 기풍도 올바르지 못합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지 몇 해가 되는데도 다스림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마도 전하의 격물·치지·성의·정심하는 공부가 지극하지 못한 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이런 풍조가 변하지 않고 이어져 날로 더욱 퇴패(頹敗)해진다면 나라 모양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이름 없는 필부, 즉 일반 시민은 영향력이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므로 그가 결정한 일들이 한 가족의 범위를 벗어나기 힘들지만 임금의 결정은 그렇지 않다. 임금의 마음 씀에 따라서 수천만, 수억의 인구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피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임금의 한마디 말에 따라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이 결정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은 잡다한 지식을 쌓기 전에 먼저 마음의 수양공부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그 밑의 신하들이 그것을 따라 정치가 잘 이루어지고, 백성들은 당연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율곡은 당시 풍조가 경박하고 기강이 무너진 것은 결국 임금인 선조의 수양 공부가 부족한 때문이라고 보았다. 지극히 유학자다운 판단이었다. 율곡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엎드려 원하옵건데 전하께서는 크게 성취시키겠다는 뜻을 분발하시어 도학(道學)에 마음을 두시고 선정(善政)을 강구하시어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임금이 장차 삼대(三代)의 도를 흥기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환히 알게 하십시오. 그런 뒤에 모든 신하들의 선악을 자세히 살피시어 충군 애국하는 자들을 가려 그들과 함께 일을 하시고, 아무 뜻도 없이 평범하게 국록만 탐하는 자들은 큰 직책에 있지 못하게 하심으로써 인사의 타당함을 얻고 인물과 자리가 서로 걸맞게 된다면, 경세제민(經世濟民)하는 선비들 중 세상에 소용이 되는 자가 반드시 나와 나라의 일이 제대로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임금이 ‘도학’에 마음을 두라는 것은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따르라는 것이며, ‘삼대’의 도(道)를 흥기시키자는 것은 중국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의 좋은 정치와 제도를 조선에서 다시 부흥시키자는 것이다. 요즘의 상식으로 생각해보면 다소 편협한 제안일 수 있으나,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전인 전통사회에서는 유교를 중시하는 지식인으로서 당연한 제안이었다.

이날 기록의 마지막 부분에 율곡은 다음과 같이 임금에게 제안하였다.

“이제 전하께서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시어 일상의 언행을 순수하게 하시고, 한결같이 올바르게 하여 신하와 백성들의 모범이 되신다면, 군자(君子)들은 믿는 바가 있게 되어 충성을 다해 보좌할 것이며, 소인들 역시 임금의 마음을 사사로이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 반드시 허물을 고치고 선을 향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임금의 마음이 바르게 되면 나라가 안정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맹자⌋(「이루상편」)에

“군주가 어질면 모든 일처리가 어질지 않음이 없고, 군주가 의로우면 모든 일이 의롭지 않음이 없고, 군주가 바르면 모든 일이 바르지 않음이 없다. 군주의 마음이 바르게 되면 나라가 안정된다.”

고 하였다. 율곡은 그 문구를 이용해 임금이 항상 몸가짐과 생각을 바르게 하도록 건의하였다. 삼권분립의 정신을 바탕으로 정치가 행해지는 지금과 달리, 율곡이 살았던 전통시대에는 임금의 역할이 막중하였기 때문에 임금의 정신 자세가 매우 중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반드시 대통령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성의(誠意)·정심(正心)의 공부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