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부흥시키려면


<역사속의 율곡학 스토리텔링11>

나라를 부흥시키려면

 

라가 잘 되려면 훌륭한 사람들이 통치자 주변에 모여야 한다. 그들이 머리를 맞대고 나라의 먼 장래를 설계하고 계획하여 차근차근하게 일을 추진해야한다.

논어⌋의 「요왈편」에

“가까운 친척보다도 현명한 사람이 더 낫다”

는 말이 있다. 일가친척이나 혈연 지연으로 주위 참모들을 모을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에서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모아서 국가를 경영하는 것이 나라를 부흥시키는 첩경이다.

그런데 훌륭한 사람들을 모아 놓고 그들이 제시한 의견을 듣지 않는다면 어떠할까? 그래서는 당연히 나라가 잘 다스려질 수 없을 것이다.

율곡은 어느 날 선조 임금을 모시고 맹자를 강의하였다. 그 자리에서 율곡은 임금이 훌륭한 사람들을 등용해 놓고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그러자 선조가 이렇게 말했다.

“그 일은 분명히 그렇다. 나도 그 점은 잘 안다. 때문에 지난번에 현명한 사람을 쓰자고 말한 것은 진실로 좋았다. 그러나 사람이 좋기만 하고 일의 경험이 없을 경우에 일을 중도에 너무 지나치게 할까 염려되었다.”

일을 맡겼을 경우, 경험이 없으면 일 추진이 너무 편협하거나 외골수로 지나쳐 그 결과가 어그러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율곡이 존경하던 조광조(趙光祖, 1482-1520)가 바로 그런 사례였다. 조광조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이상 정치를 꿈꾸고 중종의 총애를 받아, 미신을 타파하고 향약을 실시하도록 하였으며, 각종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였다. 그를 지지한 중종마저 그를 미워하여 결국 유배지 화순에서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선조는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섣불리 일을 맡겼다가 실패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율곡은 이렇게 말했다.

“전하께서 번번이 일이 너무 과하게 지나칠 것만을 근심하십니다. 오늘날 신하들이 전혀 일을 하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않으시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중도에 지나친 일이 생길 경우, 위에서 제재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겠습니까?”

일을 시키고 나서는 그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잘 지켜봐야 한다. 그러다 지나침이 있으면 제동을 걸면 되는 것이다. 율곡의 생각은 일을 추진하는 편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선조가 다시 말했다.

“그렇지 않다. 고집하는 사람이 제재를 듣지 않고 반드시 제 멋대로 일을 추진해버리면 어찌 하겠는가?”

율곡이 다시 이렇게 말했다.

“어찌 일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게 되기까지야 하겠습니까. 세상이 쇠퇴하고 도가 미약하여 많은 선비들이 과거급제 만을 출세하는 길로 여기고 있으나 첫째가는 인물들은 반드시 과거에만 매달리지 않습니다. 과거로 사람을 쓰는 것은 말세의 관습으로 어찌 성세(盛世)의 일이겠습니까? 혹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자가 대관이 되면 좋지 못한 자도 섞여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시겠지만 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공론이 크게 행해진다면 반드시 마땅한 사람이 선발될 것입니다. 공론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문사(文士) 중에도 선하지 못한 자가 많이 있어 중요 직책을 맡게 될 것입니다. 어찌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자에 대해서만 근심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를 거치지 않은 사람을 등용하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는 선조에 대해서 율곡은 과거 제도 자체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율곡은 자신이 과거를 통해서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관직을 얻고 왕과 가까이 할 수 있었지만, 국가에서 인재를 채용할 때 과거급제자만 우대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이 있으며 과감히 일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선조는 아무래도 뒷감당을 하지 못할 경우가 발생하는 것을 걱정하였다.

사실 선조 대왕은 지금 율곡의 따끔한 충언에 요리조리 변명을 하면서 곤란한 상황을 면하려고 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신하가 멋대로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선조 자신에게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율곡이 맨 처음에 지적한 것처럼 선조는 사람을 임명해놓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율곡이 쓴 ⌈만언봉사(萬言封事)⌋에 이런 말이 나온다.

“전하께서 명철하심에는 남음이 있으나 덕을 베푸심은 넓지 못하며, 선(善)을 좋아하심은 얕지 않으나 의심이 많으신 점은 버리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 신하들 중에 올바른 의견을 아뢰기에 힘쓰는 사람들은 그들이 지나치고 외람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기개와 절조를 숭상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남보다 빼어나려 애쓰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여러 사람들의 찬양을 받으면 그들이 당파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죄짓고 잘못한 것을 공격하면 그들이 편파적으로 모함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계십니다.”

(황의동 저, ⌈율곡 이이⌋, 152쪽)

 

선조 7년(1574년) 정초에 나라에 재난이 심하였다. 그래서 선조는 조정의 관리들부터 초야(草野)의 선비들에게 이르기까지 널리 국난 극복을 위한 직언(直言)을 구하였다. 그때 우부승지(右副承旨)의 직책에 있었던 율곡(당시 39세)은 장문의 상소문을 작성하여 제출하였는데 그것이 만언봉사다. 거기에서 율곡은 선조의 문제점 중 하나로 마음이 좁고 의심이 많아 신하들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율곡이 임금에게, 훌륭한 사람들을 등용해 놓고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자 선조 임금은 요리조리 말을 돌리면서 율곡의 비판을 피해가고자 하였다. 하지만 왕의 변명에 율곡도 지지 않고 끈질기게 왕의 말을 따라가면서 비판을 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지 않을까?

 

율곡은 ⌈만언봉사⌋에서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

“좋은 말이 있어도 그것을 채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익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사가 신하가 되었어도 노나라 목공의 영토가 줄어드는 것이 더욱 심하기만 하였고, 맹자가 경이 되었어도 제나라 선왕의 왕업은 흥성해지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오늘날 진언하는 사람들이란 자사나 맹자 같은 사람들도 아니려니와, 그 말을 채택하였다는 실상에 대해서도 들어본 일이 없는데 어떠하겠습니다.”(황의동 저, ⌈율곡 이이⌋, 153쪽)

좋은 참모만 있으면 뭐하겠는가? 그 참모를 활용하여 국가 대사를 운용하여야 나라가 흥성하는 것이다. 퇴계와 율곡과 같이 훌륭한 사람들을 곁에 두었던 선조 시대에 왜 그렇게 정치가 무기력하였는지 율곡의 글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