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야한다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한다

 

절약(節約)’과 ‘검소(儉素)’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요즘의 소비사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이 두 단어는 갈수록 듣기 힘들고, 보기 드물다.

구글(Google)에서 만들어놓은 트랜드(Google Trends)에서 사용 빈도수를 조사해봤다. 2004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한글로 ‘절약’과 ‘검소’라는 단어를 검색해본 빈도수를 그래프로 그려놓은 것이다. 파란 선은 ‘절약’, 빨간 선은 ‘검소’의 검색 추이다. 시간에 따른 관심도의 변화인 셈이다.

오른 쪽으로 갈수록, 즉 시간이 흐를수록 관심도가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푸른 선으로 그려진 ‘절약’이라는 단어는 10년쯤 전에는 지금보다 3배정도 더 관심을 받았다. ‘검소’는 그때도 많지 않았으나 지금은 관심도가 그 때보다 더욱 적어 0에 가까이 가까워져 가고 있다. 이런 추이가 계속된다면 ‘절약’과 ‘검소’라는 말은 한국어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사어(死語, 죽은 단어)’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율곡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의 3번째로 절약과 검소를 실천하도록 요구했다. 그 실천의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국왕인 선조였다. 나라의 임금이 솔선해서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숭절검(崇節儉), 이혁(以革), 사치지풍(奢侈之風).”

 

숭절검(崇節儉)’의 ‘숭(崇)’은 동사로, 숭상하다는 뜻이며, ‘절검(節儉)’은 목적어로, 절약과 검소를 뜻한다. 절약과 검소를 숭상하라는 뜻이다. ‘이혁(以革)’의 ‘이(以)’는 ‘그것으로’의 뜻이며, ‘혁(革)’은 동사로 ‘고치다, 바꾸다’의 뜻이다. ‘사치지풍(奢侈之風)’은 목적어로 ‘사치의 풍조’를 말한다. 절약과 검소를 숭상하여 사치의 풍조를 바꿔야한다는 의미이다.

율곡은 왜 절약과 검소를 강조하였을까? 공자의 제자들이 지은 논어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글귀가 보인다.

 

“도천승지국(道千乘之國), 경사이신(敬事而信), 절용이애인(節用而愛人), 사민이시(使民以時)”

 

공자의 말이다. ‘도천승지국(道千乘之國)’의 ‘도(道)’는 ‘길’이라는 뜻이 있는데, 그 뜻이 전용되어 동사로 ‘다스린다’는 의미도 있다. ‘천승지국(千乘之國)’은 ‘천승의 나라’라는 뜻으로 목적어 역할을 하여 ‘천승의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천승(千乘)의 나라’란 공자시대 중국에서는 제후국을 뜻했다. 당시 천하는 주나라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각 제후들이 주나라로부터 분봉을 받아 각 지역을 다스렸다. ‘천승(千乘)’이란 천대의 ‘마차(승乘, 타다)’를 말한다. 여기에서 마차는 전쟁에 사용되는 전차를 의미한다. 천대의 전차를 동원해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뜻하는데, 나라다운 나라, 혹은 비교적 큰 나라를 뜻한다.

그런 나라를 다스리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지 정치의 요령(要領, 일을 하는데 꼭 필요한 골자나 핵심)을 설파한 글이다. 공자는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경사이신(敬事而信)’, 두 번째는 ‘절용이애인(節用而愛人)’, 세 번째는 ‘사민이시(使民以時)’이다.

먼저 ‘경사이신(敬事而信)’의 뜻은 다음과 같다.

‘경사이신(敬事而信)’에서 ‘경(敬)’은 명사로 ‘공경’을 뜻하나 여기에서는 동사로 사용되었다. 동사의 의미로는 ‘공경하다’, ‘삼가다’, ‘공손하다’, ‘정중하다’는 뜻이 있다. ‘사(事)’는 일을 뜻한다. 그러므로 ‘경사(敬事)’는 ‘일을 조심스럽게 하다’, 혹은 ‘일을 공손하게 하다’는 뜻이다. 일을 할 때에 그 일을 공손한 마음을 가지고 아주 조심스럽게 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而)’는 접속어로 영어의 ‘and’, 혹은 ‘then’과 같다. ‘그러면’, ‘그렇게 하면’의 뜻이다. ‘이(而)’를 사이에 두고 앞 문장의 동사와 뒷문장의 동사, 앞 문장의 명사와 뒷 문장의 명사가 서로 대응한다. 그러한 규칙을 생각해보면 뒤에 나오는 ‘신(信)’은 한 글자에 ‘경사(敬事)’라는 글자에 대응하는 뜻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믿음직스럽게 일을 처리하다’, 혹은 ‘믿음을 주다’는 의미이다. 전체적인 의미는 공손하게 일을 처리하고 그러한 일처리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

다음으로 ‘절용이애인(節用而愛人)’의 뜻은 다음과 같다.

‘절용(節用)’은 동사 ‘절(節, 절약)’과 목적어 ‘용(用, 비용)’으로 이루어졌다. 그 뜻은 ‘비용을 절약하다’이다. ‘이(而)’는 ‘그래서’, ‘그리고’의 뜻이며, ‘애인(愛人)’은 동사인 ‘애(愛)’와 목적어인 ‘인(人,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람을 어여삐 여기다’, ‘불쌍히 여기다’, ‘사랑하다’는 뜻이다. ‘애(愛)’라는 글자는 서양의 문물이 들어와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다는 뜻이 강해졌으나, 원래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가엾게 여기다’, ‘어여삐 여기다’는 뜻이 많았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절용이애인(節用而愛人)’을 전체적으로 해석하자면, ‘비용을 절약하고 백성들을 가엾게 여긴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비용을 절약하는 것과 백성들을 가엾게 여긴다는 뜻은 각기 별도의 의미가 아니라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 둘이 서로 상관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국가를 다스리는 요령의 하나로 공자가 이 말을 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절약하는 것과 백성을 가엾게 여긴다는 것과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 그런가?

임금은 백성이 내는 세금으로 먹고사는 존재이다. 백성들이 밭에 나가 힘들여 농사를 지어 그 중 일부를 국가에 바친다. 임금뿐만 아니다, 모든 관리들도 마찬가지다. 요즘으로 말한다면 대통령 이하 모든 공무원들 그리고 각급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은 국민의 세금을 받아서 일을 한다. 그 일을 하면서 한 푼이라도 절약하면 그것은 바로 국민의 부담을 줄이는 일이 된다. 국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그들이 내는 세금을 사용할 때 아끼고 아끼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공자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이 내는 세금을 아끼고 절약함으로써 백성들을 사랑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 한 나라를 다스리는 요령이라고 역설한 것이다.

공자가 마지막으로 제시한 ‘사민이시(使民以時)’의 뜻은 다음과 같다.

‘사민(使民)’은 동사인 부릴 ‘사(使)’와 목적어인 백성 ‘민(民)’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성을 부린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이(以)는 ‘∼을 가지고’라는 뜻이며 ‘시(時)’는 때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시(以時)’는 ‘때를 가지고’라는 뜻이다. 백성을 부리는데 때를 가지고 한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때를 보면서 백성을 부려라.’는 뜻이다.

옛날 전통시대에 백성들은 대개가 농민들이었다. 그리고 당시 국가는 그 농민들이 생산해낸 농산물을 기반으로 운영되었다. 국가의 노동력도 농민을 기반으로 삼았다. 그래서 농민들이 농사를 짓는 시기를 고려해서 백성들을 부려야한다는 것이다. 농사로 한참 바쁜 때에 국가에서 부역을 시키면 농사를 못 지어, 먹을 것이 없다. 농민들이 먹을 것이 없으면 세금을 낼 수도 없으니 국가는 운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때를 잘 맞추어 백성들을 부려야 하는 것이다.

요즘도 그럴 필요가 있을까? 요즘 농민들은 전 국민의 5%도 되지 않는다. 1980년도에 1천만명 정도 되었던 농민 인구수가 요즘은 250만명도 안 된다고 한다. 요즘 우리나라의 세금은 농업, 공업, 상업, 그리고 서비스업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받는다. 그러니 ‘때’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국가의 사업은 나라를 지키는 일 외에는 ‘부역(賦役)’이 필요 없다. 옛날과 달리 지금은 국민에게서 받은 세금으로 사람들을 고용하여 일을 시킨다. 그러니 ‘사민이시(使民以時)’는 사실상 필요 없는 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말의 깊은 뜻을 곰곰이 살펴보면 역시 버릴 수가 없다. 그 말은 현대적인 의미로 바꾸어보면 국가가 정책을 추진할 때, 항상 국민의 입장에서 판단하라는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이나 업무 추진 공무원들이 책상 앞에서만, 상상으로 일을 꾸밀 것이 아니라, 현장의 상황을 잘 살펴보고 국민들의 입장을 잘 검토한 뒤에 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공청회를 열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경우는 이미 결론을 내리고 형식적으로 공청회를 연다. 법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냥 시늉만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말이 많아진다. 국민의 의견을 진지하게, 왕의 의견처럼 생각하고 잘 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가를 다스리는 요령이라는 것이다. 요즘말로 바꾼다면, 국가 행정의 요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절약과 검소의 이야기로 되돌아가자.

율곡의 제안 중에 임금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억제하고 절약과 검소한 생활을 하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임금의 행동이 바로 그 아래에 있는 모든 신하들 그리고 모든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유교 사상 중에 ‘삼강(三綱)’이 있다. 즉 세 가지 모범이다. 여기에서 ‘강(綱)’은 ‘벼리’를 뜻하는데, 그것은 그물의 바깥 위쪽을 연결하는 굵은 끈을 말한다. 그 벼리를 잡아당기면 그물이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가운데로 모아진다. 이러한 ‘벼리’는 전용하여 ‘통괄하다’, ‘근본이 되다’, ‘모범이 되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이다. 이 삼강의 뜻은 다음과 같다.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은 신하의 모범이다.

부위자강(父爲子綱): 아버지는 자식의 모범이다.

부위부강(夫爲婦綱): 남편은 부인의 모범이다.

 

부인은 남편을 본받아 그 행동을 따라서 하며, 자식은 아버지를 본받는다. 신하는 임금의 행동을 보고 따라서 한다. 임금은 온 나라 사람들의 아버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온 나라 사람들은 임금을 본받아 그 행동을 따라서 한다. 그러므로 임금이 절약하면 백성들도 절약하게 되고, 임금이 사치하면 백성들도 사치를 한다. 율곡의 머릿속에는 이러한 유교적인 사상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선조 임금에게 절약과 검소를 중시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바꾸라(革)’고 한 것이다.

요즘 대통령도 국민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가? 헌법을 보면 대통령은 국민이 뽑은, 5년짜리 임시직 공무원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대통령을 그렇게 단순히 기간제 근로자 정도로 여기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100년이 못될지 모르나 우리나라의 역사는 수천 년에 이르고, 유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지 2000년이 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대통령은 부모와 같은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의 대통령과 공무원들도 절약과 검소를 중시하고 사치를 멀리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요즘의 경제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할 수 있다. 정부에서 절약과 검소를 강조하면 경제가 침체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모두 절약하고 검소만을 추구하면 상인들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하고 물을 수 있다.

공자는 ⌈논어⌋의 마지막 편인 요왈편에 정치를 잘 하는 방법으로 다섯 가지 미덕을 소개했다. 그 중 하나로 ‘은혜를 베풀지만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惠而不費)’고 했다. 좀 더 구체적인 뜻을 묻는 제자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백성들의 이익이 되는 곳에 이익이 되도록 세금을 써라(民之所利而利之)”

 

국민들이 이롭다고 생각하는 일에 예산을 집행해야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통치자가 해야 할 일이다. 통치자가 베풀어야할 은혜는 국민의 세금으로 값비싼 시계를 만들어 여기저기 뿌리는 일이 아니다. 국민들이 이익이 되는 일을 찾아서 그 일에 세금을 사용하는 것이 통치자가 베푸는 은혜다. 그렇게 국민의 이익이 되는 곳에 사용하는 세금은 낭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율곡이 임금에게 요구한 절약과 검소는 임금의 사사로운 생활과 관련된 부분이다. 좀 더 넓혀보면 궁궐내부(요즘은 청와대 내부)의 생활과 관련된다. 백성들이 먹고 사는 일, 백성들이 들에 나가 일을 하면서 필요한 경비까지 절약하고 검소하게 하라는 뜻은 아니다. 국민 경제를 풍요롭게 하는 일에 예산을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얼마가 되던 ‘낭비’가 아니며, ‘사치’가 아니다. 물론 거기에는 정확한 예측과 엄밀한 집행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