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너무 많이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세금을 너무 많이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22016년 12월 13일, 어떤 신문 사이트에 이런 뉴스가 올라왔다.

 

“세금 풍년 즐기는 정부…초과세수 8조원 훌쩍 넘을 듯”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장이 이어졌다.

“저소득층의 울음소리는 귀를 때리는데 나라 곳간은 ‘대풍년’이다. 정부 세수 목표치보다 최소한 8조원의 세금이 더 국고에 들어올 전망이다. 국책연구기관이 내년 성장률이 2% 초반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경고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면, 경기 완충을 위한 재정 여력은 넉넉한 셈이다.”(한겨레)

 

이렇게 초과된 세수는 국가채무의 상환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하는 비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 글을 쓴 기자는 세금을 더 내야하는 국민들의 어려운 입장을 지적하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재정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고 하였다.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이면 국가재정이 그만큼 더 튼튼해지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정해둔 세수 금액을 초과해서 거두어들이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확한 예상을 하지 못하고 섬세한 집행을 하지 못하였다는 비판도 받아야 할 것이다.

“‘세수풍년’”으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은 기사들이 넘친다.

 

“반갑지만 않군요 … ‘세수 풍년’의 그림자”(중앙일보, 2017.2.9)

“가계 살림 팍팍한데, 정부만 세수 풍년”(Chosunbiz, 2017.11.7)

“가계·기업은 배 곯는데…정부만 세수 풍년”(조선닷컴, 2017.11.6)

“‘세수풍년’? …결국 서민 주머니 털었다”(이데일리, 2017. 3. 11)

“‘불황속 세수풍년’ 원인은 ‘양극화 심화’”(경남신문, 2017. 8. 19)

 

참고로 2015년에는 세수가 예산액보다 3조원정도 부족하였다. 2014년에는 11조원이 부족하였다.(한국경제, 2018.8.19) 그러던 것이 2016년에는 20조원이 초과되었으며 2017년도 크게 초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건강보험료도 마찬가지로 “너무 많이 걷었다.”고 한다.

2016년 9월 11일에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 “건강보험 재정은 2011년 1조6천억원의 누적 수지로 재정 흑자로 돌아섰으며, 누적흑자는 2012년 4조6천억원, 2013년 8조2천억원, 2014년 12조8천억원, 2015년 16조9천억원 등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한다.(연합뉴스)

기사는 건강보험재정이 남아도는데도 보험료가 매년 올랐다며 당국을 이렇게 비판했다.

 

“수입 측면에서는 건강보험이 당해 연도 지출을 예상하고 수입계획을 세우는 ‘단기보험’이란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건강보험 당국이 해마다 필요 이상으로 보험료를 많이 거둬들였기 때문에 누적흑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렇게 국민들로부터 정부가, 혹은 관련 당국이 세금이나 비용을 과다하게 받아내는 것은 조선시대에도 자주 있었던 일이다. 율곡은 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지적하고 그가 쓴 ⌈만언봉사⌋에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그런 폐단을 없애자고 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개공안(改貢案), 이제(以除), 폭렴지해(暴斂之害)”

 

개공안(改貢案)’에서 공안(貢案)은 목적어, 개(改, 바꾸다)는 동사이다. 즉 ‘공안’을 바꾼다는 뜻이다. 공안이란, 백성들이 조정에 바치는 공물과 세금, 즉 ‘공부(貢賦)’의 제도를 기록한 책이다. 그 책을 개정한다는 뜻으로, 말하자면 세금 제도를 개혁하자는 뜻이다.

이제(以除)’에서 이(以)는 ‘무엇을 가지고’, 혹은 ‘그렇게 함으로써’라는 뜻이다. 즉 ‘세금 제도를 바꿔서’라는 뜻이다. ‘제(除)’는 제거하다, 없애다는 뜻으로 그 다음에 나오는 목적어 ‘폭렴지해(暴斂之害)’를 꾸며주는 동사이다. 즉 폭렴지해를 없애자는 말이다.

폭렴지해’는 폭렴(暴斂), 즉 사납게(暴) 걷는 일(斂)을 말한다. 조정이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매우 사납게 거두어들이는 해(害)가 ‘폭렴지해’의 뜻이다. 그러므로 위의 한문 문장을 전체적으로 해석해보면 “세금 제도를 개혁하여 조정이 세금을 사납게 거두어들이는 폐해를 없애자.”는 말이다.

그렇다면 율곡은 어떤 이유에서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걷는 일(暴斂)’이 나쁘다는 것인가? 그는 ⌈만언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 시대(先代)의 조정에서는 나라 살림에 필요한 경비를 많이 절약하여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이는 것이 매우 적었다. 그런데 연산군(燕山君)시대 중엽에 이르러 경비 지출에 사치가 심해서 일상적인 공물(供物, 나라에 바치는 지역 특산물)로는 그 수요를 충당하기에 부족했다. 그래서 공물을 더 많이 책정하여 욕심을 채웠다.”

 

연산군(1476∼1506)은 조선 제10대 임금(재위 1494∼1506)으로 성종의 뒤를 이어 임금에 올랐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와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켜 많은 선비들을 죽이고, 폭군으로 지탄을 받았다. 나중에 중종반정(中宗反正, 1506년)이 일어나 임금에서 폐위되었다. 그런 연산군 시대에 사치가 심해서 백성들로부터 공물을 추가로 걷어 들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율곡의 다음과 같은 지적을 보면, 당시 추가로 걷은 공물의 분량을 조정에서는 줄여주지 않고 그 뒤에도 계속 걷어 들였다.

 

“그런데 저번에 내가 승정원에 있으면서 호조(戶曹, 호구와 세금 징수를 담당하는 관청)에서 공안(貢案)을 가져다 보니, 여러 가지 공물이 모두 신유년(1501)에 추가로 책정한 것을 줄이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쓰고 있었다. 그때를 따져보니 바로 연산군 때였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공안을 덮고 크게 탄식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신유년이라면 지금부터 74년 전이다. 그 사이에 성군(聖君)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어진 선비가 조정에 없었던 것도 아닌데, 이런 법을 어째서 개혁하지 않았단 말인가?”

 

율곡의 생각으로 1501년에 정한 공안에 따라 공물을 너무 많이 받아들였으니 이후에 다시 그 양을 줄여야 했다. 그런데 그것을 고치지 않은 것이다. 요즘 생각으로는 다소 이상하다. 74년이나 경과했으면, 물가가 많이 올랐을 것이며, 백성들의 경제적인 능력도 향상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율곡에게는 물가상승이나 인플레이션 등의 관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생산되는 특산물은 수시로 변한다. 백성들의 재물과 전결(田結, 논밭에 매기는 세금)도 수시로 늘었다, 줄었다한다. 그런데 공물(貢物)을 처음에 책정한 것은 건국 초기의 일이었고, 연산군 때에는 거기에 더 늘려서 책정했다. 시대에 따라 적절하게 조사하고 헤아려서 상황에 맞게 변통(變通)해 온 것이 아니다. 지금 각 고을에서 바치는 공물은 대부분 그곳 산물이 아니다.”

 

공물을 낼 수 있는 백성들의 능력은 해마다 바뀌고, 지방의 특산물도 수십 년이 지나면서 바뀌었는데, 그동안 한 번도 공물의 분량을 조정하지 않고 특산물의 종류도 바꾸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백성들의 호구(戶口) 수도 점점 줄어들고 논밭과 들판도 점점 황폐해져 옛날에 백 명이 바치던 분량을 작년에는 열 명에게 책임 지워 바치게 하고, 작년에 열 명이 바치던 분량을 금년에는 한 사람에게 책임 지워 바치게 하고 있다. 그러한 행태는 그 한 사람까지 마저 없어진 뒤에야 그칠 것이다.”

 

율곡이 본 조선의 경제적인 상황은 날로 피폐하고 있었다. 백성들의 삶이 갈수록 풍요롭고 여유롭게 된 것이 아니라 궁핍으로 쪼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의 상태로 치닫고 있었다. 그래서 백성들이 부담하는 세금을 개혁하여 줄여나가자고 한 것이다.

그는 임금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지혜가 있어서 일을 잘 아는 신하, 계산능력이 있어서 계산을 잘 하는 신하, 그리고 재능이 있어서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신하를 뽑으시기 바랍니다. 그들로 하여금 세금제도 개혁의 일을 전담하게 하십시오. 조정의 대신들은 그들을 통솔하게 하시고, 연산군 때에 과다하게 책정한 공물은 모두 없애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 시대 임금들의 옛 법을 회복하십시오.”

 

나아가 그는 임금에게 각 고을에 특산물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도록 건의했다. 그리고 논밭에 매기는 세금(田結)이 많은지 적은지를 조사하고, 백성들의 가구 수 증감을 조사한 뒤에 그 추이를 산정하여 일체를 고르고 공평하게, 그리고 적정하게 세금을 부과하도록 건의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당부했다.

 

“반드시 원래 정해진 공물이나 세금을 각 관청에 납부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방납(防納)은 금하지 않아도 자연히 없어지고 민생은 극심한 고통으로부터 풀려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급선무는 이보다 더 큰일은 없습니다.”

 

조선시대에 악명 높은 방납의 폐해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해소 방안을 제시하였다. 방납이란 지방에서 백성들이 납부할 공물을 관리들이 먼저 대신 납부하고 백성들에게 그 대가를 받는 일이다. 그런데 그들이 받는 대가가 터무니없이 많아 백성들이 고통에 처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율곡은 1569년에 올린 ⌈동호문답(東湖問答)⌋에서 ‘공물방납(貢物防納)’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그런 풍습이 원래는 없었다고 이렇게 언급하였다.

 

“역대 임금들은 나라에 바치는 특산물을 남이 대신 내는 제도를 아주 엄하게 금지했다. 나라에 바치는 모든 특산물은 오직 백성이 직접 관청에 납부하게 하였다. 모든 관청의 관리들도 임금의 뜻을 받들어 아전들에게 기만을 당하지 않아 농간질이나 실상을 모르는 폐단이 없었다. 백성들은 나라에 바치는 특산물 때문에 시달리지 않았던 것이다.”( ⌈동호문답⌋)

 

그런데 어느 틈엔가 ‘방납’이 횡행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악폐가 생기게 되었는지 율곡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세상의 도리가 점점 땅에 떨어지고 폐단이 날로 늘어나 교활한 관노비나 약아빠진 아전들이 활개를 치게 되었다. 그들은 온갖 물건을 사사로이 준비해 두고 관청을 우롱하고 백성을 가로막아, 백성들이 좋은 물건을 가지고 와도 끝까지 물리쳐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자기들이 사사로이 준비해둔 물건을 대신 납부하게 하였다. 그 뒤에 백성들에게 백배의 값을 요구하였다. 그런데도 나라의 법이 무너지고 해이해져 그것을 오랫동안 금지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나라에서 쓸 수 있는 비용은 조금도 늘어나지 못하고 민간에는 살림이 텅 비게 되었다.”( ⌈동호문답⌋)

 

이런 폐단을 없애려고 조정에서 나중에 방납을 중지시키고 백성들이 공물을 직접 내도록 하였다. 그런데 백성들이 필요한 특산물은 이미 시장에 없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다시 비싼 돈을 마련해서 이전에 공물을 방납하던 사람들에게 다시 찾아가 가격의 몇 배를 더 주고 필요한 물건을 살 수밖에 없었다. 공물방납은 금지되었으나 그 폐단은 오히려 심해진 것이다.

율곡은 그 폐단을 시정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내가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공물(貢物)을 내는 법을 보니, 논 1결(結)마다 쌀 한 말을 거두는데, 관청에서 스스로 비축해두었던 물건을 서울에 바친다. 백성들은 쌀을 내는 것만 알고 농간하는 폐단은 전혀 모른다. 이것이 오늘날 백성을 구제하는 훌륭한 방법이다. 만약 이 법을 전국에 반포하면 공물 방납의 폐단이 머지않아 저절로 고쳐질 것이다.”

( ⌈동호문답⌋)

 

“대신과 해당 관청이 8도의 지도와 장부를 모두 가져다가 인구와 논밭의 많고 적음, 생산물이 풍부하거나 부족함을 검토하게 한다. 그런 뒤 공물을 다시 부과해서 그 부담을 균등하게 해준다. 나아가 공물 중에서도 나라의 비용에 절실하지 않은 것은 적당하게 수량을 삭감하여 8도의 고을에서 마련하는 바를 모두 해주처럼 1결에 한 말로 만든 뒤에 그 법령을 반포한다면 어찌 실행하지 못할 일이 있겠는가?”

(동호문답)

 

공물을 미곡으로 대신 납부하게 하여 방납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 율곡의 이런 제안은 대동법의 효시로 대공수미법(貸貢收米法)이라 한다. 당시는 당장 실행되지 못했지만, 나중에 임진왜란 이후에 특산물 대신 쌀로 통일해 납부하는 대동법(大同法)이 실시되어 그의 아이디어는 빛을 보게 되었다.

오늘날은 조선시대에 난무하였던 방납의 폐해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세금과 관련하여 국민들을 편하게 하는 방안은 여전히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내는 세금을 최대한 적절하게 잘 조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런 일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정치하는 사람들과 공무원들은 알아야 한다. 국가에서 필요한 비용을 최대한 잘 예상하고 운영하여 국민들의 불필요한 부담을 줄여야 한다. 넉넉하게 받아서 창고에 쌓아두는 것만 좋은 정치가는 아니다. 국가를 진정으로 부강하게 만드는 길은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여유롭고, 건강하며, 행복하게 되도록 국가가 도와야 한다. 세금을 무조건 많이 징수한다고 해서 국가가 부강하게 되지는 않는다. 율곡이 염두에 둔 것은 바로 이런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