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동과 임옥균의 저술 비교2 – 저작 의도와 주장

#6. 황의동과 임옥균의 저술 비교2 – 저작 의도와 주장

2.4 저자는 왜 이 책을 썼는가?

황의동은 『율곡 이이』의 살림출판사의 ‘e시대의 절대사상’이라는 고전 시리즈의 한 권으로 기획되었다. 출판사의 소개(「e시대의 절대사상을 펴내며」)에 따르면 ‘고전을 잃어야 하지만 읽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면, 고전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응당 고민해야하지 않을까요? …… 고전에 대한 지나친 경외심을 버리고, ……지금 이 시대에 맞는 현대적 감각의 고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이 시리즈는 ‘고전에 담긴 지혜를 재미있게 습득할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했고, 난해한 전문 용어나 개념어들을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했다고 하였다. 따라서 저자 황의동은 이 책은 이러한 기획안에 충실하게 내용을 구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이 동일한 주제로 집필하였지만 매우 학술적인 임옥균의 『이이』와는 다르다. 황의동의 책은 내용구성이 읽기 쉽고 설득력 있게 짜여 있다. 왜 우리가 율곡을 읽어야 하는지(1장 중 ‘율곡의 매력’), 율곡의 위상은 어떤 것인지(4장), 율곡 철학의 현대적인 의미는 무엇인지(5장)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배경이 바로 고전을 친근하게 소개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고전 자체를 쉽게 읽는 것이기 때문에 저자는 120쪽에 가까운 분량(이 책의 거의 반 정도)을 할애하여 다양한 율곡의 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였다. 임옥균의 『이이』는 율곡의 저술(『동호문답』) 소개가 80쪽 정도로 책 전체의 1/3에 못 미친다.
11쪽에서 저자 황의동은 우리가 율곡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율곡이 1) 세계에 자랑할 만한 철학자이며, 2) 학문적으로 탁월하고, 3) 송대 성리학에 기반을 두었지만 모방만 하지는 않았으며, 4) 이기지묘(理氣之妙), 기발이승(氣發理乘), 이통기국(理通氣局) 등 독창적인 화두를 제시하였고, 5) 이성과 감성이 어우러진 전인적 인간을 추구하였으며, 그의 철학에는 6) 민생과 나라를 근심 걱정하는 우환의식이 녹아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어서 저자는 제1장 ‘율곡과의 만남’에서 자신이 율곡과 만나게 된 계기, 율곡의 매력, 그리고 율곡학의 두 줄기 즉 성리학과 실학에 대해서 소개하였다. 저자의 서문과도 같은 이 글에서 그는 ‘(율곡의) 학문을 대중에게 쉽게 알리고 서양학문과 접목해서 세계적인 학문으로 키워야 한다’(16쪽)고 주장하고 율곡 철학의 매력은 ‘조화와 회통(會通)의 철학’이라는 점이며 율곡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 속에서 그의 철학을 시작하며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서 신성과 물성이 하나로 조화되고, 정신과 물질이 하나로 소통하는 세계를 펼친다고 지적하였다.(18쪽) 그는 또 율곡을 ‘지칠 줄 모르는 개혁 정신’을 가지고 ‘뜨거운 애국심과 투철한 우환의식을 지닌 참된 지성인, 독창적인 성리철학의 체계를 지닌 동시에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실학을 겸비한 진정한 유학자’(19쪽)라고 정의하였다. 율곡에 대한 이러한 존경심이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임옥균의 『이이』는 부제목이 ‘정치적 실천철학의 완성’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이기동교수는 이색 이후 한국 성리학의 세 흐름을 수양철학, 정치적 실천철학, 초탈 원융철학으로 나누고, 그 대표자로 각각 이황, 이이, 조식을 들었다’고 언급하고 자신도 그 견해를 받아들여, 책의 부제를 그렇게 정했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도 ‘율곡 사상 전반을 다루지만, 그 가운데서도 율곡의 정치사상과 실천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고자 한다고 하였다.(머리말)
저자가 제2부에서 율곡의 사상을 소개하면서 정치론(제4장)과 군주론(제5장), 그리고 국방론(제6장)을 하나의 장으로 나누어 상세하게 집필한 것을 이러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저자가 『율곡전서』 중에서 『동호문답』을 선택하여 번역, 소개한 것은 이 문헌이 율곡의 정치적 실천철학의 완성을 잘 드러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황의동의 『율곡 이이』는 부제목이 ‘성리학과 실학을 겸비한 실천적 지성’이다. 임옥균이 제목에 표현한 ‘정치적’이라는 말은 황의동의 『율곡 이이』의 부제목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성리학’, ‘실학’이라는 단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황의동의 저술은 율곡의 정치사상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온다. 제1부 2장의 ‘나라와 백성을 위한 말과 글’, ‘십만 양병과 우환의식’, 5장의 ‘개혁정신’ 정도이다. 율곡의 저작 소개도 2장의 『만언봉사』와 『육조계』 뿐이며 대부분은 학문과 교육, 그리고 율곡의 삶을 표현한 시문정도이다. 전체적으로는 철학, 특히 성리학 이론소개에 치중한 느낌을 준다.

2.5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황의동의 『율곡 이이』와 임옥균의 『이이』는 기본적으로 율곡학 입문서 성격의 단행본이다. 따라서 두 책 모두, 고전으로서의 율곡의 작품을 소개하고 율곡에 대한 생애와 사상을 일반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전하는데 주목적이 있다.
하지만 황의동의 저술은 저자가 율곡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또 다년간에 걸쳐 여러 가지 연구 성과를 학계에 발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의 곳곳에 저자만의 독특한 주장이 적지 않게 보인다.
임옥균의 경우는 율곡을 전공으로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중국 철학을 전공하고 일본의 유학사상에도 조예가 깊은 학자로서 원전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율곡사상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해설을 시도하였다. 다만 율곡의 사상에 대해서 저자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지는 않고 문헌의 해석에 충실한 입장을 보여준다. 자기주장이 많은 황의동의 저술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대신, 임옥균의 책에는 율곡의 모든 사상 개념에 대한 원전 소개와 설명, 분석이 소상하게 제공되었다. 황의동의 책에서는 율곡 사상에 대한 설명은 원전 소개가 대부분 생략되어 있다. 그러므로 두 책을 함께 보완해가면서 살펴보면 율곡 사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황의동의 『율곡 이이』가 주장하는 바를 정리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율곡학은 크게 두 줄기로 나뉘는데, 하나는 성리학이고, 다른 하나는 경세학, 즉 실학이다. 달리 말하자면 율곡학은 성리학을 체(體, 몸체)로 하고 경세학을 용(用, 용도)로 한 수기치인(修己治人, 자신을 수양하고 남을 다스림)의 학문이며, 내성외왕(內聖外王, 안으로는 성인을 밖으로는 임금의 덕을 갖춤)의 학문이다. 성리학과 실학이 모순되지 않고 하나로 묘융(妙融)되는 것이 그 특징이다. 특히 율곡의 경세학은 조선 후기에 실학의 모태가 되었고 정치·경제·사회·법·행정·언론·교육·군사·윤리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21-22쪽)

2) 율곡의 저술은 매우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율곡학에 대한 연구 성과가 철학뿐 아니라 문학·역사·교육·정치·행정·법·언론·군사 각 분야에서 박사학위 논문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도 입증된다. 이 점이 율곡학의 특징이고 장점이다.(59쪽)

3) 퇴계는 순수한 유학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매우 강해서 불교나 도가는 물론, 같은 유학가운데서도 양명학이나 화담 서경덕의 기학(氣學) 조차도 용남하지 않았다. 그러나 율곡은 조선시대 유교사회의 경직된 풍토에서도 활짝 열린 마음으로 학문을 했다.(60쪽)

4) 율곡의 넉넉하고 개방적인 학풍은 훈날 기호학파가 성리학·예학·실학·양명학·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의리학 등으로 다채롭게 전개되는 데 크게 이여한다. 이는 영남의 퇴계학파가 주자학 일색으로 단조로운 것과는 구별되는 점이다.(64쪽)

5) 율곡의 철학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이기지묘(理氣之妙), 기발이승(氣發理乘), 이통기국(理通氣局)이 있다. 이 세 가지 개념은 상호 소통되고 연결되어 율곡철학을 이룬다.(70쪽)

6) ‘이기지묘’란 리와 기가 오묘하게 합해 있다는 말로, 이기묘합(理氣妙合)과 같은 말이다. 율곡이 처음 사용한 말은 아니지만, 그는 이것을 자신의 철학 핵심으로 삼고, 철학 체계로 삼은 이는 율곡이다. 율곡은 이 세계의 만사만물은 모두 리와 기가 오묘하게 합해 있다고 보았다.(70-71쪽)

7) 율곡이 말하는 ‘기발이승’이란 ‘발(發, 작용)하는 기 위에 리가 올라타 있는 존재 자체’의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이 말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그것이 자연이든 인간이든 관계없이 실현·실천하는 주체는 기이고, 리는 그 실현과 실천의 방향이고 원칙이며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율곡의 생각은 퇴계를 비롯한 주리론 철학자들이 강조한 리의 중요성, 리의 절대성에 대한 하나의 반성적 의미를 갖는다.(78쪽)

8) 이통기국은 리의 보편성과 기의 국한성을 하나로 표현한 것인데, 이는 리와 기가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기지묘의 또 다른 표현이 이통기국인 셈이다. 율곡은 이통기국을 설명하면서 이는 자신의 독창이라고 자부심을 강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이는 아마도 ‘이통기국’이라는 말 자체가 갖는 독창성에서 연유하는 말이기도 하고, 이 속에 담긴 깊은 철학적 의미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83쪽)

9) 조선시대 유학, 특히 16세기에는 사상적으로 두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주리론(主理論)이며, 다른 하나는 주기론(主氣論)이다. 주리론은 이언적과 이황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주기론은 화담 서경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이후에 녹문 임성주, 혜강 최한기 등으로 이어졌다.(96-98쪽)

10) 주리론은 윤리적 입장에서 리를 가치의 표준으로 삼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러한 학풍은 당시 사회시대의 산물이기도 하였는데, 연산군 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고 4대 사화로 가치관의 전도현상이 심각한 현실에서 국가기강과 윤리와 강상을 세워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공명정대한 사회기풍을 진작하고 유교 본래의 도덕사회를 구현한다는 염원이 배경이었다. 이러한 주리론은 부작용으로 윤리·도덕에 매몰되어 민생을 도외시하고 부국강병을 소홀히 하였으며, 또한 대의명분에 집착해 실리를 망각하고, 도덕적 이상세계에 치우쳐 현실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하였다. 한편 주기론은 우주자연에 관심을 가지고 자연의 형이상학적 탐구와 함께 드러난 자연변화의 이치를 탐구하는데 관심을 두었다.(96-98쪽)

11) 율곡은 주리론과 주기론을 종합하고 조화하는 곳에 있다. 율곡의 입장은 주리도 아니고 주기도 아니다. 율곡의 입장에서는 리도 중요하지만 기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율곡은 주리론과 주기론을 하나로 종합하고 조화하는 이기지묘의 철학을 열었다. 그의 학문도 이기지묘의 학이라 부를 수 있다. 그는 이학(理學)으로 성리학을 세웠고, 기학(氣學)으로서 경세적 실학을 열었다.(99쪽)

12) 율곡은 성리학과 실학의 중간지대를 점유한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성리학 시대와 실학 시대의 교량 역할을 자임했다. 율곡의 경우 성리학을 말하더라도 실학을 포함하고, 실학을 말하더라도 성리학을 내포한다. 진정한 유학이란 성리학적 기반 위에 실학으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103쪽)

황의동은 이러한 주장 외에도 별도의 장(5장)을 세워서 율곡철학이 21세기에 갖는 의미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하였다. 그는 모두 세 가지 점에서 그 의미를 살폈는데 1)조화정신, 2)개혁정신, 3)실학정신이다.
각각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율곡의 조화정신을 배워야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가치나 주장들이 온전한 전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진보와 보수를 함께 말해야 온전한 것이고, 이상과 현실을 함께 말해야 온전한 것이고, 이상과 현실을 함께 말해야 온전한 것이다. 이 양자 가운데 어느 하나는 반쪽일 뿐이다. 그리고 이 반쪽은 다른 반쪽으로 보완되고 온전해질 수 있다. 율곡의 이기지묘 철학은 이러한 상보성의 정신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115쪽)

2) 율곡의 개혁정신을 배워야한다. 유학자라고 해서 모두 기성질서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수구 골통도 아니다. 율곡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시대의 변화를 읽고 준비한 선각자다. 그는 변하는 현실을 냉철히 분석하고 대안을 준비했다. 율곡은 개혁의 목적을 집권자의 이해가 아닌 오직 백성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백성의 이익, 백성의 편리, 백성의 행복이 개혁의 목적인 것이다.(117-119쪽)

3) 율곡의 실학정신을 배워야한다. 율곡의 말과 글을 보면 유달리 ‘실(實)’자가 많이 등장한다. 그의 머릿속엔 실학정신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율곡은 주자의 해석에 근거해, 성(誠)은 하늘에는 실리(實理)요, 인간의 마음에서는 실심(實心)이라 규정했다. 우주자연의 진실한 이치, 즉 실리가 인간의 마음속에 녹아들어 진실한 마음, 즉 실심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율곡은 인간 주체의 진실한 마음을 지니고 매사에 임할 때 그 일의 결과가 진실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았다. 이때 진실한 노력을 실공(實功)이라 하고, 그 진실한 효과를 실효(實效)라고 했다. 율곡은 실심으로 실공을 통해 실효를 거두어야 한다고 보았다. 율곡의 실학정신, 무실(務實)정신은 윤리와 경제, 경제와 윤리의 상보성을 기초로 양자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121-125쪽)

한편 임옥균은 그의 저술 『이이』에서 어떠한 주장을 하였을까? 율곡의 사상을 정리, 소개한 제2부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이치(理)와 기운(氣) : 저자는 성리학의 ‘리(理)’와 ‘기(氣)’를 우리말의 ‘이치’와 ‘기운’으로 번역하여 사용하였다.(사실 저자뿐만 아니라, 많은 학자들이 이기론을 논할 때 한글 표기가 필요할 경우 이렇게 표기하기도 한다.) 저자는 제2부 사상 중 제1장의 제목을 ‘이치와 기운에 관한 논의’라고 하였는데 ‘이기론’을 그렇게 풀이하여 쓴 것이다. ‘리’는 ‘이치’라는 우리말로 바꿔도 그 뜻이 크게 변함이 없으나 ‘기운’은 다소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말에서 ‘기운’이라는 말은 1) 생물이 살아 움직이는 힘, 2)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분위기 따위로 알 수 있는 느낌, 3) 만물이 나고 자라는 힘의 근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중에 3번 항목이 중국어(한문) ‘기(氣)’와 유사하나 이기론의 ‘기’는 그것보다 뜻이 더 넓다.
한문의 ‘기(氣)’자는 기운, 공기, 대기, 숨, 혹은 숨 쉴 때 나오는 기운을 뜻한다. 이 외에도 활동하는 힘, 혹은 뻗어가는 기운, 하늘에 나타나는 조짐, 오관(五官)에 닿되 형체가 없는 현상,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현상, 그리고 막연한 전체적인 느낌이나 분위기 등을 말한다. 이외에도 사전을 보면 ‘동양철학에서,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이 되는 기운’ 즉 ‘원기(元氣)’를 뜻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이기론에서 말하는 ‘기’의 일부만을 뜻하는 것이지 그 모든 것을 포괄하지는 않는다. 이기론의 ‘기(氣)’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모든 것이 포함되는 물질적인 것을 의미한다. 저자 임옥균이 말하는 ‘기운(氣)’은 그러한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2)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율곡은 이치와 기운이 실제로 떨어질 수 없다고 본다. 여기서 ‘실제로’라는 말은 존재론적으로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을 율곡은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 리기가 서로 떨어지지 않음)’라고 표현한다.……이치와 기운은 떨어질 수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섞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율곡은 그것을 이기불상잡(理氣不相雜, 리기가 서로 섞어지 않음)이라 표현하는데, 이것은 가치론적인 언명이다.”(114쪽)

3) 저자에 따르면, “율곡은 이치와 기운의 관계에 대해서 존재론과 가치론을 다 포함해서 말해야 성리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치와 기운이 서로 섞이지 않는다고 하나만 말해도 안 되고,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나만 말해도 안 된다. 이치와 기운이 서로 떨어지지도 않으며 섞이지도 않는다고 한꺼번에 말해야 이치와 기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율곡이 말하는 ‘이치와 기운의 오묘함’이라고 할 수 있다.”(115쪽) 여기서 ‘이치와 기운의 오묘함’이란 ‘이기지묘(理氣之妙)’을 말한다.

4) 저자는 율곡의 ‘이통기국(理通氣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율곡은 이치는 하나이지만 나누어져서 다르게 되는 것은 이치가 기운을 타서 그 탄 기운의 다름 때문에 이치도 다르게 된다’(121쪽)고 본다. 이통기국은 이것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통기국이란, ‘이치는 형이상학적 존재이므로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고 통하지만, 기운은 물질, 혹은 물질을 이루기 전의 에너지이므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아 국한된다는 것이다.’(121쪽)

5) 저자는 율곡의 수양론에 대해서 이렇게 지적했다. “유학에서 수양은 자신의 수양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자신의 주위로 그것을 확장시켜가야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연결시켜 (율곡이) 설명한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특별히 율곡은 임금의 수양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수신과 치국을 연결해주는 매개 고리로서 왕조시대에 임금보다 더 중요한 인물은 없었기 때문이다.”(133쪽)

6) 저자는 율곡이 선조 임금을 설득하는 방법 중 한 가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율곡은 선조에게 글을 올릴 때에 임금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동중서 이래의 천인감응론(天人感應論)을 자주 언급했다. 사람의 일에 따라 하늘이 좋은 일을 내리기도 하고 나쁜 일을 내리기도 한다는 것으로서, 특히 임금은 백성을 대표하고 백성의 안위를 한 몸에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덕을 닦아 재이(災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175-1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