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일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일

 

‘백성(百姓, 즉 民)’이라는 말과 ‘국민(國民)’이라는 말은 비슷하지만 매우 다르다. ‘백성’은 전통시대에 사용된 말이며, ‘국민’은 근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말이다. ‘나라의 백성’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이 ‘국민’은 근대적인 국가를 전제로 형성된 단어이다. 국가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우리나라는 헌법에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굳이 해석하자면 ‘국민이 주인이며(民主), 주권(主權)이 대통령 한 사람의 의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합의에 따라 행사되는 국가(共和國)’이다. 그러므로 ‘국민’은 스스로 통치한다고 하는 의미가 강하다.

‘백성’은 그와 달리 피통치자의 의미가 강한 단어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에 백성들은 나라의 근본이 되는 존재로 매우 중시되었다. 당시 유학자들이 즐겨 읽었던 ⌈맹자⌋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민위귀(民爲貴), 사직차지(社稷次之), 군위경(君爲輕)”

 

민위귀(民爲貴)’, 즉 백성(民)은 귀하다.(爲貴) ‘사직(社稷)’은 토지 신을 뜻하는 ‘사(社)’와 곡식의 신을 뜻하는 ‘직(稷)’이 합쳐진 단어로 그 신들을 모시는 장소를 뜻하는데, ‘국가’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백성의 다음(次之)’이라는 것이다. 백성은 국가보다 더 귀하다는 뜻이다. 이 말을 한 뒤에 마지막으로 맹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군위경(君爲輕)’이다. 즉 군주(君主)는 가볍다(爲經).

⌈맹자⌋라는 책은 조선의 임금들도 통치의 교과서로 읽었던 경전이었다. 그런 ⌈맹자⌋에 군주보다 귀한 것은 국가요, 국가보다 귀한 것은 백성들이라고 선언되어 있는 것이다. 유교가 조선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는 평가도 있으나 유교사상 안에는 요즘 민주사회에서도 깜짝 놀랄 만한 좋은 사상들이 적지 않다.

‘안민(安民)’, 즉 ‘백성을 편하게 한다.’

라는 단어의 사상도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율곡 이이(李珥, 1537∼1584)는 1574년, 선조 7년 1월에 ⌈만언봉사(萬言封事)⌋라는 상소문을 임금에게 올렸다. ⌈만언소(萬言疏)⌋라고도 불린 이 상소문은 ‘만언(萬言)’, 즉 한자 1만자로 이루어진 문장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으나 실지로는 12,000자가 넘는다.

당시 율곡은 우부승지(右副承旨)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는 승정원(承政院)에는 도승지(都承旨), 좌승지(左承旨), 우승지(右承旨)가 있고 그 밑에 좌부승지, 우부승지 등의 관리들이 있었다.

승정원의 관리들은 국왕이 내리는 교서(敎書)나 신하들이 올리는 상소문 등 모든 문서를 관장하였다. 그들은 임금의 자문 역할을 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임금과 각급 관청, 혹은 임금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간 매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임금이 유교 경전과 역사 서적을 읽는 경연(經筵)의 자리에 참석하여 국정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으며, 왕명을 직접 받아 시행하고 또 임금을 수행하는 일도 하였다. 요즘으로 말하면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당시 38세였던 율곡은 최고 권력기관에 속한 고급 공무원이었던 셈이다. 그런 위치에 있던 그가 ⌈만언봉사⌋를 임금에게 올린 것은 그 직책 때문은 아니었다. 임금이 모든 공무원들과 초야의 지식인들에게 교지를 내려 국가를 위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달라는 부탁을 했기 때문이다.

임금인 선조는 교지에서 “국가가 장차 흥성(興盛)하려고 할 때는 하늘이 상서로운 일을 일으켜 깨우치고, 국가가 장차 망하려고 할 때는 요사스러운 징조를 만들어 경고한다.”고 하였다. 당시 나라 안에 요사스러운 징조들이 많이 나타났던 것이다.

교지는 또 “(요즘) 여러 변괴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요성(妖星, 요사스럽고 불길한 별)은 한해가 다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고, 태백성(太白星, 금성)은 대낮에도 나타나 거리낌 없이 반짝이며, 때 아니게 우레가 발생하고 지진(地震)이 일어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것들은 임금인 내가 덕을 닦는 일에 힘쓰지 않은 탓이니, 어찌 부끄러운 마음이 없겠는가?”라고 하였다.

태백성, 즉 금성은 샛별이라고도 불리는 별로 밤하늘에서 달 다음으로 밝은 별이다. 흔히 새벽하늘에 동쪽에서 밝게 빛나거나 해질녘에 나타나기도 하는데, 선조 때에는 대낮에도 나타나 반짝였다고 한다. 요즘은 지진이 발생하거나 재해가 발생하고 흉년이 들어도 대통령의 책임으로 몰고 가지는 않지만 당시는 국가에 이상한 징조가 발생하면 임금이 정치를 잘못한 탓으로 여겼다. 그래서 선조는 다음과 같이 간곡하게 의견제시를 부탁했다.

 

“여러 신하들의 의견을 구하는 뜻을 여러 번 내렸으나 소장(疏章)을 올렸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이것은 나의 말에 거짓이 있고 좋은 의견을 구하고자 데 성의가 부족하여, 신하들에게 머뭇거리고 두려워하며 의심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직접 문장을 지어 목마르게 의견을 듣고자하니, 위로는 조정 대신들로부터 아래로는 초야의 선비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다하여 극언(極言)이라도 숨기지 말라.”

 

율곡의 ⌈만언봉사⌋는 이렇게 하여 제출된 것이다. ‘만언봉사’의 ‘봉사(封事)’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옛날 중국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글을 써서 의견을 제시할 때는 그 글을 검은 천 주머니 속에 넣어 밀봉(密封)한 뒤에 올렸다고 한다. 글의 내용이 밖으로 누설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언 봉사’란 밀봉하여 임금에게 올린 1만자의 상소문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만언봉사⌋에서 율곡은 이렇게 말했다.

 

“안민위강자(安民爲綱者), 기목유오(其目有五).”

 

안민(安民)’은 ‘안(安, 편하다)’이 동사, ‘민(民, 백성)’이 목적어로, ‘백성을 편하게 한다.’는 뜻이다. 민(民)이라는 글자는 인(人)자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인(人)자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민(民)자는 군주(君主), 즉 임금을 뺀 나머지 사람들을 말한다. 혹은 임금과 그 신하, 즉 관리들을 뺀 나머지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 말하자면 피통치자들이다. 그러므로 ‘백성’이란 ‘사람’이라는 단어와는 달리 통치자를 전제로 한 말이다.

위강자(爲綱者)’에서 ‘강(綱)’이란 ‘벼리’, 즉 기본 원칙, 강령(綱領), 규범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이다. 벼리란 원래 그물 위쪽을 꿰어놓은 줄로 그물을 오므렸다 폈다 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위강자(爲綱者)’는 ‘강령이 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기목유오(其目有五)’란, 그 항목(其目)이 ‘다섯 가지가 있다(有五)’는 말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소개한 ‘안민위강자(安民爲綱者), 기목유오(其目有五)’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강령에 다섯 가지가 있다는 뜻이다. 요즘 식으로 바꿔 말하면 국민을 편하게 하는 강령에 다섯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국민들이 부유하게 잘 사는 것일까?

금년 10월 추석 때 ‘건국 이래 최장 10일 연휴’가 있었다. 당시 대통령은 ‘국민들께서 모처럼 휴식과 위안의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하면서, 그런 장기간의 연휴가 내수 진작과 경제 활성화를 촉진하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잘 준비해달라고 내각에 당부했다. 그런 조치에 어떤 지식인은 이렇게 반박했다.

 

“편히 쉬면서 여행하고 소비하게 만들려면 무엇보다 주변 환경이 안전하고 평화로워야 한다. 지금처럼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및 핵실험 도발과 이에 대응하는 선제 타격설 등으로 한반도가 전쟁 공포에 휘말린 상황이 이어질 경우 어디 마음 편히 관광하며 지갑을 열 수 있겠는가. 정부와 정치권이 지혜를 모아 국민의 불안감을 덜어주고 안심시켜야 마땅하다.”

(양재찬,<The SCOOP>, 2017.9.11)

 

전쟁 공포로부터의 불안감 해소를 제안한 내용이다. 그 외에도 국민을 편하게 하는 일이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전기의 유학자이자 고위관료였던 율곡은 ⌈만언봉사(萬言封事)⌋에서 선조에게 핵심적인 여러 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다음에서 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