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율곡은 백성을 편하게 하는 다섯 가지 방법 중에 맨 첫 번째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시했다.

 

“개성심(開誠心)”

 

개성심(開誠心)’에서 ‘개(開)’는 ‘열다’는 뜻으로 동사의 역할을 한다. ‘성심(誠心)’이란 ‘정성스러운 마음’을 뜻하는데, 목적어이다. 즉 ‘성심(誠心)을 열어라.’는 뜻이다. 마음을 열어야 하는데 그 마음이 ‘정성스러운 마음’이어야 한다.

우리말로 대화할 때 사람들은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해라.’고 한다. 이러한 말은 한문으로 표시하면 ‘진성심(盡誠心)’이다. ‘진(盡)’은 ‘다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율곡은 왜 ‘정성을 다하라(盡誠心)’라고 하지 않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열어라(開誠心)’고 하였을까?

‘나’ 자신이 회사에서, 혹은 직장이나 어떤 조직에서 윗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나’에게는 아랫사람, 즉 부하들이 있다. 한 가족 안에서 가장이나 어른의 위치에 있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내가 어떠한 마음을 가지면 아랫사람들의 마음이 편할 것인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자.

 

1) 정성을 다한다.

2) 마음을 열고 대한다.

 

1)의 방법은 정성스럽게 아랫사람을 대하고 조직이나 가족, 혹은 회사를 위해서 정성을 다하여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는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한계가 있다. 조직을 위하고 가족을 위해서는 훌륭하지만, 아랫사람들과 좀 더 친밀하고 인간적으로 다가서기에는 다소 미흡한 점이 있다. 일을 잘하고, 능력 있는 상사가 꼭 100%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설사 그가 인간적으로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아랫사람들에게는 거리감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율곡은 이러한 뜻을 표현의미하는 ‘진성심(盡誠心)’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2)의 방법이 율곡이 선택한 것이다. 이것이 ‘개성심(開誠心)’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할 때는 마음을 열고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성심(誠心)’의 ‘성(誠)’자는 ‘정성(精誠)’이라기보다는 ‘마음을 참되게 가지다.’라는 뜻에 가깝다. 그러므로 성심(誠心)은 (그러므로) ‘참된 마음’ 혹은 ‘진실된 마음’이다.

윗사람이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아랫사람들이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율곡은 선조 임금에게 이러한 마음을 요구하였다.

 

율곡은 ‘개성심(開誠心)’ 뒤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이어서 썼다.

 

“이득, 군하지정(以得, 羣下之情)”

 

(以)’란 ‘그것으로’라는 뜻이다. 이(以) 다음에 얻을 득(得)자가 있는데 ‘이득(以得)’이란 그것으로 얻는다,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란 진실된 마음을 윗사람이 열어 보여준다면, ‘이득(以得)’ 다음에 나오는 목적어, 즉 ‘군하지정(羣下之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군하(羣下)’는 ‘군하(群下)’와 같은 말로 아래의 많은 사람들, 즉 많은 아랫사람들을 뜻한다. 그 다음에 나오는 ‘지(之)’는 ‘의’이며 ‘정(情)’이란 마음이다. 함께 해석하면 ‘많은 아랫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정(情)과 마음(心)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마음(心)은 정(情)보다 더 넓은 뜻이다. 일반적인 ‘마음’이다. 이에 반하여 정(情)이란, 심방변(忄)에 푸를 청(靑)을 써서 마음속에 새싹처럼 파릇파릇하게 자라나는 어떤 것을 표현했다. 그것은 어떤 것에 느껴서 일어나는 마음이다. 예를 들면 오랫동안 지내면서 생겨나는 애정, 즉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이다. ‘미운 정, 고운 정’이라고 말할 때의 그 정(情)이다.

그러므로 군하지정(羣下之情)이란, 아랫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감정을 뜻하며, 그것은 윗사람이 마음을 활짝 열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대해줌으로써 생겨나는 감정을 말한다. 그것은 존경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충성스러운 마음(忠情)일 수도 있다.

율곡은 ⌈만언봉사⌋에서 특별히 그러한 방법에 대해서 보충 설명을 하였는데, 그 중에 중요한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전하무, 이지성, 대하(殿下務, 以至誠, 待下)”

 

“전하(殿下, 임금)께서는 힘껏(務, 힘쓸 무), 지극한 정성으로(以至誠) ‘대하(待下)’ 즉 아랫사람들(下)을 대(待)하도록 하십시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지극한 정성(至誠)’이란 지극히 참다운 마음, 혹은 참으로 진실된 마음을 뜻한다.

 

“심시즉(心是則), 언역칭시(言亦稱是) 심비즉(心非則), 언역척비(言亦斥非).”

 

‘마음이 옳다(心是)’면, 즉(則) ‘말도 역시(言亦)’, ‘옳다고 칭찬(稱是)’하십시오. ‘마음이 아니라면(心非)’면, 즉(則) ‘말도 역시(言亦)’, ‘아니라고 배척(排斥)’하십시오. 율곡이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임금이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신하들에게 보여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옳다고 느끼면서도 말은 아니라고 한다거나 마음속으로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말로는 옳다고 하는 것은 진실된 마음(誠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이어서 율곡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신하에게 벼슬을 주어 나오게 했으면 반드시 그 현명함을 들어 상을 주시고, 만약에 그를 물러나게 했으면 반드시 그 과오를 잘 평가하여 책임을 물으십시오. 모쪼록 전하의 마음을 대문처럼 활짝 열어 놓으시어, 신하들로 하여금 모두 우러러볼 수 있게 하시고, 거기에 조그만 거리나 장애도 없게 하십시오.

(進之則, 必賞其賢. 退之則, 必數其過. 聖心如門洞開, 使羣下咸得仰見, 無少隔礙.)”

 

임금의 마음을 신하들이 거울 들여다보듯이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금이 어느 날 어떤 신하를 중용하여 일을 시켰으면 그에 합당한 상을 내리고, 만약에 누구를 물러가게 하였다면 거기에 합당한 평가가 뒤따라야 된다는 것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리고 아무런 내색도 없이 갑자기 신하를 임명하고, 파면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임금의 진실된 마음을 숨기는 일이며, 임금의 마음을 신하들이 엿볼 수 없게 하는 일이다. 임금의 마음과 신하들의 마음 사이에 간격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요구하는 것은 근대정치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키아벨리(1469년∼1527년)의 군주론과는 완전히 반대된다.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주장했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군주는 선하기만 해도 안 되고, 악인이 되는 법도 알아야 한다.”

“군주는 인자함이나 신의 등 좋은 기질을 모두 갖출 필요는 없다하더라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일 필요는 있다.”

“군주는 백성을 단결시키고 충성을 지키게 하려면 잔인하다는 악평쯤은 개의치 말아야 한다.”

 

율곡은 위와 같은 마키아벨리의 주장에 반박하듯이 이렇게 설명한다. 임금이 자신의 마음을 대문처럼 활짝 열어 놓는다면, 신하들이 임금을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릴 것이다. 또 지혜로운 자들은 충성을 다하려고 할 것이고, 소인들은 간계를 부리려는 생각을 끊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임금이 모든 것을 감추고 자신의 속마음과 겉마음이 다르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랫사람들은 모두 임금을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경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임금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나라의 정치는 어지러워진다.

이러한 말들은 왕조시대에 조선의 임금을 위한 충고였지만, 요즘 시대의 말로 바꾼다면 다음과 같은 말이 될 것이다.

 

“윗사람이 진실한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열고 아랫사람들을 대하면 아랫사람들은 그를 멀리하는 마음이나 의심하는 마음을 버리게 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 윗사람에 대해서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고, 마음이 좁은 사람들도 스스로 가지고 있던 나쁜 마음을 버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바로 아랫사람들을 편하게 하는 윗사람의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