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주리론과 주기론

6. 주리론과 주기론

 

가. 주리론

‘주리(主理)’에서 한자 ‘주(主)’는 주인 주, 주관할 주이며, 혹은 ‘가장 중요한’이란 뜻을 가진 한자다. 그러므로 ‘주리’란 리(理)를 가장 중시하는 이론, 혹은 리를 ‘주인과 같이 여기’는 이론이 주리론이다.
‘리’를 중시한다는 것은 물론 기보다 리를 더 중시하며, 리의 우위성을 긍정한다는 뜻이다. 이는 우주 만물, 삼라만상의 생성과 변화가 리의 법칙 혹은 리의 의지에 따른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주리론은 중국에서 발생한 ‘전통적인 성리학의 흐름으로 윤리적 입장에서 리를 가치 표준으로 삼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목적’(황의동, 76쪽)이다. 이러한 주리론을 따르는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주로 다음과 같다.(황의동, 96-97쪽 참고)

1) 리는 하늘이 준 본성으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본질이자 조건이다.
2) 리는 의리(義理)로 해석되며, 인간 행위의 준칙이고 삶의 원칙이다.
3) 의리는 인간이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숭고한 이념이며 가치다.
4) 리는 하늘처럼 높고 절대적이며 신성하다.
5) 학문은 다름 아닌 리의 인식이고 실천이다.
6) 기는 리에 비하여 사악하며, 악할 가능성이 있으며 경계의 대상이다.
7) 리는 귀한 것이며, 기는 천한 것이다.
8) 리는 높은 것이며, 기는 낮은 것이다.
9) 리는 선한 것이며, 기는 악한 것이다.
10) 리가 군자라면, 기는 소인배이다.
11) 리가 왕도(王道, 인의仁義에 의한 도덕적인 정치)라면, 기는 패도(覇道, 무력과 권모술수에 의한 정치)이다.

우리나라에서 주리론은 이언적(李彦迪, 1491년~1553년, 호는 회재晦齋)과 퇴계 이황(退溪 李滉, 양력 1502년 ~ 1571년)이 그 중심이었는데, 이후 퇴계학파 즉 영남학파 학자들이 주로 주장하였다.
퇴계가 활동했던 시기인 1500년대, 즉 16세기에 특히 이러한 주리론적인 학풍이 크게 일어난 것은 당시 사회와도 큰 관련이 있었다. 연산군 시대(1494년∽1506년)의 폭정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었고, 무오사화(1498년), 갑자사화(1504년), 기묘사화(1519년), 을사사화(1545년) 등 4대 사화(士禍)로 선비, 즉 유학자들이 탄압을 받고 가치관이 흔들리는 심각한 시대 현실 있었다. 학자들은 당시 ‘국가 기강과 윤리와 강상을 세워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자각하였고 ‘사회정의를 확립하고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질서와 윤리를 바로 잡는다’ 의식을 갖게 되었다. 아울러 그들은 공명정대한 사회기풍을 진작하고, 유교 본래의 도덕사회를 구현한다는 염원을 가졌다.(황의동, 97쪽)
이러한 시대적 환경을 배경으로 등장한 주리론은 이후 조선시대 유학 사상사의 큰 흐름을 형성하였다.

나. 주기론

‘주리(主氣)’에서 ‘주(主)’는 앞서 소개한 대로 그 뜻이 ‘주인’, 혹은 ‘주관하다’, ‘가장 중요하다’이다. 그러므로 ‘주기론’란 기(氣)를 주인으로 삼는 이론, 즉 기를 가장 중시하는 이론을 말한다.
‘기’를 중시한다는 것은 리보다 기를 더 중시한다는 뜻이며, 기의 독자성, 혹은 우위성을 긍정한다는 뜻이다. 이는 우주 만물, 삼라만상의 생성과 변화가, 리가 아닌 기의 법칙 혹은 의지에 따른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주장은 화담 서경덕을 비롯하여 율곡학파의 인물들, 기호학파가 주로 주장하였다. 주기론을 주장한 유학자들은 우주 자연에 특히 관심을 가졌는데, 자연의 형이상학적 탐구와 함께 자연이 변화하는 이치를 탐구하는데 관심을 두었다. 이이는 주리론 학자들이 인간의 윤리문제에 관심이 컸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황의동, 97쪽)
율곡 이이의 경우는 리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으나, 큰 틀에서 보면 주기론을 따랐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광호는 다음과 같이 퇴계와 율곡을 소개한 바 있다.

“사서삼경과 퇴계의 저술 가운데는 이(理)에 대한 서술은 자세하지만 기에 대한 서술은 자세하지 않다. 이는 유학의 문제의식이 도덕의 문제, 사람다움의 문제, 가치의 문제와 사회질서의 문제에 치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서삼경과 유학의 문제의식이 이러하지만 조선 유학사에는 기(氣)를 중시하는 유학사의 맥이 있다. 화담 서경덕의 학맥이 그러하다. 퇴계의 경우에는 확고한 주리론의 입장에서 유학을 공부하여 화담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파주가 고향인 율곡의 경우는 개성을 중심으로 한 화담학파의 영향을 수용하여 기를 중시하는 입장이 뚜렷하다.”(이광호, 312쪽)

율곡을 주기론을 주장한 화담 서경덕과 같은 계열로 묶어서 설명하고 있다. 이와는 다른 주장을 한 학자들도 있다. 예를 들면 이동준의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흔히 서경덕은 물론이요 이이(율곡)까지도 ‘주기론(主氣論)’이라 하여 학문적으로 연관시켜 보는 경향이 있다. 서경덕과 이이는 다 같이 기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특히 기의 불멸성, 능동성을 강조해 기의 면을 전폭적으로 긍정한 점에서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이는 서경덕이 이기의 불리(不離)에 대한 이해는 깊고 투철하지만, 그 위에 뚜렷이 극본궁원(極本窮源)하는 이(理)의 면이 있음을 몰랐다고 비판했다. 서경덕이나 송대의 장재(張載)가 기에 치우치고 이기를 혼동해 성현의 뜻에 묘계(妙契)치 못하였다고 지적했다.(중략)
이이는 이황처럼 이와 기를 엄격하게 구별하고, 이가 기에 우월하다는 이우위설(理優位說)을 주장했다. 이와 기는 결코 혼동할 수 없는 것이며, 이는 기의 추뉴(樞紐, 만물의 축과 중심)요 근저(根柢)요 주재(主宰)라는 것이다. 이의 본체는 통일적 원리이지만 그것은 사사물물에서 유행하는 것이요 만유(萬有)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황이 이와 기가 각각 실질적 동력으로 발용한다는 호발설을 주창한 데 대해, 이이는 이기는 이합과 선후가 없다는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했다.” (이동준, 1996년)

율곡은 주기론을 주장한 서경덕도 비판했으며, 주리론을 주장한 퇴계도 비판했다는 것이다. 율곡은 주기론은 분명히 아니며, 주리론도 역시 아니라고 보았다. 이러한 입장은 황의동도 마찬가지다. 그는 율곡의 입장에 대해서 이렇게 지적하였다.

“율곡은 주리론과 주기론을 종합하고 조화하는 곳에 있다. 율곡의 입장은 주리도 아니고 주기도 아니다. 리가 있으면 반드시 기도 있어야 하듯이, 기가 있으면 리도 있어야 한다. 리 없는 기 없고 기 없는 리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율곡의 입장에서는 리도 중요하지만 기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리 없는 기, 기 없는 리는 하나의 불완전한 존재다. 리는 기를 통해 기는 리를 통해 온전해진다. 이러한 율곡의 철학정신에서 주리와 주기를 지양하는 논리가 가능하다. 그래서 율곡은 당시, 퇴계, 회재(晦齋) 중심의 주리론과 화담 중심의 주기론을 하나로 종합하고 조화하는 이기지묘(理氣之妙)의 철학을 열었다.”(황의동, 98-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