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그 색깔


 

구름과 그 색깔

 

람에 이어 「천도책」에서 묻는 문제는 구름에 관한 것이다. 질문의 내용은 이제 천문(天文)에서 기상(氣象)으로 자연스럽게 옮아가고 있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천문과 기상은 매우 중요했다. 조선은 농업을 산업의 근본으로 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날씨나 기후에 따라 농작물의 생산량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름에 대한 질문은 어떤 것일까?

 

“구름은 어디에서 일어나고, 흩어져서 오색(五色)이 되는 것은 무엇에 감응한 것이며, 간혹 연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것이 무성하고 뒤섞여 흩날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구름이 어디서 일어나는 것을 묻는 게 이상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당연히 하늘에서 생긴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그렇다. 그러나 사실 이 질문은 ‘구름은 어디로부터 생기는가?’라는 묻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여기서 답해야 할 내용은 세 가지이다. 구름이 발생하는 곳, 구름의 다섯 가지 색깔의 징조, 그리고 연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은 구름의 원인이 그것이다.

율곡의 답안은 이렇다.

 

“만약 산천의 기운이 올라가서 구름이 된다면, 좋고 나쁜 징조를 그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선왕(先王)은 영대(靈臺)를 설치하고 구름을 관찰하여 길흉의 징조를 살폈습니다. 대개 좋고 나쁜 징조는 구름이 생기는 그 날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미리 징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구름이 희면 반드시 흩어지는 백성이 있고, 구름이 푸르면 반드시 곡식을 해하는 벌레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검은 구름이 어찌 수재(水災)의 징조가 되지 않으며, 붉은 구름이 어찌 전쟁의 징조가 되지 않겠습니까. 누런 구름만이 풍년이 들 상서로운 징조이니, 이는 곧 기운이 먼저 나타난 것입니다. 연기도 아니고 안개도 아닌 것이 분분하게 빛나고 맑게 흩어져 유독 지극히 화한 기운을 얻어서, 성왕(聖王)의 상서로운 것이 되는 것은 오직 경사로운 구름입니다. 진실로 백성의 재물을 살찌게 하고 노여움을 풀어 주는 덕이 없으면 이것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어찌 물과 흙의 맑고 가벼운 기운이 한갓 백의창구(白衣蒼狗)가 되는 데 비겠습니까?”

 

일반적으로 구름은 산천의 기(氣)가 올라가서 구름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만약 산천의 기운이 올라가서 구름이 된다면’과 ‘어찌 물과 흙의 맑고 가벼운 기운이’라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점은 조선후기까지 일반적으로 구름이 형성하는 원리를 그렇게 설명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수증기가 증발하여 상승해 단열팽창을 통하여 구름이 된다. 물과 흙의 맑고 가벼운 기를 수증기와 거기에 섞인 물질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문제는 이 질문의 의도가 그런 일반적인 것을 묻는 것에 포인트가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구름을 관찰하여 일종의 미래를 점치는 일에 더 비중을 둔 것 같다. 여기서 영대(靈臺)란 옛날 왕의 정원에 세워 사방을 관찰하던 누대(樓臺)로 오래된 것으로 문헌에 보이는 것은 주나라 문왕(文王)의 영대이다.

자, 문제는 구름의 색깔을 보고 길흉을 점쳤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색깔은 전통의 오방색과 같이 청·백·홍·흑·황색으로 분류된다. 그 색깔이 의미하는 징조는 각각 다르다. 인간에게 해가 되는 징조를 나타내는 것도 있고 경사스런 징조를 나타내는 구름도 있다. 그래서 구름을 단지 산천의 기운이 물리적으로 상승하여 백의창구(白衣蒼狗) 곧 흰옷이나 푸른 개 모양으로 이리저리 변하는 것으로만 보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율곡만의 독창적인 해석이 아니라 이전부터 있어 왔던 일이다. 가령 성종 때 편찬한 『동국여지승람』 속에 소개하는 고려 말 정몽주의 시에서는 “남쪽에 황색구름이 끼어 있으니 풍년이 들 것을 미리 안다.”라는 말이 보이는데, 율곡의 견해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예는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도 보인다. 이것은 일종의 구름으로 점치는 운점(雲占)이라 할 수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명나라에서 들여 온 『천원옥력(天元玉曆)』이 있어 지식인들이 이것을 많이 참고했다고 전한다.

사실 이 운점은 점성술과 유사한 점이 있다. 별을 보고 다른 하나는 구름을 보고 점을 친다는 것만 다를 뿐이지 결국 인간사회의 길흉을 점쳤다는 것은 동일하다. 자연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 어떤 일을 미리 알 수 있는 것에는 이전에 관찰한 자연현상과 일어났던 일을 기록하여, 후대에 똑같은 자연현상이 일어났을 때, 당시 일어났던 일이 다시 반복해 일어난다는 것을 믿음으로서 가능했다. 예컨대 가장 단순한 것으로 ‘개미가 이사 가면 비가 온다.’든지, ‘겨울이 몹시 추우면 이듬해 해충이 적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런 것들은 대개 같은 경험이 반복되어 생긴 믿음이다.

아무튼 이런 것에는 비교적 사실과 일치하는 것도 있고, 미신인 것도 있다. 미신인 것은 아무래도 어떤 현상과 일어나는 사건사이의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검은 구름에 수재가 난다는 것은 구름이 짙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올 확률이 있어 어느 정도 인과관계가 인정되지만, 나머지 색깔은 정말 그런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인간사회의 일과 구름의 색깔이나 모양을 연결시켰다는 점은 앞서 소개한 동중서(董仲舒)의 이론과 관계된다.

재미있는 점은 서양에서도 이러한 자연현상으로 날씨나 기후 등을 점쳤다는 점이다. 앞서 소개한 『공제격치』에는 이런 말이 보이는데, 자연현상으로 점치는 일은 동양과 서양이 다르지 않았다.

 

“구름이 서쪽에서 동으로 움직이면, 곧 하늘이 개이게 된다. 구름이 쌓이나 움직이지 않으면 바람이 분다. 바람 뒤에 비가 왔다가 해가 나올 때는 날씨가 흐리게 된다. 둘러싸인 구름이 빽빽할수록 장차 불어 올 바람도 크고, 둘러싸인 구름이 비로소 열리면, 그 방향에 반드시 바람이 생기며, 둘러싸인 구름이 일시에 얼음처럼 변하면, 반드시 맑을 것이다. 구름이 산 정상에 내려앉으면 비가 올 것이고, 구름이 젖어서 흰색이면 우박이 내릴 것이며, 구름이 골짜기 아래에 내려앉으면 맑을 것이다. 제비가 물 가까이 날고, 오리가 연달아 울면서 날아올라 구름에 이르고, 소가 하늘의 냄새를 맡듯이 머리를 쳐들고 그 털의 결을 거꾸로 핥으며, 개미가 황급히 그 집안으로 숨고, 자벌레가 흙에서 나오며, 파리가 사람에게 성가시게 달라붙어 쫓아도 도망가지 않는 것은 모두 바람이 불고 비가 올 조짐이다
(알폰소 바뇨니 저|이종란 옮김, 『공제격치』, 한길사, 2012, 255-260쪽. 참조).”